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머니가 갓 태어난 아기를 산에 툭 던지듯 버리겠는가. 묻어 준 것이다.
<尹이 문화특보를 신설한 연유가 여기에 있을 듯>
비록 내가 윤 대통령을 만세의 원수로 친 지 이미 오래지만, 그가 하는 일을 가만히 보면, 아마 시대와 운명이 맞는 사람인 모양이다 그 연유는 마지막 구절에 가서 저절로 밝혀진다 어제(7.5) TV조선 9시 뉴스가 다음처럼 말했다
"출생신고도 안 된 이른바 '유령 영아'가 400건으로 폭증했다.”
유령 영아란 말도 섬뜩하지만 츨생신고를 안 하면 다 유령 영아가 되는가? 그리고 8년 전의 영아 시신을 찾겠다면서 경찰이 이 삼복더위에 땅을 파는 노가다를 하는 현장도 화면에 나왔는데 태어난 지 8일 만에 숨졌다는 것이다. 8일 된 아이의 인권(?) 보호도 중요하기는 하나, 경찰관 수십 명을 저렇게 땡볕에 풀어놓는 것도 문제이고 국가 행정력 낭비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또 진주에선 2년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숨지자 야산에 유기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는 화면도 나왔다. 나도 자수해야겠다. 40여 년 전에 갓 태어난 내 첫 아이의 시신을 뉴스의 표현대로라면 유기했기 때문이다.
첫 아이는 밤중에 태어나서 이튿날 아침녘에 죽었다. 이전에는 동네마다 그런 어른이 한 명씩 있었는데 우리 동네에도 남의 궂은일을 잘 봐주는 어르신이 한 분 있었다. 이 할아버지가 나에게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들라 하고 자기는 괭이를 메고 뒷산에 올라갔다. 참고로 지금은 출생신고를 1개월 이내에 해야 하지만 그 당시는 6개월이든가 그랬다.
그 어른이 적당한 자리를 살펴보고서는 괭이질을 하며 나에게 좀 큼지막하고 무거운 돌을 하나 주워오라고 시켰다. 그렇게 생긴 돌을 찾느라고 이리저리 산을 헤매다가 적당한 돌을 하나 낑낑대며 들고 오니 어르신이 벌써 파묻은 후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이를 묻는 광경을 나에게 보이지 않으려 그랬던 것이다. 그 어르신의 깊은 속뜻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남이 그런 액을 당한다면 나도 그렇게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평생 그럴 기회가 나에게는 오지 않았다. 그런 일도 하늘이 다 사람 봐 가면서 시키는 것일 터이다. 성경 말씀대로 사람은 도공(陶工)이 만든 질그릇이다. 질그릇이 도공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오?”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나에게 소금을 한 주먹 뿌렸다. 잠시 후에 소금을 툴툴 털어 내고 방에 들어가니 內子가 수건을 돌돌 말아 아이처럼 만들어 눕혀놓고 수건을 토닥이면서 “아가야. 자장. 자장” 하고 있었다. 섬뜩함에 “이기. 무슨 짓이고.” 고함 한 번 지르고 어머니 방에 갔다. 그 사실을 말하고 그때부터 일주일 가까이 그 방에는 겁이 나서 들어가지 못하고 어머니 방에서 잤다. 어머니가 “내비리두라. 괜찮을 끼다. 자네가 방에 가기 싫은 것도, 저 사람이 저러는 것도 다 아이와 정을 끊기 위함이다. 너무 마음 쓰지 마라.” 신통하게도 며칠 지나니 내자도 다시는 그러지 않았고 나도 내 방에 가지게 되었다
내 경우에도 '유령 영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출생신고를 한 후에 이어서 사망신고도 해야 한다. 출생신고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사망신고는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이 경우, 죽은 아이를 출생신고하고 또 사망신고를 하는 사람은 오천만 국민 중에 단 한 명도 없었을 뿐 아니라 출생신고 전에 아이가 죽으면 모두가 산에 묻었다. 요사이 계산법대로라면 유기를 한 것이다. 뉴스가 말한 ‘유령 영아’는 대부분 이런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유기'란 말도 아이를 산에 묻은 것을 가리켜 한 말인 것 같다. 출생신고도 못해서 아이가 죽으면 산에 갖다 묻어야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뉴스가 말한 대로라면 나도 유령 영아를 만들었고 시신도 유기한 것이다.
속담에 “자식을 보기 전에 어머니를 보랬다”고 했다. 자식은 어머니 품에서 자라므로 어머니를 닮고 母情을 배우며 큰다. 아버지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작은 모정을 따라 하지 못한다. 그러한데 어느 어머니가 갓 태어난 아기를 산에 툭 던지듯 버리겠는가. 묻어 준 것이다. 그것을 유기했다고 시끄럽게 떠드는 사회가 우리 말고 또 있겠나. 복잡다기한 세상에서 어쩌다가 그런 일이 있더라도 어머니로서 과연 그렇게 한 이유가 없을 것인가. 떠들썩해야 예방되는 범죄도 있고 쉬쉬해야 더 좋은 범죄도 있음에야.
언론은 특히 용어를 잘 골라서 쓰고 다듬어서 써야 한다. 순화된 용어를 써야겠다는 고민도 없이 불쑥 나오는 대로 ‘유령 영아’니 ‘유기’니 해 버리면 사회는 흉흉해지고 나라는 거칠어지고 만다. 문재인을 겪고 이재명을 통해 우리 사회는 윤리 도덕과 체면이 걷잡지 못하게 퇴보하고 있다. 여기에 언론마저 섬뜩한 용어로써 힘을 보태 줄 것인가. 그래선지 윤 대통령이 문화특보를 신설했다. 문화는 고운 말 쓰기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