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자인이 자비가 일본에서 암벽대회후 올린 후기입니다. 우리딸이 말하기를 자하가 J1 자비가 J2 자인이가 J3 재용이가 J4라고 농담들 한다네요."
다음은 일본의 삿포로 지방에서 지난 6월11일 부터 벌어졌던 'Japan cup'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온 김자인(일산 동 고등학교 1년))선수의 대회 후기 입니다.
10대선수의 입장에서 바라본 솔직한 문구들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클라이밍 실력 뿐만이 아니라 어휘력과 하루하루를 상세하게 메모하는 습관까지...
참으로 배울것이 많은 선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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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11일 금요일.
오전 10시. 배부장님, 작은오빠, 나 이렇게 셋은 일본 삿포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디스커버리사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열리는 Japan cup에 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어떤 나라일까 하는 설레임으로 기내에서의 3시간을 보냈다.
삿포로에의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맑았다. 일본 디스커버리사의 한실장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한실장님은 일본에서 생활한지 6년이 넘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어를 정말 잘 하셨다.
한실장님의 차를 타고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삿포로라는 곳은 동경이나 요코하마 같이 아주 번화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깨끗하고 밝은 도시였고, 공기와 경치도 좋았다. 번화한 도시의 모습에 자연의 냄새가 배어나오는.. 그런 곳 인 것 같았다.
3박 4일 동안 묵게 될 숙소는 크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깨끗하고 아담한 호텔이었다. 작은오빠, 부장님이 방 하나를 쓰고, 나 혼자 독방을 쓰게 되었다. 독방을 써보는건 태어나서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섭기도 하고, 기대도 되었다.
간단하게 짐만 내려놓은 뒤, 점심 식사 및 관광을 하기 위해 다시 차를 탔다. 점심을 먹은 곳은 호텔과는 한 시간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마치 엽서에서나 나올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점심을 먹은 식당은 옛날 가게나 물건들을 재연해 놓은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라면을 먹었다. 난생 처음 먹어본 된장라면의 맛은 좀 짜기는 했지만 머릿속에 상상했던 맛보다 훨씬 맛있고, 구수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인데 일본 된장라면이 짠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패망 했을 때, 일본 사람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짠 라면을 먹고 물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일본된장라면은 짠맛이 강하다고 한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뒤, 여러 상점들을 구경했다. 태엽을 감으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아기자기한 장식품이나 장난감등이 많았다. 그리고 유리컵을 만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는데 정말 신기했다. 유리컵 하나를 만들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모든지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무슨 일이든 시간과 정성, 그리고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웬만큼 구경을 하고 난 뒤, 호텔로 향했다. 조금 피곤했는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잠을 잤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모두 풀어 옷장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었다. 1시간정도 알 수 없는 일본어를 들으며 TV를 보다가 밖으로 나가 시내로 갔다.
대회장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서이다. 대회장은 실내였는데, 차마 안에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작은오빠와 차안에서 기다렸다. 얼마 뒤 실장님이 낯익은 얼굴을 하신분과 함께 오셨고, 2년 전 프랑스 세계청소년 대회에서 뵙던 분이라는 것을 몇 초 만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장님은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담도 좀 되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스시집으로 갔다. 내일 경기를 생각해서 고기는 먹지 않고, 야채볶음과 생선을 조금을 먹었다. 일본 음식이 전체적으로 입맛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 과일가게에 들러 내일 먹을 딸기와 귤을 샀다. 호텔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은 일본이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내일 유까를 다시 만나게 된다. 여태까지 일본 대회에서 결승전에서의 완등을 단 한번도 놓친 적이 없다는 경력 10년의 유까 고바야시.. 2년 전 프랑스에서 열렸던 세계청소년 대회에서 유까가 2등, 내가 6등으로 이기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일.. 다시 겨루게 된다..
내가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저 선수를 이기고 싶다고 해서 그 선수가 떨어지길 바란다는 것은 몹쓸 짓 이라는 것을 알기에.. 내가 열심히 운동한대로... 오직 완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04년 6월 12일 토요일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8시였다. 어제 분명히 7시 5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잤는데 시계가 울리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연구 끝에 알람을 맞추는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늦잠자지 않고 일어난 것이 신기하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조용한 방을 TV를 켜서 조금 시끄럽게 만들어 준 뒤, 20분 정도 스트레칭을 했다. 아침에 스트레칭을 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해보니 개운하고 시원한 것 같았다.
