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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탐색에서 오래전에 제가 얻은 자료의 일부를 보내드립니다.
읽어보시고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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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학이야기: 잃어버린 원문을 찾아서]
신현우 지음/ 웨스트민스터출판부
문장/문단 뒤의 ( ) 안에 있는 숫자는 본 책의 페이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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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사본학 시간 여행을 시작하며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를 지은 메쯔거(B. M. Metzger)는 세계성서공회연합회(United Bible Societies)의 헬라어 신약 성서 편집 위원이었고, 함께 편집 위원회를 구성한 학자들은 M. Black, K. Aland, C. M. Martini, A. Wikgren 등이었다.(16)
이들에 의해 1975년에 UBS 제3판이라고 부르는 헬라어 신약성서가 출판되었고 유진 나이다(E. Nida)가 작업의 책임을 맡았다. 1979년에 출판한 네슬-알란트 제26판도 UBS 제3판의 본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p.17)
원문을 복원하는 일은 원본의 흔적으로서의 사본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원문 복원 작업은 사본에서 출발하여 원본으로 가는 것이며, 이것은 수많은 사본들 중에 담긴 원본의 흔적을 모으는 작업이다.(p.17)
그런데 어떻게 원본의 흔적을 판별할 수 있을 것인가? 원본의 흔적은 우선 외적 증거들에 의해 판별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메쯔거는 다음의 4가지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① “사본들의 나이와 성격: 일반적으로 더 오래 된 사본들이 반복된 필사로 인해 생기는 오차를 범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사본 자체의 나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본이 보유한 본문(text)의 유형의 나이와 성격이다. 물론 필사자가 사본을 제작할 때 기울인 조심성의 정도도 중요하다.”(p.18)
② “사본들의 지리적 분포: 예를 들어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고올의 사본들이 서로 일치하여 어떤 독법(reading)을 지원하면,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경우 한 지역이나 교구에서 나온 사본들의 증언보다 증거력이 강하다. 그러나 한편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본들이 실제로 서로 독립적인지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대 라틴 역본들과 고대 시리아 역본들은 가끔 타티안(Tatian)의 다이테사론(Diatessaron)의 영향으로 인해 일치하기도 한다.”(p.18)
③ “본문들과 사본들의 계보적 관계: 어떤 독법을 지원하는 사본들의 수가 반드시 그 독법의 우수성을 증명하지는 않는다.”(p.18)
④ “사본들은 그 가치로 평가되어야 하며 수로 세어져서는 안 된다: “명백한 경우들에 대개 믿을 만하다고 드러난 사본들은 사본학적 문제가 애매하고 해결이 불명확한 경우에도 신뢰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여러 종류의 사본들의 상대적인 가치는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기계적 평가는 패해야 한다.”(p.18)
요약하자면, 메쯔거는 사본들의 수보다 사본들의 가치나 분포가 더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외적 증거를 재는 판단기준들과 함께, ‘내적 증거’의 평가를 위해서도 메쯔거는 판단 기준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판단 기준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필사자의 확률’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의 확률’이다. ‘필사자의 확률’은 필사자들의 필사 경향에 관련된 확률이며, ‘저자의 확률’은 저자의 작문 경향에 관련된 확률이다.
“필사자의 확률”
메쯔거는 잘 알려진 두 가지 판단 기준을 ‘필사자의 확률’로서 제시한다. 그것은 ‘더 어려운 독법’과 ‘더 짧은 독법’이다:(p.19)
① 일반적으로 더 어려운 독법이 선호되어야 한다.
② 일반적으로 더 짧은 독법이 선호되어야 한다.
③ 필사자들은 종종 여러 구절들을 서로 조화시키고자 할 것이므로 병행 구절에서...서로 다른 독법이 서로 일치하는 독법보다 대개는 선호되어야 한다.
④ 필사자들은 가끔, 친숙하지 않은 단어를 더 친숙한 동의어로 바꾸고, 덜 정교한 문법 구조나 덜 우아한 표현을, 고전 헬라어적 표현을 선호하는 당시의 경향에 따라 교정하고, 대명사/접속사/문장의 빈곳을 채우는 첨가어를 더 매끄러운 본문을 만들고자 하였을 것이다.
“저자의 확률”
① 일반적으로, 책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저자의 문체와 어휘, 근접한 문맥, 저자가 쓴 다른 책에 나타나는 용례와의 일치.
② 복음서에서 예수의 가르침의 아람어적 배경, 마가복음의 우선성, 기독교회의 해당 구절의 진술과 전승에 미친 영향. (p.21)
“이러한 고려 사항들은 저자가 글을 쓸 때 1) 일관성 있는 문체를 보이며, 2) 근접한 문맥에 맞게 하고, 3) 예수께서 아람어를 사용하셨으며, 4) 마가복음이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보다 먼저 쓰여졌고, 5) 복음서가 문자로 기록되기 전에 예수의 말씀과 행적이 한동안 말로 구전되어 왔다는 가설들을 토대로한 것이다.”(p.22)
엘리엇(J. K. Elliott)
이러한 견해에 대해, 엘리엇(J. K. Elliott)는 외증보다 내증을 중요시하면서 저자의 문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사본학을 위해서는 고급 헬라어 실력이 필수적이므로, 엘리엇을 따르는 학자는 많지 않다. 그는 짧은 독법 선호의 원리를 의심한다. 길게 만들기 위해 추가하는 데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짧은 독법은 기계적인 실수로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로 빼 먹는 것이 의도적으로 덧붙이는 것보다 기계적인 필사자에게는 더 자주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p.24)
고든 피(G. D. Fee)
“고든 피는 필사자들이 고전 헬라어적 표현을 선호했다는 가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필사자들은 오히려 히브리어 성서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적인 표현을 선호하였을 것이다. 70인역은 히브리어 성서의 번역본이므로 히브리어 냄새가 나는 역어체 헬라어로 쓰여져 있다. 초대 교회는 대부분 70인역을 사용하였으므로 초대교회의 필사자들은 당연히 70인역적 표현에 친숙했을 것이고, 고전 헬라어 표현을 만나면 70인역적 표현을 고쳤을 것이라는 추측에는 일리가 있다.”(p.25)
이와 같이, 현대 사본학이 완전한 원문 판단 기준을 획득했다고 볼 수 없다. 사본학의 판단기준들이 타당한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도 있다. (p.26)
제2장 외적 증거들
1. 독립적 본문 유형들의 다중 증언
서로 독립적인 두 사본이 일치할 경우, 이 사본들은 그 이전의 본문에 대한 믿을만한 증거이다. 사본의 수가 수천 개인 신약 성서 사본학에서 나누는 계열은 다음과 같다: 1)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 2) 서방 본문 유형. 3) 가이사랴 본문 유형. 4) 비잔틴 본문 유형. 이들 중에서, 가이사랴 본문 유형은 서로 다른 사본들을 잘못 묶은 분류라는 비판을 받는다. 후기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도 이미 고대에 존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학자들이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고대 알렉산드리아, 서방 본문 유형이다. 비잔틴 유형은 이러한 독립적 본문 유형들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p.32)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
? 4세기 중반 사본으로 간주되는 시내산 사본
B 바티칸 사본
P46 바울 서신을 담은 P46은 최소한 주후 200년, 또는 그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간주한다. 요한
P66 요한복음 구절을 담은 이 파피루스는 주후 200년 경에 필사된 것으로 간주된다.
