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탕관
장은영
오래도록 시들했던 물건에 새삼 마음을 뺏기는 이유는 무얼까. 세월의 때가 잔뜩 낀 약탕관 하나를 앞에 두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너저분한 구닥다리 세간을 정리하겠다며 창고를 뒤지자 약탕관이 먼지로 뽀얗게 분칠한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함께 했으니까 족히 70년은 되었을 물건이다. 도대체 약탕관이 언제부터 거기에 갇혀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분명한 건 전기약탕기를 들여놓으면서 내가 치웠을 거라는 짐작이다. 하루아침 창졸간에 하릴없는 존재가 된 녀석을 두고 내가 언제 너를 귀하게 쓴 적이 있기나 했었냐는 듯, 그간의 수고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조차도 없이 창고 구석으로 밀어 넣지는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약탕관으로서는 몹시 서운했을 일이다.
비로소 외양을 뜯어보니 참으로 못생겼다. 맵시 없는 자태는 옹기의 전형이려니 하더라도 두루뭉술한 모양새와 거무튀튀한색깔도 그렇거니와 바닥에서부터 주둥이 언저리까지 볼품없이 크게 내달린 손잡이의 언밸런스며, 아무래도 무성의한 도공의 솜씨지싶다. 그렇지만 전기약탕기의 날렵하고 세련된 외모와 비교해 외양은 초라하나 투박하고 멋대가리 없는 모습이 되레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랄까. 사람으로 말할라치면, 검게 탄 얼굴에다 무뚝뚝해 뵈는 표정과 어수룩한 매무새가 도무지 세련미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우직하면서도 두둑한 배포를 지닌 순박하고 듬직한 사내가 연상되면서 편안하고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하긴 약을 달이는 게 제 소명이니 외모가 못생겼다고 이러저러하면서 타박할 일은 아니다.
어릴 적, 우리 집 약탕관은 할아버지 밥상에 오르는 그릇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았었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아서적잖은 약을 약탕관에 달여 내 건강을 챙겨주었던 때문이다. 자식 넷을 앞세워 떠나보낸 어머니는 또 자식을 잃을까 노심초사 전전긍긍이었고, 온 가족이 그저 쥐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키웠다고 하니, 그런 내 건강을 챙겨주던 약탕관은 귀한 대접을 받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약은 정성이여. 넌 약을 먹는 게 아니라 니 에미 정성을 먹는 거다.” 할머니는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거듭 이르셨다. 어머니는 깨끗한 한지로 약탕관을 덮은 다음, 왼손을 펴서 종이를 살짝 누르고는 오른손으론 종이 끝을 쥐고 약탕관 주둥이를 빙빙 따라가며 배배 꼬아 말아서 뚜껑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숯불이 벌건 풍로 위에 올려놓았다. 종이 뚜껑 위로 김이 솔솔 오르면 어머니는 연신 부엌과 마당을 들락날락하며 불을 챙기다가 아예 풍로 앞에 쪼그려 앉으셨다. 어머니는 달여진 약을 삼베 보에 쏟아붓고 잘 여민 다음, 막대기 두 개를 보자기 양 끝에 휘감고 그걸 지렛대 삼아 약을 짜내셨다. 약사발에 담긴 약은 신기하게도 매번 같은 양이었다. 할머니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나는 신통하리만큼 냉큼 잘 받아먹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금은 탕약은커녕 그 흔한 비타민까지도 포함해 일체 약 먹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와 약탕관의 새로운 동거가 시작된 것은 내가 결혼해서 첫아이를 가지면서부터였다. 비쩍 마르고 약골인 몸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했고, 임신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버거웠다. 약탕관은 할머니 손에 붙잡혀 내 집으로 옮겨왔고, 자연스레 어릴 적 어머니의 약탕관은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그리고 내가 첫아이를 낳고 둘째를 낳은 후에도 여전히 내 곁에서 충실히 제 소명을 다했다. 그랬건만 내가 전기약탕기와 친해지면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가 결국은 토사구팽을 당한 것이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약탕관을 내 애장품으로 예우하기로 했다. 그래서 약탕관을 깨끗하게 닦았다. 수없이 약탕관을 만지고 씻었을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졌다. 버리기로 작정했던 고가구 장식장을 다시 거둬들였다. 베란다 한쪽에 자리 잡고 창고에서 함께 뒹굴던 등잔, 향로, 주병을 꺼내 나란히 올려놓았더니 자못 어울렸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장미꽃 한 송이 꽂아놓으니 약탕관이 꽃병으로 환생한 듯하다. 약탕관의 투박한 몸뚱이와 화려한 장미의 어울림이 절묘하다.
