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하고 있는데 나를 찾는 교내방송이 들려왔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수업중 사용하지 않는 방송인데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을 하고 나는 황급히 교무실로 달려갔다. 교감선생님께서 한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는 담임선생님과 함께 119앰브란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난감해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 앞의 도로는 국도 45호선인데 2차선 도로에서 4차선 도로로 확 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도로가 쭉 뻗어있어 거의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는데 언제나 교통사고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도로이다. 그리고 사고가 나도 대형일 수밖에 없기에 나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L은 1학년 학생으로 평소에 온순하고 차분한 성격의 학생인데 병원에 가기위해서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야만 했다. 교문을 나오면 바로 옆에 횡단보도가 있는데 처음에 횡단보도를 통해서 가다가 L이 버스를 타야할 반대 방향에서 봉고버스가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L은 달려오는 봉고버스에 머리를 부딪쳤고 튕겨져 나가 4-5미터 날아가 도로에 떨어졌다. 다행인 것은 그 쪽에 자동차가 오지 않아서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사고를 목격한 아이가 교무실로 전화를 했고 선생님들이 즉시 출동하였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이미 경찰이 현장에 와 있었다고 한다. L은 담임선생님과 함께 119구급차를 타고 J병원으로 갔고 학교에서는 전교직원이 모여들었다.
나는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J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을 하니 그 아이는 CT를 촬영하고 있었고 부모님과 가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J의 어머니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아버지는 근심어린 모습으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거나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이 도착한지 한 시간 정도가 지난 시간 L은 촬영을 마치고 응급실로 옮겨졌다. 이동용 침대에 담요로 덮인 모습과 사고로 인해서 부어오른 얼굴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응급실에 그 아이를 남기고 교사들은 다시 대기실로 나왔다.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 촬영 결과에 대한 설명이 있는 듯 했다. 형광등 불빛을 먹고 비치는 사진을 판독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쉬웠는데 담당의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외상은 없고 특히 우려했던 부분은 피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시간 정도가 지나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MRI촬영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설명을 듣는 선생님들이나 가족들 모두 숨죽이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설명을 들은 후에 서로의 얼굴에 조금은 안도의 한숨이 서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중환자실에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옛날 다른 아이의 교통사고가 문득 떠올랐다. 10 여 년 전에 내가 삼학년 담임을 하던 이맘때 한 아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서 세상을 떠났다. 그 아이는 내가 맡은 학급의 반장을 맡고 있었는데 모든 부문에 모범이었고 고등학교에 합격을 한 상태였다. 그 아이가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오다가 다른 아이를 집에 데려다 준다고 뒤에 태우고 가다가 길모퉁이에서 오토바이를 제어하지 못해서 도랑에 떨어지고 말았는데 뒤에 탔던 아이는 다행히 살아났으나 그 아이는 목뼈가 부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며칠동안 녀석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내 제자 중 한명이 교통사고로 목숨까지 잃은 것이 내 탓만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그 아이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이 멎어있었고 그 아이 어머니의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숨이 멎는 듯 했다. 그 아이는 다음 날 화장터로 향했고 아이들과 나는 그 아이가 눈에 밟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사물함에는 아이들의 편지와 꽃으로 가득 찼고 발렌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이 가득했다. 졸업식 날 나도 녀석들도 함께 울었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녀석의 사물함을 정리하면서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요즈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많은 안전교육을 시킨다. 나도 학생들에게 국민정신교육 시간을 이용해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교통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지역이라 학급 담임선생님이나 교과 선생님이나 시간만 나면 교통안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위해서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깃발을 들고 교통지도를 하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이 있다.
첫 번째로 놀라는 것은 학생들의 등교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거의 시속 90-100Km는 달린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바람이 날아오면서 우리들에게 많은 위협을 준다. 두 번째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들이 학교 앞 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등교를 하는 시간이 출근 시간과 맞물리기 때문에 바쁜 것이 이해가 가지만 교통질서는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학생들의 안전의식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이 교육을 시켜도 아이들의 감각은 둔하다. 초등학생들이 그저 손만 들고 가면 되는 것처럼 아이들은 횡단보도로만 건너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에 그 학생의 담임선생님과 함께 면회를 다녀왔다. 중환자실이라 8시부터 30분간 주어진 상태인데 녀석을 보니 얼굴에 붓기가 조금 빠진 것 같았다. 다른 환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위해서 살금살금 침대로 다가가 녀석의 손을 잡았다. 녀석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손이 차갑게 느껴졌으나 어제보다는 온기가 더 있다는 담임선생의 말이다. 나는 녀석의 손을 잠시 붙잡고 ‘의식을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단한 기도를 했다. 병실을 나오면서 나의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오전에 MRI를 찍는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에 오면서 나의 마음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운전자들에게 시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학교 앞에서 과속으로 달리는 운전자들을 볼 때 마다 경고장을 보내고 싶어진다. 학교 앞에서 일단정지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 속도라도 줄였으면 한다. 아무리 학교에서 교육을 시키고, 부모님들이 부탁을 한다고 해도 운전자들이 조심을 하지 않으면 교통사고는 늘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의식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L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른들의 실수로 어린 아이들이 생명까지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서 빨리 의식이 돌아오고 회복해서 교실에서 선생님들과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수업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휴, 이글 괜히 읽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마음이 우울하고 가슴이 마구 뛰었어요.내자식이나 남의지식 하것없이 저는 아이를 무척좋아 하거든요 운전자들도 내자식이라고 생각한다면 학교앞에서 그렇게는 안할텐데..선생님 마음이 아프지겠어요 위로 드립니다
제자를 사랑하신 선생님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사물함 정리할때 모습을 그려보면서 가슴이 아파옵니다.그 정성에 힘입어 하루빨리 교실에서 함께 하기를 같은마음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