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작은 영주의 아들이었던 몽테뉴는 자신의 성에서 수상록을 집필하였다.
수상록을 보면, 성 앞을 가끔 삽을 들고 지나가는 늙은 농노들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삽을 들고 가는 이유가 자신들의 죽음을 미리 알고 삽으로 자신이 뭍힐 구덩이를 미리 파고 죽음을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몽테뉴는 그 후 유럽의 문학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계몽주의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몽테뉴는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것에 그치지 않고 계몽주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는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일어난 문화계의 큰 변화이다.
각 세기별에 따라 이탈리아어로 트레첸토, 콰트로첸토, 친퀘첸토라고 부른다.
르네상스의 기본적인 성격은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의 복원을 추구한다.
몽테뉴는 16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사상가, 교육학자이다. 16세기 후반 종교개혁으로 광신적인 종교 투쟁의 와중에서 신교도와 구교도 간의 대립을 조정했으며, 급변하는 과학 발달로 말미암아 그때까지의 상식이 붕괴되자 인간 이성의 한계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회의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독단을 피하고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태도로 모든 대상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지녀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몽테뉴는 이런 사고를 기반으로 인생에 대한 고찰을 추상화한 ‘수상록’을 남기면서 문학사에 '에세(수필)'라는 형식을 창안했다.
이 작품은 프랑스에 모럴리스트 전통을 구축했으며, 17세기 이래 프랑스 문학, 유럽 각국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집안은 보르도에서 살아 온 부유한 상인 가문으로, 증조부 때 남작령에 해당하는 몽테뉴 성과 영지를 사들이면서 귀족이 되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 피에르 에캠은 프랑수아 1세의 이탈리아 원정에 종군하기도 했으며, 보르도 시장을 역임했다.
또한 문학과 예술, 철학을 사랑하여 아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당시 지식인들에게 필수적이었던 라틴어를 가르치고, 6세 때 라틴어로 유창하게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자 그제야 프랑스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어머니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 몽테뉴는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8남매 중 맏이이다.
‘수상록’은 총 3권으로 1, 2권은 1580년에 출간되었다.
9년 동안 몽테뉴가 천착한 문제들, 예컨대 은둔 생활과 궁정 생활을 번갈아 하면서 느끼는 야심과 모순적인 마음, 친구 라 보에티의 죽음으로 촉발된 죽음과 고통의 문제, 기독교적 금욕주의를 중심으로 한 모든 독단적 사고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그리스의 철학자 엘리스의 피론의 회의론을 토대로 인간의 정신이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있어 오류를 범하기 쉬움을 인정하고,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명제 아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지니도록 촉구한다.
계몽주의는 이성을 통해 사회의 무지를 타파하고 현실을 개혁하자는 일종의 사상 운동이다.
17세기 후반 유럽에서 처음 주장이 제기되고 18세기에 확산 되었는데, 아이작 뉴턴, 바뤼흐 스피노자, 데이비드 흄, 존 로크, 에드워드 기번,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드니 디드로, 이마누엘 칸트 등 수많은 학자들이 참여한 시대적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 운동에 관여한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적 엘리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이전 세기의 비합리성, 독단성, 불분명성, 미신에 맞서 싸웠고, 그로 인해 종교적,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
이러한 노력들은 18세기 말에 발생한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세계관에는 계몽주의적 사고가 상당 부분 내재되어 있다.
르네상스는 실크로드를 통한 동양의 문물과 문명을 통해 자극을 받았다.
유럽은 실크로드를 통해서 미개한 국가에서 비로소 문명의 국가들로 발돋음 한 것이다.
계몽주의 역시 15 세기부터 유럽이 남아메리카를 침략하고 약탈한 부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는 동양의 부와 문명과 문화의 산물인 셈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수상록은 동양적 사고의 시작이었다.
비로서 신과 그리스 신화에서 벗어나 인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았던 인류가 우주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온 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