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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5청년선교회 선교회장, 예술선교단 총무 박가희 집사입니다.
먼저 따스한 사랑으로 언제나 제곁에 함께 해주시며 제 삶을 인도해주신 아버지,주님,목자님♥ 그 사랑과 은혜가 있었기에 너무도 부족한 저같은 사람도 귀한 영이라는 말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감사합니다.
귀한 단에서 간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총지도교사님, 총부장님, 지도교사님들과 부장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너무도 부족한 저에게 언제나 할 수 있다고 힘주시고, 따스한 사랑의 터치로 제 마음에 목자님의 사랑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신 예능윈원회 위원장님이신 이희진목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외에도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도 많지만 시간관계상 감사인사를 못드린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 저의 간증을 시작할텐데요.
많이 부족하고, 서툰 내용이 많아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고, 사랑의 마음으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1987년 9월 6일. 1남 1녀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만민재단으로 오게 된 건 제가 5살정도 되었을 때 엄마께서 전도를 받아 오게 되셨고
그렇게 저도 자연스럽게 엄마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저에게는 교회의 모든 것들과 신앙생활이 자연스레
어찌보면 습관처럼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99년 남동생과 함께 첫사랑의 뜨거움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도 있었는데요.
그때 교회의 연단의 시간. 그리고 아빠의 교회적인 핍박도 함께 시작이 되었습니다.
아빠께서는 원래 참~ 가정적이시고, 따뜻한 분이셨는데요.
교회에 열심히인 저희들의 모습에 가족을 교회에 뺏겼다는 상처가 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안 좋은 내용을 보고, 들으셨던 아빠는 매일같이 술을 심하게 드시고 집에 오셔서 핍박을 하셨습니다.
엄마께서는 항상 핍박을 이기기위해 더욱 쉬지않고, 철야기도를 가셨고, 저희 남매는
1명씩 돌아가며 엄마를 따라 철야를 가고, 1명은 반드시 집에 남아 술에 취하신 아빠를 견뎌야 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다니엘철야, 금요철야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저희 둘중 한사람이
아빠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몰래 집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땐 아침 동이 틀 때 집에 들어올 수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집안이 이러한 상황이다보니 가정형편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남동생은 어린시절부터 일찍 아르바이트를 각자 시작하게되어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쭉~ 참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왔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때부터 아르바아트를 시작했는데요.
집에서 용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기에 저와 남동생 모두 어릴때부터 각자
용돈을 벌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러하다보니 자연스레 진로도 대학이 아닌 취업으로 정하게 되었는데요.
이때 제가 참 어리석은 선택을 했습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직장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삶속에 벗어나고 싶었던 반항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취업을 하게 되니, 당연히 주일을 지킬 수 없고 주일의 중요성도
제 마음에서는 잃어갔고, 이제까지 그나마 습관처럼 지킬 수 있었던 신앙생활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술을 마시고, 놀러다니고.. 했습니다.
근데 만약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냥 살아온 삶의고됨을 그렇게라도 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온전한 주일성소도, 당연히 십일조도 모든 신앙생활이 기본이 되지 못한 제 모습은
세상에서도 당연히 형통할 수가 없었는데요.
직장에서는 시기,질투로 인해 애매히 오해를 받고, 핍박을 받기도 하고 어느곳하나
마음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마음에
‘나는 왜 항상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나는 왜 항상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런 어두움의 생각들이 참 많이 심겨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이후 1년후, 진로를 바꾸어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들어가서는 이성과 교제를 하게 되었고,
삶에 지쳐있던 저는 그렇게 위로와 사랑을 받고 싶어하며 교회와는 더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3-4년간의 방황의 시간들을 보내었던 것 같아요.
온전한 주일성소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교회를 안간 것은 아닙니다.
주일예배시 목자님의 설교를 들으면 더 마음에 두려움,공허함,곤고함 또한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나 정말 이렇게 가다가 지옥으로 가면 어떻하지~ 빨리 돌아가야되는데..