9시 10분쯤 1층으로 내려갔다. 아침으로 후르츠 칵테일과 빵1개, 그리고 생선2조각을 먹었다. 너무 적지도 않고, 배부르지도 않고 딱 좋은 것 같았다.
아침을 먹은 뒤 10시쯤 차를 타고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밖에 날씨는 어제와 달리 춥고 바람도 제법 불었다. 경기장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라 차를 타고 15분이면 도착 할 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일본 사람들 속에서 경기를 잘 치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떨리고 긴장되었다. 너무 길게만 느껴지는 15분 이었다.
경기를 치루게 될 곳은 디스커버리에서 만든 벽이었는데, 경기장과 대기실이 서로 떨어져있어 차를 타고 3분정도 이동해야 했다. 선수대기실은 건물 내 2층이었는데 농구장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넓고 컸다. 몸을 푸는 연습 벽은 건물 외에 있었다. 홀드는 역시 디스버리 홀드라 많이 익숙했다.
남자 예선경기 다음 여자 예선이었는데, 여자 선수들은 경기 전까지는 대회장에 갈 수 없다고 하여, 남자 예선 경기를 보지 못했다. 작은오빠는 시드배정으로 예선을 치루지 않고 바로 준결승에 진출 한다고 한다.
12시 30분까지만 대기실에 들어가면 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건너편에서 하는 벼룩시장을 구경한 뒤 점심을 먹으러 우동집에 갔다. 물론 나는 먹지 못하고 사과쥬스만 마셨다. 부장님께서 맛만 보라고 조금 주셨는데 역시 한국과는 좀 다른 맛이었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고 시원했다. 정말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대기실로 이동했다. 도착해보니 여자 선수 몇몇이 연습벽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나도 옷을 갈아입고 몸 풀기를 시작했다. 몸은 가벼웠지만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 같았다.
펌핑이 살짝 올 때까지 매달린 뒤, 2층에 있는 대기실안으로 들어갔다. 밖에 와는 달리 따듯했다.
실장님이 작은오빠, 부장님과 함께 경기장으로 가시면서 북해도 선수들을 소개 시켜주셨다. 나 혼자 외롭게 있을 줄 알고 걱정 했는데 다행이었다. 북해도 서수는 6명 정도 있었는데 그중에는 고등학생도 2명 있었고 초등학교 선생님도 있었다. 모두 착하고, 나에게 잘 대해주어서 고마웠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과 있었다면 겁이 났을텐데, 영어 실력이 비슷해서 오히려 더 편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때 열심히 배웠던 일본어를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직접 해보니 간단한 단어 수준밖에 얘기해지 못했다.
대기실에 있는 동안 줄넘기도 조금 하고, 스트레칭도 해주었다.
1시 30분 쯤, 드디어 루트파인딩을 하기위해 경기장으로 이동했다.(선수대기실과 대회장이 많이 떨어져 있어 차로 이동해야했다.) 3~4명이 한 조를 이루어 각각 정해진 차를 탔다. 나는 2호차였다.
경기장에 도착 한 뒤, 이 대회의 루트세터인 이야마 겐지가 등반시 주의 할 점을 설명해주셨다. 물론 실장님이 통역을 해주셨다. 홀드는 붉은색 홀드만 사용할 수 있었고, 빨간색 테잎 밖으로 넘어가지 않게 주의하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드디어 루트파인딩을 하기위해 경기장안으로 입장했다. 일본대회는 우리나라와 달리 입장을 한 다음 따로 인사를 하지 않고, 바로 루트 파인딩을 시작했다. 우선 벽을 쭉 훑어보았다. 벽이 굉장히 멋있었다. 각도가 다양했는데, 상단 각도만 조금 세고 밑에는 약한 각도였다. 예선전 문제는 홀드가 모두 좋아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조금 아리까리 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완등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
루트파인딩이 끝나고 앞에 할 8명의 선수들만 남고 나머지 13명은 다시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스트레칭을 하고, 잠시 잠을 잤다.
