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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학당의 교육과정은 두 종류였다.
1년제 하사관 과정과 4년제 장교과정.
학년마다 3백 명씩 전교생 1,500명.
40여개 수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그래서 연병장에서는 늘 제식 훈련이 있었다.
나는 제식 훈련 교관들을 학년별 5개 조로 나누었다.
수업이 종일 있는 건 아니기에
여유가 생긴 조교들은 특과라며 좋아했다.
나는 그들을 통해 생도 이력을 파악했다.
전생을 통해 아는 건 단기서 등 굵직한 인물뿐,
그외 어떤 군소 군벌들이 나올지는 몰랐기에
정리한 이력은 훗날의 세력다툼에서 주요정보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모르는 조교들은
기록을 착실히 정리하는 나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서류 정보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학생들은
지역정세나 민심 파악의 훌륭한 표본이었다.
그들과의 개별 면담을 통해
이 나라가 이미 무정부 상태임을 깨달았다.
지역의 주인은 관리나 토호인데
그들 안중에 대의나 국가는 없었다.
억울한 일의 배경에는 이권이 있었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일에는 권력이 개입해 있었다.
권력은 사회정의보다는
사리사욕 추구수단에 불과했다.
권력에 다가서는 수단은 과거나 무력이지만
너무 까마득한 길이었기에
현실적 방도는 유력자에게 붙는 것이었다.
무비학당 지원동기 역시 졸업하면 보장되는 신분,
그리고 매달 지급되는 생활비였다.
생활비는 월 4냥. 1냥은 1,400∼1,500문文,
국수 한 그릇이 10문이다.
학당입학에 몰린 배경으로 이 보조는 중요했다.
혜택은 생활비만이 아니었다.
생필품 지급에 졸업 후 진로보장. 잘만 하면 유학 특전도 있었다.
하지만 특혜에는 엄격한 규율, 왕조에 대한 충성, 고된 훈련이 요구되었다.
짜이펑 학장과 원세개 학감은 제식훈련에 관심이 컸다.
서태후의 관심사항이기도 했지만
싱그러운 젊은이들이 벌이는 퍼레이드에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저런 훈련이 정예병 양성의 초석이라고...?”
분열 행진을 지켜보던 짜이펑이 중얼거리자
한 걸음 떨어져 수행하던 내가 말했다.
“서양 군대는 사격훈련 이전에 저런 동작부터 익힙니다.
제식훈련은 부대 통솔의 기본입니다.“
“하긴, 수십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려면
긴장의 연속이겠지.”
원세개도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습니다. 학감님. 저렇게 단련된 장병들은
일단 유사시에는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갖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짜이펑이 말했다.
“제식훈련은 긴장을 유지하는 수단인가?”
“예, 평소에 무기를 손질해두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짜이펑은 연병장을 누비는 대열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짜이펑은 원세개, 단기서, 신경석 등
연배의 교관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조는 무너져가는 집, 기둥을 갈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어떤 대목大木도 손대기 난감한 집이다.”
토론은 활발했지만 결론 없는 짜투리 생각들로 끝나곤 했다.
나라를 일으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부국강병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하지만 민심은 조정을 떠난 지 이미 오래.
저들은 단순하다. 먹을 것을 따라간다.
양무운동으로 무기 공장 등 중공업을 일으켜본들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등을 돌리기 마련.
우선 분야는 먹고 입는데 쓸모 있는 방직업 등 경공업이었다.
때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한인과 기인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유목민 출신인 기인에게는
농경민족의 집과 옷이 맞지 않는다.
열린 집 게르와
닫힌 집 사합원의 차이는 곧 사고방식의 차이.
유목민들은 재물보다는
용사의 기백, 신의를 존중한다.
매를 날려 사냥하고 목초지 따라 가축과 이동하는
자유를 중히 여긴다.
그래서 땅에 묶여 사는 농민을 깔본다.
스스로도 이미 정착민이 되어버린 주제에...!
여하튼 혹독한 조드의 겨울을 견디던 강인한 정신은
이제 멀리 사라져버렸다.
톈진 무비학당의 월례회의는 매월 초하룻날.
짜이펑 학장은 언제나처럼 듣기만 하고
회의는 원세개 학감이 진행했다.
오늘의 주제는 영외 제식훈련.
즉 시가지 행군훈련. 제안자인 포병교관 단기서가 나섰다.
“.... 따라서 이 행사는 불순세력들에 경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원세개가 물었다.
“불순세력이란 어떤 부류를 말하는가?”
“덕국 유학의 인연으로 소관은 조계 외국인들과 교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 실정에 어둡지요.