이제껏 창고에 처박아 둔 주제에 무슨 변덕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야 어찌했든 나이든 지금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오롯이 담긴 그릇이라 여겨지면서 마음을 빼앗기는 걸 어쩌랴. 낡고 못생긴 오지그릇 한 개를 두고 웬 미련이냐는 듯 남편은 눈길 한 번 주는 일 없지만, 나로서는 어릴 적부터 함께해 온 긴 세월의 끈이 나를 잡아매는 걸 어쩌겠는가. 무엇보다 약탕관을 버린다는 건 두 분의 마음까지도 버리는 것 아닌가. 약탕관 입장에서도 딱히 제 할 일이 없는 지금에 와서 떡하니 한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기엔 명분이 궁색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약탕관도 할아버지 밥상의 그릇만큼이나 소중한 대접을 받았던 시절을 추억하며 당당하게 지내길 기대하는 것이다.
약탕관이 숯불에 제 몸을 달구어 우려낸 건 탕약이 아니라 두 분의 사랑이었다. 나는 오늘도 약탕관을 넌지시 바라보면서 가슴 뭉클한 두 분의 사랑을 음미한다. 군데군데 빗간 흠집에서 두 분 사랑의 전율이 전신으로 흐른다. 닳고 닳은 약탕관 몸뚱이에서 세월의 흔적을 보며 인생을 음미한다. 약탕관도 나도 고왔던 시절로 돌아갈 순 없어도 주름으로 새겨진 삶의 흔적은 아름다운 사연이 담겨있어 곱다.
내 인생의 불빛이 꺼지면 약탕관도 자녀들에 의해 가차 없이 버려져 제 운명을 다할 것이다. 자녀들이 약탕관에 담긴 엄마의 사연을 모를뿐더러, 안다고 한들 무슨 연유로 애장하겠는가. 엄마의 몹쓸 집착의 흔적이라 치부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당당했던 시절의 숨결이 멎으면 그 생애를 산자락에 묻고 잊혀진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이런 약탕관을 바라보자니 어머니와 할머니 손끝에서 달여져 울안을 서리서리 감돌던 한약 냄새가 두 분의 사랑인 양 코끝을 스친다.
첫댓글 참 잘하셨어요, 약탕관에 꽂은 장미꽃을 엄마께서도 엄마의 엄마께서도 너무 좋아라 하실 것 같네요. 조근조근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했어요. 잘 계시는거죠.^^
약탕관을 통해 어머니와 할머니 사랑을 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님와 할머님을 보았어요.
버려질 운명의 약탕관과 내 인생과 비유도 절묘하군요.
깊은 울림을 주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옛날엔 집에 약탕관 하나 쯤은 지니고 있었지요.
정성껏 달인 약으로 병이 나아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지요.
아직도 약탕관을 갖고 계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애정이 듬뿍 담긴 약탕관에서 가족의 사랑이 묻어나고, 또한 진한 사랑의 꽃으로 피어나는 어름다운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차분하고 세밀한 묘사가 그림을 보는 것처럼 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글이란 문장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글을 만났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저는 시집가서 연탄화덕에 약탕관 올려놓고 탕약 끊이는 일만 하지않았으면 하던 새댁시절이 떠오릅니다.
조금 일찍 짜면 출렁!
조금 늦게짜면 짜작! 에구 어려워! ㅎ
어릴적엔 약탕관에서 피어오르는 약내새가 그렇게 싫더니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담긴 그리운 냄새로 코끝을 스치는 것은 우리도 어머니와 똑 같은 세월을 살아온 거 겠지요. 장미꽃 한 송이 엄마가 끼뻐하시겠어요. 좋은 글 정말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