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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정성을 들여 몇 시간 동안이나 썼던 글이 등록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한 순간에 날아가버린 충격으로 다시 쓰길 포기할까 하다가, 한때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의 하나로서 이 천연 기념물 선수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어서 독한 마음을 먹고 ;; 다시 기억을 살려 도전해 써봅니다.
<로드맨이 NBA에 입성하기까지>
데니스 로드맨은 극심한 빈곤층에 열악하기 그지없는 가정 형편 속에서 불우하게 태어나 부모님의 이혼을 맞으며 10대 소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환란은 다 겪으면서 힘들게 자란 전형적인 슬램가의 빈민아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가난한 소년은 그러한 와중에 농구를 알게 되었고, 순식간에 농구에 빠지지만, 열악한 환경과 175cm밖에 되지 않는 키로는 농구를 직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맙니다.
고등학교 때 농구부에 들어갔으나, 정신적 건강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학업 성적도 엉망인데다가 다른 선수와는 달리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입단을 하였기 때문에 실력도 좋지 않아서, 결국 농구부에서 쫓겨나고 말죠.
그 후 로드맨은 고교 졸업 후 직장을 얻지 못하고, 댈러스 공항의 청소부로 3년동안 일합니다. 댈러스 빈민촌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면서 그가 겪은 좌절감은 실로 짐작키 어려울 정도로 극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늘의 도우심인지, 갑자기 키가 30cm나 자라게 되어 2m가 넘는 거구로 성장합니다. 암울한 현실때문에 잠시 접어두었던 농구 선수로의 꿈이 다시 차츰 고개를 들기 시작했죠.
여러 노력 끝에 대학 하위리그 NAIA의 선수로 발탁됩니다. 비록 하위리그였으나, 지금까지 그토록 꿈꿔온 농구 선수로서의 직업을 가지게 된 로드맨은 그 아찔한 환희와 함께 지금까지 그가 겪었던 그 고초를 모두 코트 위에서 풀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25득점 15.7리바운드로 NAIA 의 리바운드 기록을 홀몸으로 모두 갈아치우는 등 펄펄 날며 대활약하였고, All-NAIA team에 3년 연속 선정됩니다. NAIA 최고의 인사이더로 주목받기 시작하였으며, 이때부터 드디어 NBA 스카우트 리포트에도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죠.
결국, 그를 눈여겨 보던 디트로이트에게 2라운드 27순위로 지명받은 로드맨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NBA의 무대에 첫 발걸음을 디디게 됩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데뷔 인터뷰에서 로드맨은 단 한마디로 대답합니다.
"나? 무명 대학을 나온 무명 선수다."
누구도 그가 NBA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날지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지명한 디트로이트도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선택을 했는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신화는 그렇게 조용히 시작했습니다.
<로드맨의 NBA Career>
87년 로드맨은 디트로이트에서 식스맨으로 뛰면서 넘치는 체력과 타고난 열정으로 디트로이트 팬들과 코치에게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88년부터는 리바운드에 본격적인 실력을 보이며 팀 최다 리바운드 기록을 수립하면서 홈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엄청난 노력파라는 사실을 인정받았으며, 칭찬에 인색한 척 데일리 감독도 그를 매우 아꼈습니다.
89년에는 로드맨은 리바운드와 수비에서 발군의 실력을 펼치며 레이커스를 상대로 우승의 기쁨을 안습니다. 90년에도 포틀랜드를 상대로 우승을 거머쥐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만인에게 주목받는 선수가 되며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됩니다.
하지만 91년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서 디트로이트는 동부 결승에서 완패를 당하였고, 다음 해인 92년에는 패트릭 유잉의 뉴욕 닉스에게 패하고 맙니다. 로드맨은 기죽지 않고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며 팀의 승리를 갈망하였지만 배드보이즈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로드맨은 94년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보금자리를 새로이 만들죠.
