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酬酌)부리기/방종현
수작은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수작에 수(酬)는 술잔에 술을 따라 준다는 뜻이고, 작(酌)은 그 잔을 받는다는 뜻이니 술은 잔 커니 권 커니 하며 마셔야 맛이 나는 모양이다. 요즘은 회식자리에서 건배사가 빠지지 않는다. 건배사의 효시는 옛 선비들의 주연(酒宴)에 빠지지 않는 권주가(勸酒歌)가 아닐까 생각한다. 권주가의 백미는 뭐니 뭐니해도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를 빼놓을 수 없다. 먹새그려 또 한 잔(盞)먹새 그려. 꽃 꺾어 산(算)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먹세그려(후략)정철의 장진주사에 나오는 권주가다. 권주가란酒宴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선비들이 지은 시를 일정한 가락에 얹어 기녀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다.평양 명기 황진이가 불렀다는 '冬至(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여내어春風(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도빼놓을 수 없는 절창이다. 기생들이 앵두 같은 입술에서 꾀꼬리 같은 소리로 낭랑히 읊조리면 아무리 근엄한 선비라도 넘어가지 않을 사람 있으랴?.
지금은 권주가를 낭랑히 불러줄 기생도 없으니 권주가에서 건배사로 넘어왔다.그 것도 기생이 하는 게 아니라 좌중에 비중 있는 분이 하는 게 상례가 되었다. 건배사도 유행을 타는 모양이다. 5.16혁명 후에는“잘살아보세”나“재건합시다”를 애용했다. 그 후 별의별 구호가 등장하는데. “개 나 발”이란 게 있는데, 개인과나라의발전을 위해서란다. “당 나 귀”란 것도 있다. 당신과나의 귀중한 인연을 위해서란다. 우리 대구 지방에서는“우리가 남이가”가 한때 유행했었다. 건배사도 혼자서 하는 방법에서 화답 형으로 바뀌고 있다. 화답형 이란 주창자가 건배사를 외치면 좌중이 화답하는 형태를 말한다. 문학 동네에서 애용하는‘맥.취.오’와‘당.취.평’이 있다. 주창자가‘맥 취 오!’라 외치면 좌중이‘ 당 취 평’이라 화답해준다. 맥주에취하면 오늘밤이 즐겁고 당신한테취하니 평생이 즐거울 거란 화답이다. 물론 소주를 먹는 날은 소 취오 요,막걸리를 먹는 날은 막 취오 라고 하면 된다.
술을 마시는 데는 주법이 있다. 술 주(酒)자를 파자(破字)해보면 삼수변에 닭 유(酉)자가 붙어 닭이 물을 먹듯 조금씩 천천히 마시란 뜻이다. 즉 과음하지 말고 즐기란 뜻일 터일 것이다. 서양인들은 술을 즐기며 마신다. 그들이 와인을 마실 때 보면 그라스에 따라 코로 한번 향내를 맡은 다음 입안에 머금고 혀로 굴려가며 즐긴다. 거기 비하면 우리나라는 술을 따라주고는 단숨에 마시라고‘원샷’하라며 부추기도 한다. 그리고 술잔을 연신 돌리는데 술이 약한 사람은 참으로 고역이다. 어떤 짓궂은 술자리에는 마시지 않으면 억지로 먹이거나 고약한 벌칙을 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권하는 술을 먹지 않아 벌을 준다는 뜻으로‘벌주(罰酒)’라는 말도 있다.이건 숫제 고문에 가깝다.
‘낮술에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란 말도 있다. 낮에 술을 마시다 보면 낯빛이 불콰해지고 자세도 흐트러질 테고 더구나 일해야 할 시간에 일하지 못한다.그래서 낮에는 마시지 말고 밤에 조심히 먹으란 뜻에서 만든 말이라 생각된다.
나에게 하모니카 동우회가 있다. 가끔은 동료들과 회식자리를 갖는다. 이때 하는 건배사를 문학 동네에서 애용하는맥 취 오,당 취 평에서 차용했다. 당취평에‘당’자를‘하’자로 바꾼‘하 취 평’을 한다. 즉 맥주를 마시면 오늘이 즐겁고 하모니카에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는 뜻으로 아전인수 해석을 하면서 말이다. 단원들 모두가 공감해하며 회식 때마다 공식 건배사로 쓰고 있다.
수작(酬酌)의 원뜻은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정겨운 뜻으로 쓰였다. 대게 술자리는 접대하는 자리다 보니 그곳에서 밀약이 이루어지고 음모를 도모하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되면서 나쁜 뜻으로 변했다. 한술 더 떠서 남의 말이나 행동을 업신여기거나 비하하기 위해 쓰는 말로 굳어졌다. 술도 절제해서 마시면 기분도 좋아지고 활력소가 된다. 술잔을 나누는 정겨운 모습을 수작이라 했듯이 건전한 음주문화를 찾아 아름다운 수작을 나누어 봄 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