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고뇌 --좌파의 새로운 기회인가 문명의 종말인가?
보리스 까갈리쯔끼
미국 속담에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할 때 대신 얻게 되는 게 경험이란 말이 있다. 동구와 남(제3세계)의 민족들은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면서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동안 그들이 얻은 것은 역사적 경험이었다. 아마도 이는, 특히 우리 모두가 치른 엄청난 대가를 따져볼 때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을 가볍게 버려서는 안된다.
전통적 과두정의 집정자, 자본가, 기술관료 그리고 공무원 들은 성공적인 근대화를 수행하거나 민주발전을 확고히하는 데 한결같이 무능력을 드러냈다. 사회의 이질성과 경제의 다체제적 성격이 그러한 무능력을 판단하는 시금석이되었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꾸바에서 국가의 독점경영자로의 변신과 국가주의적(statocratic) 체제의 탄생은 이러한 체제적 다양성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최종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가장 급진적인 시도를 대표한다. 경제는 전능한 관료주의의 의지를 통해 단일체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외견상의 통합일 뿐이었다. 즉 그 통합은 결코 완전하지 못했으며 사회가 완전히 동질적으로 된 것도 아니었다. 이 새로운 생산양식은 가부장적 봉건제부터 사회주의까지 ‘정복된’ 체제들의 수많은 특징들을 기계적으로 결합했다. 놀라운 합성물이 나타났다. 새로운 체제는 스딸린적 수용소(GULAC)의 노예 및 집단농장의 농노로부터 진정한 자주경영의 기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함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들에서 나타난 실제 삶의 모순들이 의미하는 것은 면피용의 상투어(타락한 노동자국가, 국가자본주의 등)로 도피했던 수많은 이론가들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은 실패했다. 세기말이 다가오면서 도처에서 국가주의적 체제는 그 구성부분으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국가권력의 위기는 새로운 체제들의 다양함을 낳았으며, 동유럽 사회들을 종속과 후진성의 상태로 되돌려놓았다. 효율성을 상실한 관료제도는 과거 지배계급의 최악의 특성들을 재생산하고, 과거로 영원히 추방시켜야 했을 후진사회의 유형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다.
‘서구화의 길’이 내건 약속 역시 신기루임이 증명되었다. 이 서구화의 길은 종속과 저개발로 이어졌는데, 종속과 저개발은 그 한창 시절에 제3세계에서 볼셰비끼혁명과 수많은 혁명정권의 모태였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패배는 더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 신자유주의의 승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며, 자유시장이란 경제모델은 우리의 눈앞에서 와해되었고, 동유럽 국가들에서 자유주의의 어휘집을 구성한 말과 표현들은 음담패설의 의미를 띠었다.
이제 대안을 위한 시간이 도래하는 것처럼 보일 듯싶다. 그러나 어디에 이러한 대안이 있는가? 소연방이 해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스딸린주의적 좌파 또한 국제적으로 패배와 퇴각의 시기를 거쳐 퇴장했다. 러시아에서도 신좌파는 1988~92년에 짧은 성장과 번영의 시기를 맞았을 뿐 그후로는 극적으로 몰락했다. 러시아에서 좌파는 지금 세력이 다시 커지고 있지만, 이번에 점점 강해지고 있는 쪽은 (비록 신좌파 역시 회복하고 있지만) 대부분 전통적인 공산당이다. 신좌파는 허약하고 전통적 좌파는 혼란에 빠져 있다. 쏘비에뜨 모델의 와해로부터 배운 것은 과거의 방식이 이제 더이상 쓸모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전략들이 개발된 것도 아니다. 몇몇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은 스웨덴 모델을 따라 러시아를 재건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 나라 여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스웨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이들은 중국 모델을 모방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모델에 관한 토론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경험에 근거해 새로운 사회주의의 전략을 모색하는 일이다. 문제가 다시 근본적이면서 근대적인 성격을 띰에도 불구하고 좌파는 온건해지려는 시도를 통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한다.
미국의 철학자 프랜씨스 후꾸야마가 신자유주의의 승리와 함께 역사의 종말이 도래했다고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와 논쟁하다가 그 다음엔 비웃기 시작했고 결국 그를 잊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수였다. 후꾸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말했을 때, 그의 주장은 자본주의의 경제적쇓사회적 성공에 기초한 것이 분명 아니었다. 사실은 그는 승리한 이데올로기의 성공을 단 하나의 잣대로 잰 것이다. 그 잣대는 어떠한 건설적 대안도 파괴하고 질식시키며 타락시키고 불신하게 할 수 있는 세계 지배계급의 능력이었다. 만약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 자본주의가 선하든 악하든 모든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는 1989년보다 역사의 종말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 있다.
좌파운동의 새로운 단계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실패는 자동적으로 그 이데올로기적 패권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엘리뜨들은 체제의 객관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으며 점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도 없고 그러한 문제해결을 원치도 않지만, 그들은 대안적 접근에 근거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어떤 시도도 마비시킬 능력은 있다.
명백히 낙후되고 점점 불합리해지는 사회구조는 기술발전을 마비시키지 못한다. 기술발전은 계속된다. 다만 그런 발전이 인민의 삶을 향상시키지 않는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진실로 과학기술의 발전은 부정적인 요인이 된다. 소용돌이치는 과학기술혁명의 각 전환점에서 점점 더 많은 모순과 불균형이 쌓인다. 관계는 혼란스러워지고 규칙의 구조와 씨스템은 더 복잡해지며 과정은 더 예측할 수 없게 된다.
1960년대의 ‘억압적 관용’은 억압적이거나 강압적인 패권으로 대체되었다. 공식 이데올로기들은 더이상 아무도 설득할 수 없지만, 이 점은 권력자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안 이데올로기들이 확산되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안 이데올로기들은 파편적 형태로 퍼뜨려짐으로써 진정한 대안으로서 부적합함을 드러내고 만다.