P75 누가/요한복음을 담고 있으며, 3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여겨진다. (p.33)
서방본문유형:
D 베자 사본: 칼빈의 제자 베자가 소장하고 있다가 켐브리지에 기증한 사본. 헬라어 본문과 라틴어 번역을 함께 담은 대조 성경의 헬라어 부분.
고대 라틴어 역본
“흔히 파피루스나 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만을 열심히 따라다니는 사본학도들이 있는데, 이것은 이미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을 원문으로 간주하고 사본학을 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34)...메쯔거도 고대 알렉산들아 본문 유형과 서방 본문 유형을 서로 독립적인 초기 본문 유형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들의 일치를 다른 증거들의 일치들보다 더 선호했다. 그러나 그는 바티칸 사본이 바울 서신 부분에서 서방적 요소를 지닌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렇다면 바티칸 사본과 서방 사본들의 일치는 바울 서신에서는 증거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겠다.(p.35)”
“다중 증언과 역사적 예수”
서로 독립된 본문 유형에 등장하는 독법이 필사자들의 공통된 필사 경향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좀더 확신을 가지고 독립된 증언들의 일치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중 증언’(multiple attestation)의 판단 기준은 사본학에서 뿐 아니라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도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중요한 방법론으로 사용되어 왔다: “학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서로 독립적인 복음서라는 결론을 내렸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서로 일치하는 부분은 더 오래된 자료를 공통으로 사용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이 공통자료 중에 일부가 ① 마가복음, 다른 부분은 ② Q(Quelle; 샘, 원천, 자료)라고 불리는 자료로 본다. 학자들은 마가복음과 Q가 서로 독립된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이 둘이 일치하는 경우 ‘역사적 예수’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다.”(p.36)
“우리가 가진 자료들이 목격자의 독립적 진술일 경우에는 그들의 일치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진정한 진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어야 하지만, 목격자의 진술을 듣고 기록한 2차 자료일 경우에는 그 일치가 동일한 한 명의 목격자에게로 소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도 60년대 후반에 기록되었을 마가복음과 50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여겨지는 Q가 일치할 경우 공통 자료로 거슬러 올라가도 최소한 40년 경까지는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30년 경에 활동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거의 정확한 역사적 증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역사학자 가 고대에 관해 이처 럼 10년 간격도 안 되는 증거를 가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p.37)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다중 증언의 원칙의 사용은 공관 복음 문제에 대해 어떤 가설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어떤 자료를 독립된 자료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무엇이 다중 증언인가 하는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대개의 신약학자들이 받아들이는 두 자료 가설에 의하면 마가복음과 Q는 독립된 자료들이지만, 그리스바흐 가설에 의하면 마태복음만이 독립된 자료이다. 따라서 그리스바흐 가설을 받아들인 학자에게는 Q란, 마태복음을 누가복음이 자료로 사용하면서 일치하는 부분에 대한 명칭일 뿐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이것이 역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의존하는 마가복음과 일치한다고 해서 다중 증언이 될 수는 없다. 그리하여 그리스바흐 가설을 받아들일 경 우, 공관복음 안에서는 다중 증언의 원칙을 사용할 길이 없어지게 된다...역사적 예수 연구에서처럼, 사본학에서도 본문 유형의 다중 증언 원칙의 사용은 어떤 본문 유형이 독립적인가에 대한 이론과 관련이 있다. 학자들은 대개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과 서방 본문 유형을 독립된 본문 유형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 두 유형이 일치할 경우에 다중 증언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비잔틴 본문 유형을 독립적인 것으로 여기는 학자들도 없지는 않다.”(p.39)
그러나 다중 증언이 항상 원문성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가끔 우연의 일치나 필사 경향의 일치로 다중 증언이 생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중증언에 의해 지원 받는 독법은 다른 요소들이 동일한 경우 단일 증언에 의해 지원받는 독법들보다 더 원문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p.40)
2. 더 오래 된 사본들
고대 알렉산드리아/ 서방/ 비잔틴 본문 유형
“오래 된 사본은 원본으로부터의 본문 전승 기간이 짧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류를 덜 포함할 수 있다. 그래서 사본학자들은 더 오래 된 사본들에 담긴 독법들을, 후기 사본들에 담긴 독법들보다 선호한다. 따라서 2-3세기 파피루스들이나 4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간주되는 시내산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이 더 선호된다.”(p.41)
오래 된 사본을 선호하는 상식적인 판단 기준은 이미 17세기 중반(1657년)에 영국 학자 왈튼(B. Walton)이 주장한 것이다. 1752년에는 웨쉬타인(J. J. Wettstem)이 주장했다. 독일 튀빙엔 대학의 뱅엘(A. Bengel)도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활동한 호르트(F. J. A. Hort), 그의 제자 웨스트코트(B. F. westcott)는 l9세기 말에 현대 사본학의 학문적 초석을 놓았다. 20세기의 사본학은 이들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 역시 오류의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더 오래 된 독법을 선호하였다.(p.42)
1983년 로스(J. M. Ross)가 노눔 테스타멘툼(Nonum Testamentum)에서 ‘단순한 사본의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2세기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많은 독법들에 확실히 오류가 있는 반면, 10세기 사본인 1789는 매우 우수한 2세기 사본을 충실하게 필사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팔머(H. Palmer)는 로스보다 이미 15년 전에, 오래 된 우수한 선본(vorlage)을 후기의 사본이 필사할 경우, 후기의 사본이 초기 사본보다 우수한 본문을 보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p.45)
“그러나 과연 오래 된 사본들 중에서 우수한 사본들을 가려 내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후기의 사본이 더 우수한 본문을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은 선본의 우수성 외에 다른 요인에 의해 생겨날 수도 있다.”(p.45)
본문 유형 중에 오래 된 것은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과 서방 본문 유형이다. 메쯔거에 의하면,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은 2세기 초까지 소급된다. 그는 서방 본문 유형이 2세기 중반 이전에 존재하였을 것이라고 본다.(p.46) “현대 사본학자들은 후기 사본들에 담겨 있는 비잔틴 본문 유형을 위의 두 본문 유형보다 나중의 것으로 간주한다. 비잔틴 본문 유형이라고 하면 주로 그리스 지역에서 필사된 사본들이 가진 본문 유형인데, 동로마 제국이 망하면서 서방으로 넘어온 학자들이 이러한 필사본들을 가지고 왔고, 에라스무스는 이러한 사본들을 입수하여 헬라어 신약성서를 출판하였다. 그 신약 성서는 마침내 널리 사용되게 되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영국에서 번역된 킹 제임스 역본의 신약 성서 부분은 바로 이 에라스무스의 성서를 번역한 것이다.”(p.47)