30분 정도 뒤에 다시 경기장으로 이동했고, 도착해보니 아직 많은 선수들이 있었다. 이번대회는 우리나라와 달리 대회티가 없었다. 그래서 등번호는 스티커로 붙여주었다. 또한 티에 있는 회사의 마크나 로고 등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선수면에서는 왠지 편하고 좋았다.
우리나라였다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사람들의 반응소리를 듣고, ‘저 사람은 거기까지는 갔겠구나.' , '저 사람은 완등했구나.’ 하고 예상하곤 하는데, 일본은 아니었다. 잘하던 못하던 응원 소리가 거의 비슷해 앞사람이 어디까지 갔는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드디어 입장 할 시간이 다다르고 있었고, 시간이 다다를수록 긴장감은 더해만 갔다.
17번 차례가 되어 입장하니, 사람들의 신기한 눈빛이 느껴졌다. 루트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 호흡을 크게 해주고 출발했다. 시간이 7분으로 굉장히 길었다. 이점도 우리나라와 다른 점 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시간이 초과되어 내려오는 선수들이 있는데, 일본은 비록 예선 문제라도,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충분히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올라갔다.
걱정했던 부분을 모두 넘기고 상단으로 갔다. 각도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센 느낌 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이 생각보다 그다지 멀지 않아 쉽게 완등 할 수 있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완등을 한 선수가 꽤 있는 줄 알았다 . 내려와서 실장님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첫 완등자라는 생각에 굉장히 기뻤다. 실장님과 부장님도 좋아하셨다.
내 뒤에 하는 아키오 노구치 그리고 유까의 경기를 관전 하였다. 아키오 노구치는 나보다 1살 어린 선수인데 키가 굉장히 크다. 올해 아시아 X-game에서 3위를 한 선수이다. 아키오 노구치는 조금은 불안하게 완등을 했다. 마지막인 유까는 선수생활 10년의 경력만큼이나 굉장히 차분하게 등반했다. 마지막이 멀었는데도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다시 돌아가 밑에 홀드에서 왼손으로 크게 크로스 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이렇게 오늘의 경기는 모두 끝이 나고 가벼운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대회 운영측에서 준비한 만찬에 참석했다. 일본산악협회회장님부터 루트세터까지 모든 분들이 계셨다. 싱싱한 회들이 끊임 없이 나왔고, 나 역시 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 먹었다. 역시나 일본 회는 달랐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
루트세터인 이야마 겐지, 기무라 신스케와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예선 루트 난이도가 5.11d/5.12a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하니,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말을 잘못 한 건가? 하지만 나는 정말 11d/12a 정도로 느낀 것 같다.
대회 측에서 시상에 대한 결정을 다시 내렸다. 아무래도 Japan Cup 이다보니 순위에 민감 한지라, 만약 내가 1등을 하게 된다면 특별상1등으로 일본1등과 함께 시상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해 할 수 있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은 뒤, 10시쯤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알람을 6시 50분에 제대로 맞추어 놓았다.
내일. 결승이다.. 오늘 유까의 등반모습을 보니 솔직히 1등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할수는 없다. 하지만 완등 할 자신은 있지 않은가. 완등하자!! 완등!!
2004년 6월 13일 일요일
6시20분, 어제 맞추어 놓았던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뻐근하고 굳은 몸을 20분의 스트레칭으로 풀어 준 뒤, 준비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식사는 오믈렛과, 빵, 쥬스, 그리고 샐러드의 아침메뉴로 간단하게 배를 채워 주었다.
8시쯤, 호텔을 나와 대회장으로 출발했다. 어제보다는 조금 따뜻했지만 바람이 제법 불었다. 고어텍스 자켓를 입고 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어제와 선수대기실이 조금 달랐다. 어제는 2층에 있는 체육관 같은 곳이었는데, 오늘은 3층에 회의실 같은 곳이었다. 남자 준결승진출, 여자 결승진출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에 대기실이 좀 꽉 찼다.
남자 준결승 경기가 먼저 치루어지기 때문에 여자 경기는 한참 뒤였다. 그동안 노래를 들으면서 평소에 잘하지 않던 독서를 했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버려 일어나보니 벌써 남자 선수들이 모두 경기를 하러간 상태였고, 물론 작은 오빠도 없었다. 작은 오빠가 경기를 잘 치루기를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몸을 풀기위해 밖으로 나갔다. 어깨 쪽 근육이 조금 뭉친 듯 했다. 어느새 나와 함께 몸 풀었던 어자선수들이 하나둘 없어지고 나 혼자 남았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혼자 쉬운 볼더링 문제를 내서 풀었다. 혼자 볼더링을 해보기는 처음이라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밑에 내러 놓았던 쟈켓과 신발 주머니까지 날아가려고 할 때 즈음, 암벽화를 벗고 선수 대기실로 올라갔다.
