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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연 그리고 시 원문보기 글쓴이: 최운향
음력 정월 초사흘, 불암산 정경
음력 정월 초사흘, 불암산엔 아직도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하얀 눈 위로 서있는 누렇게 마른 野草의 시신들 어떤 건 꽃향기 그윽했던 옛날 영화를 못 잊은 듯 떨어진 꽃잎을 그리며 꽃받침을 받쳐들고 굳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몸은 깨져도, 만사를 떨치고 불변의 一念으로 응고된 等身佛처럼
은은한 그 담황색 光彩 절절한 그리움의 빛이라.
양지바른 곳에는 그 많던 눈은 녹고, 때가 오면 거침없이 기상을 펴려는 푸른 생명들 낙엽을 덮고 똬리를 틀고 있었고, 생강나무 꽃망울은 마냥 부풀어 오르는 여인네 젖꼭지 같았다.
나무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탄생한 소복의 고운 여인 어서 오시라고 단정히 큰절을 했다. 눈 녹은 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 떨어지며 고드름을 만들어, 강렬한 사내의 품안으로 파고들려는 여인의 자태를 보는 듯한 멋진 조각 작품으로 다듬어, 자랑스레 보여주기도 했다.
얼음장 밑으로는 뚝뚝 떼어낸 듯한 은빛 물방울이 쉼 없이 생겨 맥박 소리를 내며 흘렀다.
눈에 파묻힌 어린 산초나무가 날카로운 가시로 근접을 꺼리는데, 나무 가지에 걸려 꼼짝을 못하는 물오리나무 열매는 어서 좀 풀어달라고 도움의 눈짓을 보냈다.
마침 나무에 매달려 있던 아카시아 씨가 벌어진 채로 휘 허공을 날아 눈 위로 떨어지는데, 곁에 있던 가는 국수나무 가지가 외롭던 차에 반가운지 실 날 같은 함성으로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어디선가 오색딱다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 들으며 걷는데, 가까이 숨어서 나를 의식하고 있었을 고라니 녀석이 갑자기 후다닥 도망을 치면서 사람을 놀라게도 했다.
그 새, 태양은 붉은 숯덩이가 되어 보현봉 아래로 떨어지고, 차가운 서녘 하늘엔 아득히 조각배 하나 떠돌고 있었다.
음력 정월 초사흘 낮이 참 많이 길어졌다.
글, 사진(2013. 2. 12) / 최 운향
때를 기다리는 푸른 생명
생강나무 꽃망울
소복의 여인이 큰 절을 하며 맞는다.
물이 만든 멋진 조각 작품
코스모스 꽃받침
꽃향유. 눈밭에 서서 향기롭던 옛날을 그리워 한다.
들깨풀 꽃받침
미국쑥부쟁이 꽃받침
신갈나무 가지에........
아카시아 씨와 가는 국수나무 가지의 해후
어린 산초나무
나무 가지에 걸린 물오리나무 열매
풀은 죽었지만 그가 있었던 자리를 눈도 함부로하지 못한다.
석양이 북쪽으로 많이 올라와서 떨어진다. 오른쪽 봉우리가 보현봉이다.
오후 5시 57분, 태양은 붉게 달궈진 숯덩이가 되어 저물어 갔다.
음력 정월 초사흘 달
마두금. 몽골 전통 악기. 초원의첼로, 바이올린이라 부르기도 하며 유네스코가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지정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