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앞서가는 사람은 모두 뒷모습. 나는 그 뒷모습으로도 누군지 다 알아. 나무도 뒷모습. 사슴도 뒷모습. 달도 뒷모습. 돌아가신 우리 엄마도 뒷모습. 그래도 우리. 걸을까? 이곳에선 목발들이 다리가 세 개. 하나는 달의 것. 달에선 불면증 낙진이 쏟아져. 체르노빌의 다리 위에서 불구경하던 사람들은 다 죽었어. 불면증 자궁에서 불면증 태아가 만들어진다 불면증 태아는 당연히 자라서 불면증 할머니가 된다 나는 정말 지금 선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불면증 선생은 불면증 시신이 된다 생명이라는 말 자꾸 하지 마. 생명은 장차 죽는 것. 불면증 인간의 어깨에 날개가 돋는다. 날개가 돋으니 어깨가 한정없이 넓다. 불면증 인간은 말을 더듬는다. 이봐. 이봐. 이봐. 부르기만 할 뿐. 정작 용건은 없는 불면증 언어. 돌아봐도 돌아봐도 뒷모습인 앞서가는 사람들. 여기는 나를 태운 재로 그린 풍경 속일까. 나는 흑백사진 속에서 걷는 걸까. 자기 모습의 천사와 싸우며 가느다란 팔을 번갈아 휘적이는 사람들. 타고남은 재의 뒷모습. 자, 그림자를 그려보자. 사실 나는 눈을 다 뜨고 사는 게 아닐지도 몰라. 그래도 나는 걸어가야만 해. 세 개가 한 쌍인 목발을 짚고, 하나는 달의 것 두 개는 내 다리의 것. 홑이불을 쓰고 유령처럼 트렁크를 끌고 집을 떠난다. 안녕히 계세요. 달과 불면증 유령, 둘 사이를 오가며 진동하는 긴 은빛 선분 하나. 머나먼 거울의 바다에 비치는 내 뒤통수 하나. 파도치는 수면 위에 달처럼 외로운 뒤통수 하나. 자세히 봐, 더 자세히 봐. 저 뒤통수의 빈혈을 봐. 빈혈은 바닥이 없어. 내가 겪은 모든 슬픔이 다 소용없다니 내가 겪은 슬픔으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니 저 나무는 겨울을 겪은 다음 꽃을 매달았는데 몸에서 꽃이 나올 때 더 아팠을까 몸에서 꽃이 떨어져 갈 때 더 아플까 내가 겪은 슬픔이 다 불면의 것이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