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밤이 되면 불을 켤 줄 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바로 그 이법(理法, principle)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있는 숱한 이치를 찾아내는 것, 이것이 역사의 과정이요, 문명의 과정이다. 그렇게 해서 자꾸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이법(理法)을 알아야 무지로부터 해방된다. 우리가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바로 세상을 문명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법을 제대로 깨야 사람이 밝아진다. 이(理)란 문자 그대로 이법(理法), 자연섭리, 우주의 창조 법칙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명의 역사란 이치를 터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인생이란 자연과 인간의 생명의 원리를 배우는 과정의 연속인 것이다. 공자는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이법을 터득해서 인간의 본성 자리를 드러냈다. 그래서 유학자들은 흔히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궁리진성(窮理盡性)을 말한다. 배움의 의미란 먼저 사물의 배후에 있는 이치를 제대로 아는 데 있다. 그 이치를 깊이 있게 터득하면 자기의 본성을 쉽게 안다. ‘아, 나는 누구다. 인간이란 무엇이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태어나서 사는구나.’ 하는 걸. 인간이 자기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진정한 배움에서 온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건강한 깨달음의 삶이다.
불가에 보면 유식학(唯識學)이라는 게 있다. 우주 만유는 오직 식(識)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 오죽하면 『화엄경華嚴經』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겠는가.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말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말한다. 진정한 법이나 도는 언어나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마음이란 어떻게 구성돼 있으며, 하늘과 땅과 어떤 연관작용을 하는가? 마음이 왜 모든 사물변화의 주인이 되는가? 마음의 실상實相(본래의 참모습)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6년 동안 설산에서 고행한 끝에 본래의 마음경계를 깨달은 부처가 되었다.
내 생명이 태어나고, 나아가 전 우주가 일어난 생명의 근원자리에 대해 ‘일심경계’로 말한다. 그런데 ‘일심경계’를 잘못 이해하면, 자기 자신을 백번 천번 죽음의 사념에 빠뜨리게 된다. ‘일심경계’란 이 대우주 생명이 하나가 되어 둥글어가는 의식의 근원 경계를 말한다. ‘일심경계에 머물러야 한다’ 할 때 그 일심, 한마음이란 대우주만물과 내 생명이 하나 되는 생명의 순수의식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잘못 이해하여 지나치게 독선적인 주관적 유심론唯心論 같은 데 빠져버리면, ‘모든 건 그냥 마음에서 일어나서 마음으로 끝난다. 마음만 깨면 다 된다.’ 이렇게 알게 된다. 천지만물이 태어나고 변화해 나가는 천리, 대자연의 변화섭리인 기본 이법은 모르고, 단순히 그 본원자리, 생명의 의식경계만 갖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 광막한 대우주는 무엇 때문에 벌여져 있고, 무엇을 위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둥글어 가는가? 우주의 존재목적은 무엇인가? 이 세상 인간의 문제는 과연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해결될 수 있다면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에 대해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현대의 첨단 과학자도 철인도 어떤 종교인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근본 문제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진리 틀을 깰 수 있는 공부가 천지이법을 공부하는 우주론 공부다.
인류의 기원과 인간의 삶의 목적, 인류의 미래 등 모든 것이 이 리(理) 자 속에 들어 있다. 이 대자연을 향한 신비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우주가 생겨나 변화하는 창조이법에 대해 깨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아는 게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도 자연의 질서를 설명하는 "통일장 이론: unified theory of field"을 얘기하고 있다. 이것을 흔히 만사형통의 원리('theory of everything')라고 한다.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는 말이다.
현대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통합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 이론을 찾는 것이 꿈이라고한다. 바로 우리가 배우게 될 음양오행원리 즉, 생장염장의 원리가 이 통일장 이론이다. 통일장 이론, 우주에 존재하는 다섯가지 힘인 만유인력, 전기력, 자기력, 강한핵력, 약한핵력을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시도의 결과로 나온 이론이다. 다섯가지 중에 전기력과 자기력은 전자기력으로 통일되었다. 아인슈타인 박사도 말년에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다 생을 마쳤다. 우주론의 결론으로 말하면 그 통일장의 원리가 바로 생장염장(生長斂藏)이다.