비잔틴 본문 유형과 비잔틴 본문 유형의 후기성 문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비잔틴 본문 유형의 후기성을 ‘병합 독법’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검증하려고 했다. 병합 독법의 예를 들어 보자. 누가복음 24:53에서 서방 본문 유형에는 ‘찬송하며'(aivno/ntej)가 나타나고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에는 역시 같은 뜻의 ‘찬양하며’(euvlogou/ntej)가 나타난다. 그런다른 계열은 비평역본으로 알려진 [NA(네슬알란판)] 입니다. 다른 계열은 비평역본으로 알려진 [NA(네슬알란판)] 입니다. 데 비잔틴 본문 유형에는 이 둘을 병합한 ‘찬송하고 찬양하며’(aivno/ntej kai` euvlogou/ntej)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이러한 병합 독법들에 근거해서 비잔틴 본문 유형의 후기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가 발견한 병합 독법은 단지 8개뿐이어서 증거력이 약하다. 그들은 이러한 내증 외에도 외증을 제 시한다. 외증이란, 4세기에 루시안(Lucian)에 의해 일어났다고 추측되는 헬라어 성서 본문의 개정 작업이다.(p.49)
비잔틴 본문 유형의 후기성에 관한 다른 증거는, 초기 교부들의 성경 인용이다. 메쓰거는 초기 헬라 교부들이 인용한 성경 구절에서 비잔틴 본문 유형으로 된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p.50)
그러나 비잔틴 본문 유형이 초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믿는 학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사본학자 스터즈(H. Sturz)는 8개의 병합 독법들은 비잔틴 본문 유형의 후기성을 증명하기에는 너무 적다고 지적하면서 고대 알렉산드리아 사본들도 병합 독법들을 가진 듯하다고 주장하였다.(p.51) 그리고, 헬라어 신약 성경을 전반적으로 개정한 경우에 더 큰 반응을 일으켰을 것인데, 그러한 반응이 없이 역사는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루시안에 의한 헬라어 개정 작업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p.52) 설령, 비잔틴 본문이 루시안의 개정 작업의 결과라고 해도, 루시안은 개정 작업을 위해 매우 우수한 사본들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개정 작업의 결과 생겨나는 본문이 반드시 열등하다 라고 할 수 없다고 스터즈는 주장한다.(p.52)
위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과 서방 본문 유형의 고대성은 분명하지만, 비잔틴 본문 유형은 이처럼 오래 된 것인지 상대적으로 후기의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므로 비잔틴 본문 유형의 고대성을 가정하고 원문 복원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p.55)
3. 더 우수한 사본들
20세기의 사본학자들은 사본의 양보다는 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원칙이 세워지면서 사본들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비잔틴 사본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극소수인 고대 알렉산드리아 사 본들이 품질의 우수성을 내걸고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p.59) 이론적으로는 더 우수한 사본이 원문을 보유할 가능성 이 더 높다.
그러나 어떻게 더 우수한 사본을 분간할 수 있겠는가? 결국 원문 복원 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원문 복원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우리는 복원된 본문이 원문과 유사하다는 가정 하에 사본들의 원문 보유율을 측정할 수 있다. 이때 선입견이 없어야 한다. 처음부터 고대 알렉산드리아 사본들이 더 우수하다는 가정 아래 사본의 품질을 원독법 판단 기준으로 사용한다면, 결과적으로 복원되는 본문은 고대 알렉산 드리아 사본들이 가진 본문과 유사한 본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순환 논법을 범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 순환 논법에 대해서 토브는 우수한 사본이라는 판단 기준을 전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p.59)
4. 고대 역본들과 교부들의 인용
헬라어 사본들과 함께 신약 원문 복원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것은 고대에 헬라어 신약 성서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된 고대 역본들이 다. 이미 2-3세기부터 신약 성서는 여러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고대 이집트어인 곱트어로 번역된 곱틱 역본들을 가지고 있다. 곱틱 역본에는 사히덕 방언으로 된 사히덕 역본들과 보하이릭 방언으로 된 보하이릭 역본이 있다. 이들 역본들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을 가지고 있다. 네슬-알란트판 비평주에서 사히덕 역본은 sa로 표시되어 있고, 보하이릭 역본은 bo로 표시되어진다. 그리고 곱틱 역본들은 모두 합해서 co라고 표시한다. 이러한 역본들을 표시하는 기호들 우측 상단에 mss 또는 ms라는 표시가 있을 경우, 이것은 그 역본들 중에서 일부 사본들(mss) 또는 한 개의 사본(ms)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boms은 어느 한 보하이릭 사본을 가리킨다. 네슬-알란트 판에서 서방 본문 유형을 가진 고대 라틴어 역본은 it라 표시하고, 고대 라틴어 역본과 제롬이 개정한 라틴어 역본인 벌게이트와 일치할 경우 lat라고 표시한다. 또한 대부분의 라틴어 역본이 일치할 경우에는 lat(t), 모든 라틴어 역본이 일치하면 latt라 한다. 한편 신약 성서를 시리아어로 번역한 시리아 역본은 네슬-알란트 판에서 sy라고 표기한다.(p.66)
“2세기에 쓰여진 타티안(Tatian)의 디아테사론(Diatessaron)의 경우는 신약 성서 원문 복원을 위해 또 하나의 원문을 복원해야 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타티안의 디아테사론은 사복음서를 여기 저기서 모아 병합한 것이므로, 2세기의 복음서 본문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타티안이 쓴 디아테사론 원문이 없다는 것이다.”(p.70)
제3장 내적 증거들
외적 증거들은 사본들의 특성에 관계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원문 복원을 위해 사본들에 대한 지식과 함께 중요한 것은 저자들과 필사자들에 대한 지식이다. 저자들이나 필사자들과 관련된 정보는 원문 복원을 위한 내적 증거로 분류된다. 사본, 저자, 필사자는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살펴 보아야 하는 3가지 대상이다. (p.73)
I . 필사자와 관련된 판단 기준들
“필사자들은 선본을 베껴 쓰면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오류는 어떤 패턴을 따르게 마련인데, 이러한 패턴을 파악하면 우리는 무엇이 오류인지 알 수 있다.”(p.74)
1. 설명가능성의 원리
설명 가능성의 원리, 즉 다른 독법들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하는 독법이 다른 독법보다 원독법에 가까운 것으로 선호되는 원리는 사본학의 기본 원리이다. 사본학에서 설명 가능성의 원리가 제안된 것은 이미 18세기 후반에 독일학자 그리스바흐에 의해서이다: “동일한 장소에 있는 않은 독법들 중에, 중재자처럼 다른 독법들 사이에 놓인 독법, 즉 그것이 원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어떤 이유로 또는 어떤 실수의 발생으로 다른 모든 독법들이 그것으로부터 생겨났는지를 설명하여, 다른 모든 독법들을 실처럼 연결시키는 독법이 선호될 수 있다.”(p.76) “그런데 이 설명 가능성의 원리는 너무도 일반적이어서, 사본학자들이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에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이 독법은 어떤 독법이 원독법인지 자동적으로 알려 주는 원문 판단 기준이 아닌 것이다.”(p.77)
설명 가능성의 원리가 가진 다른 하나의 문제점은 설명의 ‘주관성’이다. 설명은 가설의 신빙성만이 아니라 설명하는 사람의 능력을 반영한다. 이러한 주관성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나와서 현재의 정설을 뒤엎어 버릴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게 한다. 서로 경쟁적인 몇 개의 가설들이 동일한 설명력을 가지고 맞서므로 더 설명력이 뛰어난 가설을 선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p.78) “비록 설명 가능성의 원리가 어떤 가설을 최종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잠정적인 결론에로 우리를 인도할 수는 있다. 우리가 학문의 목표를 이처럼 겸허하게 잡는다면, 사본학의 설명 가능성의 원리는 그러한 목표를 추진하기에 충분한 도구가 되어 줄 것이다.”(p.79)
2. 사본 필사자의 경향