새로운 정보기술들은 이론상으로는 엘리뜨의 독점적 대중매체 지배를 잠식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그 자체가 엘리뜨주의적 속성을 띤다. 컴퓨터의 ‘대량’ 보급조차도 리우 데 자네이루의 빈민들이나 중앙 시베리아 쁘로꼬쁘이에프스끄의 광부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간단히 말해 이 새로운 과학기술은 인민들의 단결뿐 아니라 분열에도 복무하는 것이다.
레닌의 말을 바꾸어 표현한다면, 분명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층부의 지배계급은 변화를 원하지 않으며 하층부에 있는 이들은 변화를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혁명적 시각의 부재는 개혁의 중대한 위기로 이어졌다. 어느 곳에서도 좌파는 이런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다. 게다가 좌파 자체가 깊은 도덕적 위기를 겪는 중이다. 1989년의 사건 이후 불가결해진 가치관을 재평가하는 작업 대신 많은 이데올로기적 이탈이 있었다. 현상황에서 노동운동의 전통과 가치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 대신에 이러한 가치들을 무엇이 대신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소란스런 잡담이 들어섰다.
핀란드의 경제학자 얀 오토 앤더슨(Jan Otto Andersson)은 새로 등장하는 이데올로기를 규정하는 말로 ‘제3의 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개념은 그가 핀란드 좌파연합의 의제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제기한 것이다. 앤더슨에 따르면 ‘제1의 좌파’는 부르조아의 공화파 운동이었으며, ‘제2의 좌파’는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이제 ‘제3의 좌파’는 급진적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사회주의의 가치를 결합해야만 한다. “제3의 좌파는 제1, 제2 좌파의 전통 위에 서 있는 동시에 그것들을 뛰어넘는다. 그것은 기원을 1960년대의 신좌파 및 새로운 환경쇓여성 운동에 두고 있지만, 지난 20년간 발생한 극적인 변화, 즉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동요, 국민복지국가의 공동화(空洞化), 쏘비에뜨 공산주의의 붕괴 등이 함축하는 바를 완전히 파악했을 때에만 응집력있는 정치세력이 될 것이다.”
전세계의 좌파세력은 실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회주의 학자들은 ‘제3의 좌파’라는 용어를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용어의 진정한 정치적 내용은 무엇인가? 만약 부르조아민주주의적 급진주의의 역사적 기획이 적어도 서유럽에서는 대체로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다면,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이는 쏘비에뜨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의 사회민주주의적 전망에도 해당된다. 급진적 민주주의의 가치와 사회주의 원칙의 단순한 기계적 결합을 좌파의 전략적 관점으로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그러한 결합이 이미 오랫동안 전형적인 사회주의운동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싸미르 아민(Samir Amin)은 발흥하는 ‘제3의 사회주의’를 최근 과학기술의 변동 및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대응으로 설명한다. 아민에 따르면, ‘제1의 사회주의’는 증기와 철도의 시대에 나타났으며, ‘제2의 사회주의’는 컨베이어벨트 생산과 자동차 보급 및 냉전시대에 나타났다. ‘제3의 사회주의’는 컴퓨터와 통합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시대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싸미르 아민은 스웨덴의 사회학자 안더스 스테판슨(Anders Stephanson)의 비판을 받았는데, 스테판슨은 이론가들이 지구화의 정도를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주장했다. 세계의 실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지역의 차원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구화’ 테제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심지어 기회주의와 무기력의 구실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나 ‘새로운 과학기술’과 같은 말을 사용하는 데 조심해야 한다. 역사발전의 새로운 요소의 등장은 분명히 실제로 일어난 현상이지만, 그것은 전통적 관계와 모순들을 아직 몰아내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산업과 노동계급은 앞으로 오랫동안 제2, 3세계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존재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통적 국민국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전통적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공간과 국유화 및 국가통제의 객관적 가능성은 남게 될 것이다. 산업주의 시대의 구조와 관계들은 종종 공룡에 비유되지만, 사람들은 많은 생물들이 공룡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변치 않고 생존해왔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좋든 싫든 악어들은 사멸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대안은 전통적 프로그램
우리는 특정 전통노선이 좌파에게 이로움을 준다고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든 전통노선은 쇄신을 배제하지 않는다. 역사의 많은 혁신운동은 전통주의 운동으로서 시작했다. 마르틴 루터는 기독교의 혁신이 아니라 그 뿌리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비록 그의 전통주의적 포교가 교회를 급진적으로 쇄신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말이다. 같은 의미에서, 새로운 전략적 공식을 꿈꾸거나 낯선 과거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오늘의 당면과제를 한쪽 방향으로만 밀고 나갈 필요는 없다. 원칙을 고수하게 하고 이데올로기의 공세를 지속하게 하는 전통적 사회주의는 특히 신자유주의가 명백히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다.
좌파의 전통적 프로그램은 진정한 대안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이제 체제는 너무나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난제의 매듭을 푸는 유일한 방법은 매듭을 아예 끊어버리는 것이다. 부분적 개혁과 점진적 개선은 사회와 경제 전 영역의 근본적인 변화의 결과로서만 가능하다. 사유자본의 광범위한 국유화(약탈자의 재산 몰수)와 ‘자유시장’의 극복 없이는 보건제도를 최소한도로 개량하는 일마저 불가능하며 사회복지를 개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좌파 정당들이 그들 자신의 전통만큼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국유화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논의하는 대신 그들은 어떤 국유화도 없을 것임을 지배계급에게 입증하는 데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반면 지배계급은 이러한 약속을 별로 신뢰하지 않으며, 좌파가 전적인 정치적 무능력을 보여주지 않는한 현실권력의 지렛대로 그들이 다가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안의 부재는 모든 형태의 대의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러나 이 경우 민주주의의 위기는 1920년대의 유럽이나 1970년대의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와 달리 민주주의 제도의 빠른 붕괴로 귀착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제도들은 천천히 퇴화하여 사멸하고 있다. 그것들은 경제의 의사결정 과정뿐 아니라 정치과정 자체에 의해서도 점점 더 외면당한다.