스퍼스 시절에도 그의 능력은 조금도 움츠러듬이 없었습니다. 리바운드 왕 자리를 계속해서 지켰으며,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각인되며 위세를 떨쳤죠. 하지만 그는 팀 동료에게 전폭적인 신임을 받던 스퍼스의 리더 데이비드 로빈슨 중심의 질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 때부터 그에 대한 불만을 머리 색깔로 표출합니다. 거의 매 경기마다 머리 색깔을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등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하지만 팀은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유타 재즈에게 스윕당하였고, 95년도에는 서부 결승에서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케츠에게 완패를 당합니다. 이 후 로드맨은 계속해서 말썽을 부리며 팀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주었고, 이를 못 참은 샌안토니오는 윌 퍼듀와 트레이드를 함으로써 데니스 로드맨을 시카고 불스로 보냅니다. 샌안토니오에게는 ‘계륵’ 이었으나 시카고 불스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보배를 우연히 얻은 셈이었죠.
이른바 ‘Superman-Batman-Rodman' 이라 불린 '조던-피펜-로드맨'의 막강 트리오의 시대가 열립니다. 천방지축 말썽을 부리며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데니스 로드맨은 마이클 조던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프로정신에 경외하여 조던의 질서 안에 들어오길 자처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면서 완벽하게 팀칼라에 맞아들어간 불스 최적화 선수로 변신하게 됩니다. 호레이스 그랜트의 이탈로 흔들리던 불스의 인사이드는 로드맨의 천하무적 리바운드로 굳건해졌고, 로드맨은 또다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96년 역대 최고 기록인 72승, 플레이오프 전승과 더불어 다시 한번 소속팀 시카고 불스를 우승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이후에도 카메라맨을 발로 걷어차 출장정지를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말썽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코트에서 제 몫을 120% 다함으로써 97,98년 연속 두 번의 우승을 이루어냅니다.
불스 왕조의 해체 후 조던은 은퇴하고, 피펜은 휴스턴으로 이적하고, 로드맨도 레이커스로 옮겨갑니다. 레이커스에서도 변함없는 리바운드를 보여주었고 열정적인 플레이를 펼쳤으나 이번에도 샤킬 오닐 등 다른 선수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또다시 말썽을 부리고 걸핏하면 코트 안에서 싸움을 하여 프론트진의 눈에 단단히 벗어납니다. 1년만에 로드맨은 쓰레기를 처분하듯 댈러스로 옮겨집니다.
이제 그는 38세의 노장이 되었고, 댈러스는 리빌딩을 시작한 팀이었기 때문에 로드맨의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댈러스 생활에도 계속 적응을 하지 못해 결국 팀이 중도에 로드맨을 방출합니다. 14번째 시즌을 끝으로 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NBA 선수 시절을 마감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데니스 로드맨이 어떤 선수였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Year Ag Tm Lg G MP FG FGA 3P 3PA FT FTA ORB DRB TRB AST STL BLK TO PF 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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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25 DET NBA 77 15.0 2.8 5.1 0.0 0.0 1.0 1.6 2.1 2.2 4.3 0.7 0.5 0.6 1.2 2.2 6.5
1988 26 DET NBA 82 26.2 4.9 8.6 0.1 0.2 1.9 3.5 3.9 4.8 8.7 1.3 0.9 0.5 1.9 3.3 11.6
1989 27 DET NBA 82 26.9 3.9 6.5 0.1 0.3 1.2 1.9 4.0 5.4 9.4 1.2 0.7 0.9 1.5 3.6 9.0
1990 28 DET NBA 82 29.0 3.5 6.0 0.0 0.1 1.7 2.6 4.1 5.6 9.7 0.9 0.6 0.7 1.1 3.4 8.8
1991 29 DET NBA 82 33.5 3.4 6.8 0.1 0.4 1.4 2.1 4.4 8.1 12.5 1.0 0.8 0.7 1.1 3.4 8.2
1992 30 DET NBA 82 40.3 4.2 7.7 0.4 1.2 1.0 1.7 6.4 12.3 18.7 2.3 0.8 0.9 1.7 3.0 9.8