하루의 낮과 밤, 그리고 지구1년을 관통하는 시간 질서, 이 우주변화의 기본이법이 곧 생장염장(生長斂藏)이다. 하늘과 땅 · 역사와 문명 · 극미의 원자와 극대 우주, 그리고 인생의 섭리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생장염장의 틀로 설명한다. 이것을 알기 쉽게 얘기하면 봄(生)-여름(長)-가을(斂)-겨울(藏)의 사계절의 변화다.
이 우주 만물은 순환한다. 지구의 자전운동, 우리 몸의 기혈 순환운동, 호흡운동 등 모든 것은 순환을 함으로써 변화가 지속된다. 하루도 낮과 밤이 계속 지속되고, 지구 일년 사계절도 생장염장으로 순환한다. 이 우주의 법칙, 대우주의 기본 틀이라는 것은 순환의 도(道)로 둥글어간다. 이 순환의 질서, 우주변화의 도(道)가 '생장염장'이다. 우주의 변화법칙인 생장염장에 의해서 천지는 만물을 낳아生 기르고長 거두고斂 폐장藏하고 쉰다. 그렇게 해서 겨울에 쉬는 시간을 넘어 다시 또 봄이 온다. 이 모든 생명계의 변화의 이법은 결국 단순한 네 글자인 것이다. 생장염장生長斂藏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선천(先天)은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서 하늘과 땅의 관계가 삼천양지(三天兩地)로 되어 있다. 즉, 양(陽)인 하늘은 셋이고, 음(陰)인 땅은 둘이라고 하는 불균형 때문에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을 중심으로 양기가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이런 자연의 불균형 부조화, 음보다 양이 훨씬 강한 천지의 구조 속에서 상극相克의 운(運)이 조성된다.
원리적으로 상극相克의 현상을 이해를 할 때는 서로 상(相) 자 이길 극(克) 자, ‘두 사물 사이에 서로 극한다’는 의미로, 본래 뜻은 한쪽이 상대를 물리친다, 제압한다는 말이다. 순수한 자연의 봄여름의 법칙, 대자연의 이법으로서의 상극을 영어로는 조정한다, 제어한다는 의미인 뮤츄얼 리스트레인(mutual restrain)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
자연 속의 상극相克은 투쟁 전쟁 죽음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순수한 음양(陰陽)의 상극으로 ‘서로를 제어한다’는 의미다. 이 극의 이치가,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균형되고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음과 양 상호간의 작용을 조정 제어하는 조화의 법칙이 된다. 이 상극의 이법적 환경속에서는 그 상극 기운의 영향을 받아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하는 등 상호투쟁을 하게 된다. 문명 속에서 일어나는 이 때의 상극相克은 영어로 뮤츄얼 컨플릭트(mutual conflict)로 번역을 해야 맞다. 이렇게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이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인간의 문명속에서 상극相克을 쓸 때는, ‘정말로 극이 너무 많아’ ‘장애가 너무 많아’ ‘넘어서야 될 장벽이 너무 많아’ 라는 의미로 쓸 때는, 인간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모든 비극과 수많은 재앙들, 자연재해, 하루도 쉬지 않고 터지는 교통사고, 수많은 인간들끼리의 분쟁과 같은 그러한 비극의 근원적 원인으로서 상극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순, 갈등, 죄악, 전쟁, 모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들이 여기에 다 들어간다. 이 자연의 상극과 문명의 상극 속에 서교의 원죄(原罪) 문제, 불가에서 말하는 인간의 무명(無明)과 업장의 문제가 다 들어간다. 선천문화권에서 인간론에 대해 언급한 숱한 문제들이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았다’는 그 한마디 말씀으로 다 풀어지는 것이다.
