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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단이태석신부님/수단어린이장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베로니카~☆
ICON / 북러시아 화파. 16세기. 파리 국립미술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장면의 묘사는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곳마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조각되거나 그려졌다.
서방교회는 주로 요한 복음의 수난사에 따라 그린 반면
동방교회에서는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마태오 복음의 수난사에 대한 강론에서
영감을 받아 조직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렸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서있으며,
그들 뒤에는 거룩한 부녀들과 백부장, 군인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군중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마리아를 향해 숙여진 예수의 얼굴은
지극한 고통중에도 고귀한 위엄과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계신다.
이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분의 몸은
죽음 안에서도 부패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아래에는 골고타 동굴이 열려 있는데
이는 죽음과 지옥에 대한 예수의 승리를 상징한다.
이 동굴에는 아담의 해골이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가 구원해야 될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무덤위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이것은 구약의 아담과 신약의 아담이 연결됨으로써,
죽음을 불러온 첫 아담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된것을 표현한 것이다.
십자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은 예루살렘 성벽이다.
당시의 모든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역시 성벽 바깥쪽에서 고통을 받았다.
즉, 예수의 시신이 도시, 성전 그리고 박해자들을 불결하게 만들지 않도록
도시 밖에서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또한 영성적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6세기 경부터 이런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밖에서 수난하신 것처럼 이 땅 위에는 차지할 도성이 없고,
다만 앞으로 올 도성을 바라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벽을 헐고 나아가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 13,12-13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니 진영 밖으로 그분께 나아가 그분의 치욕을 함께 짊어집시다. "
그리고 그리스도의 팔이 달려 있는 횡목은 하늘을 배경삼고 있다.
이렇게 창공에 놓인 십자가는 악의 세력에서 온 우주을 해방시킨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우주론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성모는 왼손으로는 망토를 쥐고 오른손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내밀고 있다.
그녀는 비탄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반대편의 요한은 영적인 공포와 번민으로 가득차 오른손으로 얼굴을 쥐고
왼손은 십자가를 향하여 내밀고 있다.
성모의 뒤의 여인은 왼손으로 자기뺨을 만지며 통곡하고 있다.
요한 뒤의 터반을 쓴 사람은 백부장 론지노스이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히심의 이콘은 천상에로의 창문이 되며,
우리를 그 당시의 사건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며 구원의 신비와 결합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Constantine the Great and St. Helena
십자가 (十字架) / 라틴어 crux / 영어 cross
가로와 세로의 십자(十字) 모양으로 교차되는 2개의 나무로 이루어 진 것으로
원래 이집트, 카르타고 등의 고대 동방(東方)에서
죄인의 양 팔과 발에 못을 박고 매달아 처형하던 도구였으나
이 형벌이 로마제국에 유입된 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자
그 후로는 십자가는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단,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써 당해야 하는 고통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표시(十)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원시 종교들에서부터
태양, 별, 생명의 나무, 종합, 중심, 완전 등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의 상징이었다.
신학적으로 십자가는 계시(啓示)의 신비로 파악되며,
예수님도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말하며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십자가의 신비를 깨우치도록 가르쳤고,
또한 사도 바울로도 그의 서한들(로마 5:8, 고전 1:17, 갈라 4:16, 필립 2:6-11) 속에서
십자가의 신비를 주요한 테마로 다루었다.
십자가에 대한 공경은
4세기초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뒤부터 시작되었는데,
성녀 헬레나(Helena)에게 십자가가 발현하고,
이어 320년에서 345년 사이에 골고타에서
예수가 2명의 도둑과 함께 못 박혔던 2개의 십자가가 발견되어
이를 안치할 십자가성당과 부활성당이 예루살렘에 건축 되었다,
335년 9월 14일이 양 성당의 헌당식 축일로 제정되자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공경 대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으며,
그레고리오 대교황 때엔 로마교회에도 전해졌다.
