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무참(無慘)
가을은 갑자기 오는가 싶다. 벼르기를 오래 하여 발자국마다를 낱낱이 알리면서 오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어느 날 한 줄기의 서늘함으로해서 가을은 이내 우리 곁에 와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가느다랗지만 길게 창틈으로 스며드는 청경한 기운. 아침 저녁의 이 서늘함이 어제까지만 해도 가을은 멀었는가 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새롭게 열어 주어 또 하나의 절기를 실감케 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가을이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한 가닥의 찬 기운을 넣어 어느새 우리로 하여금 가을은 일상의 깊숙한곳에까지 당도해 있음을 깨닫게 한다는 말이 틀림은 없는성 싶다.
청기(淸氣)도 그렇지만 무심코 쳐다보는 꽃 한송이에서도 가을은 찾아진다. 코스모스 한 길가에서 하늘거리는 것이 코스모스인 것을 알고 정작 이제 우리는 틀림없는 가을 사람들이 되어 있음을 실감하다 싶을 정도로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약간은 무참해한다. 코스모스의 자태의 때문이다. 코스모스는 남몰래 피어 있었다. 아무도 가을이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던 그 무덥던 여름날에 혼자서만 발돋움을 해서 이제 피어버린 것이다.
봉선화 맨드라미의 시세움 할만한 남다른 오기조차 지니지 못했으면서 그저 뒤따라 피어 있기만 한 것이다.
[꽃잎이 날개냐/날개가 꽃잎이냐] 했던 코스모스(한용운)차가운 계절을 제 스스로의 피로써 애달프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향방 없는 그리움으로 발돋움하고/ 다시 학처럼 모가지를 빼고 있다/붉은 심장을 뽑아 머리에 이고/ 가녀린 손길을 젓고 있다.(조지훈) 고 노래한 너는 분명 얄미우리만큼 우리에게 너무 많은 상념을 안겨주어서 탈인 것 같다.
왜 코스모스는 그런 꽃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국화과의 1년초에지나지 않은 가녀린 몸매가.단명의 온천이라면 찬서리에 저항하는 알 수 없는 기개(氣慨)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슬퍼한다는 뜻이다.
[ 가을은 초토(焦土), 코스모스 무참(無慘)] 이 글을 마지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일본의 전후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어렵겠지만. 어쨌든 코스모스는 본의(本意)와는 전혀 다르게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하는것 같다.
코스모스를 부담 없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가을이었으면 한다.
미주지역 5.18 광주민중항쟁 동지회장 이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