1993 31 DET NBA 62 38.9 3.0 6.9 0.2 1.2 1.4 2.6 5.9 12.3 18.3 1.6 0.8 0.7 1.7 3.2 7.5
1994 32 SAS NBA 79 37.8 2.0 3.7 0.1 0.3 0.7 1.3 5.7 11.6 17.3 2.3 0.7 0.4 1.7 2.9 4.7
1995 33 SAS NBA 49 32.0 2.8 4.9 0.0 0.0 1.5 2.3 5.6 11.2 16.8 2.0 0.6 0.5 2.0 3.2 7.1
1996 34 CHI NBA 64 32.6 2.3 4.8 0.0 0.4 0.9 1.7 5.6 9.3 14.9 2.5 0.6 0.4 2.2 3.1 5.5
1997 35 CHI NBA 55 35.4 2.3 5.2 0.1 0.3 0.9 1.6 5.8 10.2 16.1 3.1 0.6 0.3 2.0 3.1 5.7
1998 36 CHI NBA 80 35.7 1.9 4.5 0.1 0.3 0.8 1.4 5.3 9.8 15.0 2.9 0.6 0.2 1.8 3.0 4.7
1999 37 LAL NBA 23 28.6 0.7 2.0 0.0 0.1 0.7 1.7 2.7 8.5 11.2 1.3 0.4 0.5 1.3 3.1 2.1
2000 38 DAL NBA 12 32.4 1.0 2.6 0.0 0.1 0.8 1.2 4.0 10.3 14.3 1.2 0.2 0.1 1.6 3.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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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Seasons 911 31.7 3.0 5.8 0.1 0.4 1.2 2.0 4.8 8.4 13.1 1.8 0.7 0.6 1.6 3.1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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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바운드
로드맨 하면 리바운드. 리바운드 하면 로드맨.
저 독특한 리바운드 포즈도 참 인상적이지요.
88년을 제외하고는 평균 10득점을 넘어가는 법이 없던 공격력 한심수준 ;; 의 선수였으나, (정말이지 1대 1로 할 수 있는 공격은 아무것도 없더군요. -_-; 혹시 로드맨이 포스트업 후 훅샷을 넣는다든지, 스핀무브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레이업을 한다든지, off-the-dribble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는 장면을 목격하신 분이 있으시거든 제보바랍니다; )
거의 리바운드의 대명사라고 불릴만큼 리바운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선수였죠.
유명한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데니스 로드맨을 모델로 삼은 캐릭터라는 것은 이미 지배적인 통설입니다.
리바운드머신으로 유명했던 찰스 바클리의 리바운드 최고 스탯이 87년도 14.6개,
샤킬 오닐의 최고 스탯이 93년도 14.6개, 하킴 올라주원이 91년도 14.9개, 데이비드 로빈슨이 91년 13개, 알론조 모닝이 99년 11개, 칼 말론이 88년 12개였습니다.
반면 데니스 로드맨은 거의 평균 19개에 육박하는 18.7개가 최고 기록이죠. 실로 저 선수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입니다.
18.7개 이외에도 18.3, 17.3, 내려가봤자 16.8 등등..... 심지어는 노쇠화가 극도로 진행되어 2000년 댈러스에서 쫓겨날 때까지 마저도 14.3개였죠. 거의 마흔 살이 다 된 댈러스 시절에 기록한 리바운드 스탯이 다른 역대 최고봉 센터와 파워포워드의 커리어 하이 기록보다 높으니 뭐 말 할 것도 없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리바운드 귀신이었습니다.
92년부터 98년까지 7년 연속 리바운드 1위 자리를 지켰으며, 통산 리바운드는 역대 10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공격 리바운드는 역대 4위입니다. 많은 나이에 리그에 들어와 전성기가 짧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참으로 놀라운 기록입니다.
시카고 불스와 샤킬 오닐의 올랜도 매직이 붙은 96 동부파이널에서 로드맨의 리바운드 스탯을 살펴보겠습니다.
1차전- 21리바운드 (7공격리바운드), 샤크- 6리바운드
2차전- 12리바운드 (6공격리바운드), 샤크- 16리바운드
3차전- 16리바운드 (6공격리바운드), 샤크- 12리바운드
4차전- 14리바운드 (8공격리바운드), 샤크- 9리바운드
상식대로라면 키도 파워도 압도적이며 그 당시 최고 수준의 리바운더였던 샤킬 오닐이 리바운드를 다 쓸어갔어야 맞는데, 오히려 리바운드를 쓸어담은 것은 샤크가 아니라 로드맨이었죠. 게다가 중요한 순간의 리바운드는 샤크는 로드맨에게 모두 빼앗기는 무력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번엔 숀 켐프의 시애틀과의 96 파이널에서의 로드맨의 엽기적인 리바운드 스탯을 살펴보겠습니다.
