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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신앙의 현대적 의미
창 1: 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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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이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해라해서 전세계가 떠들썩합니다.
게다가 그의 기념비적인 책 [종의 기원]이 출판된 지 150년 된 해라해서 여러 나라에서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특히 고향인 영국에서는 세상을 변화시킨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하나라 치켜세우며 축제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당시 다윈이 진화론을 주창하자 서구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됐습니다.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격하게 반대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쌍수로 환영하며 반긴 부류도 있습니다.
이 찬반 논쟁은 아직도 결말을 보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그가 주창한 진화론은 오늘의 현대사회 구석구석에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강조한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개념입니다.
자연선택이란 “생물 개체가 같은 종이라도 환경에 적응하여 여러 가지 변이(variation)를 나타내게 되는데, 이 변이 중에서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변이가 선택되어 후대로 전해져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원숭이는 늘 원숭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진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형태의 원숭이로 진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유인원으로 진화하기도 하고, 또 더 진화해서 인간이 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진화론은 기독교 문화권에 충격적인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결정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한 것입니다. 생명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 스스로 선택의 과정을 거쳐서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니고 저 하등동물로부터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스스로 진화해서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 없이도 우주 생성을 설명할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치 않게 됐습니다.
이제 진화론자들은 당당하게 하나님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세속주의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게 됐습니다. 또한 진화론자들은 하나님 중심의 세상이 아니라 인간중심의 세상을 만들어나가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인본주의의 돋아나게 됐습니다. 게다가 진화론자들은 정신세계나 영적 세계를 배제한 채 유물론적 사상을 발전시키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공산주의가 생겨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진화론자들은 과학만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됐습니다. 여기에서 과학주의가 생겨나게 됐습니다.
도미노 게임을 생각해 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도미노 블록을 세워놓습니다. 제일 앞의 도미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이 쓰러지면서 두 번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은 또 쓰러지면서 세 번째 블록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이 계속해서 진행되면서 전체 도미노 블록을 다 넘어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제일 첫 번째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바로 창조신앙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의 첫 번째 도미노입니다. 이것이 쓰러지면 하나씩 차례로 쓰러지게 되고 마지막까지 모든 것이 다 쓰러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진화론의 위험이 바로 이것입니다. 첫 번째 도미노인 창조신앙을 흔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쓰러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 심령 속에 이 창조신앙이 쓰러진 사람들은 기독교 세계관이 하나씩 쓰러지고 있고, 결국에는 모든 기독교 세계관이 다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이 될 것입니다. 인본주의자들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조신앙을 철저하게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이 창조신앙을 지키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을 지키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현대 사회에서 창조신앙을 지켜야 할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조신앙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1. 함께 살아가는 삶
오늘 현대 사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치열한 경쟁입니다. 약육강식이 강조되어 강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배경에는 잘못된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세계관의 뿌리는 역시 진화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를 대표하는 진화론자 리차드 도킨스가 출판한 책 제목이 매우 상징적입니다. 바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기적 유전자로 경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독식하고 경쟁에서 진자들은 도태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선도 악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화론의 주장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무척이나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의 유대인 박멸 프로그램입니다. 히틀러는 아예 유대인이라는 민족을 말살하려 들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 600만을 학살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히틀러 뒤에는 당시 독일의 진화론자들 특히 우생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우월한 독일민족이 저 열등한 유대인들을 도태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 제 2, 제 3의 히틀러이 곳곳에서 일어나 치열한 경쟁을 조장합니다. 인종차별, 빈부차별, 지역차별 등 갖가지 차별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차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읽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다 하나님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친히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 1:31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그 하나하나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이 없고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모든 것이 함께 더불어 있을 때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생명체들은 다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하찮을 지라도 심지어 사람들 눈에는 거스를 지라도 모두가 하나님 눈에는 정성을 쏟아 만드신 작품들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모든 존재들이 더불어 함께 있을 때 낱개의 작품들이 모여 우주라는 걸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귀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귀합니다. 흑인, 백인, 우리 황인 모두가 다 귀합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다 귀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 장애인, 노숙인, 심지어 죄 짓고 교도소에 수감중인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 다 귀합니다.