유럽에서 파시즘의 재등장은 위기의 중요한 징후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문제는 단순히 극우조직의 발흥만은 아니다. 정치조직 자체가 끊임없이 권위주의적 인민주의(populism)로 오염되고 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믿음이 훼손된 상황에서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다.
대안이 없는 위기 상황은 충격이 임박했다는 징표이다. 이런 의미에서 르완다의 파국은 인류에게 경고한다. 서방세계는 주변부 국가의 기아, 유혈, 경제붕괴가 중심부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라는 희망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서는 안될 것이다.
고대문명의 몰락 또한 주변부의 붕괴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런 점에서 과거는 우리에게 끔찍한 교훈을 준다. ‘역사의 종말’은 헤겔을 너무 많이 읽은 논자의 어리석은 농담이 아니라 실제 가능한 것이다. 물론 위험에 처한 것은 우리 자신의 역사와 현시대의 사회일 뿐이다. 인류는 여러 문명의 몰락으로부터 살아남은 생물학적 종이다. 인류는 또한 우리 시대의 전지구적인 부르조아 문명의 붕괴를 견뎌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된 정치세력과 전통적 제도들과 일반적으로 인정된 엘리뜨들이 완전히 파산한 곳에서조차 해결책을 찾아내고야 마는 여러 사회의 종종 증명된 능력을 볼 때, 낙관의 근거는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모순의 자발적 해결은 이러한 모든 제도와 엘리뜨의 몰락을 수반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1914~45년에 이르는 불운한 시대에 겪은 것과 맞먹는 규모의 충격들이다.
20년 전이라면 가장 완고한 비관주의자조차도 이같은 낙관적 씨나리오를 상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이룬 ‘성공’의 전지구적쇓역사적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러한 씨나리오이다. 대다수의 인류에게 사회의 대격변만이 앞으로 남은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보인다.
서유럽과 러시아에서 개혁주의의 패배
80년대는 좌파에게 불운한 세월이었다.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은 이미 위기에 빠져 있었지만 이 위기는 공산주의운동의 붕괴에 따라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격심해졌다. 프랑스의 미떼랑 행정부는 멋진 희망과 함께 출발했지만 만연한 실망감 속에서 끝을 맺었다. 전후 서구 역사에서 가장 진지한 이 개혁 프로젝트의 실패는 개혁의 가능성과 전망에 대한 문제를 재고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한다. 쏘비에뜨 뻬레스뜨로이까의 붕괴 또한 그만큼 두드러졌는데, 그것은 개혁 프로젝트의 한 전형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전세계 모든 좌파 문화에 비록 단기간이지만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은 의회 다수당의 위치를 우파세력에게 빼앗겼을 뿐 아니라 우파가 집권하기도 전에 사실상 그들 자신의 개혁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그들은 우파가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한 셈인데, 우파는 사회주의 행정부가 집권 첫해에 제기한 대부분의 개혁안을 폐기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70년대의 사회적 성취의 많은 부분도 무효화했다. 소연방의 뻬레스뜨로이까는 쏘비에뜨 국가 자체가 붕괴되고 과거 특권관료제(nomenklatura)의 가장 부패한 파당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이런 토대에서 생겨난 정권은 ‘절도정’(kleptocracy), 즉 도둑들의 지배라는 말로 가장 잘 설명된다. 나라의 약탈은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 부활하고 서구의 이해관계에 러시아가 종속되는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진행되었다. 이것은 결코, 진정한 자본주의가 옛 쏘비에뜨연방의 공화국들에서 생겨났다거나 미래에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적인 기업-관료적 질서가 매판자본 및 고리대자본과 결탁하여 특이한 공생관계로 뒤얽혀 있을 뿐이다.
냉전에서 서구가 승리한 결과 러시아는 자본주의 세계의 주변부로 변했지만, 그렇다고 러시아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생산능력의 대량 파괴와 자원 약탈을 초래했지만 어떤 종류의 중요한 국유자본도 안정시키지 못했다.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파산은 80년 전보다 오늘날의 러시아에서 훨씬 분명하다. 이는 앞으로 새로운 싸움과 새로운 충격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1989년 이후 시작된 반동은 스스로를 ‘진보’와 ‘근대화’로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모든 반동과는 달랐다. 이같은 거짓 진보의 모습은 세계적 규모의 사회적 반동의 시기가 또한 과학기술의 혁신의 시기이기도 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 사실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 초기 단계인 19세기의 처음 50년 동안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 시기가 지난 뒤에야 새로운 과학기술이 의기양양한 반동적 엘리뜨의 입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잠식했음이 분명해졌다. 20세기 초 새로운 기계의 도입은 부르조아 공화주의의 패배와 고용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의 급격한 약화 그리고 UN의 최초 선구자인 신성동맹의 틀 내에서 ‘신세계질서’의 정착 등을 직접적으로 동반했다.