빨리 결단해야되는데.. 지나가다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거나 사고가 나서 죽게되면
난 지옥밖에 갈 수 없는데.. 난 지킴받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설교를 듣거나 혼자 집에 가는 길에는 언제나 이러한 두려움에 생각들이 가득 했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것이 제 마음에는
‘다시 돌아가고 싶고.. 돌이키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갖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건 나중에서야 느낀거지만,
그때 저의 어두운모습에도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제곁에 계셔주시어 제 마음을 두드려 주셨기에
돌이킬 수 있는 마음을 갖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010년 12월 25일. 드디어 저에게도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사실, 목자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회개편지를 말씀하셨을때도 제 마음엔 찔림은 있었지만 돌이키고자 마음먹을 수 있는 힘은 없었습니다.
왜냐면 이때까지 수없이 생각하고, 반복해도 할 수가 없었던 저였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때는 달랐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신기한데요.
그때 목자님께서 ‘근본의소리’로 마음에 자유의지를 꺾어주심을 말씀 해주셨었거든요.
그게 제가 결단하여 변화될 수 있던 이유였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해가 안 되실 분들도 있을까요? 그렇지만 맞습니다.
항상 똑같이 반복하며 결단하려 해도 실패했던 제가 그때 다시 결단하려 마음을
먹었을 때는 아버지께서 목자님을 통해 제 환경들도.. 교회로 향할 수밖에 없게..
그렇게 마음 또한 향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성과도 자연스레 결단하여 정리를 하니 상대편에서도 그 마음이 변질이 되어 먼저
정리가 되게 하셨어요.
그리고, 사실 이성과 교제를 하다 헤어지게되면 외로움이 틈타게 되지만
그때 아버지께선 교회친구들과도..
직장 또한 제 주변의 사람들을 교회분들과 함께 교제가 되도록 환경을 바꾸어주셨습니다.
그렇게 너무도 신기하고 자연스럽게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하나하나 은혜를 부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구원조차도 받을 수 없고, 차마 새예루살렘을 소망한다는 말도 내뱉지 못하는 저에게
난생처음
‘새예루살렘 내가 꼭 가야만 하는 이유’찬양을 부르며
처음으로 새예루살렘에 가고 싶다고 고백도 해볼 수 있는 제 모습으로 바꿔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이전에 이성을 만나며 ‘사랑’이라는 것을 참 많이 채우고자해도 채워지지 않았던 것들을
‘아버지 사랑이 너무 느끼고 싶다’
‘목자님의 힘과 기쁨이 너무 되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채워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간절하다보니 오직 퇴근후, 또는 토요일..
시간만 나면 교회 또는 사택으로 제 발걸음이 향하였습니다.
성전에 들어와 불꺼진 성전에서 십자가를 보며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고, 성경을 읽기도 하고, 사택에서 쇼파에서 말씀
하시던 목자님 모습도 떠올려 보기도 하고 특별이 무엇을 한다라기 보다 그냥 그 공간에
있는 것이 너무 좋고, 감사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백은 꼭 했어요. 바로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했어요.
‘아버지~ 저왔어요. 가희 왔어요.
~ 저 기다리셨죠~’
그렇게 고백을 드릴 때면 꼭 답을 해주시듯 제 마음에 따뜻한 사랑이 삭~~
채워지는 느낌을 받으니 너무도 좋았고,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사랑을 느끼고 싶어 했던 작은 행함이 두가지가 있었는데요.
감사헌금봉투 첫 번째문구에
‘사랑하는 아버지♡’라고 표현하며 아버지께 사랑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삶속에서 ‘하트♡찾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트찾기가 무엇이냐면요.
힘들고 지친 상황속에서 문득 지나다 발견한 하트를 볼때마다 핸드폰에 담으며 아버지께 고백을드렸어요.