상극相克의 이치’란 자연의 이법으로서 하늘땅이 만물을 다스리고 길러내는 생성, 창조의 법칙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이 상극의 이치가 인간과 만물을 맡아 길러내므로 인간의 역사, 문명속에서는 하루도 싸움 그칠 날 없는 비극적 세상을 만들었다. 선천은 상극의 이법이 인간 역사속에서는 상쟁(相爭)이 돼서 피비린내 나는 상호투쟁, 대결, 생사를 판가름 짓는 전쟁 전란으로 화해 천하를 원한으로 가득 채웠고, 어찌할 수 없는 상극의 자연이법, 상극의 운수로 인해 선천의 모든 인간과 만물은 원한을 맺고 사는 상극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쟁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어떤 의미에서 전쟁은 인간과 만물을 길러내는 선천 천지의 상극相克의 벽을 허물어가는, 즉 선천 문명의 자기 극복의 과정이다. 또한 선천 천지의 생명은, 전쟁을 통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천지에서 생명을 낳아 기르는 근본 원리가 상극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이 문명을 이뤄내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선천 봄여름 상극相克의 자취가 바로 전쟁이란 말이다. 전쟁! 서로 죽이는 것! 문명이 충돌하는 것! 우리 몸 속에서 백혈구 적혈구가 사투 벌이는 것도 전쟁이다. 환경적으로 어떤 도전이 오는 것, 폭우가 쏟아졌다든가, 지진이 터져서 수천 명이 죽었다든가, 그것도 전쟁이다. 가혹한 시련이 올 때,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 자기 극복의 모든 과정이 무형 유형의 전쟁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선천 봄여름 동안 인간은 상호 경쟁과 전쟁을 통해 성숙해 온 것이다.
상극相克의 천리가 인사人事로는 원한으로 맺히기 때문에, 인간역사의 뿌리깊은 원한의 갈등은 인간의 도덕적 교화만으로는 전혀 풀릴 수 없는 문제다. 선천 봄여름에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비극의 원인은 단순히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상극의 이치 때문에 조화와 균형이 깨져 있는 선천의 자연환경 자체가 비극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금 지구에는 물, 마실 공기, 식량, 에너지 등이 부족하다. 언론에 공개된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를 보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상극相克은 봄여름 선천의 필연적인 창조의 변화 과정이지만 그 때문에 경쟁과 대립, 투쟁과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천지부모가 인간을 낳아 기르는 과정인 선천 봄여름 세상에서는, 음양의 균형이 어긋나 있다. 하늘땅 천지와 일월의 음양 운동이 어그러져 있다. 양(陽) 중심이다. 그것을 억음존양(抑陰尊陽)이라고 한다. 인간들의 생각도 전부 하늘 중심, 남성중심이고 사회제도도 문명사 속에서 그런 대세로 발전해 와서 남성중심의 문화가 되었다. 이 인간의 문제, 즉 남성과 여성의 문제, 남자와 여자의 인권 문제, 그리고 여성들의 인권 억압과 고난, 그 모든 것을 바로잡는 길이 무엇인가? 그동안 봄여름 선천 생장과정에서 하늘땅 천지부모가 몸을 동북쪽으로 기울여 인간을 낳아 길렀다.
먼저 상극相克은 생명의 탄생과 성장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는 천지의 생장 질서다. 봄철에 초목의 씨를 땅에 뿌리면 씨앗의 핵이 껍질을 깨고 싹이 나온다. 껍질을 깨는 것, 그것부터가 상극이다. 땅을 뚫고 올라와 줄기를 뻗는다. 그리고 비바람을 맞고, 여러 가지 해충의 위협을 받으며 성장을 한다. 열매를 맺을 때도 서릿발이 치고 낙엽이 떨어지면서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초목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줄기와 이파리를 내고, 꽃을 아름답게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순간까지, 전 과정이 상극相克이다.
아기가 어머니의 산도(産道), 살을 찢고 나와야 존귀한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디 그뿐인가. 생명이 탄생한 뒤에도 외적인 환경을 극복해야 한다. 씨앗이 땅을 뚫고 나와 비바람을 견뎌야 성장을 하듯 아이도 주변의 역경을 이기고 위험과 싸우면서 성장한다. 지난날, 20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자식 열 낳으면 홍역이다 뭐다 해서 절반은 죽는다. 선천 세상의 창조법칙이란 것이 바로 이처럼 무수한 극의 통과의례를 거쳐, 그런 극의 과정을 겪다 보면, 모든 생명에는 반드시 원과 한이 맺힌다. 그러니 선천에는 원한 없는 인생이란 없었다.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원한이 맺히는 과정이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왜 고통 속에 사는가?
