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다 나들이
김미옥
4월 중순, 봄 바다가 보고 싶어 길을 나섰다. 서울에는 이미 한바탕 요란스레 벚꽃잔치가 지나가고 색색의 화려한 꽃들이 눈길을 모으는 중인데, 무의도 가는 길에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로수 벚꽃이 조금씩 연분홍 망울을 터뜨리고, 바닷가 언덕의 진달래도 아직 수줍은 듯 살포시 치맛자락을 펼치고 있었다.
봄볕이 곱게 내리는 정오의 바다는 그저 평화로웠다. 썰물이 쓸고 간 빈 백사장에는 지난여름 피서객들이 남긴 시끌벅적한 얘기도 세찬 겨울바람의 울부짖음도 가뭇없이 사라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웃음소리만 한 옥타브 높게 넓은 백사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소리 없이 부드럽게 간질이듯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마치 아이들이 길게 손잡고 무리지어 노는 모습 같았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목청 높여 부르며 두 편으로 나눠 손잡고 마주 선 아이들이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렀다 하며 깔깔거리는 놀이, 봄 바다의 파도와 파도였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바다는 영원한 생명력의 원형. 그것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리라. ‘나비효과’와는 반대로 어느 대양의 집채만 한 파도가 부서지며 전해지는 파문이 지금 눈앞의 작은 물결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크든 작든 하나의 몸짓은 어떤 형태로든 어딘가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 숨 쉬지 않는 바다는 이미 바다가 아니듯 찰랑이는 물결은 바다의 호흡이다.
우리는 백사장 끝 갯바위에 둘러앉아 기타 반주에 나직이 화음을 맞추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몸과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느낌은 순풍에 미끄러지는 돛배를 탄 기분이랄까. 목덜미에 여린 봄 햇살의 입김을 받으며 맑은 공기 속에서 추억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가슴에 쌓인 찌꺼기들이 저절로 씻기는 것 같았다. 어느 사이 나이도 시간도 아득히 잊었다.
내가 봄 바다를 좋아한 게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다. 무섭도록 검푸르고 냉랭한 빛, 거친 물결과 독기 품은 칼바람이 얼굴을 할퀴는 겨울바다를 지루하게 견디며, 고운 물빛 스쳐 유순해진 바람이 속삭임으로 다가오는 봄 바다를 간절히 기다리곤 했다. 젊음이 물결치는 정열적인 여름바다의 화끈함도 좋고, 우수 깃든 가을바다의 낭만과 호젓함, 운동회 끝난 텅 빈 운동장에 홀로 펄럭이는 만국기 같은 그 쓸쓸함도 은근히 좋아한다. 하지만 얼굴 간질이는 실바람, 물비늘 무수히 반짝이는 맑은 봄 바다의 살가움은 아무리 만나도 싫증나지 않는 오랜 친구 같다고 할까.
‘봄 바다’란 말에서는 부드러운 물결과 은빛 햇살, 뭔지 모를 아련한 꿈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조무래기 친구들과 오리 길 신작로를 걸어 조개를 캐러가던 때도 언제나 봄이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노란 장다리꽃, 흰나비의 팔랑거림도 내겐 평화로운 봄 바다의 이미지로 새겨져 있다. 고향집 사립에서 몇 발짝만 나오면 바라보이던 흰 돛단배의 가물거림도 내겐 봄 바다의 여유로운 정경으로 남아 늘 평온함을 안겨준다.
저 멀리 수평선은 짙은 해무에 싸여 하늘과 섞여버렸다. 봄의 두근거림 속에 해무 베일 뒤에선 어떤 은밀한 얘기가 익어가고 있을까. 열린 바닷길을 따라 바다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실미도로 건너갔다. 치열했던 영화 속 장면들은 기억으로 떠올려볼 뿐, 마음 통하는 사람들과 바다냄새 맡으며 모래밭에 발자국을 새겨보는 동심에 젖는 것으로 족했다.
봄 바다는 내게 언제나 설렘으로 다가온다. 곱게 찰랑이는 잔물결 위로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 그 앞에 서면 울렁증처럼 차오르는 어떤 환희. 투명하게 펼쳐진 봄날의 바다는 알 수 없는 먼 그리움을 불러 아련함에 젖게 하고, 실눈으로 바라보는 저 너머 미지의 세계가 손짓하는 것 같아 저절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다이아몬드가 눈부시게 수면을 장식하는 남녘의 봄 바다. 어느 시인이 화안한 꽃밭 같다고 노래한 바로 그 바다. 언제나 잠들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는 봄 바다처럼 쉼 없이 잔물결 찰랑이며 푸른 꿈을 노래하고 싶다.
첫댓글 겨울바다, 여름바다와 봄바다는 이렇듯 다르네요.
먼 그리움을 불러와 아련함에 젖게 만드는 봄바다에 가보고 싶어요.
아련함도 그리움도 잊고 살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