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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 산행기
이번 산행지는 고흥의 팔영산이다. 거리가 멀어 오가는 것이 만만치 않지만 기암 괴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와 바다 풍광이 어우러진 풍경이 분명 좋을 것 같았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위나라 때 왕의 세수대야에 팔봉의 그림자가 비추어 왕이 신하에게 찾아보라고 하여 팔영산이라 불렀다 한다. 주변에 거칠 것 없이 시야가 시원스레 펼쳐지고 점점이 섬들이 떠 있는 광경이 상상되어 이번에는 정상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유화도구까지 챙겨가지고 나섰다.
고흥이라는 이름은 익숙하지만 가 본 일이 없어서 위치가 명확히 가늠되지는 않았다. 전남 남해에 면한 곳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 곳은 나로도 우주 기지가 있는 곳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우연히 그 지명을 들을 때마다 미래의 희망이 느껴지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6시 50분 출발 시각에 맞춰 당도하니 차 밖에서 회장단이 서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차에 오르며 먼저 온 회원들과 안사를 나누며 빈 좌석을 찾아 앉으니 잠시 후 차가 출발했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새벽 공기의 풋풋함이 느껴졌다. 양재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우측으로 전에 지나간 청계산에는 벌써 녹음이 덮여가는 모습을 띠고 있었다.
다시 산을 찾으며, 마치 산이 기운을 회복 시켜 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게 된다. 얼마전 몸살이 나서 목이 아파 고생을 했었다. 설계한 것이 다 지어질 무렵이면 신경이 곤두서고 피곤해져서 병을 얻기 쉽다. 그런데 아프다 보면 세월은 더 빨리 지나가 버리는 듯 하여 이래저래 허전한 기분이 들게 된다.
지난 3월 운악산 산행을 다녀 온 후로 한달만의 산행이지만 계절 감각은 많이 변해 있다. 몇일전부터 이 기온이 갑자기 치솟듯 높아져서 벌써 초여름 날씨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달 갔던 운악산 정상에서는 눈이 쌓여 시간이 거꾸로 가는 듯이 느껴졌었는데 그 새 초여름 운운하는 것이 갈수록 계절 감각이 종잡을 수 없게 되는 듯 했다.
길 가에 이따금 활짝 핀 벚꽃 가로수가 나타났다. 요새 한창인 때이다. 이맘때는 전국 곳곳에 벚꽃으로 유명한 곳들이 되풀이 소개되곤 하는데 그것을 부러워하듯 벚꽃을 심은 곳이 늘어나 벚꽃 명소로 불리는 곳도 점차 더 많아지고 있다. 벗꽃은 특이하게 몽롱하게 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벚꽃 철이 되면 마치 계절이 환상속에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왜색 시비도 있지만 그것의 원래 원산지는 중국이라고 한다. 그리고 재래종도 있어서 그런 선입관에서 벗어나게 했다.
7시 37분 송승헌 전 사무총장이 오늘 일이 생긴 강철준 사무총장을 대신해 행사 진행을 했다. 인사를 한 이종호 회장은 “아침 일찍 나오면서 신청 인원이 정원을 초과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일이 생겨 안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하는 생각도 하고 내가 나오지 말까도 생각했었는데 자연스레 적당한 인원이 참석하여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무사한 산행을 기원한다.”고 즐거운 비명 같은 말을 했다. 가는 시간이 5시 30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12시 전에 도착하면 4시간 반 정도 산행하고 오후 4시 30분에 서울로 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에 11시 30분 전에 도착해야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먼 거리를 당일 다녀오는 것이 퍽 강행군이 될 것 같았다.
7시 42분 차창 밖으로 전원 풍경이 보였다. 논은 잠을 깨우듯 바닥 쟁기질이 되어 있다. 먼 길이 부담스럽긴 해도 이번처럼 국토의 끝을 오갈 때는 국토를 생생이 느끼는 기회도 된다. 걸으며 피부로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땅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바라보이는 대지는 도시의 ‘땅’과 다르다. 경작지도 인간이 자연을 변형하여 일군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공으로 채워지고 작동되는 도시와 달리 경작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약동하는 봄에는 누구나 여행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봄은 우주 운행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빈 우주가 온통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느낌이다. 마른 땅에 돋아난 푸른 곡식과 풀들, 빈 터전위에 시시각각 달아오르는 생명력, 자연은 스스로 철 따라 제 모습을 드러낸다.