그 뒤 692년 트룰라눔(Trullanum) 교회회의를 통해 십자가 공경은 강화되었고
787년 제2차 니체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십자가의 모양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먼저 동방과 그리스도교 고대 미술에 존재했던 卍형 십자가,
소아시아의 원형십자가,
이집트의 콥트교회에서 사용하던 십자가(♀),
그리스십자가(+), 라틴십자가(†), 안토니우스십자가(T),
베드로십자가, 안드레아십자가(X), Y형십자가, 켈트십자가 등과
이밖에 많은 복합적인 십자가 등이 있었고
또 많은 왕족, 귀족, 교황들의 문장(紋章)으로 사용된 십자가들과 15-16세기에 나타난
교황십자가, 대주교십자가 등이 있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라틴어 Festum in Exaltatione Sanctae Crucis
영어 Feast of Triumph of the Holy Cross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날로 9월 14일에 지키며,
옛날에는 성가광영(聖架光榮) 축일이라고 불렸다.
629년 헤라클리우스(Heraclius) 황제가 페르시아인들에게서
예수가 실제로 못 박혔던 십자가의 일부를 탈환한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시작되었다.
실제로 이 사건은 예루살렘에서 봄에 일어났는데
9월 14일이라는 날짜는 335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1세 황제가
예수의 무덤에 세운 부활 대성당의 헌당식(獻堂式)이 이날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긴 혼란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은 십자가의 제사 곧 희생으로
서양언어로 ’희생’과 ’제사’는 같은 말(Sacrifice)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치신 십자가상의 제사는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신 희생이다.
그래서 교회는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리고 현양하며,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다.
십자가 현양의 축일이 9월 14일로 지정된 것은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다.
십자가를 현양하며 기리는 이 축일은 일찍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노력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찾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예루살렘에서는 골고타 언덕에 기념 성전을 지었으며,
5세기에 이 성전 봉헌 기념일을 9월 13일에 지냈다.
기록에 따르면 335년에 이 날짜를 정하였는데,
몇 년 앞서 이날 십자가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동방 교회에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 축일이 전파되었으며,
성금요일 예식처럼 특히 십자가를 보여주는 예식을 거행하였다.
서방 교회, 곧 로마 교회에서는 6세기초에 이 축일을 5월 3일에 기념하였고.
7세기 중반에 와서 바티칸 대성전에서 십자가 나무조각을 내어놓고 신자들이 경배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날이 9월 14일이었다.
이후에 또 십자가 나무 한 조각을 라테라노 대성전으로 옮겼는데,
이때부터 십자가 현양 축일을 크게 경축하였으며, 많은 신자들이 십자가 경배를 하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7세기에 페르시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성지를 보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잃어버렸던 십자가를 630년에 되찾아오게 되었다.
그 이후로 십자가 경배가 널리 전파되었고,
9월 14일 축일이 널리 일반화되었으며,
5월 3일의 축일과 더불어 지내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 두 축일은 중복되어
9월 14일만 거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기념해 온 ’십자가 현양 축일’은 이날 축일의 특징이 말해주듯이,
오랫동안 십자가 경배예식을 가졌다.
또 기도문과 독서는,
십자가를 낙원의 생명나무에, 또는 모세가 높이 쳐들었던 구리뱀의 표상으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곧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 멸시에 대한 영광의 승리,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를 말해주고 있다.
십자가의 길 기도
가톨릭 신심중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 중 하나로 예수 그리수도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로 혹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성당 양벽에 걸어둔 곳(14처, stations)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것은 초기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한다.
이 순례자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15,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성지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각 처의 숫자와 기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기도는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B, Innocentius) 11세는
이 수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를 허락하였다.
1964년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이 특전을 확증했으며,
1762년 교황 베네딕토(B enedictus) 13세는 모든 신자들이 이 특전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1731년 교황 글레멘스(Clemens)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곳의 숫자도 14처로 고정시켰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전세계에 퍼져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절에 널리 행해지고 있다.
성당이나 그밖의 공적인 기도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사제와 함께 단체로 행해지며,
각 처를 순례하듯 옮겨가는 것이 원칙이나 단체로 할때는 대표만 움직이고
다른 분들은 움직이지 않고 해도 무방하다.
각 처마다 정해진 기도문과 함께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외며 묵상한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아무 때나 바칠 수 있지만,
특별히 사순시기 금요일과 성금요일에는 마땅히 지켜야 한다.
