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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석화시인의 시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천지
“노마드”, 길에서 길을 찾는 자의 향방
― 조민호시인의 신작시
석화
(시인,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1.
“노마드(Nomad)”는 요즘 인문학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용어로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가 그의 저서《차이와 반복》에서 제시한 이후 현대사회를 새롭게 설명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용어는 사전적으로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공간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가며 창조적인 행위에 바탕을 둔 삶을 영위해 가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컴퓨터 등 디지털기기로 표상되는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키워드의 하나로 떠오른 이 용어 “노마드”는 그간 잊혀있던 유목민의 역사를 새롭게 주목한 내용이자 현대와 미래사회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것은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에서 발생하는 길항(拮抗)의 역사가 인류 전체의 역사를 관통하여왔고 이 역사 속에서 남아있는 사람들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으며 그들이 바로 어제와 오늘의 세계사를 구성해왔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이처럼 유목민이나 집시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인간유형을 “노마드족”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노마드족” 즉 “유목하는 인간”은 한마디로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 자유의지에 따라서 언제나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 “노마드족”의 새로운 출현은 현대사회가 정보통신기술발달로 인류가 다시 유목민처럼 이동하며 생활하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간관계구조가 변하고 휴대폰, 인터넷 등 장소에 상관없이 연결될 수 있는 디지털제품의 생산으로 더욱 편리해 가는 환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따라서 이 “노마드족”들은 노트북, 외장형 하드디스크, MP3, PDA,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등 최신 디지털기기들로 자신을 무장하여 언제 어디서나 일과 정보수집이 가능한 환경을 이뤄내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로서 오늘 이와 같은 “노마드족”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늘어가는 추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들 “노마드족”의 전신인 고대유목인들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교류하고 전파하며 나누고 개발한 것들에는 하드적인 향신료와 도자기, 비단뿐만이 아니라 소프트워드적인 경험과 지식과 유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불, 목축, 바퀴, 법, 야금술, 언어, 종교, 민주주의, 시장, 예술 등 문명의 실마리가 되는 모든 품목을 고안해냈다. 세계사와 문명사의 발전을 이끌어온 이것들은 모두 유목민들의 발명품이었다. 인류의 출현 이래 끊임없이 이어져온 이동, 이 이동은 몽골기병으로, 십자군원정으로, 집시들의 노래로, 대영제국 대항해시대의 범선들로 나타났다.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초원을 누비며 광대한 영토를 지배한 몽골리안들, 배를 타고 유럽과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나라의 근원을 이룬 바이킹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이동한 “상인노마드”, “지성노마드”, “예술노마드”… 이처럼 주거정착민에 의하여 세계사의 변방에 밀려나 있던 유목인 즉 “노마드”들의 이야기가 이제 다시 전면적인 세계화라는 화두로 나타나 우리 시대의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길에서 길을 찾는 자, 우리는 오늘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노마드족”, 조민호시인이 삶과 그가 최근에 창작한 시편들의 행간에서 몇 갈래 향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2.
조민호시인을 “노마드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신조선족”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연유한다. 