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보는 무엇 하나 특별한 점이라고는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니, 한때 그는 건달 생활을 하기도 했으니 무식하고 천한 사람이었다. 그런 조보에게 어느 날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다. 동양 인문고전의 왕 《논어》와 만난 것이다.
조보는 《논어》의 첫 장을 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마치 바위가 심해에 빠지듯 말이다.
이후 조보는 매일 온 힘을 다해 《논어》를, 아니 《논어》만 읽었다. 물론 조보도 다른 인문고전들의
존재를 알았다. 하지만 그는 한평생 《논어》 한 권을 제대로 읽고, 깨치고 실천하기에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논어》만 읽었다. 그리고 《논어》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일개 장군에
지나지 않던 조광윤을 도와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운 송나라를 세웠다.
또한 태조 조광윤이 죽자 2대 황제 태종 조경을 보좌해 송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그는 평생 혼신의 힘을 다해 읽은 단 한 권의 책 《논어》를 통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의 반열에 올라섰다.
괴델은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인 열다섯 살 때 처음으로 수학에 관심을 가졌다.
당연히 그의 수학 실력은 보잘것없었다. 그런데 열일곱 살 때 그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만났다. 그리고 칸트의 세계에 폭풍처럼 빠져들었다.
이때 그의 두뇌에서 어떤 신비한 일이 벌어졌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칸트 독서를 마치고
다시 수학 공부에 매진했는데 고작 1년 남짓한 기간에 중고등학교 과정은 물론이고 대학
과정까지 마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7년 뒤인 스물네 살 때는 수학계의 상대성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했다.
이런 괴델의 모습은 아인슈타인을 떠올리게 한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도 괴델처럼 10대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만났고, 괴델처럼 칸트에 빠져들었고, 괴델처럼 20대 중반에
'상대성이론'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두 사람이 훗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사망하기 전까지 거의 매일
함께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주로 무엇을 화제에 올렸을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다.
그러니까 괴델과 아인슈타인은 한 권의 인문고전을 가지고 평생 사색했다.
- 이지성 저, ‘에이트 씽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