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트럼프’ 총선 승리… 反이슬람 내세워 또 극우 돌풍
극우 자유당, 출구조사서 ‘제1당’
빌더르스 “꾸란은 파시스트 책”
총리땐 EU탈퇴 현실화 가능성… 과반 의석 안돼 집권 미지수
反이민 여론에 유럽 극우 재부상
극단적인 반난민, 반이슬람 정책을 외치는 네덜란드 극우 정당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22일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1위를 했다는 출구조사가 발표된 후 헤이그에서 지지층과 기뻐하고 있다. 헤이그=AP 뉴시스
“이민과 망명 쓰나미를 억제하겠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민자가 아니라) 네덜란드인이 1순위가 돼야 한다.”
22일 실시된 네덜란드 조기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 ‘네덜란드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성향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60)가 이끄는 자유당(PVV)이 원내 제1당을 차지했다. 그는 극단적인 반(反)난민, 반이슬람, 반유럽연합(EU) 노선을 표방한다. 이에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살해 위협까지 받아 경찰 경호를 받으며 출퇴근했던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연정 구성에 성공해 총리에 오르면 반이민 정책이 강화되고 네덜란드의 EU 탈퇴를 뜻하는 ‘넥시트(NEXIT)’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 들어 핀란드, 스위스 등 유럽 주요국 선거에서 모두 극우 정당이 약진했다. 19일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도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꼽히는 극우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가 승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또한 내년 대선에서 재집권을 노리는 등 전 세계 극우 정당과 정치인의 돌풍이 거세다.
● 인니 출생 모친 둔 反이슬람주의자
가디언 등에 따르면 자유당은 이날 출구조사에서 하원 150석 중 37석을 확보했다. 2021년 총선(17석)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다. 녹색당과 노동당의 좌파연합(25석), 집권 자유민주당(24석) 등이 뒤를 이었다. 이번 조기 총선은 2010년부터 집권 중인 마르크 뤼터 총리가 이민 정책에 관한 연정 파트너와의 견해차로 올 7월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치러졌다.
빌더르스 대표는 청년기인 1981∼1983년 이스라엘 모샤브(집단농장)에서 일하며 중동 전역을 여행했고 이를 통해 뿌리 깊은 반이슬람 시각을 갖게 됐다.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그의 모친은 과거 네덜란드의 식민지이자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다.
보험업계 등에서 일하다 1998년 중도우파 자유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선출되며 정계에 진출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이 이슬람 및 이민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이유로 탈당한 뒤 2006년 자유당을 창당했다. 이후 활동은 거침이 없었다. 이슬람교 예언자 무함마드를 ‘소아성애자’, 이슬람 경전 꾸란을 ‘파시스트의 책’이라고 했고 반이슬람 단편영화 ‘피트나’도 제작했다. “거리에서 모로코인 쓰레기를 없애겠다”고도 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집권 자유민주당이 이민, 청년층 주거난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공격해 표심을 파고들었다. 선거 직전 꾸란 금지 주장 등을 철회할 수 있음을 암시하며 반이슬람 정책의 수위를 낮춘 것 또한 제1당 등극에 효과적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 연정 구성 난항… 총리 등극은 불투명
다만 자유당의 연정 구성 및 그의 총리 등극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좌파연합, 자유민주당 등 주요 정당은 모두 자유당이 주도하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사매체 타임은 뤼터 총리 또한 비슷한 중도우파 계열의 소수 정당을 끌어모아 연정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유당이 내각 구성에 진통을 겪더라도 지지세가 확인된 만큼 네덜란드 사회 전반의 우경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국경 통제 복원, 불법 이민자 구금 및 추방 등 빌더르스 대표가 주장하는 정책들이 네덜란드의 DNA를 바꿀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넥시트’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지난달 스위스 총선에서도 우파 스위스국민당(SVP)이 제1당에 올랐다. 4월 핀란드 총선에서는 극우 핀란드인당이 제2당에 올라 우파 연정에 참여했다. 나치 독일의 역사로 극우가 금기시된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날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난민 유입, 고물가 등으로 반이민 여론이 고조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핀란드는 24일부터 난민 유입을 막으려 러시아와 접한 최북단 검문소 한 곳을 제외한 모든 국경을 폐쇄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이기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