한반도 최남단 도시 부산에서 태어난 시인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에 다니기 시작하였으며 드디어 2004년 왕청제1기술학교 교원으로 부임되어 연변에 자리 잡게 되었다. 2006년부터는 연변대학에서 중국 한족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으며 현재는 연변대학 의학원에 적을 두고 중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중국생활기간 그의 가족들은 모두 연길에 옮겨와 아파트를 구입하여 살아왔는데 큰딸은 연길에 있는 연변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일하고 있으며 작은 딸은 한족고중인 연변2중을 졸업하고 현재 북경 청화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일찍 한국시단에 등단하여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시집도 간행한 조민호시인은 이렇게 한국인으로서의 생활기반을 통째로 중국 연길에 옮겨와 십년 가까이 살아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창작세계도 중국과 연변조선족의 삶과 일치시키며 진행하여 오고 있는데 수년간 조민호시인은 《연변문학》,《장백산》,《연변일보》,《연변방송》등 문학잡지와 신문, 방송매체에 많은 시작품을 발표하여 왔고 연변시인협회에 특별회원으로 가입하여 연변시인들과 함께 창작활동을 진행하여 왔다. 10여년에 걸치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전반 생활기반뿐만 아니라 문학창작영역까지도 중국 연변에 옮겨온 조민호시인은 이렇게 오늘날 이름에 걸맞게 “신조선족”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또한 조민호시인이 “신조선족”이란 이름으로 현재 합류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은 태생적으로 일종의 “노마드”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자체의 선택이든 강요된 선택이든 안주하지 못하고 떠도는 성격으로 중국조선족은 월강이주민으로 “과경민족(跨境民族)”이란 딱지를 띠고 있는데 이들은 17세기 초엽부터 시작하여 특히는 1860년대 후반 조선 북관지방의 흉년과 1910년대 국권상실을 계기로 대량 한반도지역을 떠나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와 이 땅에 이주하여 형성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페이지를 번져보면 이들의 뿌리는 처음부터 여기 중국 동북부지역에 있었는바 신화로 전해지는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뿐만 아니라 강성대국 고구려와 해동성국 발해의 역사도 이 땅에서 이뤄졌던 것이다. 수백 년전 이 무리들이 따뜻한 남녘땅을 바라고 한반도에 흘러갔다가 다시 장백산기슭으로 모여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세월의 향방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는바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대륙에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어오자 백 년 전 이 땅을 개척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다시 보따리를 싸안고 한반도 남쪽으로 몰려갔다. 현재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이 무려 4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이 버리고 떠나간 마을은 무너지고 학교가 문들 닫아 조선족사회공동화현상까지 초래하고 있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한국에 나간 중국 조선족인구의 한배가량 되는 70여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중국에 건너와 살고 있는 것이다. 1992년 8월 24일 중한수교가 이루어진 이후 20년간 꾸준히 증가한 이주추세는 현재 중국의 북경, 상해, 청도 등 대도시들에 많은 한국인집거지역을 형성하였는데 북경의 왕징(望京), 상해의 훙쵸(虹橋)등이 그 예이다. 물론 조선족집거지역인 연변과 동북지역의 장춘, 심양, 대련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들 80%이상은 자기 생활권을 한국에서 중국에 이동해온 상황으로 현재 연길을 중심으로 연변에만 5,500명의 한국인의 상주해 있다. 높은 하늘아래 넓은 대지를 주름잡으며 이렇게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세월 따라 흘러가던 유목민들처럼 여권 한 장 달랑 들고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삶의 흐름을 쫓아가는 이들을 오늘의 “노마드족”이라 부르며 그 한 사람으로 우리 곁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조민호시인을 찾아볼 수 있다.
3.
조민호시인은 중국 연변에서 살아가는 감수를 적어 “연변시편” 연작시를 창작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 결실로 “별”, “근황”, “성에꽃”, “싸락눈, 사랑을 나누다”, “봄을 캐다”, “문화사랑”, “연변소”, “바퀴벌레”, “두만강”, “축제의 도시” 등 10편의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한 묶음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선 연변의 풍경과 풍물에서 모티브를 찾아 시적 형상화를 이뤄낸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이국타향의 낯선 모습에 갇혀 지내고 있는 시인 자신의 외로운 모습을 비춰보며 멀리 떠나온 고국, 고향과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안부와 그리움을 전하는 애잔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럼 먼저 그의 “근황”부터 살펴보자.
“그 해 여름의 눈보라”
세차게 휘날리는 날 서울에서
중국 연변으로 이주했다
조선시대 유배지도 산수 갑산은
갈지언정 중강진은 가지 않는다는데
나는 더 멀고 더 추운 이곳에 왔다
다산(茶山)은 강진 초당에서
한양을 향하여 날마다
배(拜)를 올리며 학문에 전진하고
후학을 지도하였다던데
나는 잊혀 가는 모국어로
동토에서도 빛을 발하게
날 센 언어의 검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 어쩌란 말인가
시여 어쩌란 말인가 지금은
아내와 여식은 남쪽나라로 갔고
북경에서 공부하는 여식은 동유럽
조그만 나라로 교환학생 떠났다
나는 중국연변조선족자치주에
오래 생활하다보니 춥지도 않고
따뜻한 방에서 잊혀 가는 모국어를
담금질하며 시어를 찾고 있다
― “근황 -연변시편”, 전문.