봄에는 마치 그 기운을 느끼고 와야 마음잡고 차분히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듯, 사람들에게 봄기운, 땅기운을 대하고자 하는 욕망이 몸 안에서 꿈틀대는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여행을 하는 것이 노는 것 같지만 수행자들도 안거와 만행의 시기가 있듯 여행하며 보고 느끼는 것도 좋은 공부일 것이다. 특히 자연으로부터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차창밖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 사이에 일군 밭둑에 핀 이팝나무 꽃이 싱그럽게 느껴졌다. 낮은 지대의 논에는 못자리를 만들고 벌써 물을 대어 놓은 곳도 있다. 그 논물이 말갛게 가라 앉아 파란 하늘이 비춰지고 있었다. 마을에 큰 정자나무에 잎이 자라나오고 있다. 천안을 지날무렵 차에서 7080노래 가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대 떠난 뒤에도” 같은 노랫말과 잔잔한 선율이 그 시대 정서를 공유한 일행의 추억을 회상하게 할 것 같았다. 계속해서 “편지”가 흘러나왔다.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하는 그 노랫말에 그 시절의 순수한 정서가 베어있었다. 요새와 달리 말 못하고 가슴알이 하는 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8시 20분 정안 휴게소에서 도착해 쉬고 다시 출발해 너른 들녘을 보며 지났다. 천지가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대지엔 타오르듯 생명의 기운이 타오르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에 취하여 어지럼병이 들 듯 했다. 군데군데 건너가는 하천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도시에서 하천 복개가 유행이지만 자연 하천의 살아 있는 느낌에는 비할 바 못된다. 익산 가까이 이르자 너른 들녘이 나타났다.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고 있었다. 막힘없는 들녘이 펼쳐 보였다. 클레의 대지 예술처럼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끝없이 펼쳐지는 느낌이 좋았다.
논산 톨게이트를 지나 호남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전주를 지나 정읍으로 가는 구간에 접어들면서 너른 들녘과 그 언저리 산과 마을들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10시 16분 정읍과 장성의 경계인 노령산맥 터널을 지나갔다. 그 터널을 빠져나가서 담양과 고창 쪽 길이 갈라지는 새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담양 곡성을 거쳐 내려가는 길인데 석곡리에 집을 지은 일이 있어 그 지역을 지나는 것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그 길은 담양, 곡성, 승주, 곡천, 벌교, 고흥으로 이어지고 남해 고속도로와도 연결되어진다.
10시 25분 황룡강을 지났다. 그 강은 극락천과 합류해 광주와 나주를 지나며 영산강이 되어 흐른다. 10시 45분 곡성 휴게소에 들러 쉬고 다시 출발하니 농부가 황토 흙 밭에서 농사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산수가 어우러진 터전에 자리 잡은 마을에서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내음이 풍겨나는 듯 했다. 11시 5분 순천에 접어들어 11시 22분 전수천 삼거리를 지났다. 길 주변은 승주 외서면이다. 깊 옆 하천은 고갈되어 있었지만 산자수명 그윽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길 옆 벚꽃이 절정을 지나 지고 있었다. 지리산 대간 끝 난 아래쪽에 순박한 느낌이 드는 고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잠시 후 고흥에 접어들었다. 지리산 대간 끝 난 아래쪽에 순박한 느낌이 드는 고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늘 차 안에서 일행이 한사람씩 짧게 자기소개를 했을 때 김강진 건축사가 고향이라고 해서 앞에 나가 고향 소개 좀 해달라고라고 하자 손을 저으며 옆자리로 와 앉으며 예기해 주었다. 고흥의 조선시대 지명은 흥양면이었다. 고흥, 해남 등 한반도 남단은 조선시대 유배가 많았던 곳이다. 1978년 사육신 묘에 현창(顯彰)된 김문기의 후손들도 고흥으로 유배되어 이곳에 뿌리를 두게 되었는데 김강진 건축사가 그들의 후손이라고 했다.