미국의 사본학자 콜웰(E. C. Cowell)은 20세기 중반에 원문 복원 작업을 위해서 필사자의 습관을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P45는 짧은 표현을 선호하는 습관을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 원리는 과장됨 없이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필사자들은 필사 습관에 따라 선본을 고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선본을 그대로 베껴 쓰기 때문이다. 필사자들은 선본을 완전히 다시 쓰는 편집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표현도 대개 충실히 필사하게 마련이며, 더구나 자신이 선호하는 표현이 선본에 나올 경우에는 더욱 충실히 필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일부 독법들의 관찰에서 귀납된 필사자의 습관을 일반원칙으로 사용하여 이 습관에 일치하는 모든 독법의 원문성을 부정하거나, 이 습관에 어긋나는 독법들의 경우에만 원문성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p.81)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사용되었는데, 이른바 ‘비유사성의 원리’이다. 그것은 예수 전승 중에서 당시 유대교나 초대 교회와 비유사한 요소들은 역사적 예수로부터 기원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원리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이 원리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와 유사한 요소들이 항상 초대 교회의 창작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이어(B. F. Meyer)의 주장대로, 만일 초대 교회와 비유사한 전승이 초대 교회에 의해 보존되었다면, 초대 교회와 유사한 전승은 더더구나 초대 교회에 의해 보존되었을 것이다.”(p.81)
3. 언어적 변형
저자의 언어적 문체는 종종 필사자에 의해 변경된다. 낯선 단어 는 더욱 친숙한 단어로 교체되고, 문체는 점점 더 세련되게 다듬어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경향 역시 원문 복원을 위해 고려될 수 있다. 즉, 덜 세련된 문체나 더욱 낯선 표현은 더욱 원독법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p.83)
(1) 70인역적인 표현
히브리어 구약 성서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은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 회당에서 사용되다가 후에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사용되었다. 70인역에 나타나는 표현들은 70인역을 사용하는 교회에 속하여 있었던 필사자들에게도 친숙한 표현의 하나였을 것으로 짐작 된다. 이러한 가정에 토대하여 고든 피는 필사자들이 고전 헬라어 표현을 70인역적인 표현으로 바꾸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p.84)
70인역은 초대 교회에서 정경적 권위를 획득하였기 때문에, 초기 필사자들이 70인역의 표현을 모방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필사자들이 70인역에 익숙해 있어서 우리는 덜 70인역적인 것을 선호하게 되지만, 저자 자신도 70인 역을 사용하는 초대 교회에 속하여 있는 기독교인으로서 70인역적인 문채로 저술을 하였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에 70인역적 표현은 오히려 저자의 문체를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p.84)
(2) 덜 세련된 표현
필사자들이 본문을 매끄럽게 하려고 대명사나 접속사 등을 추가하였을 가능성을 가정하면서, 메쯔거는 더욱 매끄러운 독법이 원독법일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메쓰거가 제시하는 원칙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과연 필사자들이 대명사나 접속사를 추가하면서 매끄러운 독법을 만들었을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때로 필사자들은 불필요한 대명사나 접속사를 제거하면서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다(E. A. Nida)는 덜 세련된 독법을 선호하는 원칙을, 더 어려운 독법을 선호하는 원칙의 적용으로 간주했다.(p.87) 덜 세련된 문체는 더욱 원 독법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이러한 원독법 판단 기준과 관련하여, 셈어적 표현(즉, 히브리어나 아람어적인 표현)이 덜 세련된 헬라어 표현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엘리엇은 더욱 셈어적인 표현이 더욱 원독법일 확률이 높다고 간주 한다. 다만, 셈어적인 독법이 사실상 70인역적인 표현일 경우에는 오히려 필사자가 70인역의 영향으로 도입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70인역적이지 않으면서도 셈어적인 표현은 필사자보다 원저자에게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관성’의 문제가 있다. 어떤 것이 더 세련된 표현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셈어적 표현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p.90)
(3) 덜 친숙한 표현
“사본 필사자들은 선본에서 낯선 표현을 발견할 경우 그대로 필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욱 친숙한 표현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필사자들이 더욱 친숙한 표현을 낯선 표현으로 바꾸었을 확률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다.”(p.91) 나이다는 이 판단 기준을 더 어려운 독법을 선호하는 원리의 한 형태로 간주하였는데, 필사자들에게 더 낯선 표현은 그들이 이해하기에 더 어려운 독법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원독법에 더 가깝다.(p.92)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 자주 나오는 표현을 필사자에게 친숙하다는 이유로 배제할 수는 없다. 필사자가 필사하고 있는 본문을 토대로 덜 친숙한 표현과 더 친숙한 표현을 나누는 통계를 낼 수 없다.(p.93)
4. 신학적 변경
“필사자가 신학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선본에 담겨 있을 경우, 필사자는 내용을 고치도록 유혹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메쯔거는 교리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독법들이 고쳐지거나 삭제되었을 수 있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가정 아래서는 신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쉬운 독법들이 필사자들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사본학자들은 신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독법을 선택할 수 있다.”(p.94)
현대 사본학 방법론의 숨은 대부는 벤쉬타인이라 할 수 있다: “두 개의 상이한 독법들 중에서, 더 정통적으로 보이는 것이 다른 것보다 즉시 선호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독법들과 비교했을 때, (특히 수도원적) 경건을 지원하는 데 적합 한 내용을 표현하는 독법은 의심스럽다.”(p.97)
“그러나 이들 사본들이 서로 다를 때, 어떤 것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확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완벽하게 맞는 판단은 기대할 수 없지만, 여러 확률이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독법을 선택한다면 원문과 유사한 본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p.100)
5. 필사자의 실수들
*글자의 혼돈 가능성
인간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따르는 법이다. 사본 필사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필사자가 아무리 선본을 그대로 필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필사해도 약간의 실수는 불가피하다. 사본 필사자의 실수 유형 중에는 우선 착시와 관련된 실수가 있다 헬라어 문자들 중에 어떤 것들은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서로 혼동될 수 있었을 것이다. (p.101)
C (Σ), Ξ(E), Θ, O
Γ, Π
Π, TI
Π, T
Π, N
A, Δ, Λ
ΛΛ, M
ΛI, N
N, H
H, EI
K + 점 (kai,의 생략함), K
*유사음 혼돈 가능성
코이네 헬라어에서는 과거에 구별되던 몇몇 음들이 비슷하게 발음되고 있었다. w(장음 ‘오-’), o(단음 ‘오’)는 장단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ai는 ‘애’로 발음되어 e(에)와 혼등을 일으켰다. h(장음 ‘에-’)나 h|(에-이)는 ‘이’로 발음되고 ei(에이), oi(오이), ui(위이) 등도 ‘이’로 발음되어 i(이)와 혼동되었다. (p.104)
“오류라고 판단되는 독법을 저자의 오류로 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필사자의 오류로 보아야 하는가? 저자의 오류를 필사자가 고칠 경우, 그것은 저자의 의도를 살린 교정으로서 원독법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저자의 오류를 원독법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전자를 실용적인 것으로 택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후자를 택할 경우 저자의 오류와 필사자의 오류를 구분해야 하는데, 그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105)