근대 노동조합의 발흥과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의 출현에 힘입어 노동운동의 힘이 커진 이후에야, 반동은 새로운 혁명적 움직임의 분출에 굴복했다. 이후 20세기의 경험은 노동운동의 특정한 신화에 고착되어버렸다. 여기서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두 가지의 중대한 오류이다. 먼저 노동자들과 그들의 이론적 대변자들은 어떠한 기술적, 산업적 발전도 그들의 입장을 강화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개혁주의자, 또는 혁명가 들을 막론하고 이 모든 사람들은 역사를 좀더 ‘발전된’ 형태의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운동하는 직선과정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반동세력은 분명히 이런 과정을 더디게 하거나 심지어 정지시킬 수는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전진을 침식할 수는 없다는 식이었다.
이러한 두 테제의 근거 없음은 1990년대에 드러났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기간에 좌파가 겪은 패배는 금세기 이전에 입은 모든 타격보다 훨씬 심각하고 당혹스런 것이었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운동과 좌파의 역사적 환상에는 전례없는 자신감 상실과 가치의 위기가 뒤따랐다. 정말로 패배한 전략은 사회진보의 기계적 전망에 근거한 일직선적 전략일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서유럽과 러시아에서 개혁주의의 패배가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주장하듯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나 계급투쟁의 종말을 의미하는가?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 위해서 이젠 더이상 맑스주의자가 될 필요가 없다. 사회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 불만의 파도를 타고 권력으로 돌아오고 있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적 파업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다시 느끼고 있으며 더이상 후퇴할 의사가 없음을 증언한다. 새로운 과학기술은 새로운 노동관계는 물론, 과학기술 프롤레타리아와 사무노동자들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계급의식과 새로운 형태의 자주적 조직을 창출했다.
신자유주의의 신화는 자신의 파산을 보여주었지만 급진주의자들의 희망 역시 아직 태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혁명적 움직임의 분출을 촉발하지는 못했다. 사회주의 정당이 대중의 지지를 누리고 정치적 주도권을 쥐기도 한 예가 있지만, 지금 이런 정당들은 종종 혁명전략은 고사하고 개혁전략조차 없다. 좌파가 정권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엘리뜨가 위기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안을 제시할 준비가 된 좌파세력이 과연 있는가?
혁명과 개혁
여기서 우리는 다시 급진적 개혁주의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급진적 개혁주의와 본질적인 기회주의 사이의,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적 개혁과 혁명 사이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내 생각으로는 명백하고 엄격하게 분리할 수 있는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칙의 차이는 있다. 특히 지금 많은 국가에서 혁명조직들이 실제로는 중요한 개혁을 거부하면서도 ‘개혁주의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이때, 이러한 차이들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대부분의 개혁주의 기획들이 실패한 것은 그것들의 ‘상명하달’적 성격 때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관료적 엘리뜨의 사상을 담지한 미떼랑과 쏘비에뜨 관료주의의 ‘계몽된’ 분파에 의존한 고르바초프는 다같이 그들이 행복을 약속한 인민들로부터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개혁주의 정당과 혁명적 정당의 실패에 대한 반응 중에는 그것들을 ‘새로운 대중운동’으로 대체하고 ‘위로부터의 정책’을 ‘아래로부터의 대안’으로 바꾸라는 요구가 있었다. 좌파 이론가들이 모인 1994년 부다페스트 회의에서 연사들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대한 경제적 대안으로서 ‘아래로부터 이룩하는 절연(delinking)’이라는 개념을 제기하기조차 했다.
이런 모든 것이 과거 환상들의 닮은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국가는 위계화되어 있고 세계체제는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들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저항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다. 모든 효과적인 대중운동은 고유한 위계질서 구조를 창출했고, 궁극적으로는 그 자신의 ‘대항엘리뜨’(counterelite)를 탄생시켰다. 특정한 상황에서 이러한 대항엘리뜨가 ‘체제 안’으로 흡수될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그런 엘리뜨가 전혀 없이 과업을 수행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호소에 대한 급진개혁주의자의 답변은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위로부터의 변화의 결합을 시도하라는 것일 뿐이다. 좌파는 국가기관의 장악을 위한 전통적 전략의 모색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기서 성공은 국가기관들 자체가 아래로부터 끊임없는 압력을 받고 있을 때, 다시 말해 지도자들을 통제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그들이 꺼려하거나 우물쭈물하는 어떤 일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대중조직이 존재할 때에야 의미를 가진다.
오랫동안 혁명이 직면한 주요 위험은 혁명의 적에 의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환상이다. 혁명의 주요한 적은 혁명 자체에 내재한다. 과도하게 나간 혁명은 사멸한다. 그러나 혁명과정은 미리 지점을 지정하여 거기서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혁명은 자체의 논리와 관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과정은 개혁노선으로 재조정될 수 있고, 때로는 재조정되어야만 한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우선회라든가 편향”이라고 말하지만 혁명의 성취가 공고히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방법을 통해서이다.
개혁주의는 혁명전략의 일부가 되어야만 한다. 아마도 이것이 금세기 중국과 러시아에서 일어난 위대한 두 혁명이 남긴 교훈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복합적 전략은 역으로 광범위한 민주주의 블록의 형성, 대중을 정치적 삶으로 끌어들이기, 권력기관의 변화 등을 요구한다. 혁명적 결단 없이 개혁적 기획은 결코 수행되지 못할 것이다. 개혁의 환상은 따라서 혁명의 환상만큼 위험할 수 있다. 유일한 위안은 개혁의 환상은 혁명의 환상보다 덜 쉽게 퍼진다는 점이다.
개혁사상은 많은 위대한 혁명운동에 근거를 제공했다. 혁명은 개혁의 가능성이 유실되거나 소진되었을 때, 아니면 그러한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때때로 발생한다. 따라서 역사적 현실은 혁명과 개혁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사치를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개혁은 혁명적 시각과 결합하지 않는 한 목표를 상실하며 마찬가지로 개혁 없는 혁명도 무의미하다.
