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or는 1976年, 러시아의 Rubeshnoe Lugansk 지방에서 가스 용접공이었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Fedor는 삼보와 유도를 접하게 되면서 비로소 스포츠에 대한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발견하게 되었고, 운동 선수로서의 인생을 택하게 됩니다. 삼보와 유도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던 그 시절 Fedor는 자신이 먼 훗날 세계 최강의 격투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었겠지요? ^^
러시아에서는 보통 삼보를 배우게 되면 기본적으로 유도 또는 레슬링을 함께 배우게 한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삼보가 러시아 고유 무술이기는 해도 올림픽 같은 국제적 대회에서는 채택되지 않은 종목이기 때문에, 엄연히 다른 종목이긴 하지만 비슷한 신체적 능력을 요구하는 유도나 레슬링을 함께 수련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당시는 올림픽에서 몇 개의 메달을 따느냐가 곧 국력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던 소비에트 연방 시절이었으니까요. 모두들 아시다시피 구 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스포츠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스포츠 각 분야의 유망주들을 조기에 발굴해서 폭 넓은 지원을 통해 선수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했었지요. 당시 소련의 매우 어려웠던 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유망주라는 이유로 국가의 지원 아래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특혜였을 것이고, 그도 역시 비슷한 경우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런 국가적인 스포츠 육성 정책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시점까지 계속 되었는데요,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갔던 해가 바로 1991년이니까 Fedor야말로 공산주의 국가의 엘리트 체육 정책의 마지막 수혜자가 되는 행운을 누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94년 대학을 졸업한 Fedor는 그 이듬해인 1995년부터 3년간의 군복무를 하게 되는데, 1996년에 러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상무부대와 같은 체육 부대에서 군복무를 한 모양입니다.
군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대체 복무의 방법이 더 다양하다고는 하더라도 러시아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하며, Russian Army의 열악한 환경은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규율을 잡는다는 이유로 선임병이 후임병을 구타하는 등의 안전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인 지원까지도 넉넉치 못하다 보니 군생활 자체가 괴롭기 그지 없다고 하더군요. 보급품의 분실을 막는다는 이유로 식판 양쪽에 구멍을 뚫어서 끈을 통과시키고 그 끈 양쪽에 스푼과 포크를 매달아 놓고 식사하게 할 정도라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어려운 환경은 일반적인 군부대에 해당되는 사항이고 아무래도 체육 부대와 같은 특수한 목적의 부대는 좀 더 나은 환경이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정도는 조성되어 있어야 선수들에게 기량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Fedor는 여러모로 잘 풀린 케이스군요.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1997년의 Fedor의 기록을 살펴 보면 Petersburg에서 열린 삼보 대회와 2개월 뒤 Kursk에서 열린 유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기록이 있구요, 이 해를 기점으로 그는 본격적으로 여러 대회들을 참가해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기 시작합니다. 1998년에는 "인터내셔널 러시아 마스터 삼보 대회"에서 개인 우승을 차지하는 동시에 소속팀이 "모스크바 A 리그 팀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에 있어서 견인차 역할을 해냈고, 또한 Stove에서 열린 "러시아 유도 선수권 대회"와 Kaliningrad에서 열린 "러시아 삼보 선수권 대회"에 참가, 각각 동메달을 따내는 활약을 보여 줍니다. 또한 "러시아 군 삼보 대회"에서는 본인 체급 우승은 물론, 나아가 무제한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거는 기염을 토하는 등, 1998년 들어서 Fedor는 자신의 명성을 러시아 전역에 점차적으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에 Fedor는 "모스크바 인터내셔널 토너먼트 삼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곧 이어 터키 이스탄불로 건너가 "유럽 챔피언쉽 선수권 대회"에서도 팀 우승을 차지하며 삼보 최강자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는데요, 아름다운 아내 Oksana와 사랑스러운 딸 Masha를 얻게 된 시기 역시 바로 1999년이었습니다.
