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논의가 다소 겉도는 느낌을 받은지라, 이 논의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한단인님께서 질문하신 사항을 본격적으로 논하겠습니다.
논의의 핵심은 '과연 한국의 동검이 검이 아닌 창으로 쓰여졌을 가능성이 있는가?'입니다.
제 답은 동시에 no와 Yes 입니다.
만약 비사인님이 말씀하시는 '창'이 필랑크스류의 밀집진형에서 쓰이는 '장창'이라면
비파형 동검이 장창의 날로 쓰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밀집진형'이라 하여 반드시 팔랑크스같은 사각방진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병력을 한 덩어리로 뭉친 형태는 일단 모두 밀집진형이라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대가 밀집진형을 이룬다고 하여 반드시 팔랑크스처럼 창을 꼿꼿이
세우고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팔랑크스'로 알고 있는 마케도니아의 16열 방진 ('스파이라'라고 부릅니다)은
팔랑크스의 오랜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밀집진형의 정화(精華)입니다. 무엇보다도 적의 진격을
막아내면서 다른 병종 (특히 기병)이 기동할 발판(Platform of maneuver)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적의 접근을 막아내기 위하여 창이 길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팔랑크스가 고도로 특화(特化)된 형태이며, 팔랑크스의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스파이라의 등장이전 그리스의 팔랑크스는 장창을 내세우면서 적을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짧은 창(1.5m에서 2.4m)을 들고 마지막 100m에서 200m를 '러쉬'하여 들고 있는 창으로 적을 내리찍는 공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수많은 인원이 상대편의 전사와 1대 1로 찌르기를 주고 받는 일이 많다고 하지요 (Richard Gabriel and Karen Metz/ From Sumer to Rome: Military Capabilities of Ancient Armies)
이와 같은 전투 양식은 군장권이 비교적 명확히 확립된 부족에서도 보입니다. 통가나 사모아같이 군장권이 엄격한 폴리네시아 지역에서는 전사들이 사각형 덩어리로 뭉쳐 전장으로 나아가고 적앞에서 정확히 오(伍)와 열(列)을 맞추어 서지만,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넓은 공간에 퍼진 전사들간의 1 대 1 접전형태가 된다고 합니다. (Harry H. Turney-High/ Primitive Warfare)
그러니 이 시점에서 결론을 밝히자면, 비록 대규모 군사집단을 동원할 수 있게 된 연후에도
스파이라같이 긴 창을 사용하는 형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비사인님이 제기하신 비파형 동검=창의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마케도니아의 '사리사(Sarissa)'같은 장창은 아니지만, 샤카 휘하의 줄루족이 쓰던 이클와(iklwa)같은 단창(短槍)일 가능성은 있습니다. 이클와같은 경우는 단병접전(短兵接戰)을 위한 찌르는 창입니다.
아재님의 말씀대로 비파형 동검의 끝에 연마흔이 있고 찌르기 위주였으면, 반드시 손잡이에만
넣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짧은 자루에 넣어 찌르는 용도의 창으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대규모로 싸우건 소규모로 싸우건 가까이 맞붙어 싸우는데는 짧은 무기가 유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파형 동검은 단검의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만, 비사인님 말대로 창일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클와같은 찌르는 단창이라면 말입니다.
이만 시간이 바빠서 한단인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수 일후로 미루어야 할 것 같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흐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전 애초에 장창이 아닌 단창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말씀은 저로서는 매우 반가운 말씀이로군요. 수일 내에 저 또한 간단한 글을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이클와의 구조가 어떤지가 궁금하군요.
아직도 안 쓴 사항이 많습니다. 투겁창이 왜 나은지, 그리고 고조선군이 대략 어떻게 싸웠을 지에 관한 글을 수 일내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쓰신 오마이뉴스 기사는 아무리 읽어보아도 찌르는 단창과 밀집전투용 장창의 구분을 해놓지 않으신 것 같군요. 글의 내용은 밀집전투에서 쓰이는 창을 상정하신 것 같던데요...혹시 본인이 잘못 읽은 것이라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단창은 쓰이는 용도가 개인용 검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단창이 고조선이 '대규모' 대형(隊形)전투를 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을 듯 싶습니다.
애초에 팔랑크스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다만 좀 더 원시적인 형태를 생각하거나, 사실 그 당시의 고대전투양식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아는 것 보다는 모른 것이 많다 보니 표현에서 미숙한 부분이 있던거 같습니다.(솔직히 말하자면 천랑성주님의 지적대로 단창과 단창에 대해서 아직 그 쓰임새의 측면에 혼동이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그 부분은 제 잘못이군요.) 하지만 애초에 장창으로 쓰이기엔 내구력에서 결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있었습니다. 우선 천랑성주님의 청동기시대의 전투양상에 대한 고견을 듣고 저 또한 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싶군요. 그 후에 저도 그에 따른 답변 및 사견을 말슴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