민주주의의 문제
민주주의 모델은 모순으로 가득 찼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살아남는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는 다양한 길이 열린다. 다양한 길의 열림은 참아야만 하는 어떤 조건이 아니라 수행해야만 하는 투쟁이다. 사회는 이질적인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기 마련이며 개혁은 되돌릴 수 있다. 서로 다른 세력들이 충돌하고 심지어 어떤 특정한 길이 선택된 후에도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자유의 불가피한 현실이다. 로자 룩녑부르크의 말은 다시금 분명해진다.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없으며, 사회주의 없는 민주주의 또한 없다.
만약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국가기관의 민주화를 신속하게 시작하지 않는다면, 좌파정부의 치욕스런 파멸과 퇴보를 초래할 뿐이다. 권력의 민주화와 의사결정에서 대중의 참여는 그 자체로는 개혁의 성공을 보증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실패는 불가피하다.
서구 의회민주주의의 전통적 모델이 전혀 다른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고 해서 동구와 남(南)의 민족들이 실행가능한 민주주의를 창출할 수 없다고 결론이 나는 것은 아니다. 민중의 권력이란 원래 의미의 민주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의회주의를 통한 변화의 길이 가장 빠른 것이 결코 아님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를 재촉하기 위해 진보를 방해한 민주적 ‘제약들’을 제거했던 자꼬뱅과 볼셰비끼의 수많은 시도들이 야기한 파국적 결과 역시 낯익은 것이다. 1917년의 러시아 역사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권력을 창출하면서 이런 모순을 해결하려 했던 민중 자신들의 실패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레닌과 볼셰비끼들은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나타난 노동자들의 민주주의 개념을 추켜세우는 많은 연설을 했지만, 이런 민주주의는 혁명국가와 당에 대한 볼셰비끼적 개념과 양립하지 않음이 입증되었다. 쏘비에뜨(평의회)들의 역할을 인식하고 민중의 자발적 조직에 의존함으로써 볼셰비끼는 1917년에 권력을 잡고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쏘비에뜨들을 권력의 도약판으로 이용한 후에 볼셰비끼 당은 자체의 자꼬뱅적 정치를 포기할 의도도 없었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자꼬뱅-볼셰비끼 전통의 최면으로부터 벗어난 현대의 좌파는 이런 경험에서 교훈을 끌어올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1917년의 다당적 쏘비에뜨에서 구현된 권력모델이 극히 조잡했음은 분명하다. 여러 면에서 의회주의에 비해 ‘노동자 민주주의’가 갖는 강점들은 단지 급진적 이데올로그들의 상상의 열매였을 뿐이었다. 이런 형태의 민주주의를 붕괴로 몰고간 것은 쏘비에뜨들의 허약함과 비효율성이었다. 쏘비에뜨들은 내란 상황에서 반혁명의 공격이나 볼셰비끼의 자꼬뱅주의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현실적 힘을 잃었던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 모델은 분명 자본주의 틀 바깥에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정도나 사회주의적이냐는 또다른 문제이다. 민주주의적 발전의 독특한 성격의 하나는 그것이 ‘한 특정한 국가나 국가들의 집단 내에서’ 일어나지만, 단지 어느정도까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길을 따라 더 전진할수록, 점점 더 세계시장의 모순들에 직면하며, 중심부에 대한 주변부의 종속에 점점 더 의문을 제기하게 되고, 초국가적 독점체들의 패권에 도전하게 된다. 역사적 단계를 뛰어넘는 일은 불가능하다. 반(反)자본주의적 전술의 성공은 ‘사회주의로의 도약’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렇지만 사회는 여전히 이러한 단계를 거치고 있다. 단지 다른 경로를 통할 뿐이다. 물론 맑스의 말을 빌려 “그 끔찍한 격변을 통하지 않고서” 산업자본주의의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억지를 가하는 것은 혁명을 타락시킬 뿐 아니라 세계적 규모에서 혁명의 이상을 타협에 내맡기게 되며, 그리하여 객관적으로 반동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회주의인가 권위주의인가’의 악순환을 깨뜨리기를 원한다면, 단순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은 거부해야만 한다. 의회주의적 길을 따르려는 노력은, 너무나 자주, 참여한 세력들이 제자리 걸음만 거듭하는 것으로 끝장나거나, 칠레의 경험이 보여주듯 때로는 자유민주주의 제도 자체의 붕괴에서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의회주의에 대한 대안은 의회의 해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의 의회와 ‘아래’의 민주권력의 기관을 결합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의회를 대신한 쏘비에뜨가 아니라 의회 더하기 쏘비에뜨이다. 계발되고 교육받은 부르조아지가 없을 때, 특히 민주주의 제도의 위기가 서구의 한 특색이기도 한 때에 ‘부르조아적’ 또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민주주의적 대안은 있지만 이것은 부르조아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대안은 아니다. 동구쇓남반구에서 실질적인 사회주의적 요소가 없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만일 공적 부문이 경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권력이 노동자들과 그들의 당에 있다면, 자주경영이 국가구조 내에서 발전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된 사회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충분치 않다. 사적 부문과 초국적기업들이 단순히 공익에 직접적으로 이바지하는 기업들에 의해 견제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발전에 대해 취해진 접근 자체가 변화해야만 한다.
사회주의 경제에서 국가의 기능
좌파 이데올로그들 사이에서 국가의 가능성에 대한 건전한 회의주의가 ‘국가 없는 사회주의’(stateless socialism)의 정신이 낳은 얼토당토않은 이론으로 재빨리 대치된 것은 매우 위험스럽다. 사회주의자들이 국유화 문제를 제기한 1950년대에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재산 그 자체는 통제의 기제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전세계적 규모로 국가부문(the state sector)의 파괴를 초래하면서 광범위한 사유화가 시작됐다. 반면 좌파의 중요한 한 분파는 사유화에 저항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사유화의 결과와 타협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기업들에 대해 개입하기를 꺼려한 것은 약점의 분명한 징표이다. 기업자본은 이를 분명 약점으로 파악할 것이다. 즉 새 지도부의 약점을 본 대기업은 끝없이 새로운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개혁을 위한 투쟁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누가 누구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좌파세력이 끈질기고 공격적인 곳에서만 적어도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사회적 타협을 이룰 수 있다.
