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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대림절 네 번째 주일 설교
제목 : ‘마라나타(Maranatha)’ - 4. 주님의 구원을 본 시므온
본문 : 누가복음 2장 30절(25~35절)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새번역>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평생을 간절히 드렸던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을 통해 드디어 이 기도를 마무리하는 한 인물을 우리는 만나려고 합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 즉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고, 성령이 임하여 계셨던 인물,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 바로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가서 한 아기와 함께 온 부모를 만나게 됩니다. 그 아기의 부모는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 때 바로 그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시므온은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2장 29~30절, 새번역>
시므온은 한 눈에 아기 예수가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저 아기였습니다. 하지만 시므온은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죽기 전에 반드시 예수를 보게 될 것이다." 성령님으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았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로마에 의해 식민지가 된 나라, 날이 갈수록 부패해가는 유대교, 희망 없는 내일, 죽음만이 답 같아 보이는 현실 속에서 그것은 실로 놀라운 '설레임'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메시아'가 온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결국은 찾아올 그 날을 기다리며, 당연히 아주 긴 시간이 된다 할지라도, 그는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기 전에는 반드시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이런 성령님의 지시를 받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탄절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최소한 사람들이 볼 때는 그저 아기입니다. 그저 한 아기가 태어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많은 사람들은 사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진짜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아기 예수가 태어났음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2024년 성탄절도 우리에게는 별반 다르지 않을까요? 그냥 지금껏 지내왔던 성탄절과 다를 바 없이 그냥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으로 또 끝나야 할까요?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합니다. 성탄절에 태어난 그 아기가 그저 아기 예수가 아니라 ‘메시아’ 임을 알아챌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오늘 시므온처럼 아기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난 메시아임을 믿고, 이제는 아무 미련 없이 세상을 평안히 떠나가게 되어도 좋다는 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주님의 구원을 본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하여 구원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 그럼 조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잠시 시므온의 그날 아침으로 시간을 돌려보겠습니다.
시므온은 별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오시려나, 오늘은 만날 수 있으려나, 흐릿해 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시금 부여잡은 분명한 소망이 있는 얼굴입니다. 그런 소망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성경 기록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누가복음 2장 25절A, 새번역>
우리에게 시므온을 소개하는 첫 구절에서부터 이미 저의 호기심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면서 가장 먼저 쓴 단어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그런데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개역개정 번역에는 이 '마침'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마침'이라는 단어를 포함하여 번역했습니다. 영어로 하면 'At that time'입니다. 국어사전의 뜻 그대로 '어떤 경우나 기회에 알맞게'인데, 그런데 마침, 예수님의 정결의식을 위해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에 데리고 올라갔을 때, 그 때 마침 만남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시므온'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통해 알맞게, 때마침 시므온과 아기 예수의 만남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셉도, 마리아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을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계셨고, 시므온도 그의 평생의 소원으로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 아침 성령님의 음성이 시므온에게 이미 들려 왔을 것입니다. "시므온, 너는 오늘 '메시아'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성령님이 시므온을 성전으로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두근거림이 시므온을 감쌌습니다.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서 성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서 자신과 함께 막 도착한 젊은 부부가 보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부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마도 정결예식을 진행해 주는 분이시리라 어렴풋이 추측하고서는 자연스레 요셉과 마리아는 손을 내민 시므온에게 아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결예식은 진행되지 않고, 갑자기 시므온의 찬양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성전 곳곳을 가득 채우는 찬양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울고 있는 듯 웃고 있는 시므온, 감격에 젖어 목소리가 자꾸 먹먹해 오지만 확신과 기쁨으로 가득 찬 찬양 소리로 성전은 가득했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누가복음 2장 29~32절, 새번역>
이 찬양을 읽고 듣고를 반복하다가 그리고는 계속해서 따라 읽다가 갑자기 순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이 노래는 시므온의 고백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반드시 다시 오시리라 확신하며 믿음의 길을 걷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믿음의 선배들의 고백이 담긴 찬양 소리인 듯 들렸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보았기에 평안히 떠나갈 수 있게 되었노라' 유언처럼 선포하는 찬양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므온이 예수님께서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으로, 유대인에게는 영광으로 오심을 가장 먼저 선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의 찬양에 이어서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늘에 고백하는 답가 같은 찬양이 이어진 것입니다.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누가복음 2장 13~14절, 새번역>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요셉과 마리아는 시므온의 이 찬양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탄생 이후로 다시 한 번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왜 새번역이 이 부분을 '이상하게 여겼다'고 해석했는지 알 수 없지만, '크게 놀랐다'는 표현의 개역개정과 '감격하였다'는 공동번역의 모든 표현을 포함하는 단어가 바로 '경이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marvel, amazement로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는 요셉과 마리아도 축복해 줍니다. 그리고 '아기'에 대해서, '메시아'에 대해서 예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34~35절, 공동번역>
실로 시므온의 예언은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분명하게 나타나 '팩트'로 체크되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메시아의 오심을 믿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렸고, 메시아의 오심을 기뻐했던 이들을 모두 일으키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팠습니다. 그리고 아들이었지만 메시아임을 고백하게 되는 긴 여정을 지내는 동안 아픈 고난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함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결국 회칠한 무덤 같았던 수많은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의 숨은 생각, 속마음을 환희 드러내 고발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이러한 삶을 살 것이라는 것을 태어난 지 8일 밖에 안 된 아기를 안고서 시므온이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을 끝으로 시므온은 더 이상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못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메시아'로 인하여 다시는 자신에게 찾아올 일 없는 슬픔과도 영원히 이별한 채 기뻐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잠을 청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셨으니 됐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치 믿음의 후대인 우리에게 위로이기도 하며, 조언인듯 한 말을 유언으로 남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므온의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또 한명의 성령의 사람이 부르심에 합당한 소명을 이루었습니다. 소명이 마무리 되고, 그는 역사 뒤 쪽 길로 담담히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시므온은 누구일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먼저는 교회의 어른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원로목사님들이, 장로님들이, 권사님들이, 교회에서 어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모두 '시므온'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의 기록처럼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시므온'과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의롭고 경건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여 계셔야 합니다. 오랜 기다림, 그 인내를 끝까지 견디어내서 하나님의 이루심을 경험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이 땅의 위로이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면서, 또한 결국 모든 이들의 위로가 되실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 오늘날의 '시므온'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지금 여러분들이 이 시대의 '시므온'이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 대림절에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던 '시므온'을 통하여 다시금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저부터 먼저! '시므온'이 되겠습니다.
혹시 대림절 네 번째 주일에, 전혀 예상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마침! 이곳에서 혹시 전혀 몰랐던 사람인 '시므온'을 만나셨습니까? 그렇다면 그건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또 다른 '시므온'으로 초대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여러분이 시므온이 되어 살기를 바라며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를 발견하는 눈을 가진 시므온, 오랜 기다림을 이제 해피엔딩으로 끝내고 있는 시므온처럼! 그런데! 마침! 성령님께서! 말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선포하며 믿음의 여정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누가복음 2장 30~32절, 새번역>
2024년 성탄절, 다른 사람들은 아기 예수를 볼 때 우리는 시므온처럼 메시아를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밤이나 낮이나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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