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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4.07.28 10:29
[정범진 칼럼] 신성장동력? 반생명평화탐욕의 분칠!
탄소제로, 친환경 무기 사용하는 ‘지속 가능한 전쟁’?
한국제 무기 분쟁 지역 수출, 비인도적 무기도 투입
창과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어야
정범진 사단법인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정치인은 전쟁을 시작하고, 부자는 무기를 대고,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제공한다. 전쟁이 끝나면 정치인들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하고, 부자들은 생필품의 가격을 올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의 무덤을 찾아간다(세르비아 속담).”
탄소제로, 친환경 무기 사용하는 ‘지속 가능한 전쟁’?
무기박람회에 등장한 자사 제품을 홍보하면서 “열대우림을 오염시키는 납 성분을 제거한 친환경 탄약”을 자랑하는 이 기괴한 역설에 나의 인식은 혼란스럽다. 최첨단 공법으로 제작한 탄소 제로, 친환경 무기를 사용하는 ‘지속 가능한 전쟁’이 벌어질 판이다. 무기박람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투자 자문사는 무기생산 기업에 대한 투자를 유혹한다. 무기산업이 침체에 처한 한국 경제를 살릴 성장동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방위산업이 아니라 무기산업이다
‘무기산업, 군수산업, 방위산업’을 검색해 보니 요즘은 ‘방위산업’이라는 개념이 대세다. “국가 방위를 위하여 군사적으로 소요되는 물자의 생산과 개발에 기여하는 산업”(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기에 덧붙여 세계 2차대전까지는 ‘군수산업’이라는 말이 주로 통용되다가 방위산업이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하나의 용어나 개념이 설명의 정확성과 엄밀성보다는 부정적 측면을 감추고 등장하면, 대중의 인식은 호도되기 쉽다. ‘방위산업’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전쟁에서 공격과 방어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방어용 무기 역시 공격용이라는 측면에서 ‘방위산업’은 무기산업의 분칠된 표현이다.
전쟁에서 인명을 살상할 용도로 만들어지는 물건을 ‘무기’라고 하지 않고, 방위산업 제품으로 표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무기산업을 방위산업으로 포장해 대중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고,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명확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무기산업은 군산복합체를 넘어 금융자본과 결합해 현대 자본주의의 최정점에서 문명의 파괴와 생명의 위기를 재촉한다.
육군이 해외 주요 방산협력국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국산 무기체계와 전술적 운용을 교육하는 '육군 국제과정'을 개설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진은 K9자주포 운용 교육에 참여한 교관과 조교 및 교육생들이 기념 촬영하는 모습. 2024.7.26. 연합뉴스
한국 무기산업의 폭발적 성장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올해 2월 발표한 「방위산업 현황과 전망」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국내 주요 무기업체의 매출액은 약 84%가 국내에서 발생했다. 남북 분단과 대치는 상시적 무기 개발을 강제하고, 기업들은 지속적인 국가적 수요에 따라 생산능력을 꾸준히 키워 왔다. 냉전 이후 급감한 유럽의 무기 생산능력은 유럽의 무기 수입 수요를 증가시켰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 국가들과 안보‧경제적으로 우호적 관계인 한국 무기업체에 큰 기회요인을 제공했다. 분단이 역설적으로 현시기 국제적 무기수요 증가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20년까지 K-방산 수출액은 30억 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2021년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억 달러 규모에 달했고, 국방부 방위사업청의 2024년 수출 목표치는 200억 달러다. 2023년 무기산업 수출 규모는 대상국이 2022년 4개국에서 12개국으로 3배, 무기체계 종류는 2배로 늘었다. 2023년 무기산업 수출액은 130억 달러로 2022년 173억 달러에 비해 약 25% 감소하였지만, 이는 기저효과에 따른 것으로 코로나 이전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전 세계 100대 무기기업 중 한국 기업은 4개가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배보람, “‘전쟁의 시대’ 평화라는 기후정의의 필요성,” <기후, 기회: 파국의 시대에 맞서기 위한 기후 전망과 전략>(서울: (주)지학사, 2024), p. 138)
현대로템이 지난 9일(현지시간) 폴란드에서 현지 국영방산그룹 PGZ와 K2PL 생산ㆍ납품 사업 진행을 위한 신규 컨소시엄 합의서를 체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사진은 합의서 체결식에서 기념 촬영하는 임훈민 주폴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대사(왼쪽부터), 이용배 현대로템 대표이사 사장, 파베우 베이다 폴란드 국방차관, 마르친 쿨라섹 폴란드 국유재산부 차관, 크리스토프 트로피니악 PGZ 회장. 2024.7.10. 연합뉴스
강환석 방위사업청 차장이 12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서울호텔에서 열린 '2024 방산기술보호 컨퍼런스'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7.12. 연합뉴스
마케팅 활동 역시 활발하다. 한국에서는 매년 종합 무기박람회 ADEX, 지상 무기 박람회 DX KOREA, 해양 무기 박람회 MADEX, 경찰 무기 박람회 KPEX 등 다양한 무기박람회가 열린다. 각종 육해공 군사무기와 경찰무기가 일반 시민들에게 ‘멋진’ 상품으로 둔갑해 전시되고, 전 세계로 수출된다. 주요 수출 무기는 한화의 장갑차와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 로켓, 현대로템의 K-2 전차,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공격기, LIG넥스원의 현궁 대전차 미사일과 천궁-II 지대공 미사일, 풍산의 탄약류 등이다.