6. 더 어려운 독법
사본학자들은 원문 복원을 위해서 여러 판단 기준들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방법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lectio difficilior potior 즉 더 어려운 독법(reading)이 우월하다는 판단 기준이다. 이 판단 기준은 사본 필사자들이 어려운 표현들을 쉽게 바꾸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토대한다.(p.105)
그런데 필사자에게 더 어렵거나 쉬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어려움”이라는 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그리스바흐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잘못된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만 더 철저히 살펴보면 실제로는 참되다고 인식되는 독법은, 다른 것들보다 선호된다.(p.110) ‘어려움”의 측정은 주해의 과정에서 드러난다. 처음에는 잘못된 것으로 보이다가 연구를 할수록 깊은 의미가 드러나는 독법이 본래 저자가 기록한 것일 확률이 높다. 이처럼 사본학은 사본마다 다른 여러 독법들의 의미를 주해하는 활동을 통해 원문을 복원하는 주관적인 지적 활동이다.(p.110) 더 어려운 독법을 선호하는 사본학적 판단 기준은 필사자의 실수로 생긴 독법을 거부하는 판단 기준과 모순이 되는 듯하다. “사본학은 인간의 설명 능력의 한계 속에서 작용한다. 때로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로 인하여 원독법이 오류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고, 오독법이 기발한 설명에 의해 원독법으로 간주될 수도 있게 된다.”(p.115)
무엇이 더 어려운 독법을 선호하는 판단 기준의 타당성에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왜 더 어려운 독법이 선호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알브렉슨에 의하면, 어떤 독법이 단지 더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선호될 수는 없다. 실수로 인하여 이때 문맥에 맞는 독법을 택하여야 할지 아니면 더 어렵지만 문맥에 맞지 않는 독법을 택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게 된다.(p.117)
사본학에서 ‘어렵다’는 말은 사본학자들에게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필사자들에게 어려웠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본학자들이 어떻게 사본 필사자들이 느낀 ‘어려움’을 측정할 수 있겠는가? 브루스(F. F. Bruce)의 제자인 데이비즈는 오늘날 신약 학자들이 어떤 예수님의 말씀이 성경 저자들에게 신학적으로 어려웠는지 확실히 알만큼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 했다. 사본학자는 피할 수 없이 주관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고 그 판단에는 신빙성의 문제가 따르는 것이다.(p.120)
7. 조화
고대의 성경 필사자들은 성경의 상당 부분을 외우고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유사한 성경 구절들을 필사할 때, 그들이 외우고 있는 다른 구절들과 조화시키기도 하였을 것이다.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공관 복음서들을 필사할 때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졌을 것이다. 사본학자들은 이러한 가능성에 입각하여 다른 유사 구절과 일치하는 독법보다는 일치하지 않는 독법을 선호한다.(p.121)
“그런데 사본학에서 평행 구절에 유사한 독법을 거절하는 원칙은 공관 복음 문제 연구에서 가정되는 자료 가설들과 모순된다. 공관 복음 자료 가설들은 공관 복음의 상호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다. 한 복음서 기록자가 다른 복음서를 보고 자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유사한 부분이 나타난다는 것이 바로 자료 가설이다. 오늘날 신약학자 들은 대부분 이러한 자료 가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자료 가설에 따르면 공관복음서들이 상호 유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p.122)
8. 병합
오늘날 사본학지들은 병합된 독법을 원독법이 아닌 것으로 간주 한다. 즉, 병합된 독법은 일단 원문에 있었던 원래의 독법의 후보에서 제외된다. 병합 독법이란 어떤 사본에 있는 X’라는 표현과 다른 사본에 있는 X’라는 표현을 병합하여 A와 A’라고 하는 것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병합 독법을 연구하여 비잔틴 본문 유형이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 유형과 서방 본문 유형보다 나중의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은 단지 8개의 병합 독법들에 의존하고 있다. 수십만 개의 변형이 발견되는 신약 사본들에서 단지 8개의 병합 독법을 발견하고서 대다수의 사본들이 보유한 비잔틴 본문 유형에 퇴장 명령을 내리는 데는 문제가 있다. (p.130)
II. 저자와 관련된 판단 기준들
1. 문체
“수천 개의 사본이 있는 신약 성서의 경우에도 거의 모든 사본들이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부분에서 통계적으로 저자의 문체를 파악 해 낼 수 있다.”(p.131) 예를 들어 보자. “마가복음 1:15에서 대다수의 사본들은 그 역사 적인 순간이 다 다가왔다”라는 독법을 가지고 있지만, 서방 사본들(D it)은 여기서 ‘순간’이라는 단수형 대신 “순간들”(oi` kairoi.)이라는 복수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복수형보디는 단수형이 선호될 수 있는 이유는,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서 단수형들이 사용되고(10:33; 11:13; 12:2; 13:33) 복수형은 전혀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단수형이 마가복음의 문체에 일치한다고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p.133)
그러나 이러한 판단 기준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문체는 더욱 친숙한 문체와 분간하기 힘들다. 우리는 통계적으로 자주 나타나는 표현을 저자의 문체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데, 자주 나타나는 표현은 동시에 필사자들에게 친숙한 문체이기 때문이다. 필사자들은 낯선 표현을 친숙한 표현으로 바꾸는 경향을 가진다고 추측된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저자의 문체에는 맞지만 필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독법들을 생산할 것이다.(p.135)
“그러나 오늘날 편집 비평의 경향은 바뀌었다. 변경되지 않고 받아들여진 자료도 저자의 신학이나 문체에 일치되거나 용납되었을 것이므로, 저자의 문체나 신학을 반영할 수 있다. 따라서 편집(저자에게서 온 것)만이 아니라 자료(전승된 것)와 편집 모두를, 즉 본문 전체가 저자의 신학(과 문체)을 반영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편집 비평은 교정되고 있는 것이다.”(p.138) 그러므로 이렇게 교정된 편집 비평을 사본학에 적용할 경우, 자료의 문체와 저자의 문체를 나눌 필요 없이 최종 본문의 문체는 곧 저자의 문체라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p.138)
2. 문맥
문맥은 본문 해석의 기본 원리이다. 우리는 문맥의 도움을 얻어 모르는 단어나 애매한 문장이 나와도 본문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맥의 기능은 원문 복원에도 사용 될 수 있는데, 여러 사본들이 각기 다른 독법들을 가지고 있을 때, 사본학자들은 문맥에 가장 잘 맞는 독법을 선택한다. 메쯔거도 이러한 원독법 선택 원칙을 받아들였는데, 그는 이 원칙이 이미 4세기에 교부 제롬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발견 했다. (p.139)
그러나 “오히려 문맥에 맞는 독법이 문맥에 맞지 않는 독법으로부터 발생했을 가능성이 더욱 설득력 있게 설명될 경우에는, 문맥에 맞는 독법을 무조건 선택할 수는 없다.”(p.144)
제4장 의심스러운 판단기준들
1. 지리적인 분포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사본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독법은 한 지역에 편중되어 발견된 사본들에만 나타나는 독법보다 선호될 수 있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오늘날 일부 사본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는데, 이것은 공관 복음서 네 문서설로 유명한 옥스퍼드의 신약학자 스트라터(B. H. Streeter)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4년에 스트리터는 사본들의 수나 나이보다는 지리적인 분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p.148) 뱅엘(Bengel)은 지역, 시기, 언어 동과 관련된 다양한 증거들은 긴밀하게 서로 관련된 독법들보다 선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p.148)