우리는 여기서 한국시인 조민호가 연길에 오게 된 과정과 연길에 와서 살고 있는 현재의 “근황”을 엿볼 수 있다. 시의 첫 행을 “그해 여름의 눈보라”란 역설로 시작한 것처럼 그가 “동토”의 땅 연길에 오게 되고 현재 아내와 두 여식도 모두 멀리 떠나보내고 낯선 곳에 외로이 혼자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역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시인이 이곳에 혼자 와 있는 것은 그 어떤 강력한 힘이나 권력에 의해 가해진 불가항력적인 추방이나 유배로서의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기 자신이 스스로 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느 “눈보라/ 세차게 휘날리는 날”에 “삼수갑산” “중강진”보다도 더 멀고 더 추운 이곳에 뿌리쳐지듯 내던져지듯 와있는 이유는 단 하나 “잊혀 가는 모국어로” “날 센 언어의 검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리라. 이와 같은 사명감이 그로 하여금 이제는 “오래 생활하다보니” 기후와 풍토에 길들여져 “춥지도 않고/ 따뜻한 방에서 잊혀 가는 모국어를/ 담금질하며 시어를 찾고” 있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찾아온 동토의 추운 이곳, 스스로 만들어낸 “이산가족”의 외로움이 모두 “잊혀 가는 모국어” 시어를 담금질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결한 마음과 굳은 결의를 품고 떠나왔다고 하지만 그도 역시 인간이고 더욱이 남들보다 감수성이 더욱 많고 깊은 시인이기에 그리움 하나만은 주체할 수 없었던가보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올곧이 별에 기탁하여 빛을 발하고 있다.
어머니 방 천장에는 별들이 떠 있다
잠자리에 누우시면 밝게 빛을 내는
야광별이 꿈의 나라로 이끈다
천체의 많은 별무리를 중
어머니 사랑하는 별자리를
천장에 붙어 놓은 것이다
전기가 꺼진 방 천장의 별들
아버지 소천(召天)하시고
아흔이 가까운 어머니
오늘도 침대에 누워
어느 별자리를 바라보고 계실까
어머니
어느 별자리를 바라 보시는 거예요
아무 말씀 없으시고
웃음이 담긴 주름진 초상 보여주신다
나의 방 천장에도 야광별이 빛나고
별빛은 사랑하는 아내의 방을 스며든다
― “별 -연변시편”, 전문.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시구들이다. 수십 년 전 윤동주는 서울의 하숙방에서 고향인 용정 명동에 계시는 어머니 얼굴을 찾아 그려보면서 밤하늘의 별을 하나둘 헤었다면 오늘의 시인 조민호는 연길의 아파트에 홀로 누워 차가운 창유리너머 비쳐오는 별빛을 방안의 천정에 불러와 어머니모습을 조심조심 더듬고 있다. “천장”에 붙여놓은 “야광별”, 그것은 어쩌면 천진한 어린아이만이 할 수 있는 철없는 소행이리라. 그리고 이와 같은 소년적인 상상과 연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시인이 다시 어린 소년시절로 돌아가 어머니의 곁에 누워있고 싶은 순수한 동심에서 우러러 나온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조민호시인의 시에서 떠나온 자, 유랑하는 자로서의 “노마드족”이 그려내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시인의 가슴속에서 시시각각 복잡하게 그려지는 심경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4.
사람들은 산 설고 물 선 타향에 이르면 우선 자기가 태어나서 자라며 익숙해진 고향과 다른 풍토지리와 자연경관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가슴에 깊이 새겨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환경과 경물의 차이가 지금껏 자기의 몸에 배어있던 고향의 것들과 다름에 경이롭고 환희롭게 느껴지거나 아니면 반대로 경멸하고 싫어하게 할 것이다. 그 가운데 기후는 우리들의 육체에 직접 닿아가는 또 하나의 외피 혹은 의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향에 이르러 한가득 안겨오는 바뀐 풍토와 변화된 기후는 우리의 습관에 곧바로 반응하여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색다른 느낌을 불러올 것이다.
따뜻한 남녘나라 바닷가 도시인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시인이 산 높고 바람 찬 북국에 와서 제일 먼저 느꼈던 것도 아마 북방의 서늘한 기후였을 것이다. 몇 년 가도 하얀 눈을 한 번 볼 수 없다는 남국에서 태어난 그에게 안겨오는 긴 겨울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설야와 엄동의 찬바람은 그의 가슴에도 깊은 인상을 남긴 듯하다. 이 남국에서 온 시인은 “싸락눈”에서 사랑을 나누며 겨울 창유리에 피어난 “성에꽃”에 감격하며 무한한 상상을 불러온다. 그의 시에서 몇 구절 옮겨본다.