특히 최근의 무기박람회는 무기산업의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책임론이 강조되는 추세를 반영하여, 무기제조업체의 ‘친환경’ 행보를 홍보하는 장이 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엔진의 친환경 추진 시스템 구비를, 현대로템은 다목적 무인차량의 전기배터리화, 디펜스 드론의 수소전지화, 풍산의 환경단체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육군이 해외 주요 방산협력국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국산 무기체계와 전술적 운용을 교육하는 '육군 국제과정' 교육생들이 K9자주포 운용 실습을 하는 모습. 2024.7.26. 연합뉴스
2023년 3분기 말 기준 방산 5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 현대로템,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수주 잔고는 약 104조 원 규모로 전년 말 대비 약 1.3% 성장했다. 자본시장 역시 무기 수출 기업들의 성장세를 반영해, 한국의 록히드마틴을 꿈꾼다는 무기회사 여럿을 둔 대기업 계열의 한 자산운용사에서는 국내 무기 분야 1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상품까지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국민연금 역시 2023년 상반기 한화시스템, 풍산과 같은 대표적 무기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서울경제, “국민연금, 리오프닝 덜고 방산‧반도체에 베팅했다,” 2023년 7월 5일)
한국제 무기 분쟁 지역 수출, 비인도적 무기도 투입
대한민국의 「대외무역법」은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 등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필요할 경우, 인간의 생명‧건강 및 안전, 동물과 식물의 생명 및 건강, 환경보전 또는 국내 자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할 경우” 무역을 제한하는 특별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된 한국 무기가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어떤 무기를 수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런 규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분쟁지역으로의 수출, 두 번째는 비인도적 무기의 수출이다.(출처: “2023 국제회의: 무기 거래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전쟁없는 세상 자료집>)
최근 한국 대통령 윤석열은 미국에서 열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 참가해 여러 나라 정상들과 회담을 했다. 그중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 두 번의 만남을 가졌는데 회의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 6월 평양에서 개최된 조러 정상회담에 대응하는 성격의 논의, 조선과 러시아의 군사협력에 상응하는 조치, 예를 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의 한국 직접 지원 등이 다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전에 한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여러 나라(미국,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호주 등)에 무기를 수출했고, 이들 무기는 우크라이나에 지원된 무기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는 세 배 늘었다.(경향신문, “한국,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액 10년간 3배 증가,” 2023년 10월 19일) 예멘 내전에 개입하고, 전쟁의 장기화를 이끌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아랍 동맹군에 대한 무기 수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FA-50 경공격기와 한화의 바라쿠다 장갑차, 대지정공의 물대포차 등은 각 나라의 분쟁과 민중의 저항을 탄압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한화시스템이 24일부터 오는 26일까지 호주 퍼스에서 열리는 '해양방산전시(IODS) 2024'에 참가한다고 24일 밝혔다. 사진은 한화시스템이 해양방산전시에서 선보인 통합 전투체계(ICS). 2024.7.24. 연합뉴스
확산탄과 대인지뢰는 무차별적인 살상과 민간인이 많은 피해를 당하는 특성으로 인해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다. 현재 「확산탄금지협약」은 110개국, 「대인지뢰금지협약」은 164개국이 가입한 국제협약이지만,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소수의 국가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16개 확산탄 생산국 중 하나다. 한국의 주요 무기회사인 한화와 풍산도 최소한 2012년까지 확산탄을 생산하고 수출했다. 한화는 확산탄 사업이 국제적으로 문제시되어 해외 사업에 지장이 되자, 그룹 전체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확산탄 관련 사업을 지난 2020년에 분할 매각했다. 하지만 이 분리된 회사가 충남 논산에 대규모 확산탄 시설공장을 다시 짓고 있어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한겨레신문, “논산에 대량 살상 무기 ‘확산탄’ 공장 건설…시민들은 반대,” 2024년 2월 2일)