기독교에서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다고 한다. 구렁이로 상징되는 사탄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처럼 똑똑해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대가로 세세토록 인간들이 원죄의 씨를 안고 고통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불교도 십이인연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감각세계에서 근본무지인 어둠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근본무명fundamental ignorance’에 휩싸여, 온갖 죄를 짓고 악업을 받고 육도윤회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그 근본 틀이 같다. 또 이 죄업이니, 악업이니, 윤회니, 하는 것이 선천(先天)의 상극의 이법 판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얘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가 없다.
모든 인간의 고통과 불행과 비극의 문제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선천이 상극相克의 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천(先天)에는 천지부모의 몸이, 지구 자전축이 23.5도 동북방, 양(陽)의 방향으로 기울어져서 만물을 쏟아냈다. 동과 서가 부조화하고, 남과 북이 부조화하고, 남자와 여자, 모든 사물들 사이에 조화가 깨져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고 갈등을 하고 남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또 용서하면서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을 해 온 것이다. 선천개벽으로 봄여름이 열려서 인간이 태어나 자라는 과정에서는 상극이 우주의 근본 질서가 되어 현실역사가 둥글어간다. 즉, 음과 양이 만물을 낳아 길러 분열하는 쪽으로 우주의 생명 질서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지구상에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상극相克이 인간역사의 경쟁원리가 되어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를 계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꺼꾸러트려야만 했다. 이것이 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특히 종교전쟁의 역사를 보라. 얼마나 참혹한가. 거기에 무슨 신이 있고, 믿음이 있고, 정의가 있는가. 오직 독단과 죽음밖에 없다. 올바르게, 정의를 위해, 진리의 이름으로 행하려고 했으나 결국 서로 충돌하고 싸우고 죽였다. 여기서 세세연년 원과 한이 맺히고 쌓여온 것이다.
우주의 봄여름 선천(先天)은 분열의 시기였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분열을 한다. 사람도 그 수가 여름철 말까지 극한으로 분열 팽창한다. 초목을 보면 봄에 싹이 터서 뿌리, 줄기, 이파리가 나오고 거기서 꽃을 아름답게 피워 올린다. 그러다 가을에 숙살기운, 서릿발기운을 받으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가. 이것이 지구 1년의 초목농사다. 그런데 우주는 인간농사를 짓는다. 지구 1년이나 우주 1년이나 봄여름의 시간은 가을에 열매 맺기 위한 과정으로 있는 것이다. 우주의 봄여름 시간은 우주의 가을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성숙을 이루고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천지에서 인간을 내면, 인간은 자연 속에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건설한다. “대자연섭리라 하는 것은 천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성숙한다”는 말씀이다. 즉, 자연이 변화하는 길과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의 과정, 즉 문명의 발전과정이 일치하는 것이다.
벌거벗고 나무 열매 따먹고 잠이나 자고, 그냥 봄 지나고 여름 지나면 가을겨울이 오고, 또 해가 바뀌고 그러다가 늙어서 죽고 만다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순환의 틀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지금 역사가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 그들은 천지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라는 건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우주변화의 기본이법인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순환 과정에서 우주는 영원히 선천先天 생장(生長)과정으로 진화만 계속하는 게 아니라 생명이 성숙하고 열매를 맺는 염장(斂藏)의 때가 있다. 그걸 바로 후천(後天)이라고 한다. 지금 천지는 선천先天 봄여름철 성장과정,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 후천後天 가을철 성숙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후천(後天)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온 하늘땅의 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 시스템을 갖춘, 새로운 천지의 계절이다. 따라서 처음 인간으로 태어나 윤회를 하면서 성장해 온 지난 봄여름 선천과는 달리, 후천은 인간이 진정한 인간 역할을 하는 때다. 인간이 본래 하늘로부터 받아 나온 잠재력을 온전히 발현하는 때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인 내가 내 속에 있는 신의 무궁한 영성, 조화성, 창조의 역량(potentiality)을 완전히 발현해야 되는 때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
천지의 질서가 봄여름은 분열, 가을철은 통일이다. 초목농사로 얘기를 하면, 봄에는 뿌리에서 기운이 발동해서 쫙 올라가 줄기를 향해서 뻗어나간다. 앞마당의 단풍나무를 보면 겨울철에는 이파리가 죽어서 아무것도 없었는데 3월이 돼서 봄비가 한번 딱 내리니까 며칠 사이에 요만한 버찌가 줄기마다 나온다. 그러다 며칠 뒤에 보니까 이파리가 쭉쭉 나와서 일주일 후에는 하늘을 다 덮어버렸다.