먼저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며 통회를 기도를 바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 예수님
저희를 위하여 온갖 수난을 겪으신 주신의 사랑을 묵상하며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이다.
저희에게 죄를 뉘우치고
주님의 수난을 함께 나눌 마음을 주시어
언제나 주심을 사랑하게 하시며
성직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죄인이 회개하도록 은혜를 내려주소서.
각 처로 넘어가기 전에 다음의 기도문을 바친다.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마음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각 처에 깊은 절을 하며 다음의 기도문을 바친다.
○ 주님께서는 십자자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잠시 그림을 보며 머무른 다음, 묵상기도를 함께 바친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바친다.
(십자가의 길 기도문 가톨릭 기도서 64p 부터 참조)
제1처 :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아무 죄없이 사형선고를 받으신 주님!
당신은 세상에서 작아지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서 커지는 길임을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자신의 지를 내려놓고
언제 어디서나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의자를 본받게 하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말씀 근거
아침이 되자 수석 사제들은 곧바로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
곧 온 최고 의회와 의논한 끝에,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겼다. (마르코 15,1)
빌라도는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풀어 주곤 하였다.(마르코 15, 6-15)
마침 바라빠라고 하는 사람이 반란 때에 살인을 저지른 반란군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
그래서 군중은 올라가 자기들에게 해 오던 대로 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그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그분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빌라도가 다시 그들에게,
“ 그러면 여러분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거듭 소리 질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하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제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온몸으로 십자가를 껴안으신 주님!
제 삶의 무게가 당신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해도
제 십자가가 좀 더 가볍고 짊어질만 하다는 것을 당신은 가르쳐 주십니다.
당신 어깨에 맨 십자가가 저의 죄임을 일깨워 주십시오.
주님, 당신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루카 9, 23-26)
제3처 :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걸려 넘어지길 마다하지 않으시는 주님!
고통은 비껴가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임을
나역한 인간의 처지에서 보여주십니다.
당신은 뭇시선과 침 뱉음, 군사들의 채찍질을 온몸으로 받아내십니다.
무지는 이렇듯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저희를 옭아맵니다.
주님, 제게 주어진 고통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이사53,4-6).
제4처 :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언제 어디서나 친교를 이루시는 주님!
두 마음이 만나, 하늘을 이루는 거룩한 시간
가슴 한쪽에 묵직한 통증을 간직한 어머니와의 만남은
저희로 하여금 비통함에 젖게 합니다.
어머니께서 보내는 눈길이 아들을 향한 격려임을 압니다.
주님, 사랑은 일치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루카 2,34-35)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루가 2,51).
제5처 :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인간의 위로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주님!
당신이 십자가 길에서 받아들이신 이웃의 도움을 떠올립니다.
때로 인간은 자신의 십자가만이 아니라
이웃의 십자가도 함께 질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세상은 비로소 아름다워집니다.
주님, 함께하는 여정에 서로의 벗이 되게 하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는 번역하면 ‘ 해골 터’라는 뜻이다.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마르 15,20-23).
제6처 : 베로니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베로니카의 수건에 당신의 얼굴을 새겨주신 주님!
피땀이 묻어난 당신 상흔을 바라봅니다.
당신을 향한 베로니카의 젖은 눈빛과
십자가 길에서 당신께 수건을 내민 그 용기에 감탄합니다.
내어줌으로 오히려 되돌려 받는 사랑의 기적을 봅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에 잠기게 해 주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2코린 4,6).
그들이 죄를 깨닫고 내 얼굴을 찾을 때까지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 있으리라.
그제야 그들은 환난 속에서 나를 찾으리라.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호세 5,15-6,3).
제7처 :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인간의 죄를 참으로 아파하시는 주님!
또다시 당신의 넘어지심을 바라봅니다.
땅과 입맞춤하며 자신을 더욱더 낮추신 모습은
구원 역사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합니다.
당신의 수난은 인간을 위한 구원의 의지입니다.
주님, 저희도 당신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게 하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이사 53,3-4).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2코린 5,21).
제8처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언제나 저희를 먼저 위로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주님!
