曹植(192-232)
煮豆燃豆箕
(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 기(艸+其 ; 콩깎지, 콩대)
해석
삼국 시대의 영웅이었던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문장 출신이었지만 건안(建安) 문학의 융성을
가져왔을 정도로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맏아들인 조
비(:186∼226)와 셋째 아들인 조식(植)도 글재주가 출중했다. 특히 조식의 시재(詩才)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했다. 그래서 조식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는 한때 조비를 제쳐놓고 조
식으로 하여금 후사(後嗣)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조비는 후한(後漢)의 헌제(獻帝:189∼226)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
에 올라 문제(文帝:220∼226)라 일컫고 국호를 위(魏)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조식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 오던 차에 후사 문제까지 불리하게 돌아간 적도 있고 해서
조비의 조식에 대한 증오심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으며 결국 위왕이 된 다음 그 동생인 조식
을 없애려고 합니다.
조식을 없앨 명분으로 연회자리에 조식을 불러서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먼저 벽에 걸려있는 '소 두 마리가 다투다 한 마리가 우물에 빠지는' 수묵화를 보고 글을 짓되
"두 마리 소가 담 곁에서 싸워 한 마리는 우물에 떨어져 죽었다"는 말은 한 마디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조식은 친형의 명령에 따라 발걸음을 떼면서 시를 짓습니다.
두 고깃덩이 나란히 길을 가는데
머리에는 모두 튀어나온 뿔이 있구나
봉긋한 산 아래에서 만나
문득 서로 치받게 되었네
맞수가 다 굳세지는 못해
한 고깃덩이는 흙 구덩이에 쓰러졌구나
힘이 저만 못함이 아니라
지닌 힘을 다 펼 수 없었기 때문일세
그러자 조비는 연이어 두 번째 시제로서 '형제'를 주제로 내면서 "너와 나는 형과 아우다.
그걸 제목으로 삼되 조금 전처럼 형이란 말도 아우란 말도 써서는 아니된다."고 합니다.
조식은 다시 발걸음을 떼면서 시를 짓습니다.
煮豆燃豆 (자두연두기)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원래 같은 뿌리에서 자라났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 이다지도 급하게 볶아대는가
이 두 시 모두 친형제인 형이 동생을 핍박하는 것을 비난하는 글이었습니다.
이 글을 들은 조비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하나 결국 조식은 조비의 손에 죽게됩니다.
일곱걸음을 떼는 동안에 시를 쓴다는 것, 그것도 시제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 내용뿐만 아니라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비난의 내용까지 포함해서 글을 지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문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조식의 뛰어난 문재에 감탄하면서도, '콩깍지를 태워서 콩을 삶는다'
란 비극적이고 극한적인 상황설정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전율을 느꼈으며, 그래서 조식의 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거지요.
그리고 조조의 자식, 그 형제들은 서로 항쟁하면서도 밖에서 공격 받을 때는 서로 도와 막았답니다.
뛰어난 글재주를 가진 사람을 七步之材라고 하며 이 말의 이러한 유래를 가집니다.
첫댓글 모셔왔습니다. 이보세상에 좋은 글이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