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라!”
아브람이 왜 사는지 밤마다 고민하고 있을 때,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명령)하셨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이익 집단이 있는 고향)과, (출세하는 데 기반이 되는)너의 아버지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새로운)땅으로 가거라.” (*괄호는 저자가 의미를 첨가했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이다.
‘레크 르카’. 신은 아브람에게 너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고 명령했다. 신이 아브람에게 던진 명령은 아브람을 위한 신의 계획 아래 정교하게 이루어진 행위다. 신은 아브람의 믿음, 그의 삶에 대한 시각을 살펴보려 한 것이다. 우리가 일생을 통해 일구어놓은 안전장치나 기득권을 과감히 버리고 신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시험한다. 그 이유는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나’의 존재를 나타내는 몇 가지 단위가 있다. 우선 ‘나’는 ‘너’와 함께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독립적인 단위이다. 그리고 두 번째 단위는 자신과 형제자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를 포함한 2촌 관계의 최소 공동체인 직계가족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단위는 친족과 부족이다. 친족은 결혼을 통해 확대된 가족을 이르는 용어로 같은 집 혹은 근처에 사는 직계가족을 넘어 조부, 사촌, 삼촌까지 포함한다. 집성촌을 이루어 살면서 유사시 하나의 가족처럼 움직이며 그 우두머리를 족장(族長)이라 일컫는다. 부족은 한 명의 공동 조상을 통해 형성된 사람들이다. 부족의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이 조상의 후손으로 생각한다.
부족을 넘어선 가장 큰 공동체는 백성이다. 백성은 히브리어 ‘암(am)’을 번역한 단어이다. ‘암’은 원래 의미가 친족이었으나, 부계 중심의 친족 사회가 점차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공동체로 변하면서 백성의 의미가 생겼다.
신은 아브람에게 첫 번재로 ‘아브람의 땅’을 버리라고 명령한다. 여기에서 땅이 상징하는 바는 자기 자신이다. 중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땅은 자기애와 이기심이다. 두 번째는 ‘네가 난 곳’인 고향과 집성촌을 버리라고 한다. 집성촌은 자신의 이기심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단단한 공동체다. 이들의 이기심은 상부상조라는 이름으로 유연하게 적용된다.
아브람은 족장이었다. 아브람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순간 그는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다. 고대인들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공동체에서 추방했다. 공동체에서의 추방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유목 사회에서 자신이 사는 지역을 벗어나는 일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신은 아브람에게 두 번째로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그가 태어난 곳’을 자발적으로 버리라고 명령한다.
신은 세 번째로 ‘아버지의 집’을 버리라고 요구한다. 아버지의 집이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자신이 속한 ‘집’에 의해 결정된다. 유목사회에서는 개인의 이름보다 ‘누구의 아들’로 불린다. 신은 아브람이 버려야 할 대상을 땅에서 고향으로, 다시 고향에서 부모로 옮김으로써 자신의 명령이 비상식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임을 충분히 표현한다.
아브람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신은 아브람에게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고 말한다. 신은 미지의 장소를 말한다. 자신의 전부를 포기하라는 말이다. 이 장소는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유일무이한 장소다. 신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는 삶은 과거로부터의 단절, 삶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신은 명령을 따르면 복을 내리겠다고 말한다.
아브람은 여러 곳을 떠돌았다. 어느덧 아브람의 나이는 99세가 되었고, 사라는 89세가 됐다. 수많은 자손과 위대한 민족을 세우겠다고 했던 신의 약속이 가물가물하게만 느껴졌다. 이때 신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으니,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