2000년, 본격적으로 펀치 테크닉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을 시작한 Fedor는 드디어 종합격투계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가 MMA와 첫 인연을 맺게 된 대회는 Rings인데요, 이 Rings라는 대회는 재일교포 2세인 마에다 아키라 (한국명 고일영)가 1991년 1월에 창설한 종합격투단체 입니다. Fedor는 2000년 9월 5일 Rings Battle Genesis에서 일본인 선수인 Hiroyo Takada를 맞아 불과 1라운드 12초 만에 강력한 펀치에 의한 KO승을 거두며 MMA 첫 승을 화려하게 신고합니다. 그 후 Fedor는 2002년 2월 Rings가 해산하는 순간까지 총 아홉 번의 경기를 갖게 되는데요, 2001년 초대 Rings 헤비급 챔피언을 거쳐 2002년에는 Rings 무제한급 챔피언 타이틀까지 획득함으로써 Rings 2관왕의 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Fedor가 Rings에서 주목 받기 시작한 본격적인 계기는 Rings에서의 두 번째 시합인 Ricardo Arona와의 경기였습니다. 2000년 12월 22일 오사카에서 열린 Rings-King of Kings 2000에서 주짓수의 강자 Ricardo Arona를 맞아 당초 예상을 뒤엎고 연장전까지 치르는 혈투 끝에 3:0 심판전원 일치 판정승을 이끌어냄으로써 비로소 격투 팬들은 Fedor Emelianenko라는 이름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경기를 간단히 Review해 볼까요? 1라운드에서는 태클에 의한 테이크다운 후 유리한 포지션을 점한 상태에서 연이어 관절 기술을 시도하는 Arona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Fedor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2라운드 들어서부터 조금씩 경기에 적응하기 시작하며 전세 역전을 위해 애를 쓰는 형국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라운드에서의 안면 가격이 금지된 룰에 따라 Fedor는 가능하면 스탠딩 상태에서의 타격전을 시도했고, 반면 Arona는 계속해서 태클을 시도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경기를 우세하게 이끈 Arona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실제 판정에서는 1명의 부심만이 Arona의 우세를, 나머지 2명의 부심은 "Draw"를 선언함으로써 연장전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승부를 가까스로 원점으로 돌린 Fedor는 연장 1라운드 내내 Arona의 태클 시도를 잘 방어해 내며 적극적으로 펀치를 휘두른 끝에 심판 전원 일치의 판정승을 거두게 됩니다.
4강 토너먼트에서 Arona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한 Fedor는 코사카 츠요시를 맞아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경기는 다소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코사카 츠요시의 팔꿈치에 가격 당한 Fedor의 눈 주위 출혈이 멈추지 않자 결국 경기 시작 17초 만에 Cut에 의한 TKO가 선언된 것이지요. 물론 고의적인 가격이 아니었지만 Fedor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웠던 경기였으며, 이 경기의 패배는 현재까지 Fedor가 MMA에서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1패로 남아 있습니다.
TK에게 아쉬운 1패를 당하긴 했지만 이후 Fedor는 여섯 번의 경기를 내리 이기며 명실상부한 Rings 최강자로 자리 매김 합니다. 특히 루타 리브레(Luta Livre)의 강자 Renato Sobral과의 경기에서는 완벽한 힘의 배분과 컨트롤을 보여 주며 그라운드 포지션 싸움에서도 완승을 거둬 "삼보 챔피언"의 명성이 허명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2002년 2월 15일 "Rings World Title Series Grand Final" 대회에서 가진 Chris Haseman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Rings 무제한급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한 채 Rings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바로 격투가들에겐 꿈의 무대인 PRIDE Fighting Championship 이었습니다.
PRIDE 무대에서 그와 마주한 첫 상대는 211Cm의 가라데맨 "High Tower" Semmy Shilt 였습니다. 공이 울리자 자신보다 30센티미터나 큰 Shilt를 상대로 쉴새 없이 바닥으로 넘어뜨려 파운딩을 구사하는 Fedor. 그라운드에서 안면 가격이 허용되는 PRIDE의 룰은 그에게 있어서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것과 다름없었지요. 오픈 가드 상태에서도 이다지도 위력적으로 체중이 실린 펀치를 안면에 정확히 꽂아 넣는 선수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Fedor는 무서운 파운딩 펀치를 보여 줍니다. Shilt는 번번히 Fedor에게 허리를 붙잡혀 바닥에 나뒹굴었고, 큰 키를 이용해 이스케이프를 시도해 보지만 포지션 컨트롤이 뛰어난 Fedor에겐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경기가 끝날 무렵 Shilt의 안면은 붉게 변했고 결국 Fedor는 3:0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승을 거두며 PRIDE에서 첫 승을 신고합니다.