그래서 조계 바깥도 조계처럼 평화로운 줄로만 압니다.
아편전쟁 이래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린 적개심에
저들은 둔감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황인데도
자신들이 화약고 위에 있다는 걸 모릅니다.”
“귀관이 느끼는 위기의 근거는 무엇인가?”
“시중에 괴담이 돌고 있습니다.
양인이 고아들을 교회묘지에 암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여기에 시정잡배들이 유언비어를 부추기고...
사소한 계기만 생겨도 뻥 터져버릴 만큼
아슬아슬한 분위기입니다.
불상사가 벌어질 경우 오합지졸 녹영군으로서는
감당키 어려운 사태가 우려됩니다.
강력한 힘을 과시해 경거망동을 억제할
위력시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기서가 말하는 위기는 바로 의화단 사태의 징후였다.
나는 그의 혜안에 감탄했다.
그러나 원세개 등 다른 교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건 치안당국의 소관 아닌가?
우리가 굳이 나설 일은 아닌 것 같다.”
묵묵히 듣던 나는 손을 들었다.
비록 외국인 신분이지만 서태후를 알현한 나는
교관단에서 비중 있는 위치였다.
“본 제안에 찬성합니다.
치안당국의 한계는 일이 터질 때까지 방관하다
사후수습이나 하는 정도.
미연에 방지할 능력을 갖춘 곳은 우리뿐입니다.
물론 훈련에도 도움이 되고...“
원세개의 시선이 짜이펑을 향했다.
좌중을 쓱 훑어본 짜이펑이 입을 열었다.
“최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따라서 지휘관이 세상사 전반에 관심을 두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조계와 백성 간에 충돌이 생기면
호시탐탐하는 외국군이 나설 빌미를 줄 수 있다.
소요사태의 싹이 보인다면
이는 결코 적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본 제안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영외 훈련을 준비하라.
아울러 우려되는 소요사태 동향을 조사해
괴담의 진원지를 파악하라.“
매사에 소극적이던 평소의 짜이펑답지 않은 단호함에
원세개가 흠칫하는 표정이 되었다.
원세개는 단기서를 조장으로 삼아 조사단을 구성했다.
동시 출신의 수재 오패부, 조교 장작림, 하사관 과정의 풍옥상 외 3명,
그리고 나까지 모두 8명.
우리는 사복차림으로 톈진 시가지를 탐문했다.
나와 작림은 괴담의 진원지인 교회묘지를 찾았다.
나무 푯말이 늘어선 묘지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지저귈 뿐 한적했다.
그러나 주점과 객잔에서 보고 들은 시정의 소문은 흉흉했다.
“양귀들이 약재로 쓸 간을 빼내려고 고아들을 죽인다우.”
호떡장수 영감.
“고아원은 그저 눈가림으로 하는 곳이지.”
한약방 주인
“목사나 수녀들은 죄다 식인종이라던데.”
객잔의 점소이.
상의를 벗어부친 배불뚝이 무뢰배들은
얼근히 취해 길거리에서 공공연히 떠들었다.
“양귀들을 죽여라. 우리 아이들을 잡아먹고 있다.”
그러나 막상 현장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누군가로부터 들었다고만 했다.
직접 봤냐 물으면 별걸 다 묻는다는 듯 이상한 놈 취급을 한다.
“당연한 거 아냐?
양귀들은 끼니마다 고기를 썰어 먹잖아,
그게 무슨 고기겠어?”
시가지를 다니면 권민 拳民이라는 자들이 자주 보였다.
지도자도 조직도 없는 떠돌이들이지만
복장은 비슷했고 유언비어의 전파자이기도 했다.
황포黃布로 머리를 싸매고 붉은 배가리개를 한 그들은
행태도 비슷했다.
이들은 권법을 자랑하고 신을 모시는 의식을 했다.
칼로 배를 베거나 창끝을 인후로 버티는 시범을 보이며
도창불입刀槍不入의 재주를 과시했다.
산동에서 직예(하북성)까지,
하남에서 산서에 이르기까지 없는 곳이 없고 다들 비슷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조종하는 무리들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패부의 보고였다.
“하지만 그걸 빌미로 욱 하는 분위기인 건 맞습니다.
울고 싶은 데 뺨 때려준 격이라고나 할까.”
동시 출신의 수재다운 예리한 분석이었다.
사실 성난 자들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필요한 건 울분을 터트릴 명분이었고
유언비어는 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자신들이 벌이는 사태가 양인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염려 따위는 염두에도 없었다.