식물도감에서 너를 찾는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꽃잎/ 식물도감에 없는 이름/ 약전(药典)에 넣고 싶은 꽃이다
―“성에꽃 1”
성에꽃이 피는 이유는/ 세상에 아직까지도/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절망과 패배만 있다면/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성에꽃 2”
공공버스는 성에꽃으로/ 치장을 하고 정류소에 왔다/ 이웃과 함께 하는 아침은/ 몸 부딪히는 순간도 희망찬 하루/ 삶은 성에꽃처럼 아름답다
―“성에꽃 6”
한겨울 깊은 밤, 창밖의 차가운 기운이 실내의 더운 공기와 더불어 창유리에 그려내는 이 풍경화는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것이지만 이 성에꽃에 감동하여 연이어 애정이 넘치는 절절한 시구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아마 남국에서 온 조민호시인, 그의 눈과 가슴뿐이리라. “식물도감”에서 찾아보면 물론 어디에도 보이지 않을 이 “성에꽃”이 피는 이유를 “사랑이 있기 때문”이며 “삶은 성에꽃처럼 아름답다”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시인만이 적어낼 수 있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인이기에 그는 또한 “성에꽃”에서 백석시인의 당나귀를 불러보기도 하고 “닥터 지바고”의 끝없는 설원을 펼쳐보기도 한다. 이 종횡무진하고 무한한 상상력에 이끌려 우리들은 다시 한 번 머릿속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성에꽃”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의 이와 같은 무한한 애정은 “연변소”, “바퀴벌레”, “두만강”, “축제의 도시” 등 연변의 풍물을 읊은 시들에서도 뚜렷이 보여 진다. 그중 “바퀴벌레”는 살충제를 파는 약장수아저씨의 우스꽝스런 모습에 바퀴벌레의 이미지를 오버랩 시켜 징그러운 한 마리 벌레조차도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굴리는 굴렁쇠처럼 귀엽게 보이게 하였다. “추(醜)”를 추하게만 그리지 않고 불빛에 깜작 놀라 도망가는 바퀴벌레가 “술래잡기놀이”를 하는 양 앙증맞게 보이는 것은 바로 시행 속에 약장수와 아이들의 형상을 맞춤하게 버무려놓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창작기법은 높은 언어기술을 요하는 것으로 비유와 함축, 상징이 적절히 표현되어야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 “연변소”는 연변황우의 형상에 연변의 역사와 현재를 담아내어 여러 이야기를 엮어낸 작품으로 특기할 만 하다. “두만강”과 “축제의 도시” 등 작품도 이와 같은 연장선에 있는 연변의 풍토인정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시인의 이와 같은 예술성취는 우선 시인이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는 이 고장에 대한 따뜻한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노마드” 또는 “노마드족”은 길에서 길을 찾는 자이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한반도 최남단의 해변도시에서 태어났으나 동구밖의 높다란 솟대 끝에 올라가 언제나 북쪽하늘에 머리를 두고 막연히 바라보는 나무새마냥 한없는 그리움을 북녘에 띄워 보내던 그, 한국시인 조민호는 이제 인생의 반을 접는 먼 길을 에돌아 북국의 동토에 찾아와 연변시인협회 특별회원의 자격으로 이 땅의 시, “연변시편”을 짓고 있다. 어느 노랫말에 적혀 있는 구절처럼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 바람 따라 세월 따라 흘러온 북국의 이 땅이 조민호시인에게 있어서 시문학의 큰 뜻이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성스러운 시적 고향이 되기 바란다.