수난의 여정이 힘듦에도 당신보다 이웃을 먼저 챙기는 배려를 봅니다.
당신 품은 세상을 다 껴안을 만큼 넉넉하며
그 품에서는 모든 이가 위로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주님, 저보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주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백성의 큰 무리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보라, ‘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산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내려라.′ 하고 언덕들에게 ′우리를 덮어 다오.′ 할’ 것이다.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 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
(루카 23,27-31).
제9처 :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의 벗이신 주님!
당신 친히 고통을 받으셨고 그 고통에서 해방되셨기에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십시다.
여러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당신 고통이 구원의 민거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희가 고통을 봉헌하는 은총을 주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이사 53,5-6).
제10처 :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치욕과 모욕마저 기꺼이 당하신 주님!
군중들의 빈정거림에 당신도 수치심을 느끼셨는지요?
구원 역사는 너무나 많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때의 당신의 얼굴을 그려보면
자꾸만 제 얼굴 같아 낯이 뜨겁습니다.
주님, 저희 죄를 아파하게 하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고 나서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그분의 죄명 패에는 ‘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르15,24-27).
제11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당신을 들어 높이신 주님!
당신의 고통과 마주하며 신음합니다.
사랑은 당신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명하게 했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름 위에 당신을 높이셨음을 믿으로 알고
또 고백합니다.
주님, 죽기까지 사랑하신 당신을 볻받게 하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고 나서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그분의 죄명 패에는 ‘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분을 이렇게 모독하였다.
“저런!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더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함께 조롱하며 서로 말하였다.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우리가 보고 믿게,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마르 5,24-32)
제12처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헤서 돌아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십자가 위헤서 죄인을 용서하신 주님!
꺽인 팔과 다리, 고개를 떨어뜨린 덩신 모습을 바라봅니다.
죽음의 심연에 이른 당신을 통해
하느님의 선하심과 달리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바라봅니다.
주님, 저희 안에 깃든 죽음의 어둠을 몰아내주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낮 열두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오후 세 시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번역하면, ‘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곁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 저것 봐! 엘리야를 부르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예수님께 마시라고 갖다 대며,
“자,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마르코 15, 33-39)
제13처 :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이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주님!
당신의 죽음을 지켜보신 성모님의 고통과
하느님 구원계획에 함께한 어머니 품에 안겨
마지막 위로를 받으시는 당신을 모습을 바라봅니다.
하늘 길을 놓이신 주님의 모습을 바랍니다.
주님, 저의 작음을 통해 일하시는 당신을 발견하게 하소.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이미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그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으므로,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당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열심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벌써 돌아가셨을까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인대장을 불러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느냐고 물었다.
빌라도는 백인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요셉에게 시신을 내주었다.
(마르 15,42-45).
제14처 :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기도문은 가톨릭 기도서 참조)
묵상
영혼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주님!
당신은 삶과 죽음이 하나로 관통하고
어둠의 사흘을 견디는 사람만이 참 부활에 이를 수 있을 보여주십니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은 지금 바로 여기임을 일러주십니다.
주님, 어둠을 이긴 당신 승리에 함께하게 하소서.
(바오로딸 수녀회 수녀님 묵상글 발췌)
성경
요셉은 아마포를 사 가지고 와서,
그분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마르 15,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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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가 직접 그린 폰테 콜롬보 경당의 타우 십자가
사실 사람은 육체를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데..
누구나 그 원수 즉 육체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권고10)
타우(T)는 그리스어 알파벳의 아홉 번째,
그리고 히브리어의 스물 두 번째 즉 마지막 글자이다.
타우는 성서적으로 ’하느님의 것’이란 표지요 ’구원의 표’로 인식되었다.
이에 대한 언급은 에제케엘 예언서에 나온다.
"이마에 표(타우)가 있는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라"(에제 9,6).
여기서 말하는 타우 표시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집트에서 구원되었듯이(출애 12, 21-28 참조),
타우 표를 지니는 사람은 구원의 표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타우 표시는 성서적인 표지일 뿐 아니라 로마의 까따꼼바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오랜 그리스도교 전통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