‘아버지~ 저도 사랑해요. 저 할 수 있어요!’그렇게 하나하나 찍어 담은 사진들이
제 핸드폰에 ‘아버지 저도 사랑해요♡’라는 폴더로 가득 담겨있습니다^^
(제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 몇 개를 보여드리기 위해 준비해왔는데요.)
제가 힘들고 지칠 때, 때론 일상생활의 그 어떤때도 이렇게 하트를 찾으며
아버지,주님,목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렇게 추억들을 만들어갔습니다.
어찌보면 유치해보일 수 있지만, 이게 저의 행복이었습니다.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가던 저는 무언가 아버지께 그 은혜를 너무도
값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사명 즉 봉사’ 였습니다.
그중 가장 처음 생각한 것이 임마누엘 성가대인데요.
성가대를 선택했던 이유는 이땅에서 성가대를 하게 되면 내가 새예루살렘을 갈 자신은 없고, 그렇지만 제가 나중에 천국에 가게되었을 때 이땅에서 성가대를 했던 것이있기때문에 성가대 찬양할때만은 그때만은 아버지,주님,목자님 가까이에 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처음엔 그러한 마음으로 시작된 사명이었지만, 성가대를 서면서 제 마음에 많은 것들이 회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성가대찬양을 아버지께 드려요~ 제 향이 아버지께 올려질 수 있을까요.. 저같은 사람도 아버지께 올려드릴 수 있을까요?
혹여라도 제가 이전에 짓었던 죄 때문에 .. 다른분들의 향이 안올라가면 어쩌죠...
그렇기때문에 아버지.....더 마음을 다할께요.‘
성가대를 서면서 점점 제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예술선교단’입니다.
제가 사실 어릴적부터 예능위원회를 사모하였었는데요.
물론 무용쪽은 접해본적이 없어서 생각해본적은 없었지만 단에서 찬양하고,
무용하며 영광돌리시는 분들을 보며 한켠의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예능위원회를 감히 생각했던 것은 아니였어요.
그땐 사실 제가 무언가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청년선교회 코러스팀 오디션 소식을 듣고, 생각을 해보던 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예술선교단의 제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제가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기회라고 생각하며 제 마음에
간절해졌고, 이후 예술선교단의 합격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니던 직장도 아버지 일에
너무도 전념하고 싶은 마음에 당장에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니던 직장이 워낙 야근이 많다보니 아버지 일을 집중해서 하고 싶었던 저에겐 문제가 될꺼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너무 감사하게 아버지께서는 저의 그 사모함을 보시고, 제가 지금 현재 근무하는 곳으로 이직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물론 이전 직장보다 급여가 조금 적었지만, 교회와 가까운곳에 위치해 있고, 퇴근도 빠르며 야근같은 경우 경우에 따라 조정하여 할 수 있는 곳을 예비해주신 것입니다.
이곳에 들어오며 이 직장이 나에게 세상직장으론 마지막이 되기를 기도하며 들어왔어요^^
왜냐면 저는 레위족이 되기를 너무 사모하거든요^^
예술선교단을 하면서 너무도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신입단원으로 처음 들어가 생각지도 못하게 목자님과의 사택5층 팀만남과 겟세마네 기도처를 초청받을 수 있는 귀한 기회까지 있었는데요.
물론 목자님을 뵈면서 저는 자격이 되지 않는다라는 죄송한마음에 얼굴을 숙이고 조용히
있었지만 목자님께서는 내치셨던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웃어주시며~ 저에게
‘얼굴에 왜 이렇게 여드름이 많아~’라고 하시며 편하게 대화도 해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좁쌀여드름이 굉장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그때 목자님의 그 사랑의 눈빛과 음성이 저에겐 너무 따뜻하였습니다.