1차전- 13리바운드 (3공격리바운드), 켐프- 8리바운드
2차전- 20리바운드 (11공격리바운드- 역대 파이널 최다기록), 켐프 13리바운드
3차전- 10리바운드 (3공격리바운드), 켐프- 4리바운드
4차전- 14리바운드 (8공격리바운드), 켐프- 11리바운드
5차전- 12리바운드 (5공격리바운드), 켐프- 10리바운드
6차전- 19리바운드 (11공격리바운드- 역대 파이널 최다기록), 켐프 14리바운드
역대 파이널 최고 기록을 한 시리즈에서 무려 두번이나 기록했네요. -_-;
96 시카고 불스... 조던과 피펜이 있다고는 하나 변변한 센터 하나 없는 불스가 3연속 우승을 할 만도 합니다.
시카고 불스 경기 보시면 리바운드는 로드맨 혼자 양쪽 골대에서 싹 쓸어갑니다.
수비 리바운드, 공격 리바운드 뭐 정말 말이 안 나올만큼 엄청납니다. 조금 당일 컨디션만 좋으면 30리바운드에 가까운 치수를 넘겨 버린 일도 있죠. 로드맨 하나만으로도 리바운드 걱정은 끝~~~!
키도 2m를 갓 넘는 단신인데 어떻게 그렇게 리바운드를 많이 잡을 수 있었을까요?
엄청난 노력에 의해서입니다.
로드맨은 스스로가 지닌 것이 리바운드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매일 집에 오면 몇시간씩 방안에 틀어박혀 선수들이 슛한 공이 미스 후 어느 방향으로 튀는지 통계분석을 낱낱이 하여 확률을 내고 그 선수들과의 경기에 이용했죠. 얼마나 절박하게 피눈물나게 노력을 했는지는 그가 남긴 글에 눈물겨운 기록으로 잘 나와 있습니다.
"난 저 리바운드들을 모두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댈러스의 암흑의 거리로, 그 지옥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원래 리바운드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있는데다가 그토록 한맺힌 독한 마음으로 거의 목숨을 걸고 철저하게 분석을 하고 연구를 했으니 리바운드에 도가 틀 수밖에요.
때문에 로드맨의 리바운드 위치 선정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로드맨에게는 바클리처럼 엄청난 점프력이나 샤킬 오닐처럼 어마어마한 덩치는 없었으나, 그 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위치선정력을 지녔죠. 박스아웃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마치 공이 어디로 튈 지 미리보기라도 하고 온 듯 정확한 위치에서 공을 기다렸다가 공이 자기쪽으로 튀어오르기가 무섭게 용수철처럼 뛰어올라 낚아채곤 했죠. 사실 미리보기 맞습니다. 이미 다 철저하게 분석하고 와서 공이 어디로 올지를 알고 있거든요. :-)
리바운드 위치선정에서 로드맨만한 선수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한 번 점프했을 때 확실히 리바운드를 확보하기가 어려울때는 재치있게 첫번째 점프에서 손을 뻗어 공을 자기 쪽으로 쳐냅니다. 그 직후에 또다시 재빨리 점프를 하여 공을 잡습니다. 두번째도 용이하지 않을 경우 자기 쪽으로 쳐내는 과정을 계속 되풀이합니다. 언젠가는 로드맨의 손에 공이 들어오게 되어 있죠. :-) 로드맨은 '리바운드를 할 때에는 한 번 높이 뛰는 것보다 여러 번, 빨리 뛰는 것이 요령이다' 라는 말도 했죠.
또한 로드맨은 팁인 실력으로도 역대 최고였는데, 일단 공격 리바운드의 개수가 거의 7개로 압도적으로 많은데다가 위치선정이 너무도 탁월하기 때문에, 리바운드를 확보하기 어려울 경우는 곧바로 잡아서 톡 쳐 골을 넣어버립니다. 사실상 로드맨의 득점은 거의 모두 저 팁인으로 이루어졌으니, 한 경기당 팁인만 거의 5~6번을 성공시켰다고 보면 되겠네요.
