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찬란한 내일로>
1.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칙이나 가치관은 삶을 안정되게 하고 불필요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러한 원칙이 완고한 관습으로 변화거나 때론 타인에게 불편함을 넘어 강요에 이른다면 그것은 분명 변화되어야 할 구태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원칙의 중요성과 효용성에만 집중할 뿐 그것의 위험성을 인식하기는 어렵다. 현실적인 좌절이나 심각한 갈등이 생긴 후에야 원칙을 점검하게 된다. ‘원칙’은 결국 자신의 편향적 감정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좀 더 나은 삶을 지향한다면 ‘원칙’이라는 폐쇄적 형태를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치에 주목해야 하며 그러한 가치실현에는 언제나 다양한 방식의 선택지가 존재할 것이며 변화에 두려움 없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2. 영화 <찬란한 내일로>는 비록 몇 년에 한 번씩 영화를 만들지만, 30년 넘게 영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탈리아 감독이 주인공이다. 그는 영화 크랭크인이 시작되면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하고 자신만의 원칙에 따라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다. 그러한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새로운 변화의 요구라 할지라도 여전히 수용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완고함은 배우들의 애드립에도 유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내가 참여하고 있는 다른 영화에 개입하고 훈계하는 도넘은 행동까지 보인다. 그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적 원칙과 영화적 문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3. 영화는 감독이 만드는 영화 속 내용과 현실 속 감독의 모습을 병행적인 연출방식으로 전개한다. 감독이 만드는 영화는 1950년대 헝가리 자유운동을 배경으로 소련의 군사적 침략에 대한 이탈리아 공산당 기관지 편집장의 고민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편집장이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공산당의 종주국인 소련에 반항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에 결국 스스로 자살에 이르는 결말로 진행 중이었다. 현실 속 감독의 생활은 그동안 누적된 불편함이 낡아진 부대자루의 구멍을 뚫고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딸은 나이든 남자와 결혼하려하고 남편의 고집스런 행동에 지친 아내는 이혼을 통보한다. 영화 제작사 또한 제대로 된 자금을 준비하지 못한 엉터리였음이 밝혀지고 영화 제작이 어려워지자 배우들도 하나 둘 촬영장을 떠난다. 총체적 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감독의 성격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한 것은 원칙에 대한 지나친 몰입때문에 변화에 무지했던 감독의 태도가 중대한 요인을 제공했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다.
4. 영화 제작을 지속하기 위해 ‘넷플리스’와 접촉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여전히 수용하기 어렵다. 영화 제작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위기가 닥쳐오고 개인적 삶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만한 심각한 일이 발생하자 감독은 자신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아내를 신뢰하였지만 그것은 애정이 아닌 영화작업을 위한 유용함때문이었고, 타인들의 견해들을 압박하고 무시한 행동은 독선적인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변화의 출발은 흥미롭게도 한국 영화제작자들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의 영화제작자들은 넷플레스와는 다르게 감독의 영화가 갖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였고 제작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화를 다시 시작하게 되자 그의 행동은 조금씩 완고함에서 벗어난다. 타인의 의견을 듣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결혼을 발표한 딸에 축하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5. 감독의 변모를 완벽하게 표현한 장면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영화의 결론을 완전히 바꾸는 것에서 나타난다. 편집장의 자살로 예정되었던 장면은 소련 침공에 대한 편집장의 항의로 바뀌었고 결국 이탈리아 공산당은 소련과의 주종적 관계를 단절하고 순수한 마르크스 사상의 실현체가 되기로 선언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켰던 폐쇄된 원칙에서 벗어나자, 영화 속 편집장이 갖고 있던 공산당의 종주국을 비판할 수 없다는 원칙적 사고 또한 무의미하다는 점을 자각한 것이다. 결국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연대한 시민들의 행진은 개인적으로는 변화에 무지했던 감독의 갱신된 모습과 함께 폭력으로 동맹국가를 침략한 소련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거부했던 이탈리아 공산당의 힘든 선택에 대한 찬사가 담겨져 있다.
6. 영화 <찬란한 내일로>는 좀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분명 현재의 어리석음을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어리석음은 때론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지나친 확신에서 파생한다. 잘못할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바꿀 수 없다는, 어리석음은 타인에게도 심각한 고통을 주지만 정말로 위험한 것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통합적으로 보지 못하고 페쇄된 공간에서 고립되는 근본적인 피해를 본인에게 준다는 점이다. 원칙과 신념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조건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을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판단하고 보편적 가치를 통해 통합적으로 성찰하지 못한다면 아집에 불과할 것이다. ‘변화’에 대한 개방성, 그것 또한 하나의 원칙이지만, 좀 더 포괄적인 것들을 수용하게 해주고 단편적인 원칙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지향점이 될 것이다.
첫댓글 -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치
- 변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