당시 PRIDE 헤비급 챔피언 벨트는 "미노타우루" Antonio Rodrigo Nogueira가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헤비급 선수들이 Nogueira의 벨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도전자로 손꼽혔던 선수가 바로 "텍사스 광마" Heath Herring 이었고, PRIDE 23에서 타이틀 도전자 자리를 놓고 Herring과 겨루게 된 선수가 바로 Fedor였던 것입니다. 당시 챔피언을 꿈꾸고 있던 Herring에게 눈앞의 상대 Fedor는 단지 넘어야 하는 관문 중 하나로만 생각 되었겠지만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생각이 모자랐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생각보다 묵직한 Fedor의 펀치에 당황하며 머리를 감싸며 방어에 급급한 Herring. 왼손 오른손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안면에 적중되는 Fedor의 펀치에 이미 1라운드 중반을 넘어서며 이미 왼쪽 눈 밑이 찢어지고 맙니다. 실로 완벽에 가까운 Fedor의 포지션 컨트롤에 Herring은 쉽게 가드 포지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계속해서 안면에 파운딩 펀치를 허용할 뿐이었습니다. 이미 캔버스가 피로 붉게 물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티며 싸우는 Herring의 정신력은 대단했지만 이미 승부는 Fedor 쪽으로 넘어온 상태였고, 결국 1라운드 종료 후 Fedor의 TKO승이 선언됩니다. 불과 10분만에 처참히 변해 버린 Herring의 얼굴을 바라보며 관중들은 새삼 Fedor의 무시무시함을 느끼게 되었지요.
2003년 3월 16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린 PRIDE 25에서 드디어 Fedor는 PRIDE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놓고 Antonio Rodrigo Nogueira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됩니다. 경기 전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Fedor의 실력만큼은 인정하지만 마술과 같은 주짓수 기술로 탭을 받아 내는 Nogueira에게는 힘들지 않겠느냐 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의 Nogueira는 Mark Coleman, Heath Herring, Bob Sapp, Dan Henderson 등을 파죽지세로 연파하며 무서운 기세를 올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경기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개됩니다. 계속해서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는 Nogueira의 공격 패턴을 미리 예상한 듯, Fedor는 완벽한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보여 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경기를 풀어 나갔고, 트라이앵글 쵸크나 암바를 시도하기 위해 올라오는 Nogueira의 다리를 사전에 잘 차단하며 그라운드 공방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결정적으로 Fedor에게는 상대의 가드 안에서도 마치 풀 마운트 포지션에서 내리치는 것과 같은 강력한 파운딩 펀치가 있었기에 경기는 점점 Fedor 쪽으로 기울어져 갔고, 다급해진 Nogueira는 안면에 파운딩을 허용하면서도 단 한 번의 필살기를 성공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관절기를 시도했으나 침착한 Fedor의 수비에 막혀 불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3라운드의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자 바닥을 치며 아쉬워하는 Nogueira의 허탈한 표정에서 이미 경기의 승부는 결정 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결과는 3:0 심판 전원 일치로 Fedor의 판정승이 선언됩니다. Fedor로서는 PRIDE에 입성해서 단 세 번의 경기만에 헤비급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Nogueira의 열렬팬 코이케 에이코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헤비급 챔피언이 된 Fedor는 그 후 후지타 가즈유키, Gary Goodridge를 차례로 꺾으며 황제의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비록 후지타와의 경기에서 왼쪽 관자놀이에 카운터 펀치를 허용하며 무너져 내릴 뻔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압도적인 타격과 그래플링을 내세워 매 경기마다 승리를 기록하게 되지요. 후지타는 강력한 카운터 펀치를 Fedor의 관자놀이에 선사했지만, 결국에는 Fedor의 왼손 스트레이트 한방에 이어지는 리어 네이키드 쵸크에 잠시 동안 링 바닥에 누워 실신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지요. 그에 비하면 Goodridge는 다행히 별다른 아픔 없이 경기를 끝낼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요? ^^
2003년 12월 31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는 “PRIDE Shockwave 2003”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같은 날 그 시각 Fedor가 있던 곳은 사이타마가 아니라, “Inoki Bom-Ba-Ye 2003”이 열린 고베 윙 스타디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거기서 나카타 유지와 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결과는 예상대로 1라운드 초반을 넘기지 못하고 Fedor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나카타 유지는 Fedor의 펀치가 단지 스쳤을 뿐인데도 전의를 상실한 채 주저앉아 버렸고, Fedor는 몇 대 때리지 않고도 TKO로 승수를 하나 추가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지요. 후에 이 경기로 인해 한동안 Fedor는 PRIDE와 관계가 소원해지는 상황을 겪기도 합니다. PRIDE 경기국의 입장에서는 자기 대회의 챔피언이 남의 대회에서 이벤트성 경기를 뛰고 있으니 당연히 삐질 만도 했겠네요. ^^
이 날 또 한가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Fedor가 입고 나온 “Red Devil”팀의 티셔츠였습니다. 오랫동안 “Russian Top Team” 소속이었던 Fedor가 갑자기 “Red Devil”로 이적한 사실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Fedor은 이렇게 말합니다.
