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고의 수학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수학 전문가들은 아르키메데스(bc287-bc212), 뉴턴(1642-1727), 가우스(1777-1855)
세 사람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3대 수학자라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2천년도 휠씬 전에 부력의 원리,원주율 계산,지렛대의 원리 등을 생각해낸
과학의 창시자이고
너무나 유명한 뉴턴은 자신이 발견한 운동법칙을 설명하기 위한 계산도구로
미분적분을 직접 만든 역사상 최대의 천재이다.
19세기초 수학의 전분야를 통달하여 수학의 영역을 크게 확장시킨 가우스 역시
수학의 황제라 불렸다.
그런데 불과 20년 몇개월의 짧은 생을 마치면서 바로 전날 시간에 쫒기며 유서
비슷하게 휘갈겨 써내려간 수학논문을 남기고
다음 날 결투로 총에 맞아 사망한 역사상 가장 극적이며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비운의 천재이자 반항아 에바리스트 갈루아(1811-1832)의 이야기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끼친 영향력은 3대 수학자에 견줄만큼 막대하지만.
그가 남긴 60쪽에 불과한 수학논문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200년 동안 수학의 방법론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물리학,화학,생명과학,정보과학 등 과학의 전 분야에 침투하여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811년 파리 근교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갈루아는 일찍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여 수준높은
수학이론서를 혼자서 섭렵할 정도였고 프랑스혁명 이후 공화주의자와 군주제 옹호주의자 간의
격렬한 정치적 대립의 소용돌이에 스스로 몸을 던진 과격한 혁명가이기도 하였다.
비상한 수학실력을 가지고도 시험관이 이해하지 못할 함축적인 답안지를 제출하거나
태도가 불손하다는 등 이유로 프랑스 최고의 명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두번이나 낙방하였으며
그런 와중에 반정부 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여 투옥이 되는 등 갈루아의 짧은 생은 그야말로
질풍노도였고 그에 따른 대가는 비운의 연속이었다.
20살 되던해 어떤 여인(스테파니라는)에게 사랑에 빠졌다가 연적으로 부터 권총결투의 신청을 받게 된다.
과격하고 충동적인 성격을 가진 이 다혈질의 사나이는 어리석은 선택에 몸을 맡기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렀다.
결투 전날 밤새도록 학술상의 유서를 쓰는데 몰두하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뛰어난 업적을 조금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때때로 여백에 "시간이 없다.시간이 없다."라고 쓰고
다음으로 나아가고 했다. 다음날 결투에서 복부총상으로 사망하였으나
그가 작성한 수학논문은 절친한 친구인 슈발리에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졌다.
슈발리에게 부탁하기를 야코비선생(당대 프랑스 최고의 수학자)이나 가우스선생(수학의 황제)에게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의견을 물어 달라고 하였건만 바쁜 두 거장 모두에게 제대로 읽혀지지 못한
채 그 논문은 묻혀 버렸다.
갈루아 사망 11년이 지난 1843년 프랑스 수학자 리우빌이 갈루아이론의 심오함을 간파하고
프랑스 학술원에 재심사를 건의함으로서 위대한 이론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 갈루아이론의 어떤점이 그토록 대단하기에 200년간 수학과 과학의 행로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대충 알고있듯 집합이라는 것은 어떤 조건에 따라 일정하게 분류할 수 있는 모임을 뜻한다.
예를들면 사람의 집합.그중에서 남자의 집합,호랑이의 집합 등등.
집합의 구성원을 원소라하는데 집합의 원소는 변화가 없는 고정된 개념이다.
만약 집합의 원소들이 움직임과 변화가 있고 이를 서로 연결시킬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분류한다면
원소들의 움직임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모임을 군GROUP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한 군들이 움직이는 영역을 체FIELD라고 규정하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물을 고정된 집합이 아닌 변화와 움직임에 따라 분류하는 군이 있고,
군이 활동하는 무대랄까 그런 세계를 체라고 하여 그런 개념을 가지고 수학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갈루아이론의 골자다.
얼핏 별것 아닌 간단한 얘기 같지만 약관 20세인 재수생이 생각해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고도로
추상성과 난해함을 가진 이론이다.
갈루아는 도대체 군과 체라는 개념을 무슨 필요 때문에 만들었을까?
고대로 부터 수학자들은 어떤 모르는 수를 알아 내기 위해서 방정식을 세우고 이를 풀어서 답을 찾아 내었다.
2차방정식 해법은 고대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으나 3차방정식은 16세기 이탈리아의 폰타나가 처음으로
해법을 알아내고 얼마후 페라리가 4차방정식의 해법을 찾아내었다.
여기서 해법이란 제곱근과 사칙연산을 사용하여 방정식의 답을 구하는 일반적인 풀이방법을 의미한다.
개별방정식에 비슷한 숫자를 순차적으로 대입해 가며 해답에 접근하는 섭동법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일반적 해법이 아니다.
그런데 5방정식의 해법은 페라리 이후 30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갈루아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요절한 비운의 천재인 노르웨이 수학자 아벨(1802-1829)은
5차 이상의 방정식은 일반적해법이 불가능하다는 증명을 하였다.
불운의 사나이 아벨은 자신의 기념비적인 업적을 인정받지 못한 채 가난으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다 베를린 대학의 교수 임용장이 도착할 즈음 2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지지리도 운없는 사나이 아벨이여.
그러나 아벨의 증명은 어딘가 부족함이 있었다.5차방정식의 일반적 해법이 없다는 것은 증명했지만
5차방정식에도 풀리는 것과 풀리지 않는 것이 있는데 어떤 것이 풀 수 있고 어떤 것이
풀 수 없는지 구별할 방법을 규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갈루아는 아벨의 증명에서 한걸음 나아가 어떤 조건에서 방정식이 풀리는지 군과 체의
개념으로 증명한 것이었다.
대충 말하자면 대수방정식의 근들의 목록을 재배열하여 유효한 관계를 가지는
대칭적인 근의 집합을 군으로 분류하고 대칭성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군에 포함되지
않아 근이 될 수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하였다.
그렇게 약관의 혁명가이자 수학자 갈루아의 손에 의해 수학의 새로운 관점이 도입되었다.
그리하여 수학은 산술과 기하 그리고 대수학과 삼각법 등을 다루는 숫자와 도형의 학문을 넘어서
구조STRUCTURE에 관한 학문이 되었다.
또한 개체THING에 관한 학문이 아닌 과정PROCESS에 관한 학문이 되어
20세기부터는 수학이외에도 과학과 건축학 등 다양한 분야로 침투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 혜택의 상당부분은 갈루아에게
빚지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생각한다.
첫댓글 나이 들수록 지적호기심의 끈은 놓치지 말아야지 생각해서
과학이나 수학관련 책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철학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소설류는 별로 감흥이 없는데
과학류는 읽어도 질리지않을 뿐 아니라 더러는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런책은 휘발성이 강해서 읽기만 해서는 금새 날아가 버리기 십상입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글로 적어 보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를 하였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듯하여 가끔씩 써보기도 해 봅니다.
갈루아가 그런 조숙한 천재옜군요. 아깝습니다. 갈루아도 대단하지만, 그 진가를 알아본 프랑스도 대단한 나랍니다. 고작 재수생 정도가 라면서 묵살, 매장하거나 죽어 없어진 자의 업적을 가로채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네요.
대단하십니다..수학에 관한 전설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으셨네요^^
히든피크님 학문의 깊이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존경의 댓글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