오늘 아침에 대회 측에서 나누어주었던 힘나는 음료를 마셨다. 카페라떼 같은 용기에 담겨있었는데, 맛은 우유맛과 똑같았다.
조금 뒤, 남자 결승 진출자들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다행히 작은오빠도 있었다. 하지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결과를 보니 9등이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남자는 10명까지 결승에 진출시켰다. 작은 오빠의 굳은 포정을 보니 말 걸기가 좀 뭐했다.
1시 15분쯤, 드디어 루트 파인딩을 하러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4호차를 타고 갔는데,
그 차에는 어제 완등을 했던 유까와 노구치, 나 이렇게 셋만 탔다.
이 두명의 선수들은 현재 내가 이겨야 하는 선수들이고, 내가 저 선수들보다 홀드를 하나라도 더 잡아야 했기 때문에 왠지 긴장되었다. 두 선수들이 나보다 더 못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두 선수보다 더 많이 가서 완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대회 운영측에서는 경기 운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올해부터 바뀐 규정에 의해 도핑테스트를 의무적으로 한사람씩 하게 되어 있었다.
선수면 에서는 좀 귀찮기도 하지만 그만큼 스포츠 클라이밍이 일본에서 많이 활성화되고 공식화되었다는 좋은 현상인 것 같았다.
결승전에서도 따로 선수를 소개하지 않고, 바로 루트 파인딩을 시작했다.
결승 루트는 왼쪽 벽에서 시작해 중앙에서 오른쪽을 돌아 다시 중앙 루프를 넘어가는 루트였다. 루르를 넘어가면 90도가 조금 안되는 슬랩이었기 때문에 홀드가 잘 보이지 않았다. 홀드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발만 하이스텝으로 잘 써주고 페이스 조절만 잘한다면 완등을 할수 있을 것 같았다. 6분의 루트 파인딩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갔다. 하지만 일본 대회는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크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조급하지 않게 파인딩을 할수 있었다.
선수가 8명이었기 때문에 다시 차를 타고 가지 않고, 밖에서 대기했다.
오전에 바람이 많이 불어 오후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는 더운 날씨였다. 어제 날씨가 추웠을 때는 자켓을 가져오지 않아 추위에 떨었는데, 기껏 가져오니 햇빛 쨍쨍 비추는 맑은 날씨다. 이런게 머피의 법칙 인가보다.
긴장되고 초조한 마음을 노래고 달래주었다. ‘주석’의 ‘정상을 향한 독주’ 라는 노래를 들으며, 완등하자는 생각을 계속했다. 내 순번인 6번이 다가올 동안 계속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내 다음 다음에 할 유까에게 “がんばってください(파이팅하세요)”라고 말한 뒤 대기실을 나섰다.
퀵드로우의 흔들림을 보니 아직 완등은 없는 듯 했다. ‘완등하자’ ‘완등하자’ 를 머릿속에 수없이 되뇌이며, 여느 때 처럼 호흡을 크게 3번 한 뒤, 한 발을 내딛었다.
자꾸만 커지는 부담감을 “대회를 즐기자”라는 생각으로 억눌렀다.
홀드를 하나하나 잡을 때마다 쌓여있던 긴장감은 어느새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홀드는 대부분 좋았고, 동작이 멀긴 했지만, 하이스텝으로 가니 크게 막히지는 않았다.
중단 부분에서 작은 고비를 겪고, 팔에 펌핑은 났지만, 루프까지 갈수 있었다. 등반 시간이 8분으로 굉장히 길었기 때문에 조금은 여유롭게 갈수 있었다.