그저 속 시원하게 해원 굿이나 한바탕 벌이고 싶은 욕망에 취해
날뛸 뿐이었다.
조사결과를 취합한 원세개는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소요사태가 벌어질 것은 뻔했다.
폭도들이 조계를 습격한다면...?
건수를 잡은 양인들은 얼씨구나,
보상이나 영토를 요구할 것이고 조정은 또 한번 굴욕을 당할 것이다.
이걸 미연에 방지한다면?
조계 경찰과 협력한다면 가능할지도...
하지만 일단 방지하는 데 성공한다 치자.
그러면 아무 일도 없던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개선장군은 칭찬받지만 전쟁을 례방한 자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법.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이다.
보통 사람의 생각과는 궤를 달리하는
원세개의 진면목이 이 대목에서 드러났다.
‘차라리 방조하자.
그리고 사태가 곪아터진 다음 외국공관과 조정에 생색낼 기회를 잡자.’
원세개는 단기서에게 지시했다.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들의 신상정보를 수집하라."
그리고는 짜이펑 학장에게 보고했다.
“톈진 시가지 분위기는 역시 흉흉합니다.
유언비어 또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영외 훈련실시는 타당하다고 사료됩니다.”
영외 행군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초 계획에 비해 대폭 축소된 규모였다.
조계와 톈진 시가지를 지나는 행군 대열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했다.
우리도 신식군대가 있구나
라는 소박한 반응.
양이들 흉내나 내는 꼭두각시들이라는
삐딱한 시선.
오호, 제법인데... 라는 외국인들의 반응.
공통점은 미적지근하다는 점이었다.
환호도 없지만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돌을 던지는 식의 과잉반응도 없었다.
그건 시가지나 조계나 매일반이었다.
군대와 그들은 별개의 존재였고 둘 사이에는 어떤 동질감도 없었다.
지켜보던 나는 갸우뚱 했다.
이런 반응이라면 위력 시위의 효과는 의문이었다.
이 조치가 과연 소요사태 예방에 도움이 될지
단지 시기를 늦출 뿐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미지수였다.
비록 단기서의 제안은 지지했지만 나는 방관자.
위력시위 정도로 진정될 사태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의화단 사태로 야기될 참상을 알면서 수수방관하기는 양심에 거리껴
단기서를 지지했었다.
그러나 유언비어 유포자들과 원세개의 접촉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청방을 통해 무뢰배들에 접근한 원세개는
양귀들과 싸우는 애국자라 부추기며 용돈까지 쥐어주었다.
관에서 자신들을 후원한다 믿은 무뢰배들은 더욱 기가 살아 날뛰었다.
이 시대의 군대에는 별도의 정보조직이 없었다.
손자병법의 나라답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었다.
훗날 국민당 특무조직은 30만 명의 대 조직을 자랑하지만
지금 군대는 그때그때 조사나 정탐을 할 뿐 정보조직 자체가 없다.
이들은 갑오 중일전쟁의 승리가 정보전의 승리였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는 조정 또한 매한가지였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세운 탁상공론식 정책이 현실에 맞을 리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청나라 몰락의 근본 원인일지도 몰랐다.
신군의 요람인 무비학당에서조차
정보활동이라고는 조교단을 통해 내가 수집한 정보가 전부였다.
“둥베이에서는 정보를 어떻게 얻지?”
나는 작림에게 물었다.
“끄나풀들이 있지. 아편굴, 대도회, 청방, 홍방...”
외부 정보조직을 이용한다는 얘기였다.
정규전 아닌 게릴라 전술...
소규모 조직에게는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리라.
“관군도 그런 식으로 할까?”
대답은 응구첩대로 나왔다.
“판박이지. 관군이나 비적이나 뿌리는 같으니까.”
“그런가? 나는 관의 위신상 다를 줄 알았는데.”
“무능한 관리나 지휘관들이 흔히 그런 식으로 나오지.
하지만 기껏 애써봐야 민간조직을 능가하긴 어려워.
그래서 유능한 관리들은 방회들과 끈을 갖거나
은밀히 왕래하기 마련이야.”
정보활동의 외주라는 조직 모델을 발견한 나는 무릎을 쳤다.
“둥베이에서 하던 그걸 여기서도 할 수 있을까?”
“거기서야 꽌시가 통하지만 여기서는... 글쎄,
돈으로 어느 정도 메꿀 수야 있겠지만
아무래도 한계는 있을 거야.”
“학당에 돈과 사람은 넘치니 일단 해보지.”
원세개에게 보고하자
무릎을 치며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조선에서 10년을 지내면서 정보의 중요성을 실감했네.