뭍으로부터 벌교 너머부터가 고흥이다. 벌교 혜정리에는 유명한 홍교가 있다. 바다로 내밀은 반도 형국으로써 벌교가 있는 곳만 자르면 섬처럼 된다. 그리고 그 조건에 의해 특유의 기후대를 보이는데, 바닷 내음이 베인 해풍과 햇살이 많아 마늘농사가 잘 된다. 오래 전 고흥에는 중고등학교가 하나밖에 없어서 공부하러 광주 순천 등지 외지로 일찍 나가며 고향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써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더 커지는 듯 했다.
2시 6군이 각기 말씨가 다른 고흥은 원초적인 환경과 인심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흥은 재정 자립도 2위인 잘 사는 고장이다. 청정하고 생산이 풍부하여 농산물, 해산물이 풍부하여 먹고, 놀고, 춤추고, 노래하기를 즐긴다고 한다. 고흥은 서재필 같은 역사적 인물과 한국의 대표적 화가의 고향이며, 고흥 금산면 거금도는 김일 선생 고향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해안의 77번 국도를 남해, 서해까지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교량 14개를 연결한 해양 관광도로가 이어진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고흥은 자랑할만한 인물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있고, 물자의 넉넉함이 있고, 뭍과 바다에서 나는 맛있는 먹거리와 순수하고 정감어린 심성의 주민이 어우러사는 살기 좋은 인상이 느껴졌다. 이번엔 팔영산만을 바쁘게 다녀가지만 언제고 한번 여유 있게 이 고장의 풍토와 멋을 제대로 음미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11시 38분 별교 외서면 식거리재 상수원 저수지 옆을 지났다. 들녘에는 보리가 웃자란 모습이 보였다. 기온이 점차 올라 차 안의 에어콘을 가동했다. 보성 터널을 지나 11시 47분 고흥의 본 영역에 접어들었다. 거기서 팔영산 까지는 20분 정도면 닿는다고 했다. 우측 야트막한 구릉에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독일 지멘스 태양광 발전기인데 누구나 설치하면 정부가 전력을 사주어서 농가마다 밭에 그것을 설치하는 붐이 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kw당 800원이었는데 600원으로 낮아졌다고 한다. 일몰전망대 표지를 보며 지나는 동안 저만치 들녘 너머로 바다와 섬이 보였다. 김 건축사가 그 섬들을 꼬막산이라고 불러 이유를 물으니 팔영산에 오르면 섬들이 꼬막같이 보인다고 했다. 차가 좌측으로 꺽어 접어들면서 팔영산이 보였다.
팔영산은 성주봉을 중심으로 유영봉, 팔응봉, 월출봉, 천주봉 등 8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산세가 험하고 기암괴석이 많은데다, 푸른 바다 위에 섬들이 떠 있는 절경 덕분에 등산객에게 인기가 높다. 또한 날이 좋을 때면 멀리 일본 대마도 섬도 보인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소문이 난 곳이라도 어차피 각자 현지에 가서 몸으로 느껴야 제대로 기억 할 수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12시 10분 팔영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입구에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산나물 등을 팔고 있었다. 능가사 입구가 막다른 골목 끝처럼 길 끝자락에 보였다. 그 곳은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당우가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이전에는 화엄사, 대흥사, 송광사와 함께 그 지역에서 4대 사찰로 꼽혔다고 한다. 능가사 옆을 지나 공원으로 조성된 곳을 지나니 좌우측으로 길이 나뉘는데 1봉은 좌로 오르게 되어 있었다.
1봉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거기서 1봉 정상은 2.5km 정도 되었다. 조금 오르자 좌측으로 맡처럼 평평한 곳에 유채꽃과 벚꽃 등이 갖가지 색상을 수놓으며 피어 있었다. 점차 산길로 깊숙이 접어들었다. 길은 비교적 완만했지만 절편 같은 바위가 박혀 있는 곳들이 많았다.
