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문학에의 천재적 소질을 인정받았음에서 불과 서른 살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삶을 표현하자면 기구(崎嶇)하고도 파란만장(波瀾萬丈)하달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리니,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마도 '자살(自殺)'이란 단어가 아닐까 하지만...
실비아 플라스는 나중에 계관시인의 직위를 받을 정도로 영국에서 촉망받던 휴즈(Ted Hughes)와 결혼하면서 그들 둘의 결합은 세기의 로맨스란 별칭까지 얻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사게 되었지만 6년 후 남편 휴즈의 외도로 별거에 들어갔다네. 그리고 이듬해인 1963년 그녀는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하고 말았지. 글고 6년 후 유부남인 휴즈와 살았던 에시아 웨빌(Assia Wevill) 역시 실비아 플래스와 똑같은 방법으로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했다지. 뿐인가? 플라스와 휴즈 사이에 태어난 아들 니콜라스 휴즈(Nicholas Hughes) 역시 2009년 자신의 목을 매달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만.
내가 실비아 플라스의 글을 처음 접한 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당시 우리나라의 문예출판사에서 출판된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벨자(The bell jar)』를 읽으면서부터였다고 할 터인디, (나의 기억이 맞다면) 공교곱게도 1974년 대학입학 예비고사의 영어 과목에 소설의 일부가 지문으로 출제되었다는 게 아니었겠나. 대학시험에 떨어진 뒤 애늙은이가 되어서 지방의 어느 이름 없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해도 의레 예비고사를 봐야 하는 시절이었으니 뭐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뭐 그리곤 실비아 플라스는 까맣게 잊고 살아왔는데 며칠 전 우연히 차일피일님의 블로그 '이날저날'에서 그녀의 시를 읽게 되었는데...물을 건넌다는 게 내겐 왠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마지막 연(聯)은 미구(未久)에 맞닥뜨릴 불행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아름다움으로 맞이하겠다는 시인의 의지를 엿보는 듯하여 가슴이 아리기도 하구만...
이하 블로그 '이날저날'에서 차일피일님의 번역과 해설을 빌어 실비아 플라스의「물을 건너며" (Crossing the water)」를 감상해 보려 하는데(차일피일님의 해설 중 일부를 나의 입맛에 맞춰 약간의 수정을 가한 데 대한 너그러운 이해를 바라면서...)
Crossing the water
물을 건너며
-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Black lake, black boat, two black, cut-paper people.
Where do the black trees go that drink here?
Their shadows must cover Canada.
검은 호수, 검은 배, 종이를 잘라 만든 듯한 검은 두 사람.
여기서 물을 마시는 검은 나무들은 어디로 가나?
그들의 그림자는 캐나다를 덮으리라.
A little light is filtering from the water flowers.
Their leaves do not wish us to hurry:
They are round and flat and full of dark advice.
물가의 꽃들을 통해 작은 빛이 들어오네.
그 잎들은 우리가 서두르는 것을 바라지 않네.
그것들은 둥글고 편평하며, 어두운 충고로 가득 찼네.
Cold worlds shake from the oar.
The spirit of blackness is in us, it is in the fishes.
A snag is lifting a valedictory, pale hand;
노를 저으니 차가운 세계들이 흔들리네.
암흑의 영혼이 우리 안에 있네, 그건 물고기 안에도 있네.
암초가 창백한 이별의 손을 들어 올리네.
Stars open among the lilies.
Are you not blinded by such expressionless sirens?
This is the silence of astounded souls.
별들이 수련 사이에서 열리네.
넌 저 표정 없는 세이렌들에 의해 눈멀지 않았는가?
그건 놀란 영혼의 침묵이네.
실비아 플라스의 이 시는 그녀가 죽은 후 1971년에 발간된 시집 "물을 건너며" (Crossing the water)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시이다. 이 시는 어둡고 알 수 없는 호수를 보트를 타고 건너는 쓸쓸한 심경을 드러내면서도 이윽고는 밤의 호수에 드리운 꽃과 별빛들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
'검은 호수'(black lake), '검은 배'(black boat), '종이를 잘라 만든 듯한 검은 두 사람'(two black, cut-paper people), '검은 나무들'(black trees)의 이미지는 어둡고, 알 수 없고, 우울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종이를 잘라 만든 듯한'(cut-paper) 두 사람은 서로 간에 감정이 메말라버리고 소원해진 두 사람을 암시한다. 또한 호수의 물을 마시는 '검은 나무들'(black trees)은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만, 나무는 움직일 수 없으니 갈 곳이 없는 시인 자신의 심경을 상징하고 있다, 그 나무들의 그림자가 워낙 커서 캐나다 전부를 덮을 것처럼 말하면서 시인의 절망적 심경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
시인의 우울한 심정은 '물가의 꽃들'(water flowers)에서 조그만 위안을 얻고 있는데, '작은 빛'(a little light)이 물가의 꽃들을 통하여 비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둥글고 편평한 꽃잎의 모양은 우리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가르쳐 주는 듯하지만, 그 충고 역시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다'(full of dark advice)라고 하여 시인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을 시사한다.
셋째 연에서,
'차가운 세계들'(Cold worlds), '암흑의 영혼'(The spirit of blackness), '암초'(a snag), '이별의 창백한 손'(a valedictory, pale hand)이란 단어들 역시 여전히 혼란스럽고 암울한 시인의 심경을 상징하며, 시인 주변의 모든 것에 자신의 우울한 심경이 투영되어 있다.
넷째 연에서,
시인은 '수련 사이로'(among the lilies) 호수에 비친 '별들'(stars)의 아름다운 모습에 압도되고 유혹 당하지 않을 수 없는 서정을 노래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심경을 '그건 놀란 영혼의 침묵'(This is the silence of astounded souls)이라고 찬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