이러한 판단 기준은 기본적으로 유용하지만 한 지역에서 나온 사본들이 우수한 본문 유형을 가지고 있고, 다른 두 지역의 사본들의 일치가 결국 열등한 본문 유형에 소급하거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사본들이 이동하여 생겨났을 경우, 이러한 판단 기준은 유용 하지 않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나온 사본들이 반드시 서로 독립적인 본문 유형을 가진 사본들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방 본문 유형을 가진 사본들은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고올(Gaul) 지역뿐 아니라 이집트와 시리아에까지 퍼져 있다.(p.149) 따라서 여러 지역의 일치보다는 독립적 본문 유형들의 일치를 더욱 의미 있는 증거로 간주해야 한다. 지역의 일치는 독립적인 본문 유형들의 일치에 대한 보조 증거로서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p.150)
2. 많은 사본들의 일치
“오늘날 대부분의 신약 성서 사본학자들을 사본들의 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약 성서 사본들의 대부분이 열등하게 간주되는 비잔틴 사본 계열에 속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수많은 비잔틴 사본들을 모두 합해도 시내산 사본(X)이나 바티칸 사본(B) 하나의 가지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는 형편이다.”(p.151)
“대다수의 사본들이 보존된 비잔틴 지역은,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도에 무너지기 전까지 이슬람 세력의 영향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성경의 필사가 활발하게 계속될 수 있었다. 따라서 계속 필사된 비잔틴 사본들이 다수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6세기 경에 이르러 헬라어 사용권이 비잔틴 제국 내로 좁혀진 것을 지적할 수 있는데, 그리하여 헬라어 성경 필사는 주로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헬라어 사용권에서 많은 헬라어 사본이 필사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비잔틴 사본의 다수성은 그것이 원본으로부터 기인하였기 때문일 필연성이 없다. 이처럼 신약 성서 사본의 필사와 보존은 통계학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역사의 우연 이 작용하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하지스의 주장은 신약 성서 사본들의 경우에는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신약 사본학에서는 사본의 다수성을 원문성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p.157)
3. 짧은 독법
짧은 독법을 선호하는 원리는 널리 알려져서 사용되고 있다. 짧은 독법이 선호되는 이유는, 필사자들이 짧은 독법을 길게 만들었을 확률이 긴 독법을 짧게 만들었을 확률보다 더 높다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이 사용되는 이유는 통계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본학의 역사에 자취를 남긴 거물들의 영향 때문이다.(p.158)
사본학에서는 독법을 담은 사본들의 특성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종종 긴 독법을 취하는 비잔틴 사본들이 짧은 독법을 취할 때 그에 주목하고, 흔히 짧은 독법을 취하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사본들이 긴 독법을 취할 때 그에 주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것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사용되는 비유사성의 원리의 사본학적 적용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본들의 특성에의 비유사성과 함께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저자의 문체이다. 어떤 저자는 흔히 만연체를 쓰지만, 다른 저자는 간결체를 사용한다. 따라서 만연체를 쓰는 저자의 작품을 다룰 때에는 더 긴 독법을 선택해야 할 경우도 있다. 물론 저자의 문체의 고려는 짧은 독법을 선택하게 할 수도 있다.(p.166) “그러나 짧은 독법은 단지 짧기 때문에 선호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문체에 맞기 때문에 선호된다. 따라서 짧은 독법을 선호하는 원칙이 없어도 이러한 경우에 원독법에 가까운 독법의 선택은 가능하다. 그러므로 짧은 독법을 선호하는 원리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것이다.”(p.167)
제5장 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다룬 원문 조각의 식별 기준은 우선, 사본의 품질이다. 더 우수한 사본은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에 더 우수한 독법들을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우수한 사본들에 담긴 조각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더 우수한 사본들을 어떻게 식별하겠는가? 결국은 원문 조각을 더 많이 포함한 사본이 더 우수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원문 조각의 파악을 위해 더 우수한 사본에 호소하지 않는가? 이러한 순환 때문에 우리는 원문 복원의 초기 단계에서는 사본의 품질을 판단 기준으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오래 된 사본을 선호하는 원리와 독립적인 본문 유형들 간의 일치를 선호하는 원리는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본들에 대한 평가와 함께, 필사자의 경향 및 저자의 경향과 관련된 내적 증거들을 고려할 수 있다. 비록 한 가지 판단 기준으로 원문의 조각을 확신 있게 식별하지는 못하지만, 여러 판단 기준들 이 함께 지지하는 조각은 좀더 확신 있게 선택될 수 있다.”(p.173)
부록: 현대 신약 사본학의 패러다임 충돌
사본학(본문 비평학=textual criticism) 왜 필요한 것인가?
네슬-알란트 판을 변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에라스무스의 공인 본문이나 킹제임스 역본을 변호하기 위함도 아니다.(p.180)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원본의 본문(즉, 원문)을 찾기 위해 필요하다. 사본학은 잃어버린 ‘원문’을 찾아내는 숭고한 작업이다.(p.180)
네덜란드 캄펜에서 봉기한 신약 사본학의 반란군
오늘날 주류를 형성하는 사본학 이론은 백여 년 전에 영국의 캠브릿지 대학에서 활동한 호르트 교수와 그의 제자 웨스트코트로부터 기원한다. 이들은 신약 사본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잔틴 사본들이 가진 본문(다수 본문이나 공인 본문과 대개 일치함)은 4세기 루시안의 개정 작업에서 기원한다고 보면서 비잔틴 사본들은 비록 수가 많아도 믿을 게 못 된다고 주장한다. 제롬도 다음과 같이 주장 했다: “나는 루시안과 헤시키우스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본들을 간과한다.”(p.185)
그러나 야콥 판 부르헌은 제롬의 진술이 루시안의 헬라어 성경 개정 작업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제롬은 여기서 신약 사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 정경’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즉, 신약 성서에 어떤 책이 포함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다루고 있 디는 것이다.(p.185)
비잔틴 본문 지지자 중 한 명인 스터즈는 라틴어 역본을 개정하는 작업도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는데, 어찌 헬라어 본문을 개정하는 작업이 이처럼 침묵 속에 이루어졌을 수 있겠는가 라고 되묻는다.(p.185)
“네슬-알란트판 지지자들의 주장대로 과연 비잔틴 본문은 열등한 것이 확실한가? 루시안의 개정 작업이 설령 있었다고 해도 그 개정 작업이 비잔틴 본문의 열등성을 필연적으로 함축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킹 제임스 역본이나 다수 본문, 공인 본문이 무조건 열등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p.186)
대서양을 넘어 형성된 사본학 반군의 참패
판 브루헌 교수에 이어 달라스 신학대학원의 하지스(Z. C. Haiges) 교수는 다수의 사본들이 지지하는 독법이 원문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정상적 상황에서는 오래된 텍스트일수록, 이후의 어떤 시기에서든지 많은 또는 다수의 텍스트들 속에 보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가장 오래 된 본문은 원문이다. 그래서 다수 본문은 소수 본문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원문을 반영할 것이다.”(p.189)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지만 학문에는 증거의 수가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증거의 수가 많은 것이 중요한 법이다.(p.190)
사본학 어떻게 할 것인가?