2012년 4월 12일
모아산이 바라보이는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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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시 10수
별
- 연변시편
어머니 방 천장에는 별들이 떠 있다
잠자리에 누우시면 밝게 빛을 내는
야광별이 꿈의 나라로 이끈다
천체의 많은 별무리를 중
어머니 사랑하는 별자리를
천장에 붙어 놓은 것이다
전기가 꺼진 방 천장의 별들
아버지 소천(召天)하시고
아흔이 가까운 어머니
오늘도 침대에 누워
어느 별자리를 바라보고 계실까
어머니
어느 별자리를 바라 보시는 거예요
아무 말씀 없으시고
웃음이 담긴 주름진 초상 보여주신다
나의 방 천장에도 야광별이 빛나고
별빛은 사랑하는 아내의 방을 스며든다
근황
- 연변시편
그 해 여름의 눈보라*
세차게 휘날리는 날 서울에서
중국 연변으로 이주했다
조선시대 유배지도 산수 갑산은
갈지언정 중강진은 가지 않는다는데
나는 더 멀고 더 추운 이곳에 왔다
다산(茶山)은 강진 초당에서
한양을 향하여 날마다
배(拜)를 올리며 학문에 전진하고
후학을 지도하였다던데
나는 잊혀 가는 모국어로
동토에서도 빛을 발하게
날 센 언어의 검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 어쩌란 말인가
시여 어쩌란 말인가 지금은
아내와 여식은 남쪽나라로 갔고
북경에서 공부하는 여식은 동유럽
조그만 나라로 교환학생 떠났다
나는 중국연변조선족자치주에
오래 생활하다보니 춥지도 않고
따뜻한 방에서 잊혀 가는 모국어를
담금질하며 시어를 찾고 있다
* 하현식 시인의 시 제목 인용
성에꽃
-연변시편
1
식물도감에서 너를 찾는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꽃잎
식물도감에 없는 이름
약전(药典)에 넣고 싶은 꽃이다
2
성에꽃이 피는 이유는
세상에 아직까지도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절망과 패배만 있다면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
3
오늘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하길 소망하는
백석을 생각한다 밤새 시린 바람이
불어오고 추운 겨울밤 손바닥만한
백석의 봉창유리에 성에꽃이 폈겠지
4
데이비드 진 감독의 작품
“닥터 지바고”를 좋아한다
사랑하는 라라와 이별하는 지바고
그의 눈은 성에꽃 만발한 유리창의
성에꽃 한 송이 보이지 않았다
5
대지는 온통 싸락눈으로 덮여 있다
북방의 밤은 잠들지도 않고
싸락눈을 밤새 받아 모으고 있다
밤새 주절주절 흘려 내려는 눈
성에꽃잎을 예리하게 그린다
6
공공버스는 성에꽃으로
치장을 하고 정류소에 왔다
이웃과 함께 하는 아침은
몸 부딪히는 순간도 희망찬 하루
삶은 성에꽃처럼 아름답다
싸락눈, 사랑을 나누다
- 연변시편
어둠속에서 싸락싸락 싸락눈 내린다
창은 눈을 바라보는 사람을 보고 있다
눈은 건물의 지붕에 누워 별을 바라본다
눈을 보며 그 여름날을 생각한다
싸락눈은 먼지가 되어 흩날리고 있다
먼지를 피우며 달리는 차
차 안까지 들어오는 황토먼지
흙먼지와 함께 맑은 눈동자는
눈부처를 또렷이 보여주며 눈인사를 한다
한눈에 반하다
한눈에 반한 적이 없는 사람이
맑은 눈부처를 가진 눈과 이야기를 한다
“너의 눈은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하니
두 번 깜박깜박하고
“바다 속에서 자라는 멋진 진주”하니
두 번 반짝반짝 빛을 비추며
눈부처는 진주로 변해있다
아름다운 눈과 눈빛 사랑을 나누다
눈동자는 차 안과 밖으로 나누어지고
등에 업힌 눈동자는 어느 촌 마을로 들어가며
어린 눈에 이별의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지붕의 싸락눈도 밤새 사랑을 나누다
다음 날 서러운 눈물 흘리리라
봄을 캐다
-연변시편
산마다 따지기때가 되면 산은
자기의 언 몸을 풀어 놓는다
신민교 다리 아래 사람들 모여
봄을 캐고 있다 야생 돌미나리와
봄나물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고개를
살짝 내미는 미나리 돌미나리들
사람들 얼굴엔 봄빛이 만연하고
늙은이까지 나와 봄을 갠다 봄나물 캔다
땅속으로 삽질을 하는 사람들
자세히 보니 흙속의 지룡을 잡고 있다
약재로 지룡을 잡는지 모른다
꿈틀거리는 지룡 벌써 봄임을 알고
기지개를 켜는 것이 아니다
불편한 지체를 깨우는 불만에 몸 전체
붉은색을 띠며 화를 내며 온 몸을
뒤척이는 모습이 아리하다
봄나물이 파릇파릇 자라고 지룡은