시장에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거래 규칙 제1조는 안다. 괜찮은 거래를 하고 싶으면 원하는 값 이상을 부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책임있는 경영’에 관한 스스로의 말에 최면이 걸린 좌파 정치가들은 그들의 적대적 계급이, 아니 결례를 용서하시라, ‘사회적 동반자’가 시장법칙에 따라 살며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법규도 존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했다. 자본이 소유의 영역에서 급진적 개혁과 스스로 타협하리라고 가정할 이유는 없다. 고유한 자원이 있고 국내의 사업의 이해관계가 응집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거대 초국적기업조차도 위험하게 시장에 참여하기보다는 국가부문에 양보하기를 선호할 것이다.
리투아니아, 폴란드,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좌파정부가 자신을 뽑아준 민중들의 이익을 위해 급진적 조치를 취하는 데 똑같이 두려움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결국 적을 안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그들 자신의 지원자들을 위해 뭔가 해주려는 생각보다 더 강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리투아니아,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에서 공산당 특권관료제의 노장들은 자신의 경험과 전통에 발맞추어 행동하고 있다. 2,3년간의 재야활동으로 그들이 형편없는 관료에서 열렬한 혁명가나 유능한 개혁가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좌파는 전혀 다른 경우이다.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승리와 공산당 및 다른 좌파 그룹들의 성공을 확보해준 것은 민중의 투쟁이었다. 민중들은 여전히 조직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적극적이다. 이는 변화가 좀 다른 씨나리오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는 희망이 근거 있음을 의미한다.
혼합경제는 매력적이지만 여전히 공허한 구호에 머물러 있다. 경제의 구조적 개혁 없이는, 그리고 국가권력 체제의 쇄신이 없다면, 혼합경제는 시도해본 결과 결함 투성이임이 판명난 모든 ‘모델들’의 악덕을 조합할 뿐이다.
국가계획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발전수준이 낮을수록 후진성의 극복을 용의주도하게 겨냥한 정책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statization)의 필요성이 커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남한에서의 국가개입이 중국의 그것과 상당히 다른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이 논의의 요점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개입 자체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권위적쇓관료주의적 권력구조는 국가부문을 비효율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후진성이 심할수록 관료주의는 그만큼 악화된다. 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은 가속화된 발전의 전제조건을 만드는 동시에 진보의 길에 장애물을 놓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치료의 필요성이 커질수록 약효는 감소하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개념인 권력, 질서, 진보의 악순환을 깨고 나와야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필요한 것이 ‘큰 국가’인가 ‘작은 국가’인가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 대신, 다른 종류의 국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권력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야말로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유럽 사회주의운동의 참여자들은 개별 공장에서의 생산의 합리적 성격과 자본주의 시장의 비합리적쇓낭비적인 무질서가 양립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주요 모순과 비효율성을 경험했다. 따라서 그들의 사회주의 기획이 본질적으로 제안했던 것은 자본주의에 의해 시작된 경제의 합리화 과정을 단지 논리적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레닌은 미래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 보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자본주의 공장’임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그런 생각이 후진국들의 ‘서구화주의자’와 근대화론자에게 매력적이었음은 놀랄 일이 아니다! 반면 20세기의 경험은 거대 공장 모델에 따라 사회를 합리적으로 구성하려는 시도가 끔찍하고 법적으로 불합리한 관료주의를 만들어냈음을 인식시킬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합리성에 대한 자본주의적 또는 ‘서구적’ 개념이 편협하다는 사실도 입증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에서조차 사회와 환경의 조화라는 사상은 사회를 합리적으로 조직하려는 계몽주의 이론을 이어받는 일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다. 당면과제는 현실의 정치, 경제적 변화의 형식 속에서 이러한 구호들에 내용을 부여하는 일이다. 주요 임무는 가능한 최고의 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발전을 결합하고 취해진 모든 결정들이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일임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미로를 빠져나올 길을 찾을 수 있다. 각자의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근대화론자의 정신을 사로잡아온 동질적 사회라는 유토피아는 거부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적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다종다양한 ‘알록달록한 사회’(motley society)를 선택함을 뜻한다.
만약 국가의 사회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구조가 양립할 수 없어 혼란에 빠진다면, 미래는 실로 암울하다. 만약 이러한 구조들이 나머지 다른 구조들과 더불어 평행을 이루며 함께 작동하면서 그 고유한 변화와 근대화의 과정을 겪는다면, 이는 참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민족적 부르조아지가 그 잠재력을 소진하지 않은 곳에서는 부르조아지 역시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인 ‘프로이쎈식’ 자본주의 발전의 길과 민주주의적인 ‘미국식’ 자본주의 발전의 길에 대한 레닌의 생각을 떠올려보는 것은 의미있다. 전자의 경우, 자본주의적 소유관계가 과두정이나 당국에 의해 위로부터 강요된 반면, 후자의 경우는 그러한 관계가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발생했다. 레닌은 사회주의의 전망 안에서 그 두번째 길이 가능함을 거의 내다볼 수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아래로부터의’ 기업가정신의 성장이 사회주의적 조치가 성공적으로 적용된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종속의 극복, 그리고 나라의 후진성과 종속을 이용해먹은 관료주의 및 매판자본가들의 이해관계의 추방은 민주적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한 분명한 기회를 열어놓는다. 필연코 이행의 시기는 있게 마련인데, 이때 사회주의를 향한 현실적 운동은 민족자본의 기업가정신의 발전을 동반한다. 앞으로 여러가지 경로와 수준에 따른 진보의 약속이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이런 진보만이 진정으로 유기적 발전을 보장해준다.