루프를 넘어서 완등 홀드를 잡기까지, 확실한 판단이 서질 않았기 때문에, 루프에서 손을 좀 털어준 뒤, 조심조심 한발 한발을 내딛었다. 파인딩할 때 보이지 않았던 홀드들이 슬랩벽 위로 하나둘씩 보였다. 마지막 직전 홀드에서 손을 바꾸어야 했는데 홀드가 썩 좋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홀드만을 남겨두고 있었고, 몸이 가는대로 오른발을 루프 넘어 높이 찍고, 왼발을 끌어주면서 몸도 벽에 같이 붙여 천천히 올라갔다.
어느새 완등홀드는 내 손에 떡하니 잡혀있었다. 순간 완등 했을 때의 짜릿한 기분이 온몸에 느껴졌다. 배고픔에 굶주려 있다가 빵을 먹을 때 보다, 학교에 가기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때마침 버스가 도착 했을 때보다 훨씬 좋은 기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와 뒤에 경기할 노구치와 유까의 등반을 관전했다.
노구치는 쉽게 가지는 못했지만 큰 키가 있었고 등반할 때의 파워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루프 부분 까지오니 힘이 빠졌는지 루프를 넘자마자 바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줄이 다리에 조금 쓸린 것 같았다.
마지막 유까의 등반은 역시 차분했다. 조금의 위기가 찾아와도 전혀 동요되거나 당황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유까는 마지막에서 오른발을 하이스텝을 쓰지 못해 동작만 취하고 떨어졌다. 유까가 완등을 하지 못하면서 나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다른 것보다 완등으로 우승을 했다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여자 결승 경기가 끝난 뒤, 남자 루트 셋팅을 했다.
일본은 남자와 여자의 루트가 겹치지 않는 부분의 홀드는 모두 미리 달아두기 때문에 경기 진행이 좀 더 빠른 것 같았다,
중앙에서부터 시작해 왼쪽루프로부터 오른쪽 벽으로 이동하는 코스였다. 홀드가 아주 나빠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리가 좀 멀었다.
남자 루트 파인딩 역시 선수소개없이 시작했다. 큰오빠 없이 혼자 루트 파인딩 하는 작은 오빠의 모습이 조금은 외롭고 낯설게 느껴졌다. 작은 오빠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그만 루프도 진입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펌핑은 하나도 안나 보였는데...
항상 루트 파인딩도 같이하고, 대기실에서도 함께했던 큰오빠가 심리적으로 많은 믿음이 되었나보다.
남자 일반부에서는 아빠와 나이가 같은 시노자끼氏가 우승을 차지했다. 50대가 다 되어가는 나이에 젊은 선수들을 재치고 우승을 했다는 것, 정말 대단한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잘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믿음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노자끼氏를 보면서 나도 나이가 들어도 내 생각과 믿음만은 변하지 않는,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는 그런 클라이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간의 경기가 모두 끝나고, 시상식만 남겨두었다.
여자 일반부 1등과 특별상 1등이 함께 시상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여자 일반부 시상 따로 특별상 따로 시상을 하였다. 마치 나 혼자 나가서 1등을 한 것처럼 혼자 덩그러니 서서 시상을 했다. 어제, 함께 시상한다는 이야기와 달랐다. 기분 좀 찝찝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대회로 인한 부담감을 즐거움으로 털어내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부담감을 어느 정도 털어내고 즐거움으로 등반을 한다면 완등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완등을 한다면 우승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앞으로 있을 월드컵이나 아시안 챔피언쉽에서도 열심히 흘린 눈물과 땀방울로 좋은 과정과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한다.
“자신감을 갖되 자만하지는 말자. 자만하지는 말되 자신감을 갖자”
이번 대회를 출전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디스커버리사의 홍석민 사장님, 일본까지 동행하여주신 배봉일 본부장님, 현지에서 세밀하게 신경 써주신 한실장님, 내가 경기할 때 나를 열심히 응원해주어 심리적으로 많이 안심이 되게 해준 작은 오빠와, 저의 든든한 후원사인 노스페이스, 매드락, 나를 믿고 응원해주셨던 Ja's의 식구과, 애스트로맨 암장 식구들, 저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는 모든 분들, 내가 지금 웃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존경하는 대장님 재용이 오빠..
정말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젊은 친구들의 용기들이 부럽습닏다. 항상건승하시길, 형님글에 카페 키가 쑥쑥 크고 있습니다.
자인. 자비 남매의 활약상은 지면을 통해 보았습니다. 정말 어린 선수가 대단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일취월장 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