한국은 11개 대인지뢰 생산국 중 하나다. 대인지뢰의 주요 제조사인 한화는 2005, 2006년에 클레이모어 대인지뢰 약 2000개를 뉴질랜드로 수출한 바 있다. 한화는 2011년에도 KM74 대인지뢰 4000개를 생산했다. 한국 정부는 2019년에 지난 5년간 대인지뢰를 생산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앞으로의 생산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국제 방산전시회 '인도양 방위 안보 2024'(Indian Ocean Defence & Security 2024)에 참가해 기술력을 선보인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차세대 호위함 '충남함' 시운전 모습. 2024.7.23. 연합뉴스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등장한 무기산업
지난해 12월 7일 한국 대통령 윤석열은 「제2차 방산수출전략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은 무기산업이 안보와 경제를 뒷받침하는 국가전략산업임을 강조하며, 미래의 신성장 동력이 되도록 첨단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지금의 무기수출 성장세를 지속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할 것임을 약속했다.(대한민국 대통령실 보도자료, “尹 대통령, K-방산이 세계시장에서 우위 선점하도록 적극 지원할 것,” 2023년 12월 7일) 무기산업이 새로운 수출 전략이자 지역 경제를 이끌 기간 산업, 침체에 처한 제조업을 대신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관련 산업도시였던 창원은 외신에 보도될 정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무기산업 단지가 되었다. 방위사업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충남은 방사청을 중심으로 관련 후방 산업의 성장을 기대한다. 전북도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무기산업의 육성계획을 제시하고, 전남 역시 우주산업과 국방산업을 결합한 산업 특구를 모색한다.(배보람, 앞의 글, p. 137)
군산복합체의 나라 미국에서 무기산업의 규모와 성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흔히 사용되는 논리는 국가안보와 일자리다. 그러나 무기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그다지 높지 않다. 무기산업의 일자리 창출에는 다른 산업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고,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지출된다. 2009년 매사추세츠대학교 경제학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청정에너지, 교육, 의료 등 다른 우선 순위 산업에 각각 10억 달러를 사용할 경우, 동일한 예산을 국방에 지출할 때보다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10억 달러 투자 시 국방 분야는 일자리가 1만 1600개가 만들어지는 반면, 청정에너지 분야는 1만 7100개, 의료는 1만 9600개, 교육은 국방의 두 배가 넘는 2만 9100개가 창출된다는 것이다.(앤드루 파인스타인 지음, <어둠의 세계: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오월의 봄, 2021), p. 528)
창과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어야
무기는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된다.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무기 소유를 현실 세계에서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팔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무기는 생명에 반하는 것이고, 전쟁을 부른다. 무기거래는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 중 가장 부패하고, 무책임한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공론장에서 한국 사회 무기산업 신성장동력론은 거침이 없다. 지난 시기 대한민국은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베트남 전쟁에 미국의 용병으로 참가하여 5천여 명이 넘는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 보다 훨씬 많은 베트남 민중을 학살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9천여 명 이상이다. 그리고 그 피의 댓가를 경제개발의 종잣돈으로 삼았고,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베트남 민중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 불편한 진실의 토대 위에 서 있다. 과거는 물론 지금도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만들고, 무기를 팔고, 폐허가 된 전쟁터 재건사업을 수주한다. 그러나 무기를 팔아서 평화를 만들 수는 없다. 서로를 겨눈 무기를 내려 놓을 때 평화가 온다. 식민 지배를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나라라는 대한민국이 제국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전쟁 상인이 되어 다른 나라의 희생을 토대로 자신의 부와 삶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미래세대는 그 삶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인가? 창과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드는 오래된 숙제를 다시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