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고사리를 마무리하며
추석이 다가오나 보다. 고사리 주문이 들어온다. 봄에 고사리를 산 집에서 또 주문이 들어온다. 고사리가 맛있어서 다 먹어버렸단다. 친인척이 고사리 맛있다고 해서 선물을 해 버렸더니 자기네 먹을 게 적어서 다시 주문한다는 집도 있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아주 별 것도 아니지만 텃밭의 풋고추도 몇 개 따 넣어주고, 오이도 따 넣어준다. 한 여름 끝도 없이 열릴 때는 처치 곤란이더니 정작 필요할 때는 많지 않아 넉넉하게 줄 수 없어 미안하다. 완전한 무공해니까. 한 두 끼 맛있게 먹어주면 고마운 거다.
식탁 위에 늘 마늘과 된장과 풋고추, 오이가 놓인다. 생으로 먹는다. 끼니마다 똑 같은 반찬이지만 질리지 않는 것은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기 때문이 아닐까. 된장은 아무리 먹어도 안 질리는 게 신기하다. 오늘같이 남편이 두 어른 모시고 근교 도시 큰 병원에 간 날은 혼자 먹는 점심 한 끼가 편하다. 여러 가지 반찬 꺼낼 것도 없이 생된장에 풋고추 서너 개면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올해는 신기하게 고추가 병들지 않고 주렁주렁 달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추 좀 많이 심을 걸. 풋고추 안 따낼 걸. 이런 욕심이 또 앞선다.
올해는 모든 농작물이 풍년이란다. 고추농가도 병이 적어서 수확량이 많단다. 마늘과 양파는 값이 고공행진을 하는데 고추 값이라도 싸야 서민의 빈 호주머니에 김장 걱정 덜지 싶다. 농작물도 흉년이라 떠들어야 대접받는 세상이다. 호주머니가 빈약한 서민에게는 싼 가격에 좋은 농작물을 살 수 있어 좋지만 농사꾼은 눈물 난다. 지난해는 양파 가격이 싼 덕에 양파 농사를 짓는 이웃사촌이 자잘한 것을 두 망이나 갖다 줘서 잘 먹었다. 올해는 양파 값이 금값이라는 바람에 자잘한 것도 나누어주는 농가가 귀하지 싶다. 그래도 농사꾼은 나누어 먹을 줄 안다.
마지막 남은 고사리를 소포장 했다. 물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올해는 고사리 물량이 적어 봄에 다 소비가 될 줄 알았지만 소비가 덜 됐다. 한 이태 단감농사에 매진한다고 고사리 농사에 소홀했던 탓이 가장 컸고, 고사리 농가가 늘어난 탓도 있고, 고사리 물량이 많아진 탓도 있다. 우리 집 고사리를 사 먹던 이웃 몇 집도 텃밭 가나 산기슭 자투리땅에 고사리 뿌리 구해 심었더니 자기네 먹을 고사리는 된단다. 고사리농사도 한 물 간 듯싶지만 이미 터 잡았으니 더 신경 써서 맛있는 고사리를 생산하는 수밖에 없지 싶다. 다행히 우리 집 고사리가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니까 고마울 따름이다.
중년 농부들 몇이 앉으면 하는 말이 농사지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한탄한다. 농사도 과잉 생산이 무섭다. 어떤 농사든 그것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 너도나도 달려드는데 돈 버는 사람은 초창기에 시작한 계산 빠르고 눈 밝은 농부와 자재비나 묘목 장사 밖에 없지 싶다. 뒤늦게 소문 듣고 달려들었다가는 밑천만 날리고 만다. 귀농했다가 몇 년 만에 있던 돈 다 날리고 쪽박 차고 다시 도시로 나 앉는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니지 싶다.
고사리 한 봉지를 삶아서 물에 담갔다. 철분이 가장 많이 함유된 식품이라는 고사리다. 우리 집 식탁에 수시로 올라오는 고사리나물인데 질리지 않는 것도 내 손으로 거둔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식물도 생각한다고 했다. 정성과 사랑으로 키우고 거둔 것들이라 고사리도 한 맛 더 내 주는지 알 수 없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