길 옆에는 얕은 계곡이 있지만 물은 말라 있었다.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신록이 번져가고 있었다. 잎이 피어났으나 아직 그늘을 이루어내지는 못한 생태에 기온이 높아 이마에 땀이 흘렀다. 고흥10경과 성현들의 말을 적어 놓은 표지가 가끔 눈에 띠었다. 흔들바위가 나타났다. 거기서 1봉 정상 오르는 길은 좌측으로 나 있었다. 다시 조금 오르자 슾 길 저 앞에 암봉이 우뚝 서 보였다. 지대가 높아져 점차 주변 풍경이 드러나 보였다.
8봉 정상부는 모두 암벽으로 되어 있어 체인과 발판, 손잡이 등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바위 절벽을 올라가다 보니 주변 풍광이 펼쳐 보였다. 절벽에 한 그루 진달래가 핀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사진을 찍었다. 암벽을 오르며 돌아보자 고대하던 바다 경치가 보였다. 잠시 후 정상에 당도했다. 중년 부부가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부탁해 찍어 주고 돌아보니 산과 어우러진 섬과 바다의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 보였다. 바다에 섬이 점점이 박혀 보이는 기대하던 풍경이 눈에 띠었다. 더 가지 않고 1봉 정상에서 그려도 충분할 것 같았다.
앞의 산세와 원경의 뭍과 섬들이 원근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포착하고 이젤을 펼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이는 풍경과 켄버스 공간이 잘 맞지 않았다. 눈으로야 모든 게 종합해 하나의 인상으로 느낄 수 있지만, 크기가 정해진 화판 위에서는 생각하는 구도를 다 닮기 어렵다. 촉박한 시간에 그릴 것이 벅차게 느껴졌다. 구도를 잡고 색칠을 하는데 일행이 올라왔다. 마음이 급해 눈인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빨리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다. 그림을 빠르게 그리는 편이지만 일행과 산행 보조를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일행은 1종과 2봉 사이 계곡 지점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그림을 빨리 그리고 뒤따라가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걸려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함께 식사하는 것은 포기하고 일행이 다시 뒤돌아 와서 함께 내려갈 수 있을 것처럼 의식하고 있었다. 스케치를 마치고 정리하다 보니 일행중 한 사람이 돌아왔지만 그 뒤에 뒤따라오는 일행이 없었다. 그때서야 순환 루트로 반대쪽으로 넘어 간다는 것이 생각났다. 서둘러 짐을 챙기고 2봉을 오르며 시간을 보았다. 하지만 그 방향에서 일행을 만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을 바꾸고 올라간 길로 내려섰다.
배낭과 달리 양 어께에 걸친 두 개의 짐이 덜렁 거려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는 암벽에 부딧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정상부 암벽 구간만 내려가면 안심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암벽길을 내려 왔다. 다시 바다쪽 풍경이 시원스레 다가왔다. 오르던 길을 되돌아 절 입구로 나왔다. 뒤돌아보니 뒤에서 선두가 빠른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다. 알맞게 시간을 맞춰 내려온 것 같았다.
함께 능가사에 들렀다. 햇살이 이쪽에서 비추어 절 뒤로 보이는 팔영산이 오전보다 더 뚜렷하게 보였다. 원래 모습을 갖추고 있진 않지만, 너른 터에 서 있는 몇 채의 건물이 더 너르게 여유롭게 느껴지게 했다. 동백꽃 붉은 꽃술들이 나무 아래 깔아 놓듯 떨어진 모습이 특별해 보였다. 산행을 마친 넉넉한 기분에 즐기듯 사진 촬영들을 했다.
절 밖으로 나오자 절 입구에서 할머니들이 고사리를 등을 팔고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산나물 등을 손수 따다 길손이 사주기를 바라는 모습이 상가 건물들이 즐비한 곳과 대조적으로 정감 있게 보였다. 할머니 한 분이 매실주를 한잔 권해 받아 마셨다. 옆 분이 그 분에게 준 것 같은데 잘 담구어진 술 맛이 좋았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가게에서 몇몇 분들이 모여 한가롭게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러 땀을 씻고 나니 기분이 더 상쾌해졌다.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는 시간이 잠시 여유롭게 느껴지고 주변 풍경이 포근히 다가왔다.
