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수의 삶과 죽음
유기섭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들려오는 아나운서의 낭랑한 목소리가 새벽을 깨웠다. 1968년 멕시코하계올림픽소식이 바다를 건너 이른 아침에 희망의 소리를 날라다준 것이다. 걸음걸이로 따지면 평생다가가도 도달 못할 먼 거리지만 희망을 전해주는 소리는 우리의 귓가에 빛의 속도로 내려앉는다. 평소에도 유망한 선수라며 국내에서도 기대를 거는 권투선수이지만 막상 세계무대에서 그렇게까지 좋은 소식으로 은메달을 고국의 국민에게 바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의 낭보로 모든 사람들의 어깨가 으쓱하고 희망의 빛을 환히 비춰주는 쾌거를 선물 받았다.
올림픽이 개최된 그곳 멕시코는 우리와는 반대편 아득히 먼 나라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정감이 들었다. 그것은 백여 년 전 우리의 선조들이 이역만리 낯선 그곳 땅에 새로운 희망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농업이민을 떠났던 곳이다. 아득히 먼 나라 멕시코에서 더 나은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위하여 밤낮없이 일하여 소망대로 꿈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운 심정을 가눌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기에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뇌리에서 쉬 잊혀지지 않는 땅이다. 오고가는데 만 몇날며칠이 걸리는 먼 땅 타국에서 세계의 내로라하는 선수들과 겨루어 당당히 가져온 승리이기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하던 일손을 멈추고 그와 함께 하나가되는 기쁨을 맛보았던 기억이 아련하다. 당시 모여 있는 사람들마다 웅성웅성하며 한마디씩 끼어든다. 고추장에 밥 비벼먹으며 연습하고 젖 먹은 힘까지 다 쏟았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라고들 치켜세웠다.
그때 기쁨과 희망을 전해준 그 권투선수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빛난 쾌거를 이뤄낸 의지의 한국젊은이였다. 현실의 팍팍한 어려움을 연습과 굳센 정신력으로 승리의 기쁨으로 승화시킨 어린젊음이기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나 자신도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무한한 가능성의 앞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후 더욱 그 선수를 잊지 못하고 수십 년을 기억 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오늘 그 선수의 흉상조형물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나의 젊은 시절 기억을 불러보았다. 그는 우리들에게 앞날에 대한 가능성의 신호를 보내며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보태주었는데, 원주에 있는 체육공원에서 그의 흉상조형물을 보고 놀랐다. 건립된 지 오래되어 글씨가 잘 보이지 않고 읽기가 힘들었지만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가며 그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부심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갔다. 고생과 노력으로 얻은 영광의 순간들을 오래 누리지 못하고 한창 나이에 불귀의 몸이 되었다는 것과 그가 흉기에 찔려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아픔과 미련을 더했다. 온갖 어려운 여건과 환경에서도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했던 한 청년의 삶이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타인의 행위에 의하여 꺾이게 된 것이 안타깝다.
그의 사망소식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오래전 어느 날 방송을 통해서 비보를 전해들은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기의 앞날을 개척해나가는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승리에 크나큰 용기를 얻었는데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어떤 일행과의 말다툼 끝에 상대편이 휘두른 흉기에 큰 상처를 입고 입원 후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평생의 꿈을 땀으로 일궈낸 유망한 선수의 갑작스런 죽음은 한동안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선 그의 삶과 죽음의장이 너무 짧은 시간동안에 벌어진 사실이었다. 죽음이란 다른 사고사나 지병으로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한껏 꽃을 피울 나이에 그것도 흉기에 의하여 생을 마감하였다는 것에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우연한 다툼인지 원한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죽음은 한때 전 국민을 들뜨게 했던 함성과 멕시코하늘에 태극기를 높이 펄럭이게 한 그의 불타는 젊음의 혼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게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비와 바람에 씻겨 흉상의 모습과 글귀가 허물어져가는 모습에 안타까움과 함께 젊은 나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젊음의 선물을 잃어버린 심정이다. 그의 흉상을 더듬으며 아쉬운 그의 삶을 돌이켜본다. 은퇴 후 그의 재능을 후배를 위하여 봉사하고 명성에 걸맞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들어 쉬 발길이 떼어지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런저런 상념에 돌아가는 발길이 가볍지 않다. 그에 대한 마음속 깊은 아픔을 오랫동안 간직하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영덕문학 2024년 제54집 게재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