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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차렷!
입력 : 2013.10.30 20:27
K5 권총은 ‘한국인의 손에 맞는 권총을 만들자’라는 목표로 개발된 권총이다. 우리 군이 사용하던 권총은 물론, 전 세계의 권총 관련기술을 섭렵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1989년 하반기에 개발이 완료되어, 국군의 제식권총으로 사용되는 권총이다. K5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국산총기라는 의미다.
우리 손에 맞는 권총을 만들자
해방 이후 1946년 1월 15일 국방경비대가 창설되고 육군으로 발전하면서 우리 군은 본격적으로 권총을 사용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군으로부터 지급된 M1911A1 거버먼트 권총이다. 브라우닝 M1900 권총으로 자동권총의 본격적인 역사를 열은 전설의 설계자, 존 모세 브라우닝이 만든 M1911A1 권총은 1차대전부터 미군의 제식권총으로 채용되어 2차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걸프전 등에서까지 80년간 미군의 일선을 지켜온 권총이었다.
M1911A1는 45ACP탄을 사용하는데, 군용권총탄의 표준인 9mm 파라블럼 탄환보다 더욱 강력한 에너지를 가졌고 당연히 반동도 크다. 그러나 이런 강한 반동은 한국인의 체형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1980년대에는 미군조차도 M1911A1 대신 M9(베레타 92FS모델)으로 신형권총을 채용하면서 45ACP탄을 사용하는 대신 9mm 탄을 채용하였다. 당시 미군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을 맞은 것은 우리 군이었다. 과도하게 강력한 탄환이나 한국인 손에는 다소 큰 손잡이 등의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군의 권총 대다수가 2차대전 시기에 만들어져서 이미 부품의 내구연한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한국인을 위한 자동권총의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K5 자동권총 개발
K5의 개발을 위해서는 총기의 역사를 잠시 둘러볼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혈통이란 것이 있다. K5도 세계의 유명 총기들에서 그 DNA를 찾을 수 있다. 브라우닝 하이파워와 스미스&웨슨 M39와 같은 세기의 명총들이 K5 개발에 영감을 주었다.
FN사에서 1935년부터 만든 브라우닝 하이파워는 벨기에의 FN사에서 제작된 당대의 최첨단 총기로, 2차대전동안 연합국과 추축국 양쪽에서 제식총기로 사용될 만큼 우수한 총기였다. 2차대전 이후에도 브라우닝 하이파워는 여전히 전세계적 인기를 유지했고 9mm 자동권총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된 총기였다. 또한 1980년 이란 인질구출작전에서 영국의 특수부대 SAS가 애용하면서 현대에도 유명세를 탔다.
한편 이러한 브라우닝 하이파워에 2차대전의 또 다른 명총인 발터 P-38 권총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미국 총기제조사인 스미스&웨슨은 이런 발상을 실현시켜 X-46이라는 현대적인 더블액션 자동권총을 만들었다. 스미스&웨슨 사는 이 총을 미군에게 제안했지만, 2차대전 종전 후인지라 미군은 권총을 바꾸는데 관심이 없었다. 결국 이 X-46은 민수용으로 개발되어 M39라는 권총이 등장하게 되었다.
M39는 전후 가장 인기있는 더블액션 자동권총으로 미해군 SEAL팀에서 특수작전용으로 채용하기도 했으며, 개량형인 M459는 FBI의 SWAT팀에서 채용하기도 했다. 대한민국도 일부 특수부대에서 M39계열 총기를 운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K5 권총의 특징, 패스트액션
K5를 개발한 것은 바로 S&T 모티브(당시 이름은 대우정밀공업)였다. S&T 모티브는 원래 국방부조병창의 M16 생산공장으로 시작했다가 1981년 민영화하면서 국내 유일의 총기제조업체가 되었다. 이미 1972년부터 미국 콜트사로부터 총기생산에 필요한 모든 설비를 도입하여 운용해왔기에, S&T 모티브에서 만들지 못할 총은 없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S&T 모티브의 개발진들은 ‘한국인의 손에 맞는 총기’라는 주제로, 전장 200mm를 넘지 않는 적절한 크기, 12~3발 이상을 수납하는 복열탄창 등 현대적인 요구사안을 도출해내어 새로운 권총을 개발해냈다.
