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명시다. 경건하면서도 낭만적인 시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화려하게 반짝이던 녹음도, 태양의 기운을 얻고 영글었던 열매들도 이제 소멸과 순환의 길로 사라진다.
가을은 모든 사물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 성찰의 시간을 갖는 계절이다. 긴 겨울을 앞두고 삶의 자세를 매만지는 시간이다.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다.
〈허연 / 문화선임기자·시인〉
Bloch: From Jewish Life, B 54 - 1. Prayer (Arr. B. Kanneh-M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