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체험과 증언, 믿음과 변화
사도 4,13-21; 마르 16,9-15 /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2024.4.6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기쁨을 노래하고 축하하는 팔일 축제 기간 동안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는 장면이 주로 소개되었고, 독서에서는 발현 체험을 한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 복음을 선포하는 장면이 주로 소개되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발현하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이미 가르치셨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확신시켜 주셨고, 이 확신을 얻어 사도가 된 제자들은 예수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예수 부활에 관한 이 복음은 네 복음서 전체에서 소개된 발현 기사와 사도행전에서 집중적으로 보도된 사도들의 행적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르코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리고 열한 제자에게 차례로 나타나신 일들을 간추려 보도합니다. 발현을 목격한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처음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알아보고 나서는 죽으셨던 분이 부활하셨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놀라고 나서야 비로소 기뻐하며 그분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런 연후에야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님 덕분으로 기운을 얻게 되고, 그 기운으로 자신들도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거룩하고도 놀라운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스승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삼 년 동안 가르치셨던 바를 상기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이 진리라는 확신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었고, 이것이 참된 진리임을 확신하게 된 계기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이었기에 사도가 된 제자들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르침이었고, 부활의 복음은 이 새 세상을 열 새로운 인간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인간에 관한 이 복음은 겁이 많고 믿음이 약했던 어부 출신 제자들을 담대한 용기와 믿음을 지닌 사도들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불구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할 수 있을 정도로 기적 능력마저 갖추게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당돌한 저항자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기적의 증거가 살아있는데다가 이를 찬탄해 마지않는 군중 앞에서 감히 어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사도들은 당당하게 이렇게 반박하고 나왔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19).
이렇게 해서 예수 부활을 믿게 된 제자들이 사도들로 놀랍게도 변화되었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들이 보고 들은 바 즉 발현체험에 입각한 신앙 증거의 행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과정과 기적적인 시작이 사도들과 교회가 체험할 수 있었던 부활의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확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부활의 은총,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묘한 섭리로 이 땅에 들어온 한국 천주교회 역시 새 세상과 새 인간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선 지배층이 주자학을 국교처럼 신봉하던 탓에 참으로 부당하게도 오랫동안 억압받던 민족의 종교심성을 각성시켰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은밀하게 그러나 억누룰 수 없이, 이제야 우리 겨레가 민족사의 초창기처럼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드디어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오래된 종교적 희망을 다시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유학 고전에 대해 주자가 달아 놓은 해석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는 바람에 사상적 계엄령과도 같았던 사문난적(斯文亂賊)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까닭도 서양 선비로 대우받았던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가 저술해 놓은 천주실의 덕분이었습니다. 숱한 당쟁(黨爭)과 억울한 사화(史禍)의 위협에 숨죽여 살던 양반 선비들도 드디어 조선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정신적 희망까지도 불러 일으켰습니다.
더욱이 양반 선비들에 비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 차별당하던 중인 신분 이하 상민들은 물론이고, 마치 사고 파는 짐승처럼 부림을 당하던 천민 출신들은 천주교 교리에서 하느님 앞에서 만민이 평등하다는 복음을 듣고 감격해 마지 않았습니다. 양반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남존여비의 굴레에 매여 있던 여성들도 그 복음적 감격의 정도는 천민들에 비해 전혀 못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워진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으리라는 사회적 희망이 강력하게 불타올랐습니다. 그리하여 탄압이 더욱 잔학해져 가던 19세기 중반 이후에 천민 출신과 여성들의 입교가 더 늘어났습니다. 박해 속에서 교세가 늘어났던 이 현상은 세계 선교 역사상 한국에서만 일어났던 기현상(奇現象)입니다.
이러한 점이 보편 초대교회의 현실과 정확하게 상통하는 한국 초대교회의 현실이었습니다. 이를 아주 대표적으로 증거한 인물이 황일광 시몬(1757~1802)입니다. 그는 천민 출신으로 태어났으나, 타고난 지능과 열렬한 마음과 명랑한 성격을 타고 났습니다. 그는 1792년 무렵 홍산으로 이주하여 살던 중에 권일신의 제자 이존창이 천주교 교리에 해박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배운 후 교우촌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내가 천한 신분임에도 양반 교우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더 있음이 분명하다.”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1800년에는 경기도 광주로 이주하여 여러 교우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특히 ‘주교요지’를 짓고 있던 정약종과는 그야말로 믿음의 벗, 즉 교우로서 막역하게 지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황일광은 유학자로서 식자층(識者層)이 쓰던, 유식하되 어려운 언어에만 익숙하던 정약종에게 진솔하면서도 쉬운 민중의 언어와 그 안에 담긴 민족의 종교심성을 그 특유의 뛰어난 지능과 솔직함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주교요지’는 ‘천주실의’보다 더 뛰어난 교리책”(주문모 신부)이 되어 신유박해 이후 지속된 백년 동안 교우촌의 신자들로 하여금 박해에 대항하여 견디어 낼 수 있게 해 준 사상적 방패가 되어 주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보편 초대교회에서나 한국 초대교회에서나 기적 같은 선교 활약을 펼친 신앙 선조들은 모두 다 발현 체험을 겪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할 수 있게 해주는”(사도 4,20) 발현체험은 부활 신앙의 기반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찬으로 이루어지는 미사는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교회의 발현 양식입니다. 습관화된 자세로 말씀을 듣거나 성찬에 참여하지 말고, 복음과 독서에 나온 증인들의 눈으로 새롭게 말씀을 듣고 성찬에 참여해 보십시오.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새롭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는 발현체험이 우리에게도 가능합니다. 그리하여 솟아날 믿음은,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새로운 사회는 지금도 가능하다는 믿음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새로운 인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믿음입니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미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도들처럼 부활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