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안 꼭 읽어야 할 부처님 말씀 108가지 보시에 대한 가르침 / 선묵혜자 스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라. 형편에 따라 성심껏 남을 도와주라. 만약 이렇게 공양을 올리는 사람은 좋은 곳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리라.
<숫타니파타> 중에서
해설 우리가 일반적으로 남을 돕거나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시’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보시의 개념은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어 남을 돕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에 있다. 금강경에서도 이 보시에 대한 개념을 두고 명백하고 명쾌하게 그 참 뜻을 전하고 있다.
부처님이 그의 10대 제자였던 수보리에게 “만약 선남선녀가 삼천대계를 가득 채운 칠보로써 보시를 한다면 그 얻는 복은 많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수보리는 “세존이시여, 아주 많사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어떤 물질로써 남을 돕거나 부처에게 공양한다는 것은 분명 복을 얻는 일이나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을 도우려는 마음에 있다.”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돕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또한 물질로써 남을 돕는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스스로 깨닫고 있다. 금강경이 위대한 것은 ‘다함이 없는 무위의 복’이 ‘유위의 복’보다 얼마나 뛰어난지를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위의 복이란 물질이 아닌 마음에 바탕을 둔 것이며, 유위의 복이란 그저 물질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만약 선남선녀가 사구게의 경 하나라도 남에게 들려준다면 무위의 큰 복덕을 얻을 수 있다.”라는 부처님 말씀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구게를 수도 없이 남에게 들려준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완전한 무위의 복을 성취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 받아 지니고 그것을 설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수지를 해야 한다. 수지란 ‘스스로 그 가르침을 깨달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빌게이츠나 이건희 회장이 남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놓는다면, 그 공덕은 클 것인가. 부처님의 견해에서는 결코 아니다. 공덕과 복덕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무위의 절대 공덕을 얻을 수 있다.
여기 나에게 천 원이 있다. 천 원을 보시하면 천 원 만큼의 복이 생기고 만 원을 보시하면 만 원만큼의 복이 생긴다. 백만 원, 천만 원을 보시하면 분명 그 만큼의 복이 쌓여 언젠가는 그 결과로써 복된 삶을 보장받게 되는 것, 이것이 유위의 복이다. 이렇듯이 유위의 복은 계산이 철저하다. 그러나 어떤 복도 바라지 않는 무위의 행을 한다면 그 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행한 보시는 같은 백만 원이지만 그 복덕의 결과는 무위인가 유위인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첫째는 무위와 유위에 대한 이해이며, 둘째는 물질적인 복과 법보시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 무위를 법 보시로, 유위를 물질적인 칠보의 보시로 비유해 놓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왜 그러한가. 물질적인 보시를 하면서도 무위로서 행할 수 있고, 금강경 사구게를 들려주는 법보시를 하면서도 유위로서 할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작은 도움을 주더라도 큰 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말하는 보시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이다. 그리고 사구게의 경전을 설법하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가.
자신의 상, ‘아상(我相)’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아상을 버리기 위해서는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만 된다. 일체의 모든 상이 다 허망한 것임을 알아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살아있는 동안 꼭 읽어야 할 부처님 말씀 108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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