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254〉
■ 서시 序詩 (김남조, 1927~ )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이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1976년 시집 <동행> (서문당)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충주로 내려와서 몇 년이 지난 어느 새해 벽두에 읽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영국의 어느 방송에서 1박 2일 기차여행을 하는데 가장 지루하지 않게 가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한 결과, 가장 호응도가 높았던 답변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었다고 하는군요.
정말 적절한 답변이라고 생각되는 게, 우리가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기꺼이 인내할 수 있고, 상대의 허물이 보여도 너그러이 이해하며 덮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마음이 차갑게 변하게 되면, 만나기 전보다 오히려 더 미워하고 원망하는것 또한 보통사람인 우리들이 보여주고 있는 일반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詩에서는, 사랑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좀 더 포용하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노래합니다. 즉 진정한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더 오랫동안 사랑하는 것이며, 헤어진 이후에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죠.
물론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이것이 이치에도 합당하고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평범한 우리들의 입장에서 이를 실제로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사료되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검은 토끼띠의 새해에는, 이 詩처럼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줄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