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808) - 하늘이 열리고 역사가 피어난 날
10월의 첫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아침, 창밖으로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아내와 함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을 합창하였다. 트럼프가 코로나 양성으로 입원하는 등 지구촌은 어수선하여도 묵묵히 일상을 견디는 모두에게 늘 푸른 날들이어라.
하늘 푸르고 곡식 잘 여문 10월의 들녘
지난 토요일은 추석 연휴에 끼어 넉넉함이 더한 개천절, 푸근한 마음으로 경복궁 민속박물관에서 거행하는 제4352주년 개천절 경축식을 TV로 지켜보며 하늘이 열리고 역사가 피어나는 웅혼한 기운을 온몸으로 새겼다. 아내와 함께 경축식을 지켜보며 메모한 내용은 이렇다.
행사의 첫 막은 어린 소녀가 들려주는 단군신화의 줄거리, 익히 아는 스토리가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선명하다. ‘옛날 옛적 하늘을 다스리는 임금 환인은 그 아들 환웅이 저 아름다운 땅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소원을 허락하였다. 환웅은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서 사람이 되기를 간청하는 호랑이와 곰에게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말라고 명하였다. 호랑이는 끝까지 참지 못하고 포기하였으나 곰은 우직하게 이를 견뎌 드디어 사람이 되었고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단군은 환웅에게서 전수받은 홍익인간(널리 사람을 이롭게 함)의 지표를 건국이념으로 삼아 고조선을 세웠으니 그가 곧 우리의 시조다.’
힘찬 북소리와 함께 개막선언, ‘우리 함께 널리 이롭게’를 새긴 구호가 홍익인간의 이념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국민의례가 펼쳐지고 국사편찬위원장의 개국기원 설명이 이어진다. ‘이 땅의 문명의 시작과 역사의 시원이 된 단군기원의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한 것은 1949년 10월 1일의 제헌 국회에서였다. 그에 앞서 고려와 조선에서도 단군을 시조로 여기는 전통이 면면히 이어졌고 3‧1운동 후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개천절을 겨레의 기념일로 지켰다. 남북분단 후 등장한 제헌국회가 단기 연호를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남북이 하나로 되어야 한다는 소망이 응축되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분단된 나라의 통일과 평화공존의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방송화면에서 잡은 개천절 기념식
정세균 국무총리는 축사를 통해 코로나 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는 나라와 국민의 자긍심을 적절하게 짚었다. 그 요지,
‘지금 코로나19는 위기를 넘어 비극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인간관계는 물론 국경의 문마저 닫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세계적 환난 앞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강한 나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더 강인합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지만, 대한민국은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삶을 지켜왔습니다. 경제대국들이 코로나 환난에 무릎 꿇을 때, 우리는 OECD 국가 중 최고의 경제성장률로 당당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세계가 경탄하고 세계를 압도하는 이 힘은 모두 국민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국민이 바로 역사입니다.”
정부는 지난 반만년의 역사를 기억할 것입니다. 특히 개천절을 맞이하여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념을 바탕으로 고조선의 문을 연 시조 단군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이러한 다짐을 가슴에 새기며, 앞으로 우리가 열어가야 할 새로운 역사의 지향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선도국가”입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사회 전반의 근원적 변화를 재도약의 기회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국판 뉴딜’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와 문화를 선도하는 도약과 웅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 “포용사회”입니다. 그간 우리는 위기 속에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복지의 질을 높여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를 포용사회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겠습니다.
셋째, “국민통합”입니다. 맹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로 천시, 지리, 인화를 들면서 이 가운데 사람 즉, 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지역과 계층, 세대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 되는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겨울을 이겨내지 못한 새싹은 꽃을 피우지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 코로나19라는 긴 겨울을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을 딛고 역사의 진전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입니다.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새 하늘을 열었던” 개천의 정신을 잊지 맙시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겨레가 품었던 원대한 꿈이 실현되는 새로운 개천의 역사를 향해 나아갑시다. 이러한 굳센 의기와 다짐을 개천절 노래 마지막 가사로 갈음할까 합니다. 맹세하노니, 잘 받아 빛내오리다.’
우리 모두는 길을 여는 역사의 개척자, 그 정신을 담아 연기자가 낭송하는 정호승 시인의 시 ‘봄길’에서 개천절의 그윽한 뜻을 되새겼다. 십수년전 일본문화탐방의 선상강좌에서 시인의 육성으로 접한 인연을 떠올리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성인의 자취 따라 반만년 이어온 역사, 지금은 단기 4353년의 10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