필연적으로 진정한 협동과 공산적 소유관계와 같은 민주적 경제의 수많은 이행기적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 본질상 사회주의적인 것도, 자본주의적인 것도 아닐 것이다. 공적 부문과 국가는 노동자들의 손에 있어야만 하는데, 공적 부문과 국가의 역할은 생존가능한 민주주의의 창출에 결정적이다. 공적 부문만이 중간공학(소규모의 간단한 방법이나 기술을 최첨단 기술 또는 기계와 결부시킨 공학 - 역주)의 보급과 다른 부문에서의 진보적 변화를 위한 과학기술의 토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회적 소유는 다양한 형태, 즉 국가소유, 자치단체 소유, 협동조합적쇓집단적 소유와 같은 형태들을 취할 수 있다. 공적 재산의 탈중심화된 소유는 사적 독점의 전횡이나 관료주의적 통치 하에서는 달성할 수 없는 역동적이며 통합된 발전을 보장한다.
국유화의 중요성
그런 전략은 사회주의 원칙 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실행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투자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다양한 층위의 민주적 권력기관의 손에 사회자본의 중요한 일부가 집중됨으로써 발전 프로그램과 단순히 흉내만 낸 것이 아닌 진정한 시장과의 결합이 가능하게 된다. 대의기관은 다름아닌 행정적 통제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 그들의 임무는 공적 부문에서 투자과정의 역동성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틀, 목적,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만일 1980년대까지 동구와 서구 모두에 존재했던 관료화된 형태로라도 국가부문이 부르조아 엘리뜨의 이해관계에 잠재적인 위협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기회가 생기자마자 그렇게 광적으로 국가부문을 파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냉전시기에 서구의 지배엘리뜨들은 사회안정과 지속적인 성장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서 몇몇 ‘사회주의의 요소들’과 억지로 타협하였다. 사회민주주의의 성공을 위한 객관적인 전제조건을 마련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그러한 전술적 양보는 필요없게 되었다.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일련의 공격이 잇따랐다. 국가부문의 해체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복지국가의 여타 구조들 역시 불가피하게 청산대상이 되었다. 국유화의 거부는 사실상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진지한 노력의 거부를 의미한다. 물론 국가소유 자체가 그것만으로 사회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유재산이 국민소득의 좀더 정당한 분배나 조화로운 발전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부문 없이는 이러한 모든 문제의 해결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생전에 뜨로쯔끼는 이 점을 예증하기 위해 멋진 비유를 들었다. 『배반당한 혁명』에서 그는 생산수단의 국가소유를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누에고치에 비유했다. 누에고치는 나비가 아니다. 누에고치 속의 유충 중에서 수백만 마리는 나비가 되지 못하고 사멸하지만, 누에고치의 단계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사회주의’의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것의 필연성도 보지 않을 수 없다.
협동조합과 집단적인 기업의 설립 및 경제의 유연한 사회적 조절을 위한 수많은 계획들은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력한 국가부문 없이는 이 모든 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부문이 생산씨스템의 핵심으로 활동하지 않는 한, 자주경영 기업들은 투자부족에 시달리고, 결국 거대자본의 노예가 될 것이다.
거대 금융자본의 경제력을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유화이다. 그렇게 되면 근대화와 구조조정을 위한 대안적 전략이 가능해진다. 국가부문이 재등장해야만 투자과정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통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 국영기업이 비효율적이라는 신화가 좌파 사이에 많이 통용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국가소유 산업이 경제적으로 실패했다는 관념을 이론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다른 요인들이 동일하다면, 국가소유의 기업이 사기업보다 더 못함을 보여주는 통계상의 자료를 아무도 인용할 수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사유화의 기간에 그와는 정반대임을 보여주는 엄청난 정보가 쌓였다. 영국에서 성공적인 사유화 사례에 대한 연구들은, 주요한 효율성 증가가 사유화과정에서가 아니라 기업들이 여전히 국가소유였을 때 사유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음을 보여주었다. 기업들이 개인의 손으로 넘어갔을 때, 새로운 소유주들은 어느 것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거나 개선할 수 없었다. 동유럽과 러시아의 경험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사유화는 과학기술 수준의 저하와 생산성 및 일반적 효율성의 극심한 하락과 함께 생산성, 노동규율 그리고 경영상 책임의식의 급격한 감소를 나타냈다. 국가에 수익을 조달했던 기업들의 대다수가 사유화 이후 적자를 보기 시작했다.