진즉 그 생각을 못한 내가 멍청했군."
즉석에서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내가 돌아서는 순간,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청방을 통해 사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공식 정보조직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무비학당을 손에 넣고 휘두르려는 판에 끼어드는 조선인 역관이 꺼림칙했다.
나와 작림은 3명의 조교와 톈진을 누비기 시작했다.
저마다 고객들의 수준이 다른 아편굴들, 점포와 반점들은
모두 이런저런 방회들의 세력권에 속해 있었다.
우공동모왕의 유일한 머슴애 우아는
궁에 있다가는 내시가 될 판이라 톈진으로 와 무비학당에서 지내고 있었다.
거지들과 안면이 있는 우아는 다양한 정보선을 잘 끌어왔다.
어른들보다 선이 많을 뿐 아니라 내용도 알찼다.
재미를 본 작림은 꼬맹이들을 더 끌어들이자고 했다.
아이들 덕분에 태후의 칭찬까지 들은 마당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어른들 틈에서 혼자 지내기가 거북했던 우아는
두월생이라는 아이를 데려왔다.
나는 아이들의 채용을 무비학당에 정식으로 건의했다.
둥베이에 풍운을 일으키는 5.5단의 탄생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우아와 두월생은 과일행상으로 돌아다녔다.
손재주 좋은 두월생은 껍질이 끊기지 않게 한 줄로 깎아내는 묘기를 시전했고
그게 신기했던 사람들은 우정 그를 기다렸다 과일을 사곤 했다.
5.5단은 방회들과 신뢰를 쌓아갔다.
방회조직원은 어디에나 있다. 인력거꾼, 항만노동자, 수공업자,
가게점원, 경찰관 등 구석구석 뿌리를 내려 세력을 이루었다.
그들의 세상은 흑사회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양한 먹이사슬의 정점에는 어김없이 관과 토호들이 등장했고
그들 또한 민초들의 동향을 예의 주시했다.
꼬맹이들의 구역은 조계.
뜨내기 행상은 터주대감인 토박이 상인들 눈치를 살펴야 했.
자리 잡고 팔면 훼방 놓거나 쫓아낸다.
그래서 객잔이나 유흥업소를 돌아다니며 팔곤 했는데
정보수집이 목적인지라 그건 오히려 바람직한 방식이었다.
낱개로도 팔고 즉석에서 깎아도 주기도 했는데
두월생은 사과나 배 껍질을 얇고 길게 한 줄로 깎아내는 솜씨로 인기를 끌었다.
언젠가부터 매상이 줄어 갸웃거리던 수과점水果店 상인들은
수레를 끌고 다니는 꼬맹이들이 원흉임을 드디어 알았다.
“요런 발칙한...!”
줄어든 매상 때문에 장괘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듣고 시무룩하던 노삼은
수레를 밀고 가는 꼬맹이들을 보자 대뜸 씩씩대며 달려갔다.
후통 골목으로 막 접어드는 우아를 따라잡은 노삼은
꼬맹이의 조그만 엉덩이를 냅다 걷어찼다.
장정의 굵은 다리에 차인 꼬맹이는 붕 떴다
네 활개를 쫙 펴며 개구리처럼 퍼졌다.
수레를 끌던 두월생이 놀라 돌아보자
노삼은 대뜸 삿대질 했다.
“바로 네놈들이지? 마구잡이로 팔고 튀는 뜨내기가...!”
“... ?”
“오늘 단단히 버릇을 가르쳐 주마. 다시는 허튼 수작 못하도록!”
한 대 쥐어박으려고 다가갔다. 그
런데 갑자기 하늘이 빙 돈다.
어, 어 하는 순간 몸통이 땅바닥과 거세게 부딪쳤다.
아니.. 이게?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하는 데 가슴을 지그시 밟는 꼬맹이.
“버릇을 어쩐다고...?”
아무리 봐도 지금 메다꽂은 게 자기라는 표정이었다.
기가 막혔다.
이 밤톨만한 자라 새끼가..!
일어나려는데 큰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이..이...!
시뻘게져 용을 썼지만 마찬가지.
비로소 사태가 심상찮다는 사실을 깨달은 노삼은 일어서기를 포기 했다.
이건 도저히 열 살 남짓한 아이의 완력이 아니었다.
눈탱이가 시퍼렇게 멍든 노삼을 본 수과점 장궤 진씨는 노발대발했다.
“어르신, 녀석은 아이가 아닙니다요.
요괴올습니다.”