'리바운드를 지배하는 팀이 승리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리바운드 황제 데니스 로드맨이 몸담은 팀이 무려 다섯 번이나 우승을 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로드맨이 골밑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처럼 동료에게 미더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강백호와 채치수의 리바운드를 믿고 자신 있게 슛을 던지던 정대만처럼, 로드맨이 리바운드를 잡아줄 것이라 믿고 자신 있게 슛을 쏠 수 있으니까요.
2. 수비력
데니스 로드맨은 역대 최고의 수비수들 중에서도 최상위 클래스의 명수비수였습니다.
89년부터 96년까지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연속으로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선정되었으며 (94년 디펜시브 세컨팀 한번 선정을 제외하면) 90,91년에는 2년 연속으로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 당시 하킴 올라주원, 마이클 조던, 데이비드 로빈슨 등 역대 반열의 수비수가 즐비했는데도 그들을 모두 제치고 올해의 수비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또한 일류 포워드가 넘쳐나던 90년대에 계속해서 퍼스트팀에 선정된 것 또한 그의 수비력을 단적으로 드러내줍니다.
또한 역대 수비팀 Big3라 할 수 있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카고 불스 세 팀에서 모두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선정된 선수가 바로 데니스 로드맨입니다.
로드맨의 블락 수치는 소수점인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까지 높은 수비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을까요?
무엇보다도 로드맨은 천하가 다 아는 최고의 수비 리바운더입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credit을 받습니다.
뿐만아닙니다. 일단 로드맨은 포스트업 수비에 탁월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로드맨은 당시 NBA 선수 전체를 통틀어 가장 튼튼하고 굵은 다리를 가졌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로드맨은 상대편 빅맨 에이스를 전담마크했는데, 그 엄청난 다리의 힘으로 산악처럼 버티며 자신보다 큰 체격의 센터의 포스트업을 완벽에 가깝게 막아냈습니다. 로드맨이 자세를 낮추고 버티면 샤킬 오닐이 있는 힘을 다해 포스트업을 해도 놀랍게도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96 동부결승에서 아주 잘 드러납니다)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자신보다 훨씬 크고 강한 신현필의 포스트업을 꿈쩍도 하지 않고 막아내는 장면을 떠올리시면 될 것입니다. 칼 말론이 언더사이즈이며 블락에도 능하지 않았으나 강한 수비력을 지녔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빼어난 포스트업 수비였음을 생각해보면, 로드맨의 그것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로드맨은 특히 (디트로이트 시절) 매우 민첩하며 잘 달립니다. 거기다가 조금도 지치지 않고 풀타임 뛸 수 있는 폭주기관차같은 체력도 지녔습니다. 따라서 크고 강하면서도 기동력도 좋은 선수들도 매우 잘 막았습니다. 89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는 80년대 최강팀이었던 매직 존슨의 레이커스를 스윕하며 우승을 하는데, 이 때의 매직 존슨에 대한 로드맨의 수비는 최고였습니다. 매직을 수비할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다시피했습니다. 포인트가드가 막기에는 너무 크고 강하며, 포워드가 막기에는 너무 빨랐기 때문입니다. 대신 로드맨에게는 최적합의 상대였죠. 로드맨은 시리즈 내내 매직을 전담마크했는데, 매직은 평소에 보여주던 막강한 포스트업이 로드맨에 의해 막히자 다급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턴오버도 적지 않게 저질렀습니다. 저도 이 경기를 직접 다운받아 보았는데, 신경질적으로 거칠게 포스트업을 하는 매직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굳건히 버티는 로드맨의 강력하고 끈질긴 수비력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당신을 제일 잘 막았던 선수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매직 존슨 스스로도 ‘데니스(로드맨)와 스카티(피펜)’ 라고 대답했습니다.