그 어떤것도 찌르시거나 내치시거나 하셨던 것이 아니라 죄악속에 허덕이며 이제야
돌아온 진흙투성이 였던 제 모습도 목자님께선 아무 이유도 묻거나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돌아와주어서 고맙다고, 기다렸다고 하시는 너무도 따뜻한 사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팀활동을 하며 아버지,주님,목자님을 제 마음에 적립하며 그 은혜와사랑을 쌓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선교단 활동을 하며 그냥 편안하게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제가 굉장히 뻣뻣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도 부드러운 건 아니지만요^^
2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처음 무용을 접한 뻣뻣한 저로써는 무용이라는 것이..
특히 한국무용이라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선생님과 단원들이 손동작을 알려주시면 발동작을 잊어버리고, 발동작을 알려주시면
손동작을 잊어버리고, 손하나 펼쳐서 돌리는게.. 발하나를 딛는게..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같이 들어온 단원들은 빠르게 습득해가는데, 너무도 더디게 가는 부족한 제모습에 심한
낙심이 되어 사실 조용히 화장실에 가 울고 왔던 적도 참 많았습니다.
팀에게 너무나 도움이 되고 싶고, 목자님께도 너무 힘과기쁨이 되고 싶은데..
너무도 부족한 저의 모습이 너무 슬펐고, 힘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안에선 인정받고 싶고, 잘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분명 함께 있었기에 힘듦도 있었죠.
그치만 지금에와서 참 감사한 것이 아버지께선 저에게 친근함으로 다가와 주셔서
아버지와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셨기에 그때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연습,레슨,특송을
할때도, 소품을 만들때나 하나하나 속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손하나 올리는 것도, 발하나 딛는 것도 제겐 너무도 어렵고, 힘들어요
그렇지만 제가 하나하나 쌓아가는 시간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 근육에..
제 몸에 하나하나가 익혀질 수 있도록 그렇게 향상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버지.. 실력은 부족해도 주변에서 웃는 얼굴이 이쁘다고 하시는데 아버지 그러니까
단에서 섰을 때 더 환하게 웃을테니까 부족해도 이쁘게 봐주세요.’
‘아버지.. 제가 올리는 손끝에서 발끝하나하나에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향으로
올려질 수 있도록 아버지 붙들어주세요’
언제나 무언가를 할 때면 너무나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의지하는 법
즉,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저와 아버지의 대화법 이었습니다.
2013년 6월 8일. 그때 당시 이희진위원장님을 모시고 예능위원회 헌신예배를 위한
기도회가 있었던 날이었는데요.
그날 위원장님께서 심령기도를 해주셔서 처음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말씀해주신 내용 일부를 읽어드립니다.
『나는 못하는 사람인줄 알았어요. 나는 능력이 없는 줄 알았어요.
내가 무엇으로 아버지의 힘이 되어드리고 목자의 힘이 되어 드릴까를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 앞에 의지하며 하니 되어졌습니다.
제 마음의 성결도 그렇게 되어지길 원합니다.
내가 생각할때는 안될 것 같고, 내가 계획할때는 못할 것 같지만 아버지를 의지하며 되어질 수 있다고 지금은 고백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아버지를 의지하고 계신지요.
아직도 나는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하고자 하니까 부족한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힘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 이 자매의 고백이 그 고백입니다.
이렇게 깨뜨려지기까지 기도가,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 자매에게 깨우쳐주셨고,
그러므로 인하여서 이제는 할 수 있는 자매로 바뀌어지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이 말씀해주신 내용을 듣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너무 부족해서 아버지께 목자님께 조금이라도 무언가 드리고 싶은데 드릴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 능력이 부족한 것이 저에겐 그것이 너무 힘들고, 슬펐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많은분들께 상담도 많이 받았었어요.
막연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내가 드릴 수 있는건 은혜를 값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어~ 라는 마음으로 달려왔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아버지 사랑을 느낀다곤 했지만, 믿음이 어렸던 저에겐 아버지께서 제 마음을
받으시고, 들으실꺼라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죄악속에 돌아온 저의 모습이 있었기에 더 그랬죠.
