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잃어버릴 수 없는 성도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8)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고, 예수님 당시에 살던 젊은 부자 법관을 비롯해 영생을 얻고자 하는 소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염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잃어버릴 수가 없는지, 곧 영생이 따 논 당상이 되는지 단순하고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눅 18:29-30) 위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가족을 버리고 노숙자나 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닌 줄 모두 아실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주님보다 우선순위에 두지 않아야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우리가 결심하고 실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계명을 잘 지킨 젊은 부자 법관이 영생을 얻고자 달려와 무릎을 꿇는 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그의 부족한 문제점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눅 18:22) 이 말은 들은 젊은 법관은 부자인고로 심히 근심하며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재물 때문에 영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만큼 내가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소유의 집착은 무서운 것입니다. 부자 법관에게는 재물이 문제가 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재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명예, 평판, 영광, 탐심 또는 아내, 남편, 자식 등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께 전적으로 굴복하고 헌신한다고 하면서도, 미처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육체의 소욕을 가진 ‘나’ 를 주님보다 영생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 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25-27) 그 당시 ‘미워한다’ 라는 뜻은 내 우선순위 첫째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허다한 무리가 따라오는 것을 민망히 바라보시며 “너희가 나를 따라오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좀 알고 따라오라”는 의미로 위 말씀을 일갈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아주 엄격하고 철저하며 단호한 지상명령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 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않아서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이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이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눅 14:28-30) 오늘날도 허다한 무리가 교회를 다니며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어디까지 주님을 따르겠다는 계산을 해보지 않고 그저 안일한 생각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큰 문제점 입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어떤 과장이나 상징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겸허히 주님을 따르는데 어디까지 따를 결심인지 계산을 해보아야 합니다. 내일, 모레, 아니 이번 일만 이루어지면, 아이들 대학공부만 마치면 등등으로 미룰 수가 없는 아주 긴급한 일입니다. 나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내 믿음이 결정됩니다.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 13:5)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3) 모든 소유는 재물, 가족 등 외형적인 것만 아니라 내가 가장 중요시 여겨 버리고 싶지 않은 무형적인 자존심, 이기심, 명예, 평판, 영광, 정욕 등도 모두 포함됩니다.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내 인생의 최고 권위로 삼고 온 몸과 마음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진정 내 인생을 책임져주시고 이끌어주십니다. 그렇게 살기로 선택하고 결단하시겠습니까? 믿음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이이고! 나는 안되겠다!” 라는 계산이 나오면 아예 지금 포기하는 것이 더 좋다고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이 협착하고 좁아 마음이 흔들려서 중도 포기하면 애당초 아니 간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나오는 확고한 진리의 말씀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렇게 핑계하고 저렇게 피하며 타협하려고 합니다. 또는 선생들에게서 잘못 배운 교리나 지식으로 진리를 덮어버립니다. 그렇게 하는 근본적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버리라고 하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갈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기에 진리가 숨긴 바 되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고 맙니다. “이것을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 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눅 10:2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했을 때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었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눅 18:34) 제자들은 거의 다 재산, 집, 직업, 가족 등을 다 버리고 주님만을 따른 신실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편견과 잘못 배운 지식으로 메시아가 왕이 될 때에 누릴 영광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했기에 눈과 귀가 멀어 아주 분명한 주님의 말씀을 하나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부자 법관의 문제는 ‘재물’ 이었지만 제자들의 문제는 ‘자기 영광, 명예, 평판’ 등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부족함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합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이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 2:4) 우리는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군대에 가면 훈련소에서 “하라면 하지 무슨 잔말이 많아!” 하면서 잡아 돌리면 모두들 명령에 순종하는 늠름한 군인이 됩니다. 군대에서도 상부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해야 한다면,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나의 주인이요 대장이신 주님께서 나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 주신 명령에 아무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합니다. 나아가 진리의 말씀을 접할 때 주님한테 감사한 마음이 들어야 정상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 그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주님을 내 인생의 최고로 삼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드려야 할 충성, 사랑, 헌신을 가로막는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확고한 결단과 각오로 주님께 올인 해 영생을 잃어버릴 수 없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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