배드보이즈 시절 마이클 조던을 잘 막았던 선수 또한 로드맨이었습니다. 듀마스와 아이재이아, 레임비어는 빼어난 수비수였으나 조와 아이재이아는 조던을 전담마크하기에는 신장이 너무 작았고, 레임비어는 너무 느렸습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척 데일리 감독은 조던의 전담마커로 로드맨을 붙였는데 그때마다 조던의 점프샷을 잘 막았고 돌파도 쉽게 내주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로드맨만이 할 수 있었던 필살기 -_- Dirty Defense가 포함됩니다. 배드보이즈 시절 선배 레임비어에게 전수받은 상대편 바지 벗기기, 포스트업 시 거시기 만지기 -_-;, 심판이 안 볼 때 스크린 서면서 뺨때리기,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 엉덩이 치기, 끊임없는 트래쉬 토킹으로 매치업 상대 도발하기, 과감한 어필 액션으로 분위기 띄우기 등 정말 온갖 해괴한 짓;;을 일삼으며 수비를 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훌륭한 수비 작전입니다. 이 로드맨의 심리전에 말려들면 매치업 상대 선수는 평소에 아무리 침착하다가도 이성을 잃고 흥분하여 제 플레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였고, 거의 패닉 상태로 접어든 적도 있었습니다. 이 도발작전에 걸려들지 않은 선수는 거의 없었습니다. 데이비드 로빈슨, 샤킬 오닐, 숀 켐프, 알론조 모닝, 칼 말론 등 원래는 침착한 내로라 하는 선수들도 데니스 로드맨만 만나면 이성을 잃고 흥분하여 심리전에 깊이 빠져들어 헤어나오질 못했죠. 본디 순하기로 유명한 디켐베 무톰보마저도 ‘데니스 로드맨은 생각하기도 싫다’ 라며 그를 향한 엄청난 거부감을 직접적으로 표시했습니다 -_-ㅋ
특히 97,98 파이널에서 2년동안이나 칼 말론과 데니스 로드맨이 코트 위에서 엎어지락 자빠지락 레슬링을 하며 온갖 진기한 :-) 신경전을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사진 속 칼 말론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로드맨이 짜증나게 수비하는지 알 수가 있죠. ^^;)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로드맨은 단연 역대 최고의 오펜스 파울 유도 기술을 지녔습니다. 거의 매 경기당 3번꼴로 공격자 파울을 얻어냈는데, 그럴때마다 이것은 팀의 승리에 기여했으며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상대편이 돌진하거나 포스트업을 할 때 이동경로에 다소곳하게 서 있다가, 신체접촉이 일어나자마자 오버액션 섞어서 갑자기 ‘으악!’ 하며 뒤로 넘어져버립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공격자 파울콜이 불리고, 관중들의 환호 속에 로드맨은 일어나서 만세를 부르죠. 너무도 많이 보신 장면일 것입니다.
즉, 터프함+근성+파워+민첩성+공격자 파울 유도의 Pure Defense와 Dirty Defense를 한 몸에 갖춘 최고의 수비수였습니다.
3. 허슬 플레이
허슬 플레이를 이야기 할 때 로드맨을 빼놓는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데니스 로드맨은 허슬 플레이의 정의 그 자체였습니다. 허슬 플레이로 유명한 선수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로드맨만큼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허슬 마인드는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공을 잡아야겠다는 집념은 정말이지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듯합니다. 공이 out of bounds가 될 듯이 밖으로 튀어나가면 로드맨은 마치 그 공을 잡지 못하면 자기 목숨이 거기에서 끝나기라도 하는 듯 온몸을 날려 허공에서 공을 잡아 코트 안으로 던져 넣습니다. 자기가 몸을 던지는 곳이 관중석이든, 중계 테이블이든, 사진가들이 모여 앉은 코트사이드이든 그는 조금도 꺼려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보다는 공을 잡는 것이 더 중요했던 선수입니다. -_- 그가 튀어나가는 공을 잡기 위해 몸을 날리는 장면으로만 믹스를 만들어도 10분이 넘는 동영상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상대편 선수에게 루즈 볼이 들어가게 생긴 상황에서 웬만한 선수는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백코트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로드맨은 자기 손에 공이 들어올 때까지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다시 미친 듯이 몸을 날려 공을 손에 잡고 땅바닥에 구르며 자기가 갖겠다는 투지를 불사르며 빼앗으려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공은 로드맨에 손에 들어오거나 점프볼 콜이 불리죠.