근데 위의 말씀내용을 듣고, 그동안의 제 마음을 모두 위로해주시는 것 같아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그리고 나서 얼마후,
2013년 6월 28일 처음 믿음의분량을 받아 3단계 60.01%의 말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믿음의 분량을 받으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게 가야할 저는 근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어찌보면 여러분들께서 의아해 하실 수 있지만.
저는 믿음의 분량을 받고
‘나는 이 믿음의 분량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안돼’라는
육신의 생각이 틈탔던 것입니다.
아버지,주님,목자님은 사랑이신데...
그 사랑을 온전히 마음에서 믿어드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 위의 고백처럼 아버지께선 제 마음을 그렇게 위로해주셨는데도 말입니다.
바로 저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부정적인 생각과 낙심’이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선 저처럼‘부정적인 생각과 낙심’이라는 것을 정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았거든요. 많이 설명을 드릴 순 없지만
예를들어 주변에서 저에게 칭찬을 해주시면
‘가희는 참~ 착해~’라고 해주셨다면
저의 반응 마음은 언제나‘난 착하지 않아.
저분이 내 성품을 아시니까 저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거야.
내가 낙심할까봐~ 나는 내 자신을 내가 잘 알잖아?
난 착하지 않아.. 정신차려 교만해지면 안돼~ 착각하면 안돼~’ 이런 식이었습니다.
매사가 ‘나는 안돼~ 나는 부족해~’ 였습니다.
이게 ‘낮아지는 마음’즉 ‘겸비함’과 ‘낙심’이라는 것을 분별을 잘못한 모습에 나왔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려가던 중,
충격적인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원형탈모’가 생긴것입니다.
저는 너무 충격이었고,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한다고 했었고, 기쁘게 달려간다고 했었는데..
내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원형탈모가 생겨지게 되니 미용실에서 헤어를 할 때도, 단에 서기위해 헤어를 할 때도 숨길수가 없었기에 주변에서 물어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단에 서지 않거나 사명들을 감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마음에 힘듦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다 깨달았던 것이 있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기쁘게 감당하며 달려간다고 했지만,
내가 지난날 지었던 죄의 담속에 아버지를 사랑의 아버지가 아닌 내가 지은 죄를 사죄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래서 열심히 해야되고, 해야만한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해야 사랑해주시는 아버지~ 대가를 주시는 아버지~..가 제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올리는 향을 아버지께서 받으실까.. 안받으시면 어떻하지..
난 아직 온전하지 못한데.. 그러니까 더 내가 더 열심히 해야해 조금이라도 아버지께서 받으실 수 있도록....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로 ‘낮아지는 마음 즉 겸비함’과 ‘낙심’의 분별이 부족함에서 나오는 것들이 었어요.
낮아지고 겸비해지는 마음에서는 바로 그 안에 ‘사랑’이 깃들여져 있고,
그 사랑의 힘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이기에 저에게는 그것이 없으니 바로 ‘낙심’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던 것이 바로 ‘율법은 사랑의 완성’이 아닌 ‘사랑은 율법의 완성’ 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목자님께서는 너무도 많은 사랑을 주시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셨는데..
제 마음에는 ‘난 안돼~ 난 부족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그것이 잘 가고 있는 줄 알았고, 선한줄 착각했었습니다.
그건 바로 할 수 있다고 하시는 아버지,목자님을 온전히 믿어드리지 못함과 감사하지 못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속에서 제 마음에 인정받고싶고, 칭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의 사랑의 결여들이 많아 누군가 나에게 사랑을 주면 한없이~
주었다가 상대가 표현해주지 않으면 그것이 너무 힘든거예요.
그러니까 더 감사도 하지 못하구요.