그러나, K5 권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격발방식이다. ‘패스트액션’, 혹은 ‘더블액션 플러스’라고 불리우는 이 격발방식을 이해하려면 자동권총의 원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자동권총의 방아쇠 동작 방식은 크게 싱글액션과 더블액션의 두 가지로 나뉜다. 싱글액션(Single Action; 단동식, 이하 SA)이란 방아쇠를 당기면 공이치기를 해제하는 1가지 동작만을 수행하여 발사가 되게 하는 방식을 말한다. 싱글액션에서는 공이치기가 뒤로 젖혀지지 않으면 방아쇠를 아무리 당긴들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다. 공이치기를 젖히면서 방아쇠를 당겨대는 서부시대의 리볼버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반면 더블액션(Double Action; 복동식, 이하 DA)은 방아쇠를 당기면 공이치기가 뒤로 젖혀졌다가 해제되는 2가지 동작이 동시에 수행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현대적인 리볼버가 바로 이런 DA방식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실린더가 돌아가면서 차탄이 장전되고 공이치기도 후퇴하였다가 해제되면서 총알이 발사되는 것이다. 현대적인 자동권총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더블액션 작동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문제는 전통적인 더블액션 격발방식(Traditional Double Action)에서는 첫발만 DA로 작동하고, 첫발을 쏜 이후로는 모두 SA로 작동된다는 것이다. 즉 첫발과 나머지발의 방아쇠 압력과 당기는 길이가 다르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보통 무겁고 긴 방아쇠 압력 때문에 첫발은 다소 조준점의 좌측으로 치우치다가 그 다음 발부터는 가볍고 짧은 SA 방아쇠압력 덕분에 정확히 조준점에 들어간다. 즉 첫발과 다음 발의 방아쇠 감각이 다르다는 것이 DA 권총의 단점이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DA 방식은 ‘DA/SA 방식’이라고도 부른다. 물론 이런 방아쇠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DA 방아쇠로만 발사가 가능한 DAO(Double Action Only) 방식이 나오기도 했지만 방아쇠 무게가 무거워 사격시 부담이 높았다.
패스트액션의 작동방식
1. 슬라이드를 뒤로 당기면서 약실에 장전을 하면 공이치기는 뒤로 젖혀진 상태가 된다.
2. 손으로 공이치기를 앞으로 밀어 넣는다.
이제 권총은 패스트액션 모드로 발사준비 상태가 되었다.
3. 방아쇠를 중간까지 가볍게 당기면 부드럽게 걸리는 느낌이 난다.
가. 이때 방아쇠를 놓으면 공이치기는 뒤로 젖혀진 채로 유지된다.
(Cocking 상태)
나. 계속 방아쇠를 당기면 탄환이 발사된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해답은 바로 패스트액션이었다. 즉 첫발을 발사하는 경우 무거운 DA 방아쇠 대신에 SA 방아쇠로 발사가 가능했다. 이에 따라 첫발에 많은 힘이 들어가는 DA 방아쇠와는 달리 패스트액션 방아쇠는 SA 정도의 힘으로 당겨도 첫발이 발사되므로 매우 신속하고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다. 사실 이 패스트액션 기구는 벨기에의 FN사가 처음 개발을 시작하여 미군의 차기 권총의 후보기종으로 제안했으나 채용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방식이었다. 이를 현대적으로 완성시킨 것이 S&T 모티브로, K5의 개발과 함께 국제특허까지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90년대 'DP51'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수출 모색
K5 권총은 90년대에 들어서는 명실공히 한국군의 제식권총으로 국군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지휘관은 물론이고 전차병, 헌병 등 다양한 병과에서 운용하고 있다. 이렇게 국내시장이 완성되자 K5는 해외진출의 기회를 모색하게 된다. K5는 DP51이란 이름으로 총기시장의 본고장인 미국으로 1991년부터 수출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 DP-51을 수입했던 업체들 가운데에는 지금은 1911권총을 만들기로 유명한 킴버사도 있었다.
최초로 미국진출 당시 DP-51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대중은 익숙한 것을 찾기에, 패스트액션이라는 전혀 새로운 격발방식의 새로운 총기에 뜨거운 반응을 보내진 않았다. 패스트액션이 매우 안전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미국의 대중들은 잘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군용권총다운 단단함이 있었지만 세계적인 유행이나 요구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었던 탓도 있었다.