판 브루헌 교수에 의하며, 사본의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본이 담고 있는 본문의 나이가 중요하다. 현존하는 4세기 이전 고대 사본들은 대개 이집트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들이다. 킹 제임스 역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비잔틴 사본 계열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신약 사본학에서 고대 사본을 따른다. (p.197)
그러나 더 오래 된 사본이 더 원문에 가깝다고 하는 사본학의 기본 원칙이 과연 쓸모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네슬-알란트판 난하에 있는 비평주를 보며 파피루스나 바티칸 사본(B), 시내산 사본(?)을 무조건 따라다니는 것은 문제가 있다.(p.198) 메쯔거의 사본학 입문 책을 보면, 고대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 들(P66, P75, B, ? 등)과 서방 사본들(베자 사본, 고대 라틴어 역 등)이 일치하면 그를 따르라고 한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계열이나 서방 계열이 나 모두 초기의 독립된 사본 계열이므로, 이들이 일치하면 더욱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들에 담긴 본문(text)은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2-3세기 사본으로 여겨지는 파피루스인 P66, p75 때문이고, 서방 계열 사본들의 본문도 2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마르시온, 타티안, 순교자 저스틴 등에 의해 서방 본문이 이미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p.199)
그러나 미국의 스터즈에 의하면 비잔틴 사본은 독립적인 사본 계열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사본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열등하다고 할 수도 없으며, 비잔틴 사본 들이 서방사본들과 일치할 경우에는 신뢰할만하다는 것이다.(p.200)
나사렛에서도 선한 것이 나온다 .
스터즈는 비잔틴 사본들에만 담긴 독특한 독법(reading)들이 고대 파피루스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3세기의 고대 파피루스들이 알렉산드리아 사본도 아니고 영국의 매튜 블랙(M. Black)이 좋아했던 서방 사본인 베자 사본(D)도 아닌, 비잔틴 사본을 지원하는 이 증거들은, 비잔틴 사본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선압견을 여지없이 깨어 부수었다. 이어서 그는 비잔틴 사본들이 보존하고 있는 본문(이제부터 비잔틴 본문)이 알렉산드리아 본문이나 서방 본문처럼 독립적인 본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p.202)
이에 대해서 홈즈(Holmes)는 독법(reading)과 본문 형태(text-type)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법이란 사본들 간에 발견되는 차이들이지만, 본문 형태란 이러한 차이들이 함께 모여 형성하는 독법들의 패턴이다. 몇몇 비잔틴 독법들이 오래 된 것이라 해도, 그것이 비잔틴 본문 형태가 오래 되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150여 개의 비잔틴 독법들은 신약 사본들이 가진 수십만 개의 독법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메쯔거도, 스터즈가 제시한 파피루스 중에 하나도 비잔틴 본문 형태를 가진 것이 없다고 지적하였다.(p.204)
고든 피(Gordon Fee)는 “P66은 비잔틴 독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비잔틴 독법의 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P66은 전체적으로 비잔틴 사본 계열에 속하는 파피루스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p.205)
교부들의 보물지도
“교부에 대한 연구는 신학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본학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헬라어로 저술을 한 초기 교부들은 헬라어 신약 성서를 인용하면서 신학을 전개하기 때문에, 그들의 성서 인용은 사본 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헬라 교부들 중에서도 특히 많은 저작을 남 긴 오리겐은 사본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p.209) 대개의 신약 사본학자들이 비잔틴 본문을 우습게 보는 이유 중 하나는 초기 교부들의 인용들 속에서 비잔틴 본문이 발견되지 않기 때 문이다.(p.210) 미국 학자 월리스(P. B. Wallace)에 의하면, 크리소스톰 이전에 비잔틴 본문을 사용한 교부는 안디옥의 4세기 교부 아스테리우스뿐이다. 따라서 비잔틴 본문은 최소한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어쩌면 더 오래 되었을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결국, 비잔틴 본문이 최소한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이나 서방 본문보다 더 오래 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잔틴 본문에 토대한 킹제임스 역이, 주로 고대 알렉산드리아 본문에 의존하는 NIV보다 사본학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주장할 수 는 없는 일이다.”(p.212)
그래도 지구는 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비교해 보면 서로 일치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공관 복음서들이 서로 유사하다는 사실은 사본학에서 당연히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는 다른 복음서와 일치하는 독법이 ‘조화’로 정죄되기보다는 ‘유사성’을 잘 보존한 것으로 선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경 신학에서는 ‘본문 조화’가 무식의 대명사로 통하는지 몰라도, 공관 복음 사본학에서는 ‘그것은 본문 조화다’라고 함부로 외치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게 될 수 있다. 아무리 본문 조화라고 몰아 부친다 해도, 공관 복음은 본래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지구는 본래 돌기 때문이다.”(p.218)
사라지는 “본문조화”의 신화
네슬-알란트 26판, 27판을 번역해 보면 누가복음 6:5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로 된다. 이것은 네슬알란트 판이 좋아하는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따른 것인데, 비잔틴 사본들을 비롯한 베자 사본, 고대 라틴 역본 및 소문자 사본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코텍스 33 등 거의 대부분의 사본들은 이 대목을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로 읽는다. ‘+도’인가 ‘-도’인가?’ 네슬-알란트 27판은 ‘+도’를 ‘조화’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사본 필사자들이 마가복음 2:28에 일치하도록 원래 ‘도’가 빠진 누가복음의 본문에 ‘도’를 추가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가 우선설을 따른다는 네슬-알란트판 편집자들이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이 마가복음을 자료로 사용했다면, ‘도’는 원래 마가복음을 통해 누가복음의 원문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슬-알란트판은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 때문에 ‘도’가 없는 독법(reading)을 선택한 후, ‘도’가 들어간 독법을 ‘조화’라고 유죄 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누가 본문 ‘도’가 추가된 독법을 ‘조화’라고 정죄하는 것은 오판이다. ‘도’가 빠진 독법이야말로 마태복음에로의 ‘조화’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사자들이 본문 조화를 시켰다면, 마태복음을 따랐을 것이다(비셀링크). 이처럼 누가복음 6:5 “+도, -도”의 경우, 둘 다 ‘조화’라고 볼 수 있고, 더구나 마태복음 쪽으로 본문 조화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면, 시내산사본과 바티칸사본이 ‘조화’를 범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pp.219-2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산틴 사본들의 지지를 받는 독법을 본문 조화라고 몰아 붙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티칸 사본을 원문으로 보거 나 비잔틴 사본을 조작으로 보는 편견이나 선입견 때문이다.(p.221) “고든 피는 사본 필사자들이 역조화시켰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원래 본문이 서로 일치하고 있었을 경우에 사본 필사자들이 필사를 하다가 틀리면 서로 차이가 나게 되어 ‘역조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조화를 범하는 것처럼 보이는 독법이 실은원문이되는 것이다.”(p.221)