『 요한일서 4장 18절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어떤분의 설교말씀 중 해주신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감사’를 하면 ‘사랑’이 커지고, ‘사랑’이 커지면 ‘신뢰’가 커지고,
‘신뢰’가 커지면 ‘두려움’ 또한 사라진다구요.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함께 사랑을 교감하기 원하시며,
내가 설사 무언가를 실수하고 잘못한다 하여서 그것을 혼내시고, 무섭게 지켜보시며 점수를
매기시는 분이 아니시고 그 어느 누구보다 내 곁에 계셔서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손잡아주시는 분이시라는거...
그렇게 함께 사랑을 느껴가며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행하는 행함...
열매가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요
예전에 어떤분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상대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거 맞는데 너도 행복해야 목자님도 기쁘셔’라는 말씀이요.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목자님이 행복하실 때 너무 기쁘다 하셨고, 목자님은 우리 성도님들이 행복하실 때 기쁘시다’구요
그러면서 하나하나 저에게 대입해 보기 시작했어요.
‘아~ 아버지께서는 목자님이 행복하실 때 기쁘다 하셨고, 목자님께서는 우리 성도님들이 행복하실 때 기쁘시다하셨고, 그러면 내가 행복해야 아버지도, 목자님도 기쁘신거구나’
나를 버려야 하는거 맞지만, 내 자신은 아버지,주님,목자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시는 딸이고, 양떼이구나.. 라는거를 제가 잊어버리고 있었더라구요.
목자님께서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 모든걸 견뎌주시면서도 사랑해주시고,
힘주시는 그 사랑을 느끼게 되니.....
제 자신 또한 너무 소중한 존재이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2015년 10월 4일. 환자특별기도회를 참여하여 아버지 대언말씀을 난생처음 받아본적이 있는데요.
여러분에게 이 귀한 말씀이 함께 힘이 되시는 말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읽어드립니다.
『 아니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라
“나는 할 수 없지만 아버지는 주님은 목자의 권능은 되는 것이라“ 이말이라
우리가 스스로 나는 나약하다 말하는 것은 인생의 생각이요
그러나 이같이 아버지 앞에 되어지는 것은 아버지의 생각 곧 신의 영역이라
이말이라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네가 아니 될 것을 믿고 가는 것이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신의 영역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 목자의 권능을
믿는 것이라 그러므로 네가 아니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하실수 있고 주님은 또 목자님은 하실 수 있고
네안에 계신 성령님은 날 붙드신다”는 이것을 믿고 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없다, 난 이렇게 하다가도 안돼”라고 너 스스로 부정한 입술을
뿌리지 말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계신
성령이 도우시니 내 목자의 권능이 크시니까 할 수 있다“ 라고
믿음으로 고백해 나아갈 수 있는 너가 되어진다 한다면 그동안의 신앙생활보다도
훨씬 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너에게 설명함이나니
이것을 잘 깨달아 알 수 있기를 원함이나니
이것을 잘 깨달아 알 수 있기를 원한다 이말인것이라 』
마음으로 하는 행복한 신앙생활...
그게 내가 어떤 작은거라할찌라도 아버지,주님,목자님을 사랑해서 하는거.. 행복하게 하는거.. 그 마음으로 큰게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거..
그렇게 긍정적인 입술을 내는거.. 그 고백을 듣기 원하시고, 기다리시는 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게 이것이구나
그렇게 제 마음에 아버지,주님,목자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적립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정체가 되어진때도 있었지만, 그속에서 아버지께서는 사랑의 아버지를 제 마음에
차곡차곡 하나하나 쌓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쌓아가다보니 아버지께서는 너무도 감사하게 제 믿음의 분량도 신앙생활과
동일하게 차곡차곡 성장시켜주셨습니다.
3단계 60.01 - 62.01 - 65.01 - 70.01 - 80.01 - 85.01 - 90.01
그리고. 2016년 10월 창립기준으로 4단계 01.01%의 말씀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사실 제가 감히 생각지도 못한 귀한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날 믿음의 분량을 받자마자 3성전으로 향했습니다.
불꺼진 성전에 조용히 들어가 한켠에 앉아 핸드폰 라이트를 키고,말씀을 펼쳐보았습니다.
