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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몬 박사를 만난 본은 구(舊)서독의 수도였다. 하지만 통일 독일의 수도가 된 베를린처럼 크고 웅장한 도시가 아니다. 도심 한복판의 광장조차 그리 인파가 북적이지 않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지몬-쿠허&파트너스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동안 산책하듯 주택가와 공원을 지났다. 마냥 평화롭기만 했다. '히든 챔피언' 기업의 3분의 2가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하니 아마 이와 비슷한 풍경일 것이다. 이런 곳에서 묵묵히 실력을 키워 세계 최강으로 우뚝선 히든 챔피언들. 그들의 숨은 저력이 새삼 피부에 와 닿았다.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가 오히려 세계로 눈 돌리는 계기가 돼
―전 세계적으로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어떻게 분포돼 있나요?
"2000여개의 히든 챔피언 중 3분의 2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같은 독일어권에 있습니다. 또 미국에 300여개, 일본에 100개, 중국에 25~30개 안팎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한국에도 25개 정도가 있고요. 같은 유럽이지만 프랑스나 스페인에는 매우 적은 반면 북유럽이나 이탈리아 북부지방에 많이 포진해 있어요."
―왜 독일어권에 히든 챔피언들이 그렇게 많나요? 인근 프랑스에는 거의 없는데요.
"프랑스는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일찍 형성된 반면 독일은 오랫동안 군소(群小) 국가들이 난립했어요. 결국 독일 기업들은 매우 작은 내수시장을 무대로 활동해야 했는데, 그걸로는 모자라 일찍부터 해외의 더 큰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됐죠. 여기에 독일의 기술지향적인 전통도 히든 챔피언을 양산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가령 독일의 '크노프(Knopf)'라는 단추 회사는 25만종이나 되는 단추를 만들어냅니다. 독일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전문화된 분야에 몰두하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다시 말해 세계화에 일찍 눈뜬 것, 그리고 기술지향적인 전통이 독일 히든 챔피언의 기반이 된 것이죠."
■"새로운 히든 챔피언은 태양열, 풍력 분야에서 많이 탄생할 것"
―그 동안 조사한 많은 히든 챔피언 기업 중에 가장 인상적인 기업 하나를 꼽는다면?
"풍력(風力) 발전 분야에서 독일 1위 기업이고, 세계 2~3위를 다투는 '에네르콘(Enercon)'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1984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풍력 터빈과 관련한 전 세계 특허의 40% 이상을 소유하고, 이 분야 기술을 선도합니다. 그래서 제품 가격이 경쟁사보다 20% 가량 비싼데도 10년 만에 매출을 2억유로에서 20억유로로 10배 키울 수 있었어요."
―앞으로 10년간 어떤 분야에서 새로운 히든 챔피언이 많이 등장할까요?
"태양열, 풍력 등 에너지 분야가 향후 10년간 가장 혁신적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인터넷이나 IT 분야는 이에 비하면 훨씬 좁은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교수님은 1996년에 '히든 챔피언'이라는 저서를 냈습니다. 이번에 새로 낸 '21세기의 히든 챔피언들'은 개정 증보판 격인데, 10년 전에 비해 히든 챔피언들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모든 측면에서 세계화가 크게 진전됐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겠죠. 이제 히든 챔피언 기업의 고용의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이뤄집니다. 또 모든 프로세스가 국제화됐어요. 히든 챔피언들의 시장 지배력도 한층 높아졌어요. 가장 강력한 경쟁자와 비교한 상대적 시장점유율이 10년 전에는 1.56배이던 것이 지금은 2.34배로 격차가 더 벌어졌어요. 그만큼 세계화에 잘 적응해 왔다는 뜻입니다."
■세계화 물결 속에 경영권 승계의 딜레마
―실패한 히든 챔피언들도 있지 않나요?
"물론이죠. 10년 전에 선정한 히든 챔피언 457개 가운데 약 10%가 시장에서 사라졌어요. 1년에 1% 정도 도태된 셈이죠. 하지만 독일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 가운데 37%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비교하면 히든 챔피언은 놀라운 생존 능력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사라진 히든 챔피언들의 실패 원인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기술의 변화로 인해 도태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레플렉타(Reflecta)'라는 환등기 생산업체는 디지털시대를 맞아 살아남지 못했어요. 둘째는 경영권 상속문제 때문입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도 살아남은 히든 챔피언들이 내부의 경영권 상속문제 때문에 좌초한단 말인가요?