“매니저인 Vladimir Pagodin이 RTT의 소속선수들을 속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하지도 않았던 일들까지도 자신의 공적으로 간주하고 있고, 팀과 나의 돈을 횡령한 사실까지 있다. 이런 이유로 나와 내 동생이 RTT를 떠나려고 하자 자신이 삼보 레슬링 협회 부이사임을 내세워 치사한 협박을 하기도 했다. 이제 RTT는 선수라고는 Sergei Kharitonov 밖에 없는 팀이 되어 버렸다. 그에 반해 Red Devil은 전용 체육관과 제대로 된 코치들을 보유하고 있는 훌륭한 팀으로서 Pagodin 개인이 만든 RTT 같은 팀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오랫동안 Red Devil을 지켜봐 왔던 나로서는 이 팀에 오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RTT의 매니저인 Pagodin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 듯 합니다. 실제로 Noguiera와 경기 때 Fedor가 받은 돈은 상금을 합쳐 약 4천 달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PRIDE의 Top Fighter들이 받는 개런티가 대략 30만 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해 본다면 중간에서 Pagodin이 가로챈 돈이 꽤나 많을 듯싶긴 합니다.
Fedor와 Kharitonov는 오랫 동안 RTT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함께 땀을 흘리며 기술을 익히고 연구하던 두 사람은 여행을 같이 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였고, 그 관계는 Fedor가 Alexander와 함께 Red Devil로 이적한 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비록 지금은 서로 다른 팀의 에이스로서 어쩌면 챔피언 벨트를 놓고 승부를 가려야 할 상황이지만.
부상과 팀 이적, 교통 사고 등의 이유로 한동안 PRIDE에서 경기하지 못했던 Fedor는 드디어 2004년 4월 PRIDE 헤비급 GP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의 16강전 첫 상대는 해머 하우스의 수장 Mark Coleman이었는데, 레슬러의 강력한 태클을 앞세워 밀어 붙여 오는 Coleman의 파상 공격을 잘 막아내던 Fedor는 결국 예술 같은 리버스 암바를 선보이며 1라운드 2분 11초만에 탭을 받아 내는데 성공합니다.
두 달 뒤 벌어진 8강전의 상대는 16강전에서 Mirko Filipovic를 펀치로 실신시키며 이번 PRIDE GP 최고의 이변을 연출해냈던 "The Monster" Kevin Randleman이었는데요, Crocop 전에서의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Randleman은 Mark Coleman의 패배를 Fedor에게 고스란히 돌려 주겠다는 기세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우리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랄 광경을 두 번 보게 됩니다. Fedor의 백을 잡고 그대로 점프한 상태에서 슬램을 작렬시키는 Randleman의 스플렉스에 한 번 놀랐고, 실신해야 마땅한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사이드 마운트를 빠져 나와 오히려 기무라로 탭을 받아내는 Fedor의 냉정함에 두 번 놀랐다는 말이지요. 이 장면은 이미 여러분 모두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말 대단했지요.
16강과 8강에서 해머 하우스의 두 선수를 연달아 격파한 Fedor는, 다가오는 8월 15일에 "폭주왕" 오가와 나오야와의 GP 4강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오가와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고 해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Antonio Rodrigo Nogueira와 Sergei Khairtonov의 경기간 승자입니다. 이렇게 만만치 않은 상대들과의 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있을 Fedor Emelianenko. 과연 그가 이번 GP 타이틀까지 석권하며 최강자의 자리에서 롱런 할 수 있을 것인지 무척이나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