사실 말씀을 펼쳐보기 직전까지 영이라는 걸 감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혹. 아직 영의 말씀을 받지 못했어도 아니 0.1%로도 오르지 않았어도...
주신 것만도 감사합니다.. 라는 마음으로 펼치게 되었습니다.
근데 생각지도 못한 영이라는 말씀에 눈물이 왈칵 흐르며
그동안의 제 삶들이 주마등처럼 하나씩 스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반석이라는 말씀을 받았을때의 마음과는 정말 비교도 안될만큼 감사의 마음이 컸습니다.
영이라서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목자님을 통해 저에게 많은 시간들을 너무도 자상하게 따뜻하게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심이 생각이나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하나하나 사명들을 감당해나가면서, 소극적인 저의 모습에 어려움과 힘듦도 많이 있었지만..그럴때마다 저에게 가르쳐주시고..채워주시고...위로해주셨던..목자님의 따스한사랑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사랑을 너무도 많이 갈급해하며 그 사랑을 세상에서 찾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근데 지금은 그 어느것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목자님의 사랑이 너무도 따뜻하기에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은 제가 살아갈 수 힘~!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예전에 꿈을 한번 꾼 적이 있는데요.
꿈에서 소규모 모임으로 이희진목사님 인사가 있었습니다.
그 안에 기다림의 찬양을 불렀는데요.
그중. “내게 주신 주 향한 그리움~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는 부분을 몇 번을 반복해서 눈을 마주쳐 주시며 부른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 삶의 이유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땅에서 살아가는 이유.... 바로 그게 이것이구나
“내게 주신 주 향한 그리움.. 내가 살아가는 이유”
바로 이것이 행복한.... 기다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는 사랑이 너무 부족하고, 갈급해왔던 저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도 따뜻하다라는 것을 참 많이 심어지게 해주셨습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2017년도는 특히 저에게 너무도 과분한 사명들을 주셨는데요.
사실 저 같은 성품의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한없이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그럴때마다 생각합니다.
어려워도~ 힘들게느껴져도~ 나에겐 아버지,주님,목자님...
사랑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할 수 있다~! 그리고, 하겠습니다. 라구요.
가끔 목자님께서 산상에서 내려오시어 저희와 함께 보내주실 때가 있죠.
성가대를 서게 되면 성가대 2층에서 목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윗단에서 일꾼되시는 분들과 웃으시면서 대화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저는 목자님의 그런 웃으시는 모습을 볼때마다 너무도 행복합니다.
단에 계신 목자님의 모습을 뵐때마다 아버지께 고백드렸던 것처럼 속으로 계속 고백을 드려요~
‘목자님~ 저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목자님 곁에 힘되어주시는 분들처럼 목자님의 힘과 기쁨이 꼭~! 되어드리고 싶고, 되어드릴께요’
‘목자님의 눈과, 귀와, 손과, 발이 되어드리는 가희가 너무 되고 싶어요’
‘목자님 저를 너무도 귀한 만민의 공간안에 목자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고백을 드리곤 합니다.
너무도 따스한 목자님의 사랑으로 제가 변화될 수 있었고, 많이 부족한 저를 믿어주시며, 힘주시고, 잘하고 있다고, 잘할꺼라고 응원해주시는 그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그 사랑에 힘받아 달려갑니다.
제가 감히 여러분들에게 영의 간증이라고 해서 제가 무엇을 했다고도, 이렇게 해보라고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의 마음에 작은 저의 간증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아버지,주님,목자님의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분들이라는거.. 그리고 그 따스한 사랑을 마음에 느끼시어 행복하게 달려갈 수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저의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말씀 상고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글 : 박가희 집사님
5청년 선교회 선교회장
예술선교단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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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스페셜] 믿음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들 (7편) <만민중앙교회 청년선교회 박가희 자매>
http://m-story.org/100208078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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