또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이 다 귀합니다. 저 들판에 나있는 이름 모를 들풀들, 혐오스럽게 생긴 벌레들, 하늘, 바다, 저 땅속 깊은 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 모두가 다 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가 창조신앙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 창조신앙의 기초 위에서 그 모든 존재들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심히 좋다 하신 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목적 있는 삶
오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꿈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냥 주어진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계처럼 방향 없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역시 잘못된 세계관 때문입니다.
이 잘못된 세계관의 뿌리에 역시 진화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의 관심은 “생명체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가?”에만 집중되어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명체들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합니다.
단적인 예로 현대의 진화론자인 리차드 도킨스는 그가 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인간은 ...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를 번식시키기 위해 여기 던져져 있을 뿐이다. 인생에 보다 높은 목적 따위는 없다.”
인생에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 자기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은 결국 허무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니체입니다. 그는 진화론에 심취하다가 결국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인간이 추구해 온 모든 가치들, 삶의 목표들을 다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쇠망치를 든 철학자”라고들 합니다. 다 부정하고, 다 부숴버렸습니다. 결국 철저한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만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성경을 차분하게 다시 읽어야 합니다. 창 1:2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존재의 이유이고 또한 존재의 목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야 할 목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 존재 이유와 존재 목적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여기 컵이 있습니다. 컵이 존재하는 이유는 물을 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컵이 존재하는 목적은 물을 마시는 사람이 물을 잘 마실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그 존재 이유와 목적은 어떻게 알 수 있을 까요? 컵을 만든 사람과 컵을 여기에 둔 사람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 답을 하나님께 찾아야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색스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은 인기 절정의 순간에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허무함을 이길 수 없어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과다한 약물복용으로 죽을 뻔했습니다.
극적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그의 생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술과 마약을 끊고 다시 음악에 정진하면서 최고의 재즈 '지극한 사랑(A Love supreme)'을 연주하게 됩니다. 자신을 회복시켜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고 자신의 영혼을 바치는 곡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곡을 연주하고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나의 전 생애는 바로 이 순간 연주했던 열정적인 32분간의 재즈를 위해 존재했다' 또한 그 곡을 연주하고 나서 ‘누크 디미티스’를 외쳤습니다. 눅 2:29 시므온이 “이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라고 외친 바로 그 말입니다. 자신은 존재하는 목적을 이루었다는 그 성취감에서 참된 영혼의 자유를 외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창조신앙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이 창조신앙 위에서 존재하는 이유와 살아가야 할 목적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삶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들 말입니다.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살해한다든지, 심지어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자식들을 살해하기도 합니다. 연쇄살인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바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입니다. 얼굴은 사람이지만 그 마음속에는 짐승이 담겨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인면수심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 역시 잘못된 세계관 때문입니다.
이 잘못된 세계관의 뿌리에 역시 진화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사람과 동물은 차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라고 해서 동물과 다른 양심을 가지고 있다든지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철저한 진화론 신봉자였던 스탈린은 이렇게 까지 끔찍한 말을 했습니다. “100만명을 죽이는 일과 잔디를 깎는 일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가 볼 때 사람과 잔디는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런 스탈린의 후예들이 활개를 칩니다. 양심이 마비됐습니다. 도덕적인 삶에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사회가 점점 더 어두워져 갑니다.
우리가 차분히 성경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창 1:26에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은 동물들과는 분명히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말입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성품을 넣어두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백번을 양보해서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 봅시다. 우리 인간의 육체가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우리 마음은 다릅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자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과는 다릅니다.
얼마 전 신문에 실린 이화여대 김 모 교수의 6,25피난길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고 나자 이 분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강변에 나와서 강을 건널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작은 배 한 척을 만나서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사를 건 피난민들이 너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배가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공은 이래서는 안되니 누군가는 내려야 한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그 누구도 그 배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공은 결국 배를 띄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배에 타고 있던 몸집이 아주 큰 신사가 조용히 내리더니 한강변 석양 길로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신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김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신사가 바로 평양신학교 출신 방송작가 주태익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동물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창조신앙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창조신앙을 회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라는 시대는 진화론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된 시대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목적 없이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또한 사람다움의 고상함을 잃어버리고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창조신앙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삶, 목적 있는 삶,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