그러므로 “공관 복음서를 다루면서 함부로 ‘본문 조화’를 운운하며 마태, 마가, 누가를 서로 다르게 읽는 독법들을 선택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자기의 무식을 폭로하는 것이다. ‘본문 조화이다!’라는 주장은 최소한 공관복음 사본학에서는 어리석은 자들의 교리적인 독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독단적 교리(도그마)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네슬-알란트 판을 어찌 무조건 따라갈 수 있겠는가?”(p.222)
짧은 독법이냐 긴 독법이냐
“짧은 독법이냐 긴 독법이냐? 이러한 질문은 사본학에서 더 이상 무의미하다...짧은 독법을 계속 고르다 가는 원문을 감하게 되고, 긴 독법을 계속 고르다가는 원문에 추가하게 된다. 원문을 감하는 죄를 택할 것인가, 원문에 추가하는 죄를 택할 것인가?”(p.235)
무너지는 옛 이데올로기
“네슬-알란트판은 원문에 매우 근접한 본문을 제공하고 있지만, 완벽한 원문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위의 예들에서 드러난다. 비록 네슬-알란트판이 비잔틴 사본들에 토대한 소위 공인 본문(Texus Receptus)보다 우수한 본문을 제공될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공인 본문이나 비잔틴 사본들이 네슬-알란트판과 다를 때 언제나 네슬-알란트 판이 옳은 것은 아니다. 네슬-알란트판이 분명 고대 알렉산드리아 사본들에 대한 신뢰와 비잔틴 사본들에 대한 불신을 이미 작업가설처럼 전제하고 떨어진 작품임을 고려한다면, 앞으로의 사본학적 작업은 비잔틴 독법들을 여기저기에서 부활시킬 가능성이 높다.”(p.241)
셈어적인 문체와 사본학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기록한 신약 성서 이곳저곳에서는 어색한 헬라어 표현이 발견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어색한 표현들은 종종 당시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의 모국어였을 아람어/히브리어 표현을 반영할 것이다.”(p.249) 비잔틴 사본들은 헬라어로서는 어색하지만 저자가 기록했을 법한 독법을 그대로 보존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도 네슬-알란트 27판은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따라갈 뿐 아니라 비잔틴 사본들의 독법을 비평주에 소개하지도 않는다.(p.253)
70인역과 신약사본학
70인역 문체에 대한 고려는 비잔틴 사본들을 조심스럽게 평가하게 한다. 셈어적인 표현을 지닌 비잔틴 사본들은 열등하다고 간주될 수 없다. 왜냐하면 셈어적인 표현들은 필사자들에 의해 다듬어지지 않고 남은 원초적인 표현들로서, 원문을 반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p.257) 그래서 신약 사본학을 위해서는 문체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셈어적인 헬라어 문체, 70인역적인 헬라어 문체, 각 저자의 헬라어 문체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 (p.258)
킹제임스의 최후
킹 제임스만을 주장하는 논리의 허구성
① 정상적 상황에서는 다수의 사본들이 원문을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가 모슬림들에 의해 정복되고 헬라어 사용이 비잔틴 제국으로 줄어든 상황 때문에 헬라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지역인 비잔틴 지역에서 대부분의 헬라어 사 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비잔틴 사본들의 다수성은 원문성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p.268)
② 하나님께서 많은 교회들이 성경 원문을 사용하도록 보존하셨다는 교리적 주장은 자살 논리이다. 더 많은 교회들이 네슬-알란트판에 토대한 개역 성경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p.268)
③ 고대 파피루스들은 비잔틴 본문에도 초기 독법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독법들이 비잔틴 본문 전체를 재평가하게 하지는 못한다.(p.268)
④ 본문 조화일 가능성을 가진 독법들을 검토한 통계는 시내산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이 비잔틴 사본들보다 훨씬 적은 수의 본문 조화 독법 후보들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를 고려할 때, 시내산 사본이나 바티칸 사본에 진짜 본문 조화 독법이 더 적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p.268)
⑤ 비잔틴 본문에는 더 많은 본문 병합이 나타난다. 본문 병합은 본문의 후기성의 증거이므로, 비잔틴 본문 형태는 후기에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p.269)
⑥ 교회 일반이 사용하는 성경은 비록 원본은 아니더라도 원문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계시된 성경을, 단지 비잔틴 본문 내지 에라스무스의 본문(소위 공인 본문)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마귀의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p.269)
비잔틴 사본에 대한 긍정적 접근
“비잔틴 사본이 대부분의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열등한 것 은 아니다!”라는 겸허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
① 공인 본문이나 킹제임스 역 뒤에 놓인 비잔틴 본문이 루시안의 개정 작업에서 기원한다는 추측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개정 작업이 우수한 고대 사본을 토대로 이루어졌을 수 있기 때문에 루시안의 개정 작업이 비잔틴 본문의 열등성을 필연적으로 함축하지는 않는다. (p.270)
② 비잔틴 사본들의 후기성은 열등성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더 오래 된 사본이 더 원문에 가깝다고 주장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후기 사본도 매우 초기의 사본을 필사한 사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 된 이집트 사본들이 단지 건조한 사막 기후로 인해 더 오래 보존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p.270)
③ 초기 교부들의 성서 인용이 비잔틴 본문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잔틴 본문의 초기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비잔틴 지역에는 우리가 성서 인용을 검토할 만큼 충분한 저술을 한 초기 교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p.270)
④ 본문 조화라는 판단 기준으로 비잔틴 본문을 열등하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본문 조화는 다른 사본(특히 베자 사본)에서도 많이 일어나며, 공관복음간의 상호 일치는 본문 조화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본래 원문상 일치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독법이 본문 조화이므로 원문이 아니라는 판단은 그 독법이 원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가정한 순환 논법에 불과하다.(p.270)
⑤ 비잔틴 본문이 더 길다고 해서 더 열등하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본문은 사본 필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추가된 독법들이 계속 필사되어 점점 길어지기도 하지만, 실수로 생략된 독법이 재생되지 못 하여 점점 짧아지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대 파피루스들은 빼 먹는 경향성 때문에 이들을 따라 짧은 독법을 선택하는 것은 위험하다.(p.271)
⑥ 비잔틴 본문이 매끄럽다고 해서 후기 본문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비잔틴 본문은 어색한 헬라어 표현들을 많이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끄러운 독법이 나중의 것이라는 판단 기준은 신빙성이 없다. 저자 자신이 때로는 투박한 표현을, 때로는 매끄러운 표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투박하냐 매끄러우냐 하는 것은 저자의 문체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문체에 대한 고려 없이 어느 한 쪽을 원문에 가깝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셈어적인 표현들은 70인역적 표현일 수 있지만, 비잔틴 본문에 담긴 70인역적인 셈어적 표현들이 원문의 반영일 수도 있다.(p.271)
“공인 본문이나 비잔틴 본문은 완벽한 본문은 아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대개의 사본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히 열등한 본문도 아니다. 비잔틴 본문의 실상은 이 양 극단의 어느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원문 복원을 열심히 하다 보면 현재의 네슬-알란트 판을 비잔틴 본문에 조금 더 가깝게 고치게 될 것이다.”(p.272)
첫댓글 읽어보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상당히 복잡하고 숴운 문제는 아닌듯 합니다. 상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