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이드리언 스미스(Adrian Smith). 이 이름을 아는 매니아는 매니아를 뛰어넘는 오타쿠가 아닐까. 물론 헤비 메탈 매니아는 전설의 영국 그룹 아이언 메이든의 기타리스트가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아니다.
대학 농구에 빠져 사는 사람이라면 아돌프 럽의 마지막 NCAA 우승인 1958년 ‘Fiddlin’ Five’의 멤버 중 하나로 기억할 것이고, NBA 올스타전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올스타전 50주년 기념 행사에 역대 올스타 MVP 중 하나로 참석한 스미스를 기억할 것이다.
10시즌 동안 NBA에서 뛰며 평균 11.8득점 2.2리바운드 2.4어시스트에 그쳤던 스미스는 올스타에 선발된 것은 단 한번뿐이고 유일하게 출전했던 그 경기에서 24득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MVP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사실 스미스가 MVP가 된 66년 올스타전은 스미스의 소속팀 신시내티의 홈에서 열렸다. 스미스는 그 덕에 보결로 올스타에 막차를 탄 행운을 얻었다. 물론 스미스 외에도 보결 선수가 MVP를 탄 예는 있다. 1987년 시애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부상으로 빠진 랠프 샘슨 대신 막차를 탄 시애틀 소속 탐 채임버스가 MVP를 탄 적이 있지만 채임버스는 올스타에 무려 4차례나 뽑힌 그야말로 올스타급 선수다.
66년 올스타전의 결과는 137:94, 동부의 압승이었다. 동부 올스타는 윌트 채임벌린, 빌 러셀, 오스카 로버트슨, 존 하블리첵, 제리 루카스, 윌리스 리드, 핼 그리어, 샘 존스 등 NBA 위대한 50인에 뽑힌 선수가 무려 8명이었고 스미스와 쳇 워커가 나머지 2명(당시는 10명만 선발)을 채웠으니 결과는 당연했다.
이날 경기에서 애이드리언 스미스는 26분을 뛰며 18개의 야투를 던져 9개를 넣었고 자유투도 6개 모두 넣어 24득점으로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게다가 8개의 리바운드와 3개의 어시스트는 그를 MVP로 만드는데 손색이 없었다.
‘이정도면 당연히 MVP지 않은가?’ 충분히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이곳 게시판 어디선가 NBA 10대 미스테린지 아니면 올스타전 10대 미스테린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기에 애이드리언 스미스의 올스타 MVP가 당당히 올라있는 것만 봐도 뭔가가 있지 않나하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스미스는 드리블에 의한 슛을 만들 수도 없었고 스스로 득점을 만들 능력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뭔가 미스테리가 있을 법하다.
스미스의 올스타 MVP에는 실제로 뭔가가 있었다. 당시 올스타전은 신시내티에서 열렸고 신시내티 소속 스미스가 MVP를 타는 것은 역대 올스타전에서 홈소속 선수들이 MVP를 타는 것처럼 흔한 일이다. 최근에도 93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말론과 스탁턴이 88년엔 시카고에서 마이클 조던이, 87년엔 앞서 말했듯이 채임버스가 탔듯이 말이다.
그럼 당시 신시내티 선수가 스미스 뿐이었는가 아니다. 당시엔 팀의 수가 몇 안될 때라 신시내티도 스미스 외에 제리 루카스, 오스카 로버트슨이 올스타에 뽑혔다.
그런데 왜 스미스가 MVP를 탔을까… 쟁쟁한 루카스와 로버트슨을 제치고…
물론 이날도 로버트슨과 루카스의 활약은 대단했다. 레드 아워백 감독의 정책에 따라 동부 올스타들은 거의 25분 정도씩 나누어 뛰었고 루카스는 23분을 뛰며 10득점 19리바운드, 로버트슨은 25분을 뛰며 17득점 10리바운드 8어시스트의 트리플더블급 활약을 했다.
하지만 스미스의 24득점 8리바운드에 로버트슨과 루카스는 MVP를 내줘야 했다.
실상은 이렇다. 스미스는 다른 신시내티 선수들처럼 오스카 로버트슨의 절대적인 신봉자 중 하나였다. 또 로버트슨도 오디(Odie)라고 불렸던 스미스를 아꼈다. 올스타 경기에 앞서 로버트슨은 신시내티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인만큼 신시내티 선수가 MVP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
로버트슨의 통산 올스타기록은 평균 31.6분 20.5득점 5.8리바운드 6.8어시스트이다. 하지만 이날 기록은 위에 언급했듯이 6분 이상 적게 뛰면서도 어시스트는 1.2개나 더했다. 이 어시스트의 대부분은 스미스의 손에 들어간 것이고 뛰어난 캣치앤슈터 스미스는 정확히 슛을 날렸다. 로버트슨의 패스는 워낙 절묘해서 스미스는 완벽한 기회에서 맘먹고 슛을 던졌던 것이다.
그렇다. 그날 스미스의 MVP는 로버트슨이 지휘한 것이다. 로버트슨은 경기를 지배할 능력을 지닌 것이다. 어차피 라이벌 오하이오 주립 대학 출신 제리 루카스와는 원만한 관계도 아니었으니 스미스를 밀어준 것이다.
훗날 로버트슨은 그날 경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 경기는 신시내티에서 열렸다. 그리고 스미스는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퓨어슈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언론의 조명을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내가 스미스에게 그렇게 하도록 말했다. 그리고 스미스가 MVP를 수상한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기분 좋았다.”
아직까지 스미스는 그날 부상으로 받은 66년형 무스탕 컨버터블을 차고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 심심해서 함 써봤슴다. 홀오브페임란 활성화하자고... 사실 이번 여름 회사다니면서 이런 글들을 쓰려고 했는데 관두는 바람에...
첫댓글 와 너무잼나게잘읽었습니다ㅋ무척이나흥미로운 글이네요 당시서부올스타구성도 궁금해지네요 ㄷㄷㄷ
그야말로 뽀록이군요
그야말로.. 대단한 선수군요..
멋진 이야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