봄여름의 기운은 그렇게 발동하는 것이다. 기운이 하늘을 향해서 뚫고 올라간다. 그렇게 분열 생장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성장이 딱 끝나면서 모든 기운이 뿌리로 내려가고 그 과정에서 열매를 맺는다.
우주의 여름철 지구1년 365¼일에서 시간의 꼬리, 5¼일이 남,북극 빙하가 녹아내리는 극점에 이르러서 지구 자전축의 정립으로 완전히 떨어져 나가 지구1년의 날수가 360일이 된다. 그리하여 음력과 양력이 똑같은, 음과 양이 하나로 조화되는 진정한 꿈의 세계, 평화의 세계가 오는 것입니다.
선천 봄개벽을 통해서 시원 인간이 처음으로 몸을 받아 지구촌에 태어나, 선천 오만 년 동안 문명을 열어 현재까지 내려왔다. 여름철 말이 되면 지상에 초목이 무성한 것처럼 인간종자가 지구촌에 꽉 들어찬다. 지구에 살 수 있는 적정 인간은 불과 수억이라고 하는데, 지금 지구촌 인구는 72억이다. 만원(滿員)이다.
선천의 변화는 양(量)적인 변화다. 숫자가 한없이 증가한다. 또한 지엽이 벌어져 가면서 자꾸 근원에서 멀어진다. 그로 인해 인간도 제 마음을 잃어버리고 근본을 잃어버림으로써 도덕률이 무너져버린다. 그런데 후천 가을로 들어가면 질(質)적인 대변혁이 일어난다. 곧 우주의 계절 변화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면서 인류 문화의 틀이 바뀌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선천에는 서로 상이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세계관, 우주론을 개발하며 몇 천 년 동안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인간의 의식과 천지자연의 변화, 인간 문명의 변화 등 모든 변화가 통일로 돌아간다. 지구 1년에서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고 봄여름철에 낳아 길러 온 초목농사의 목적을 완수하듯이, 우주 1년에서는 선천 봄여름 동안 다양하게 분열하여 발전해 온 인간 문화의 진액을 거두어 가을의 통일문화를 연다. 후천개벽의 주제가 바로 성숙과 통일이다. 이것을 인간의 가치 개념이나 도덕률로 말하면, 상극에서 상생으로 넘어간다.
천지에서 인간을 내면, 인간은 자연 속에 문화를 창조하고 문명을 건설한다. 즉, 자연이 변화하는 길과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역사의 과정, 즉 문명의 발전과정이 일치하는 것이다. “대자연섭리라 하는 것은 천리가 성숙됨에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함께 성숙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 역사가들은 이것을 모른다. 그들은 천지의 이치를 모르니까, 인간의 역사라는 건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다. 천지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
불교의 결론, 기독교의 결론, 유교의 결론, 주역의 결론, 동서문화의 결론이 개벽이다, 개벽! 사실 그들은 개벽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가 보아도 그것이 ‘아~ 앞으로 오는 개벽을 말한 것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새 하늘 새 땅도 개벽문제의 결론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사도 요한이 “나는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았습니다.” 하는 고백을 남겼다. 이것은 새로운 천지(天地)가 열린다, 천지의 질서가 바뀐다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