S&T 모티브(당시 대우정밀)는 미국시장에 대응하기 위하여 K5의 컴팩트형인 DP-51C, 40S&W탄을 사용하는 DH-40 등을 발매했으며, 45APC 탄을 사용하는 DH-45도 개발하여 양산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으나, 상황이 바뀌었다. IMF로 국내경제상황은 요동쳤고, 총기의 본고장 미국을 공략하려던 노력은 좌절되었다.
LH9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 재도전
그러나 그로부터 10여년 후, 새로운 시도가 시작되었다. 미국의 신생 총기업체인 라이온하트 인더스트리(LHI)가 미국시장에서 잊혀져가던 K5 권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LHI는 2011년말 창설된 이후 이듬해 초에 곧바로 S&T 모티브의 K5권총을 자사의 주력판매모델로 지정했다. 단 과거의 DP-51과는 다르게 현대적인 변화를 모두 적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권총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LH9 권총이다.
LH-9는 K5와 DP-51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권총으로 탄생했다. 우선 제일 큰 변화는 외관이다. 과거 도색을 하던 총기와는 달리 LH9에는 ‘세라코트(Cerakote™)’라는 특수 세라믹 코팅방식이 채용되었다. 듀라코트나 T코트 등 다양한 총기코팅방식이 있는데, 세라코트는 그중 가장 고급이고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하여 총기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소재이다.
눈에 띄는 배려도 많다. 공이치기를 둥글게 만들고, 슬라이드(가스활대) 앞부분에 널링(당기기 위한 홈)을 넣어 앞부분을 잡고도 장전이나 약실확인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탄창도 과거 13발 짜리에 더하여 이제는 15발 탄창도 발매되고 있다. 권총의 손잡이는 다이아몬드형 설계로 세심하게 배려했다. 다소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잡아보면 편리한 이 손잡이는 슈어파이어(Surefire)사의 수석디자이너이자 부사장을 역임한 폴 킴에 의해 설계되었다.
LH9은 크게 3가지 버전으로 나뉜다. 기본모델인 LH9과 총열을 3.6인치로 줄인 컴팩트모델 LH9C가 있다. 또한 현용 택티컬 장비들 가운데 표준이랄 수 있는 피카티니 레일을 채용한 LH9-MKⅡ가 있다. 여기에 조준이 편리한 것으로 유명한 노박 사이트를 장착하는지 여부, 그리고 총몸의 색깔을 탄(Tan; 사막색)으로 하는지의 여부로 모델이 나눠지면서, 모두 12가지의 선택이 가능하다. 과거 DP-51 시절에 구현하지 못했던 세련됨과 첨단의 느낌이 LH9에서는 살아나고 있다.
그래서 LH9을 받아들이는 미국시장의 태도는 DP-51때와는 다르다. 세계 최대의 총기전시회 SHOT SHOW에서 정식 런칭된 이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해외 사이트를 살펴보면, 많은 미국의 리뷰어들이 LH9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격 밸런스 뛰어나 국산 총기의 세계 진출 기대
무엇보다도 어떤 총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직접 사격을 해보았다. 총기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음을 쏴보고 즉각 알 수 있었다. 특히 3.6인치 총열의 LH9C 모델에서도 반동이 즐겁게 오고 있다는 것을 사격을 해 보면 쉽게 알 것이다.
권총사격술 교범이 아직도 5~60년 전 수준에 멈춰있는 현실에서도 잘도 이런 엄청난 물건을 만들어냈구나 싶었다. 우리 군에서 사용하는 K5와 유사하지만, 훨씬 더 개량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K5 보다 더 많은 돈을 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만큼 S&T모티브가 관록이 있는 총기제작사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LH9의 등장에서 고무적인 점은 한국의 총기도 절묘한 기획력과 신뢰성 있는 기술력이 만났을 때 파괴적인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상품으로 연결하는 도전이 계속된다면, 더욱 훌륭한 한국산 총기들이 나올 것은 분명한 일이다.
첫댓글 대한민국 권총 세계로~~
권총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게 스포츠화 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