힘깨나 쓴다던 노삼의 기가 팍 죽은 모습에 겁이 난 장궤는
뒷배를 봐주는 주먹패 이사 李四를 찾았다.
꼬맹이들 수레를 본 이사는 혀를 찼다.
조계의 수과점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러나 불만을 제기한 곳은 한 군데 뿐...?
게다가 소쿠리 서너 개에 담긴 과일은 많지도 않았다.
‘겨우 저걸 판다고 꼬맹이들을 잡도리 하라...?
째째하기는..‘
목을 카악 돋구어 가래침을 투악 뱉은 이사는 수레로 다가갔다.
“야, 감 하나 줘.”
“예, 여기서 드실 겁니까?”
굽신한 두월생이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중 큼직한 감을 깎기 시작했다.
꼭지를 따낸 다음 장도로 종이처럼 얇게 깎은 껍질이 길게 늘어진다.
다 깎은 감을 접시에 담아 공손히 내민다. 조신한 태도에 호감이 갔다.
감을 받으며 팔을 슬쩍 잡았다.
음...?
팔목 뼈는 원래 가는 뼈 두 가닥이다.
그런데 굵은 뼈 한 가닥만 만져졌다...!
이건 말로만 듣던 통뼈. 타고난 장사라는 뜻. 노삼이 당한 건 당연했다.
호오... 이런 일이.
더럭 호기심이 생겼다.
천하의 호걸감이 행상이라니...
“감 깎는 솜씨 한번 신통하구나. 구경 값으로 내가 한턱 내마.”
구불리 만두집의 고귀는 간만에 나타난 우아를 반겼다.
“따꺼는 아직 소식 없냐?”
“자금성 소식을 내가 어찌 알겠어?”
나누는 수작을 보니 아무래도 소쩍새 우는 사연깨나 있는 꼬맹이들이었다.
무비학당이라는 말에 이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이 바닥의 어떤 조직이나 방회도 군대를 당할 재주는 없었다.
청방의 톈진 분타 소속인 이사는
두월생의 존재를 본부에 보고했고 방은 아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5.5단의 동태도 주목했다.
의화권 무리들을 부추겨온 원세개의 행적과
반대쪽 행보를 보이는 5.5단.
이건 무비학당에 세력다툼이 벌어질 조짐이었다.
“호오, 이건 잘하면 대어가 낚일지도...”
청방은 이사에게 5.5단에 본격적인 접근을 지시했다.
이사는 과일을 사 먹으며 무비학당 소식을 귀동냥 하곤 했다.
짜이펑이나 원세개 학감,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생도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정보였다.
하지만 막상 더 많은 정보를 주는 쪽은 이사였다.
꼬맹이들을 찾는 이사와 어울린 나와 작림은
그에게 시시콜콜한 청방 이야기를 즐겨들었다.
대운하를 장악한 천하의 청방.
양주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5천리 대운하 주변에서
이들의 이목을 벗어나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사는 톈진 남쪽, 산동과 직예 경계에 의화권 무리들이 창궐한다고 했다.
무예를 팔며 술법을 전수하는 그들은
아미산이니 곤륜산에서 전수받았노라 떠벌린다.
창봉을 휘두르며 기공을 보여준 후
무슨 무슨 신선이 붙었노라 떠든다.
마을과 거리를 떠도는 패거리들의 왕초는
사형이라 불리는 자들.
교당을 태우고 난동을 부릴 때도 앞장선다. 대부분
일반인이고 노인, 아이도 있다고 한다.
아이는 10살 정도부터, 노인은 7,80세까지도 있었다.
이들은 북을 치며 권법을 수련했다.
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공연이자 일종의 의식이기도 했다.
의화권의 창궐 배경은 교민 충돌이었다.
"민"은 일반 백성, "교"는 기독교 신도.
교회는 이국의 생소한 관습들을 전파했다.
제사지내고 농가 부르는 전통은 우상숭배라며 배척했다.
그 꼬락서니가 역겨웠던 백성들은
기우제 뒤에 비가 내리면 덩달아 혜택을 보는 신도들을
불로소득자라 부르며 얄미워했다.
세례, 종부례, 미사, 참회 등등. 알 수 없는 의식들은
유언비어를 조장하는 원인이었다.
교회는 버려진 아기를 데려다 키웠다.
담당부서는 교회 육영당.
버려진 아기들은 대개 건강상태가 나빴다.
육영당은 생명보다 영혼구제에 치중하는 지라 사망률이 높았고
유언비어는 늘어났다.
쌍방간에는 일체 대화창구가 없어 오해는 갈수록 늘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