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간 목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025. 12. 3.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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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간 목요일 강론>(2025. 12. 4. 목)(마태 7,21.24-27)
<‘믿음’이란, ‘믿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마태 7,24-27).”
1)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실 때,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마태 23,3).
그들은 자기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이 더 깊고,
하느님을 더 잘 섬긴다고 주장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실제 삶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실천 없는 말은 ‘빈말’이고, ‘거짓말’입니다.
‘낙타와 바늘구멍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이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젊은이가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하고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19,20-22).”
그 젊은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했고, 그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마태 19,16).
예수님께서는 친절하게 그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 젊은이에게는 그것을 실행할 의지도, 간절함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알고 있어도 그 길을 실제로
걸어가지 않으면, 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어도 그 방법을 실제로 실행하지 않으면,
알고 있다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아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한 진리입니다.
<행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실행하다.’를 ‘삶으로 실천하다.’,
또는 ‘실제로 그렇게 산다.’로 바꿔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이란, ‘믿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신앙과 생활이 하나로 일치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에 생활이 신앙과 완전히 다르다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고, 신앙도 아닙니다.
신앙인은 ‘믿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2) ‘회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을 이렇게 꾸짖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7-8).”
이 말은, “하느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억지로 하는 회개는,
또 형식적으로 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또 ‘겉으로만’ 회개하는 척 하지 말고,
삶으로 실천하는 진짜 회개를 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루카복음에는 그 ‘실천’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루카 3,11.13.14).”
‘회개’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한 후의 삶’은 ‘회개 전의 삶’과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회개하고 있다고 말하는데도 그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그것은 ‘거짓 회개’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 전과 부활절 전에 고해성사를 보는
‘판공성사’를 시행합니다.
그런데 만일에 ‘고백’이라는 형식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백 전의 통회와 정개를 잊어버리거나 무시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그 고해성사는 거짓 회개가 되어버리고,
성사모독죄를 짓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형식이 아니라, 마음과 삶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3)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에 관한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돌밭’에 관한 말씀에 연결됩니다(마태 13,5-6.20-21).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뿌리’입니다.
집을 모래 위에 지어서 기초가 없는 것과
씨가 뿌리를 내리지 않는 것은 ‘같은 상황’이고,
집이 무너지는 것과 씨가 말라죽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평소에 ‘실천’은 하지 않고 믿는다는 말만 한 사람은,
환난이나 박해를 만나면 금방 신앙을 버립니다.
외부의 압박에 대한 저항력과 인내심은
실천하는 신앙생활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 강물, 바람을 ‘주님의 심판’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을 하느님 나라의 ‘안에’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으로, 또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을 하느님
나라의 ‘밖에’ 집을 짓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크고 멋있고 좋은 집을 지어도, 하느님 나라의
‘밖에’ 집을 짓는 것은 ‘헛되고 허무한 일’이 될 뿐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는 ‘그날’이 오면, 하느님 나라의
‘밖에 있는 것들’은 모두 영원히
소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묵시 21,1).>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대림 제1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