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85. 420~424 (최정주, 펌글)
아으응. 계집의 입에서 암내 난 암고양이의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강쇠 놈이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방아고를 움직였다.
다시 한번 거시기 놈이 뽑히는 듯한 기운이 아랫녁을 흘러갔다.
사내가 두 다리를 쭉 뻗는데, 계집의 고개가 한 쪽으로 꺾였다.
인자 이놈도 지쳤소, 하는듯이 거시기 놈이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확을 빠져 나왔다.
달콤한 잠이 사내의 눈꺼풀 위로 쏟아졌다.
시간이 그만큼 흐른 것일까, 아니면 정신 없는 닭이 있었던가? 멀리서 꼬끼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자, 잠이나 자자. 헌디, 이 계집을 어뜨게 허제? 물건도 새 것이고, 궁합도 딱 맞는디, 지리산 속에라도 들어가 함께 살자고 허까?'
그런 생각이 잠시 강쇠 놈의 머리 속을 흘러갔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서방 놈이 명색이 관물을 먹는 관아의 사령인 것이었다.
제 마누라가 천하의 잡놈과 아랫녁을 맞추고 도망을 쳤다면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덤빌 것이었다.
계집의 아랫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제 목숨까지 바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낌새를 봐가면서 며칠간 적당히 데리고 놀다가 지쳐 쓰러져 잠 든 사이에 삼십육게 줄행랑을 놓으면 될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강쇠 놈이 한 숨 달게 자고 일어나 이불 속에서 뭉기적거리고 있는데, 음전네가 무명수건에 물을 적셔가지고 들어왔다.
"해가 중천에 떴소."
음전네가 수줍게 웃으며 옆구리 쪽에 엉덩이를 내려놓았다.
"펄쌔 그리 되었소? 깨우제 그랬소?"
강쇠 놈이 누운 채 눈으로만 올려다 보며 대꾸했다.
"하도 달게 주무시길래 안 깨왔소. 아쉰대로 얼굴이나 쫌 닦읍시다."
음전네가 물수건으로 강쇠 놈의 얼굴이며 목덜미를 가만가만 닦아냈다.
그런 계집의 불그죽죽한 얼굴이 선녀처럼 예뻤다.
수많은 계집들과 밤을 새워보았지만, 살 섞은 계집들이 예뻐보이기는 또 처음인 강쇠 놈의 가슴이 살큼 두근거렸다.
"시방 본깨 아짐씨가 겁나게 이쁘요이."
"아심찬허요. 이뿌다고 해줘서. 서방이란 작자는 한번도 그런 말얼 안 했는디."
음전네가 얼굴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촌아낙들의 누리팅팅한 이빨과는 달리 음전네는 쌀알처럼 하얀 이를 가지고 있었다.
"입 속도 이쁘고."
"호호, 별 것이 다 이쁘요이."
"이쁜깨 이쁘다고 글제요. 헌디 안 아프요? 여자가 첨으로 사내를 겪고나면 며칠간언 아프다고 글든디.
"쪼깨 얼얼허기는 해도 괜찮소. 헌디 멋이 거그럴 꽉채우고 있는 것 맨키로 기분이 요상시럽소."
"첨이라서 그런갑소. 두 번이나 씨럴 안 뿌렀소?"
"고맙소. 이녁 아니었으면 평생 사내가 멋인가도 모르고 살뻔했소."
그런 말을 하는 음전네의 눈이 문득 번들거렸다.
그 눈빛만으로도 강쇠 놈은 계집이 무엇을 원하는가 알 수 있었다.
계집은 지금 또 제 몸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불씨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사내가 그 불을 꺼주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인의 심사를 눈치챘는지 거시기 놈이 슬며시 고개를 치켜 들었다.
강쇠 놈이 말없이 계집의 손을 끌어다 가지랭이 사이에 놓아주었다.
음전네가 귀밑을 붉히면서도 거시기 놈을 손 안에 넣고 가만히 움켜 쥐었다.
"요상시럽소. 탱탱하고 따뜻헌 이것이 여자를 그리 정신없그로 맹글다니. 이녁은 참 크기도 허요. 내 서방이란 작자보다 세 배는 크겄소."
"정사령 껏이야 크다가 말았제요. 내가 시방사 말허요만 운봉 인월 인근의 주모들이 정사령을 사람취급도 안 헙디다."
