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신문 : 전방후원분 기원은 한반도로 밝혀져(한일 기원논란 매듭)
[서울신문 기사] : 한일학계/「전방후원분」 시원 논란 매듭 | 서울신문 (seoul.co.kr)
1 기사 주요 내용: [ “나카야마현 고분이 한국 적석총서 영향” 밝혀져/「일서 생겨나 한국으로 역류」 주장에 쐐기]
일본 나라현(奈良市) 텐리시(天理市) 나카야마고분(중산대총,中山大塚古墳)이
한국의 돌무지무덤(적석총)영향을 받아 축조된
3세기말에서 4세기초에 이르는 시기의 전방후원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 일본서기 응신천왕 14년,16년에 등장하는
(영산강 지역 비류백제의) 궁월군이 120현(縣)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285년에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나라현의 전방후원분을 만든 것으로 보이고,
비류백제 궁월군 세력이 일본열도를 장악하여 일본열도의 전방후원분이 번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본서기】 응신천왕 14년, 16년에 등장하는 궁월군(궁월 君임금)이 백제 고이왕이고, 진서의 부여 의려왕
1) 283년 : 궁월군이 백제(영산강 지역)에 와서 왜로 오겠다고 함(일본서기),고이왕 신라공격(삼국사기)
2) 285년 : 모용외 공격으로 의려왕 사망(진서 부여), 궁월의 인부(군사)가 왜로 건너감(일본서기)
3) 286년 1월에 신라와 화친하고, 11월에 고이왕 사망(삼국사기)
☞ (해석)
1) 283년 하북성 창주시의 부여 의려왕(궁월君)이 군사를 이끌고 영산강 지역 비류백제 영토로 이동하고,
고이왕(의려왕)이 신라를 공격했다
2) 285년 부여 의려왕(궁월君)이 하북성의 자리를 비운사이
묘용외가 창주시의 비류백제(부여)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으니 진서는 의려왕이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3) 285년 영산강 지역에 주둔했던 비류백제 의려왕(궁월왕) 군사 일부가 왜로 건너갔다(일본서기의 궁월의 인부는 군사)
4) 286년 1월에 신라와 화친하고, 11월에 고이왕=의려왕=궁월왕이 영산강 지역에서 돌아가셨다
3. 관련 동영상 : "전방후원분"의 시원 논란 일단락. 일본 나라현 발굴결과는?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