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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9. 큐티
여호수아 1:1 ~ 6
강하고 담대하라
관찰 :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었다
- 1절a.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 모세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신분은 이집트의 왕자였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였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얼굴로 비취어졌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온 지면에서 온유함이 가장 뛰어난 자라고 인정하시기까지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종”(עֶבֶד יְהוָה, 에베드 예호와)은 사랑과 신뢰가 한껏 깃든 친근한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종’이란 그렇기에 ‘여호와께서 세워 쓰시는 일꾼’이란 뜻입니다. 그런 모세, 그가 죽었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고, 동요가 생겼을 법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직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의 모세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움이 엄습하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뒤숭숭하고, 앞으로 이스라엘이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서 두려움이 임하는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 1절b.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여호수아는 모세의 종이자 수종자입니다. 모세를 따라다니며 그의 리더십을 배우고, 모세보다 더 장막에서 머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한 하나님의 종의 종입니다. 즉, 여호수아 역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통해서 말씀하시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죽은 자를 통해 일하실 이유가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뿐만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통해서 일하실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심에 대해서 부족함이 없으셨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광야를 통과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모든 여정은 모세가 아닌 하나님이 중요한 요소였던 것입니다.
- 2절a.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여호수아를 위로하시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모세가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그 슬픔에 잠겨있을 것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는 과거되게 하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모세가 아무리 훌륭해도 하나님의 종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그것은 과거가 되게 하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미 자신의 갈 길을 다 가고,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낙원에 거하고 있으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낙원에서 소망하는 자가 되었기에 그를 위한 애도는 사실은 필요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향후 모세는 변화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구약의 말씀들이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에 대하여 논의했습니다.
- 2절b.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 “이제”는 모세의 시대가 아니라 여호수아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백성들과 더불어 일어나 주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히 가르쳤고,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2) 땅의 약속
- 3절a.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 하나님은 모세에게 밟는 모든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신 11:24~25). 그 약속을 모세를 통하여 성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를 통하여, 다음 세대를 통하여 성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약속을 보지 못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품고 하나님 나라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세대는 그 약속을 성취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약속을 실제로 믿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밟아야 하는 땅을 소유한 자들은 철기문명을 가지고 무쇠검을 소유한 자들이었으며, 평균 신장이 2m가 넘는 거인들이 우글거리는 아낙 자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이 밟는 땅은 그들의 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좌로나 우로나 길을 찾아 갈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는 곳이 길’이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 4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 이 말씀은 창 15:18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서 그어 놓으신 경계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지게 될 땅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약속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터무니없이 아무렇게나 땅을 주시고 축복을 남발하시는 것이 아니라 질서와 규례를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속에서의 섭리를 가지고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입니다.
3) 너와 함께
- 5절a.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 여기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실 때,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말씀하시는 본문의 하나님의 이름이자 속성은 여호와(יְהוָה)입니다. 이것은 “I am who I am”으로 “스스로 있는 자”로 번역하지만, “I will be who I will be”로 “나는 앞으로 내가 누구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존재”로 번역되는 것이 더 옳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또 여호수아에게 자신을 드러내실 때, 산자와 함께 하시는 임재주(臨在主)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 5절b.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그 백성삼은 자, 하나님이 그 종을 삼은 자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 6절a. “강하고 담대하라”(חֲזַק וֶאֱמָץ, 하자크 웨에마츠) => ‘강하라’는 ‘확고하다, 굳게 지키다’는 뜻입니다. 또 ‘담대하라’는 ‘용감하다, 굳세게 하다’는 뜻입니다. 즉, 내적으로 위축되지 말고 결연한 의지를 간직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이 붙잡으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이 붙드시는 자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모세가 능력이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 6절b.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하시는 것은 여호수아가 치러야 하는 정복전쟁의 치열함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엄중할수록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들의 양상도 더욱 치열한 것입니다. 별것 아닌 것에 대해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격렬한 저항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용맹한 장수였지만, 뛰어난 지도력을 갖추었지만 그가 일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가 할 일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탁월했던 리더 이후의 다른 리더를 세우시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새로운 리더로 세워짐을 받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야 하며, 모세에게 구체적으로 약속하신 그 약속을 성취하는 세대가 되는 존재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구체적으로 일어나 피 튀기는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리더로 세우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크나큰 부담을 짊어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 부담을 짊어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부르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시는 것이 “내 종 모세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로 돌려야 합니다. 과거의 어떤 일들이 때론 영광으로, 때론 부끄러움으로 남아있겠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묵상하고 음미하고 탐닉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시간은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서 현재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하나님의 새로운 일들을 이루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과거되게 해야 합니다. 과거의 영광에 묻혀서도 안되고, 과거의 실수와 수치가 미래에 이어지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모든 연약함과 죄악과 교만의 뿌리들을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모조리 끊어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족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시는 섭리를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한 언약, 모세에게 구체적으로 명시하시고 보여주신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심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시지 사람에게, 혹은 시스템에 기대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자신의 삶을 쳐서 복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능력을 부여하시며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평생을 살았던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추종하며 40여년을 살아오고,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250여만의 민족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인생 역전이고, 하나님이 다루시는 destiny의 전형입니다.
4)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도 함께 하시길 원하셨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도 함께 하셨으며, 그의 아들 이삭과 또 그 손자 야곱에게 이르기까지,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에 이르기까지 여상하게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특별히 모세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며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이심을 알리시는 하나님은 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또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적용 :
1) 모세는 죽었습니다. 즉, 과거는 과거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 전의 영광에 묻히면 교만하게 되고, 실수를 계속 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와 동떨어지게 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 모세와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이 여호수아를 통해 성취되듯이 나를 통하여 성취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기대합니다. 내가 반드시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시기에 내가 하나님 편에 서면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에 내가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만나세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엄위하십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언약은 불변이십니다. 그러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 또 찬양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