효율성의 관점에서 보면, 집단소유의 여러 기업들이 기록한 결과도 특별히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경영민주주의를 위한 공동소유제를 주장한 이데올로그들이 펼친, 이런 모델에 경영민주주의가 본질적이라는 주장 역시 의심스럽다. 연구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주와 외부 자본(외부로부터의 신용, 투자 등) 모두에 결국 의존하게 되는 기업에서는 과두정적 체제가 급속히 형성된다. 물론 집단소유제의 모델이 바뀐다면 이런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국유화된 부문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국유화된 기업들이 언제나 완전무결하게 경영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말일 것이다. 여러 나라의 국유화 기록은 명백히 복합적이다. 국유화의 성과는 먼저 국가의 상황에 달려 있으며, 다음으로 국가의 구조와 사회적 성격에 달려 있다. 국유화의 유효성,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능력, 국가 부문의 구조, 그 내부에서의 노동자들의 위상, 경영에서 민주화 정도, 이 모든 것은 그 나라의 세력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국가기업의 모델이 국가의 모델처럼 극적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급진적 개혁주의의 본질적 임무인데, 그러한 개혁주의의 특색은 공산주의나 사회민주주의적 유형의 독단적 경향과는 구별된다. 공산주의가 ‘노동자 권력’과 ‘인민들의 재산’의 깃발 아래 해묵은 제도들을 재생산하려는 태세가 되어 있다면, 사회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실패를 빌미삼아 점점 더 어떠한 변화의 시도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나라에서 국유화는 근대화의 상황에서 투자기근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하고, 사회적 세력관계를 바꾸고, 권력과 소득을 재분배하며, 구조적으로 보수적인 시장경제에서 불가능한 재구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경제부문이나 독점기업들을 국유화할 태세의 수준은 개혁주의적 정부의 진지함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지배엘리뜨와 좌파 정치가 모두, 성공적으로 국유화가 시행된다 하더라도 사회의 자본주의적 관계가 파괴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질적으로 새로운 제도와 사회적 세력의 새로운 관계가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창출할 수는 있다.
좌파의 새로운 자세
권력을 잡고 있거나 막 잡으려는 좌파가 끊임없이 자기들 입지의 취약함이나 IMF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들먹거리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IMF와 여타 국제 금융기관들의 힘은 무엇보다도 자신들은 국제적 차원에서 활동을 조율하는 반면 상대편은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에 있다. 결과적으로 금융적 협박정책에 대한 해결책은 개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개혁을 명료한 변화정책 및 국내의 대중운동에 대한 신뢰와 결합하면서 동맹군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태를 정당화하기 위해 점점 자주 동원되는 이론적 논쟁은, (맑스주의자든 사회민주주의자든) 좌파 전략의 핵심요소로서 국민국가는 이제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는 발상을 담고 있다. 국민국가의 역할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지구시장’의 맥락에서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화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정치적쇓경제적 발전에서 여전히 핵심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는 점 역시 논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국적기업들이 국민국가를 그들의 정책적 도구로 끊임없이 이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IMF가 국가간 기구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라는 말이 도대체 맞는 말일까? IMF의 지배세력은 민간은행이 아니라 채권국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IMF의 전지구적 역할은 기본적 시장요소들의 강화된 역할이 아니라, 정반대로 주변부 나라들에 대한 핵심부 국가들의 강화된 전지구적 경제적 역할을 증언한다.
좌파들이 스스로의 국제적 경제전략을 갖고 지역적 차원에서 조율된 방식으로 활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협동의 도구와 출발점은 국민국가일 뿐이다.
국유화는 국제 금융자본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엘리뜨들로 하여금 중요한 양보를 하게끔 하는 것은 다름아닌 재산 상실의 위협이다. 달리 말하면, 소유문제가 제기되기 전까지 더 작고 개별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영국 노동당이 1945~51년까지 추구한 국유화정책은 극히 제한된 것이기는 했지만, 복합적인 사회개혁 전체에 유리한 배경을 창출하였다. 반면 1990년 초까지 전지구적 과정으로까지 변한 사유화의 물결은 동구 또는 서구의 복지국가를 보존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민주주의의 문제는 개혁에 대한 집착이나 그 접근의 온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혁 프로젝트를 거부한다는 데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개혁적 잠재력이 부식되는 현상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의 체계적인 약화로 이어지는데, 이는 또한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까지 서유럽에서 개혁의 만성적인 실패를 설명해준다.
오늘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상황은 우려할 만한 근거가 있는데, 그것은 단지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좌절을 겪을지도 모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좌파가 권력투쟁에서 아직 이기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할 정부의 전망에 대해 회의적일 이유는 이미 많다.
패배 그 자체는 별로 무서운 것이 아니다. 훨씬 위험한 것은 이러한 패배에 올바로 대응하지 못하는 좌파세력의 무능력이다. 『변화의 변증법』에서 내가 좌파들은 후퇴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썼을 때, 나의 발언은 급진적 저술가들로부터 격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입장은 소련 군대가 모든 퇴각일정을 비밀에 부친 제2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일화를 떠올린다. 결과적으로 군대는 조직적으로 후퇴할 수 없었다. 모든 전술적인 후퇴는 파국으로 변했으며 철수는 공포에 질린 줄행랑으로 돌변했다.
정치에서 후퇴하는 법을 안다는 것은 전략적 목적을 위해 전술적 입장들을 희생하는 법을 안다는 것을 뜻하며, 운동의 보존을 위해 권력을 거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또한 퇴각의 시기에 자신의 목적과 원칙을 충실하게 고수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제 이같은 퇴각의 시기는 끝나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많은 증거가 있다. 좌파 정당들을 권력으로 돌려보낸 동유럽의 선거 결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인종차별 정책의 폐지, 독일 민주사회당(구 동독 공산당 - 역주)의 득세, 러시아 옐찐정부의 위기 그리고 이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국제금융 중심부에서의 분열과 혼란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만약 좌파가 자신의 불행에 좌절하고 자기 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구조적 개혁의 진지한 프로그램을 사회에 제시할 수 없다면, 결국 쉽게 참패할 것이다.
새로운 좌파 세대는 1980년대의 교훈으로부터 필연적인 결론을 끌어와야만 한다. 이 새로운 세대는 지금 형성되고 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하는 경우에 침착함을 잃지 않고, 무익한 교조적 논쟁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거부하며, 거리와 공장, 의회의 회의장, 또는 정부 집무실에서 다같이 실천할 태세가 된 새로운 세대는 곧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빨리 일어날수록 좋다. 〔柳熙錫 옮김〕
* 이 글의 원제는 “The Agony of Neo-Liberalism: New Chances for the Left or the End of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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