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 [컨페션]은 역시 명배우 출신은 명감독이 될 토양을 갖추고 있다는 진리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조지 클루니는 이제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용서받지 못할자/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워렌 비티(레즈) 로버트 레드포드(흐르는 강물처럼) 케빈 코스트너(늑대와 춤을) 조디 포스터(천재소년 테이트) 팀 로빈스(데드 맨 워킹) 등 명배우 출신 명감독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조지 클루니의 연기가 명배우 칭호를 받을만큼 농익은 작품이 있는지, 의문은 잠깐 접어두자. 분명한 것은, 그는 할리우드 흥행시장에서 상업적 검증을 받은 특급 스타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최무룡 김진규 등 작고한 원로배우들부터 이경영 등에 이르기까지 배우 출신 감독 계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할리우드처럼 뚜렷한 강세를 보여주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유지태 정우성 김인권 방은진 등 젊은 배우들이 감독 수업을 차근차근 쌓고 있으므로 우리도 곧 명배우 출신 명감독들이 등장할 것으로 생각된다.
[컨페션]은 1984년에 출간된 척 베리스의 자서전 [위험한 마음의 고백-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토대로 하고 있다. 미국 방송계의 전설적 인물인, 프로듀서 출신 쇼 진행자 척 베리스가, 사실은 CIA요원으로서 33명을 살해한 전력이 있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함으로써 당시 엄청난 충격을 주었었다. 현대 TV 프로그램의 독창적 장르로 인정받고 있는 리얼리티 TV의 시초격인 원조 사랑의 스튜디오같은 [데이트 게임](1963, ABC), 음치 출연자가 열심히 노래 부르면 조금 듣다가 ‘땡’을 울리는, 전국노래자랑류의 [땡쇼](Gong show)가 모두 척 베리스의 아이디어로 탄생되었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톱 10에 진입시킨 소설도 쓴 바 있는 척 베리스의 전력을 들어, 그의 자서전은 허구로 창조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진실일지도 모른다. 진위는 아직도 가려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생존해 있는 척 베리스의 고백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독자, 혹은 관객 여러분들 개인이 판단할 몫이다.
척 베리스의 자서전은 우리 시대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인 찰리 카우프만이 각색하면서 독특한 향취를 갖게 된다.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전대미문의 시나리오를 써서 자신의 존재를 더할 나위없이 뚜렷하게 각인시켜 주었던 그는, 이후에도 [휴먼 네이쳐][어댑테이션] 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창의력 넘치는 시나리오로 자신만의 독보적 스타일을 확립한 작가다.
그러나 우리는, 폭발력 있는 원작을 바탕으로 재창조 된 찰리 카우프만의 뛰어난 시나리오도 좋지만, 그것이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일차적 힘은 조지 클루니의 연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는 섬세하게 배우들의 감정을 집어내면서 복잡한 이야기를 힘있고 리드미컬하게 끌고 간다.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 위한 연출의 의도적 부분이 없지 않지만, 낮에는 TV의 쇼 프로듀서, 밤에는 CIA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는 이중생활자 척 베리스(샘 록웰 분)나 그의 주변에 포진한 여자 친구 페니(드류 베리모어 분), 또 다른 CIA 비밀요원 패트리샤(줄리아 로버츠 분), 그리고 척의 CIA 대부인 짐(조지 클루니 분)과의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가 선명하게 교직된 것은 연출의 공이다.
특히 서사적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다양한 연출기법으로 압축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씬들이 눈에 띈다. 지나친 압축으로 이중생활자의 고통과 그의 내면이 더 울림있게 전달되지 못한 흠은 있지만,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샘 록웰의 파장있는 연기를 조화롭게 끌어낸 것은 연출자의 노력 때문이다. 낮/밤, 즉 TV 프로듀서/CIA 요원의 상반된 직업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대중적 흥미를 지속시키는 것도 효과적이다.
브래드 피트와 맷 데이먼이 까메오로 등장하는 부분은 웃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도 TV 쇼에 나와서 폭탄 대접을 받는 것은 너무 짓궂은 장닌이다. 여배우 중에서 최고의 출연료를 받는 줄리아 로버츠가 기꺼이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렇다. 조지 클루니의 대단한 맨파워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중생활자의 줄타기처럼, 조지 클루니의 위험한 연출이 아슬아슬했지만 그러나 매우 거대한 미학적 야심을 숨기지 않으면서 힘있게 몰아부친 그의 영화적 공력이,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축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