"그럴 것이요. 허는 행실을 보면 꼭 쥐새기 닥상이었소. 애먼 사람들 등이나 쳐 묵고 살았소."
음전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사내구실도 제대로 못험서 껄덕댄다고. 사령도 벼실이라고 눈 부릎뜨고 뎀비면 속곳을 안 내려줄 수도 없는디, 막상 일을 치루려고 보면 문전만 더럽히고 만다고."
"이년도 아요. 인월 삼거리 주모 아짐씨도 그리 말헙디다. 몇 번 치마고름을 풀기는 했지만, 막상 살얼 섞지는 못했다고라우."
말끝에 음전네가 거시기 놈을 꽉 움켜쥐었다.
거시기 놈이 부드러운 손길에 화답이라도 하듯 두어 번 움죽거려 주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음전네, 음전네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보아 삼거리 주막의 주모가 분명했다.
"저 아짐씨가 먼 일이까? 평생 가야 내 집에는 발걸음 한 번 안 했는디."
음전네가 당황하여 얼른 몸을 일으켰다.
"이상헌 눈치 보이지 마씨요이."
강쇠 놈이 음전네의 등 뒤에 대고 나즈막히 말했따.
음전네가 흘끔 돌아보고 방을 나갔다.
강쇠 놈이 얼른 일어나 문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고 밖의 동정을 살폈다.
그때까지 사립도 열지 않았던지 주모가 사립 밖에서 기웃이 얼굴을 디밀고 들여다 보고 있었다.
"식전부텀 아짐씨가 지 집에는 먼 일이래요?"
음전네가 신발을 직직 끌며 달려갔다.
"동상도 참, 식전이라니? 해가 중천이구만."
"잠얼 설쳤더니, 늦잠을 잤는갑소. 참말로 해가 중천이네."
음전네가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하늘을 흘끔 올려다 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강쇠 놈이 보기에도 어딘가 어설퍼 보였다.
눈치 빠른 주모가 그런 낌새를 모를 리가 없었다.
"동상, 혹시 달거리 오는 것 아녀?"
"달거리라니요?"
"걸음걸이가 이상해 보여서. 꼭 달거리허는 여자같당깨. 어기적 거리며 걷는 폼이 첫날밤 치룬 새색시같기도 허고."
주모가 음전네를 위 아래로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성님도 참 별말씸얼 다허시요. 이년의 사정을 누구보담도 잘 아심서."
"동상의 사정을 잘 안깨 그런 소리럴 허제. 참말로 아무 일 없는 것이제?"
"없구만요."
"난 동상의 걸음이 이상허길래 정사령이 산삼이라도 쌀마묵고 온 줄 알았구만."
"산삼언 또 먼 소리다요?"
"아, 정사령이 그 물건으로는 평생가야 제 마누라의 생짜배기 밭을 갈아줄리도 없고, 산삼이나 묵었으면 또 모를까."
"성님도 참, 별 말씸얼 다 허시요. 그래, 먼 일로 오셨소?"
음전네가 사립을 열며 물었다.
"동상헌테 부탁헐 일이 있어서. 어떤 한량 놈이 내일 산내 골짜기로 화전놀이를 간다는디, 음석 장만을 부탁허네. 동상이 와서 좀 거들어 주어야겄구만."
"지가라우?"
"아, 동상이 음석 솜씨가 안 존가? 핑게 김에 동상도 화전놀이에 함께 가도 좋고. 어쩔랑가? 품삯은 섭섭치 않게 줄텐깨."
주모의 눈길이 음전네를 지나 방문 앞의 마루 밑을 살피고 있었다.
순간 강쇠 놈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토방 아래에는 분명 제 놈이 신고 온 짚세기가 놓여있을 것이란 짐작 때문이었다.
평상시 음전네의 신발만 놓여있던 자리에 사내의 짚세기가 있다면 일단은 의심부터 하고 나설 판이었다.
어쩌면 정사령의 마누라 음전네가 딴 사내를 집안에 끌어들였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주모의 눈길은 별 다른 내색도 없이 이내 음전에 쪽으로 옮겨갔다.
"화전놀이까지는 그렇고, 음석 장만은 거들어 디려야제요. 늘 신세만 지고 사는디. 성님 먼첨 가 제시씨요. 소세 좀 허고 바로 따라갈것인깨요."
"고맙구만. 허면 기다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