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항의 여름이 옹징어라면 겨울은 당연히 명태와 양미리, 도루묵이겠지요. 문제는 명태입니다.
북방 어장의 주산물인 명태가 잡히지 않으면서 거진항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 저는 다시 그 옛날의 병사로 돌아갑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진부령을 넘을 때 보았던 덕장에서 눈을 뒤집어쓴채 황태로 변해가는 명태를 떠올립니다. 명태, 황태, 북어, 상태에 따라 다른 이름을 쓰는 물고기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늘 말년 휴가를 맞아 춘천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그 병사는 명태의 어떤 이름과 닮았는지 궁금합니다. 생태, 동태, 코다리, 백태, 먹태, 짝태, 깡태, 노라기, 애기태 ㅡ.시외버스터미널의 공중전화 앞에서 줄을 선 태 누군가와의 통화를 기다리던, 바다와는 또 다른 푸른 군복을 입었던 그 병사들은 명태의 여러 이름들 중 어떤 이름과 닮았을까요? 아 참, 그들은 음악다방에서 각자가 신청한 노래를 모두 듣고 어딘가로 떠났을까요?
일주일 뒤 병사는 하루 일찍 거진으로 돌아왔습니다. 거진은 여전히 겨울포구였지요. 방파제로 나가 바닷바람을 맞던 병사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눈덮인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지요. 포구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노가리와 소주를 주문했습니다. 연탄불 위에서 익어가는 노가리를 초장에 찍어 우적우적 씹었지요. 소주는 겨울 포구처럼 매웠고 노가리는너무 태워 탄내가 났습니다. 춘천으로 떠났던 병사는 결국 아무런 소득없이 돌아왔던 것이지요. 대학교 이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병사는 1,2학년 교련과목에서 모두 두번 F를 받았는데 그 결과 3개월 군복무 단축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지요. 27개월 복무가 30개월 복무로 확 늘어났습니다.
병사는 학군단으로 찾아가 항변을 아니 애원을 해보려고 춘천으로 갔지만,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내렸던 눈이 얼어가는 거진항에서 병사는 취해갔습니다. 부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 명태를 잡을까도 잠시 고민했었지요.(명태는 아무나 잡나) 비틀거리며 음악다방을 찾아간 병사는 지난번에 듣지못한 노래를 다시 신청했어요. 틀어주지 않으면 틀어줄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는 눈빛을 뮤직박스로 쏘아보내며 맥주를 마셨습니다. 아마 밥딜런과 존비에스의 노래였을 겁니다. 그러다 포구의 바람이 유리창을 흔드는 허름한 여인 속에서 잠들었습니다.
2024년 10월 25일, 그 옛날의 병사는 차를 끌고 진부령을 넘어 대대리, 반암리를 거쳐 거진에 도착했습니다. 시월의 끝자락이었지만 여름처럼 덥더군요. 거진해수욕장의 북쪽,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어부들이 투망을 던져 학꽁치를 잡고 있었습니다.입이 뾰죡한 학꽁치는 왜 목숨이 위태로운 바닷가로 붙는 걸까요? 물고기가 붙는다는 말의 어감이 싱싱해서 즐거웠지요. 아, 하지만 요즘 포구엔 혼자서 먹을만한 물고기 음식이 없어 조금 섭섭했습니다.할 수 없이 시장으로 들어가 배를 채우고 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았습니다. 썰렁하더군요. 그 많았던 병사들은 어디로 떠나버린 걸까요? 찬국 문을 두드리겠다는 노래를 틀어주던 음악다방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시월이 가고 겨울이 오면 다시 도루묵, 양미리가 넘쳐나길 바라며 그 옛날의 병사는 거진항을 떠났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