일행이 모두 차에 올라타자 5시 10분 출발했다. 김강진 건축사가 유자막걸리를 사 주고 하루 머물다 온다며 내렸다. 차가 동네를 지나는 동안 복사꽃 한그루와 돌담, 텃밭이 어우러져 보였다. 집은 양철지붕이었지만 그 주변 분위기 때문인지 농가 느낌이 물씬 났다. 길 우측 너른 들녘에 보리, 마늘 밭 등이 보였다. 자운영이 아름답게 수 놓인 곳도 보였다. 땅에 기대인 산지 고을이 들과 평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마른 대지에서 움을 티우게 된 것이 얼마전인데 벌써 대지는 온통 파릇하게 덮혀 있었다. 보리고개라는 말이 있는데, 일찍 수확할 것이 있어 다행이었다. 앞에 보이는 산구비를 넘으면 다시 비슷한 풍경이 보였다. 앞을 가리던 산모퉁이를 지나자 다시 농촌 마을이 나타났다. 해맑은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산허리를 돌아들면 도시가 나올까봐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가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 행해 가고 있지만 천천이 돌아가고 싶었다. 산 너머에 계속 산과 들과 마을이 보였다.
파인힐 컨트리크럽을 지나는 국도도 벚꽃길이었다. 벗꽃은 느낌이 특이한데가 있다. 꽃 모양은 매화와 비슷하지만 잎이 함께 피고 흐드러지는 만큼 기품은 그보다 덜 느껴지는데 유독 수많은 꽃이 맺혀서 그 꽃이 만개할 때 바라보면 마치 꽃 물살에 잠기게 하는 듯한 힘을 갖고 있다. 그 몽롱함이 세월을 휩쓸고 가는 듯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벚꽃 피는 때는 일년중 가장 화사한 기분으로 지나는 시기일 듯하다.
6시 29분 휘돌아가는 하천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주변에 나지막한 산들이 구릉을 이루고 있었다. 7시 30분 백양사 휴게소에 들러 매생이 우동 등으로 저녘식사를 했다. 아직 도착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시각이라 식사를 해야 될 것 같았다. 다시 가다 9시 30분 천안 휴게소에 들렀다. 눈을 부치던 사람들도 다 께어나 여기저기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어 차 내가 활기로웠다. 평소 가기 어려운 먼 곳의 좋은 산을 다녀온 건강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090411)
봄들녘 4
04. 4. 26
4월
앞 산 종달새
봄철 나른한 때
하늘로 한 번
솟구쳐 날아오른다
항아리에 내린 청주처럼
맑은 논물에
한조각 흰 구름이
제 얼굴을 들여다보다
지나쳐간다
어디선가 날아온 학이
가느다란 긴 다리로
덤벙덤벙 걸음을 옮기며
먹이감을 찾을 때
바람결에 실려온
산벗꽃 한 닢이
그 발 끝에 살며시 내려 않는다
꺼칠게 선 갈대 옆에
노랑 애기똥풀이
선명히 수를 놓은
논뚝엔
개망초 옆에서
송글송글
흰 꽃송이를 피운 조팝나무가
정갈한 미소로
후후
들내음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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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곳에서 좋은 풍경을 화폭에 담으셨네유...
산행기, 시 그리고 유화까지 감상 잘 했습니다. 다심다능한 김석환건축사님이 늘 부럽습니다.
먼 산 다녀오자마자 산행기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잼나게 잘 읽어 보고 갑니다'''^^ 굿!
최건축사님 안녕하신지요? 멀리서 방문해 주셔서 반갑습니다. 김준식 건축사님 늘 좋은 인상과 마음으로 덕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종호 회장님, 늘 애써주셔서 회가 활기를 띠어 좋습니다. 안치규 건축사님 정직하고 씩씩한 기백이 넘치십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