"히든 챔피언의 3분의 2는 가족기업입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없이 집중적으로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든 챔피언의 창업자들에게는 일이 곧 삶이요, 기업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인생 전체를 겁니다. 하지만 후계자 선정이 가장 큰 도전이요, 결정적인 약점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가족 기업가의 90%가 아들이나 딸 등 가족이 회사를 이어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반대로 가족이 경영하는 히든 챔피언은 1995년의 62.3%에서 2005년에는 51.8%로 오히려 줄었어요. 세계화로 인해 경영 환경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경영의 전문화가 요구되는 때에는 회사를 누가 소유하느냐보다 누가 경영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아들이나 딸이 당연히 경영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강한 경쟁자의 견제를 오히려 즐기라"
―세계적으로 경기가 냉각되고 있습니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의 불황 극복 전략은 무엇인가요?
"히든 챔피언들은 60~70%의 시장 지배력을 갖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제품을 대체할 경쟁 제품이 마땅히 없어 경기 침체기에도 영향을 덜 받죠. 또 시장이 세계화돼 있어 미국 시장에서는 부진할지 몰라도 스웨덴이나 중국, 두바이 등 다른 지역에서는 새롭게 시장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 자체가 위험 분산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히든 챔피언처럼 시장을 좁게 정의하고, 그 속에서 60~70%의 높은 시장 지배력을 가지라는 얘기는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구조를 구축하라는 뜻 아닌가요? 하지만 일단 그 위치에 오른 뒤에는 경쟁 압력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경쟁력을 상실할 우려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적절한 견제가 필요합니다. 높은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되 기술적으로 도전해오는 강한 경쟁자가 있는 시장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단지 가격을 낮춰서 도전해오는 회사는 좋은 경쟁자가 못 됩니다."
―10년 후 '히든 챔피언'을 다시 펴낸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시는지요?
"지금의 히든 챔피언 중 상당수는 기업 규모가 더 커져 빅 챔피언이 돼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화가 더 진전돼, 예컨대 독일 회사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로시안 기업으로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고용의 세계화도 더 진전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종업원, 경영진으로 구성원이 다국적화돼 있을 것입니다."
■"한국 중소기업, 어려워도 세계 시장 직접 두드려야"
―한국 경제는 대기업 의존도가 높습니다. 독일처럼 독립적인 중소기업이 성장해 히든 챔피언이 되기 힘든 환경 아닌가요?
"독일에 '알디(ALDI)'라는 대형 할인점이 있어요. 납품업체의 90% 가량이 그 유통업체 하나에만 납품하던 처지였어요. 하지만 납품업체들은 점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알디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갔어요. 독일에 비하면 한국 중소기업의 여건이 독립하기에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국내 대기업에만 의존하지 않고 세계시장에 직접 접근하는 길을 적극적으로 뚫어야 합니다."
―히든 챔피언을 많이 길러내기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나요?
"독일에서도 정치인들은 립 서비스를 많이 합니다. 하지만 '히든 챔피언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무얼 할까'라고 정치인들이 물을 때마다 저는 '제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기업들에게 자유를 주라'고 대답하곤 합니다."
―한국 경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에 충고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중간 규모 이하의 기업들에 달려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용기를 갖고 히든 챔피언의 성공 전략인 집중과 세계화를 거울 삼아 경쟁력을 키우고 세계 시장에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기 바랍니다."
헤르만 지몬은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석학 중 한 사람이다. 전략, 마케팅 및 가격결정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힌다.
1979년 독일 본 대학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5년까지 빌레펠트 대학과 마인츠 대학에서 마케팅 및 경영학과 교수를 지냈다. 1985년에 컨설팅 회사인 지몬-쿠허&파트너스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매년 21%의 성장을 거듭해 2007년 현재 직원 403명, 매출 8000만 유로의 회사로 키웠다. 알리안츠, 아우디, BASF 등 독일 유수의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고객이며 11개국에 13개의 해외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익 창조의 기술' '가격 경쟁 전략' '생각하라!' 등 30여권의 책을 펴냈다. 1996년에 낸 저서 '히든 챔피언'은 출간과 동시에 각국의 경영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경영학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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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독일 수출이 세계 1위인 이유는 단 하나, 중소기업이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약 1000개의 시장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는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가 독일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