수비 리바운드를 잡은 후에 로드맨은 곧바로 피펜이나 조던에게 패스로 연결하고 오히려 피펜과 조던보다 더 앞서서 들판에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_-; 상대편 진영으로 나는 듯 달려갑니다. 스크린을 걸어주고 공격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서이죠. 그 후 곧바로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 세컨 찬스 풋백 시도, 미스하면 또다시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 동료에게 패스 하는 모습.. 정말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팀에 활력을 불어넣던 선수인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던 선수였습니다.
로드맨의 이러한 허슬 플레이는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가를 누구나 쉽사리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는 경기에서 그가 가진 것을 모두 보여주려 노력했으며, 자신이 지금 선수로서 뛰고 있는 그 순간이 자기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몸을 날려 보여주었습니다.
<맺으며>
불우한 과거를 딛고 최선을 다해 결국 성공하여 길이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언제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해 줍니다. 로드맨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노력과 넘치는 열정으로 이겨내며 결국 지구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NBA에서 최고 기록을 세운 선수로 거듭났고, 공격력의 극심한 부족으로도 ‘한 가지만 잘 해도 성공할 수 있다’ 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선수였습니다. 단 2득점만 하고도 All-NBA team과 All-Defensive team에 선정되고 경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선수, 그렇게 해서 소속팀이 다섯 번이나 우승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선수가 로드맨 빼고 또 누가 있을까요.
말썽을 부리며 온갖 기이한 짓을 일삼아 'The Worm' 이라는 Dubious Honor까지 가졌던 선수였으나, 코트 안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조건 없이 순수한 열정으로 매 경기를 인생 마지막 경기처럼 뛰던 선수가 데니스 로드맨이었습니다. 그만한 열정을 가진 선수가 다시 나오긴 힘들 것 같습니다.
코트 밖에서의 패륜아로보다는 코트 안에서의 불같은 열정을 지녔던 농구선수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후기
이전 글을 쓴 후 매우 만족감이 들었었는데, 이번엔 날려버린 그 글만큼 잘 쓰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여튼 최선을 다 해 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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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와 수비도 최고였지만 특히 열정이 정말 엄청났던 선수... 명전에 들어가기를 바라며..
로드맨이 허슬하는데 조던이 왜웃지?? 좋아서 저러는걸까? ㅋㅋ
로드맨.....레전드네요 완전...ㅎㄷㄷ
잘봤습니다!! 튜리아프가 이런선수로 발전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ㅠ.ㅠ ㅋ
튜리아프=로드맨 *^^* 생각만 해도 좋은데요. 제발 그렇게 되길 ㅎㅎㅎ
로드맨은 어떻게 해서 키가 컸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게요
허슬플레이 단락에 나온 사진을 보니 기억이 납니다... 분명히 살릴 수 있는 공이 아니었죠... 절대로 살리는 것이 불가능한 공이었죠... 그런데 로드맨은 거리낌없이 몸을 날립니다... 결과는 물론 실패... 수영장 출발대에서 다이빙하듯이 코트에 배치기를 해버렸죠...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서 수비하러 갑니다... 이게 바로 로드맨의 농구를 대하는 모습이었죠...
로드맨이 저런 점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 걷는 습관에서 나옵니다...매일 발 뒤꿈치를 들고 걸어다니죠...때문에 다리의 힘이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고 합니다...언제였나...불스시절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수비리바운드를 하고 혼자 드리블을 하면서 천천히 나머지 9명이 자리를 잡고 있는 오펜스진영으로 나가다가 센터서클에서 갑자기 속력을 내며 45도 지점에 있던 피펜한테 패스하더니 바로 리턴패스를 받아서 아무도 없는 자유투라인에서 점프를 해서 레이업슛을 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레이업이라기보다는 풋내기슛이었죠...ㅎㅎ the WORM...저라면 당연히 PF에 로드맨입니다...
오늘 따라 로드맨의 경기가 보고싶네요
정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예전 향수가 마구 떠오르네요~
정독 하고 갑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Bad As I Wanna Be 가 떠오르네요 ㅎㅎ
'악동'이란 말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선수였죠.
뭔가 코끝이 찡해오는군요
역시 로드맨은 짜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