땅 속 더 깊이 몸을 숨기는데
사람들은 봄을 캔다 지룡을 캔다
바퀴벌레
-연변시편
동시장에 살충제를 파는 남자는
바퀴 달린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있다
벌레를 그려 놓은 흰 가운을 입고 약을 판다
바퀴벌레의 발에도 굴렁쇠는 달려 있다
사람이 볼 수 없는 바퀴를 달고
밤 시간 미식가인 벌레는 여러 곳을
다니며 음식을 시식한다
한밤의 만찬이 끝난 후에 풍만감에
공원 소학교 어린아이들 굴렁쇠 굴리듯
운동으로 주방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굴렁쇠를 굴리며 놀고 있는 바퀴벌레들
목이 말라, 불을 켜니
깜작 놀라
도망가는 모습이 술래잡기 놀이 하는 듯하다
벌레는 팔뚝에 찬 시계를 보고 돌아다닌다
연길공원에 아침 운동을 할 때 쯤
지친 몸을 어슬렁거리다
휴식처에 낮 시간 숨어 지내다
밤 시간 정확하게 알고 나오는 야행성
오늘 낮에도 바퀴벌레 그려진 때 묻은
흰가운을 입고 참대나무로 딱딱소리를 내며
살충제를 파는 주행성 남자가 돌아 다닌다
문화사랑
- 연변시편
연길강 위에 함박눈 내린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강둑을 걷다
방죽에 내린 눈을 다져
문자의 형태를 만드는 사람
읽어 보니 조선어로 “문화사랑”이란 글과
“爱”를 적고 계속 밀대로 밀고 있다
문화사랑에 광체를 내는
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
문화를 사랑하는 민족임을 공표하며
중화에 민족혼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연길다리 위를 걷는 위그루족 여인
얼굴에 싸인 히잡*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눈 위에 쓴 선명한 “문화사랑” 과 “爱”
글 위에 함박눈이 쌓인다
*이슬람교의 복장, 히잡 [hijab]은 이슬람 여성이 외출할 때 사용함.
연변소
-연변시편
연변소는 힘센 황우다 그의 삶의 영력은 늘 푸르다
따스한 봄날 광할한 초원의 풍족한 먹거리로
만족하게 먹고 열심히 일하는 황우다
아침 햇살 눈동자를 찌르기도 전 묵중한 육체 일으켜
일 나갈 준비를 하는 묵직한 누렁이다
무거운 멍에로 억압시키면 미련하다 말을 들으며
할일 다 한 후 슬쩍 무거운 엉덩이 뒤틀고 앉은 후
목청 다해 울기도 하는 황소다
칼바람 소리와 싸라기눈과 비를 맞으며
연변을 지켜온 조선의 후예 황우다
주인의 방엔 밤새 흑백사진이 넘어가고
연변소도 그리워지는 것들로 외로워하고 잊혀진 얼굴을
새록새록 떠 올리기도 한다 외양간에서 밤 지새우며
얼마나 아름답게 더 울어야 둥둥 울리는 북이 되어
조선족의 혼영을 쇠가죽에 담아 북소리에 농악무
상무를 추게 할 수 있나 고민하는 황우다
주인과 헤어질 때면 아침 이슬을 흘리며
아낌 없이 몸 전체를 선물하는 누렁이다
토종 연변소는 육질도 부드럽고 감질나다
축제의 도시
- 연변시편
천지의 물줄기 두만강으로 흘러 흘러
두만강반에 첫 도시를 만들어 놓았다
동녘바다에 해 떠 오를 때
두만강물이 꿈틀거려 펄펄 끓어 오르고
도문의 인민들이 축제의 날을 맞이 하구나
오늘도 축제의 날이다 함께 나아가자
우리 함께 두만강 광장 공원에 모이자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 크게 울려라
축제를 알리자 축제를 알리자
인민들이여 손에 손잡고
인민들이여 마음과 마음을 모아
민족 의상을 입고 춤사위를 선 보이자
신명나게 축제의 한마당을 만들어 보자
기쁨으로 축제를 즐기자
두만강변에서 울리는 기쁨의 함성을
이웃 나라와 다른 성까지 들릴 수 있도록
인민들이여 함성을 지르자
인민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축제를 알리자
오늘도 일광산 봉우리는 우뚝 서 있고
두만강 강물은 흥겹게 흘려 내리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축제를 만들어
함께 목청 높여 한마음 되어보자
오성 홍기 힘차게 휘날리며
만국기 힘차게 흔들며 축제를 즐기자
인민들이여 오늘도 축제의 날이다
두만강
- 연변시편
그리운 목소리 찾고 싶어
칠 백리 길 이어진
강가에 섰다
여울 소리는
아기 맥박 소리같이
희망을 솟아 오른다
강물은 뱃사공과
나룻배를 떠나보내고
아련한 풍경만
가슴 속에 담고 있다
어린시절 잔등의 상처를
혀로 핥아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으로
여울물은 국경의 두 대지를
말없이 핥아 주고 있다
그리운 어머니 이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