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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달도
배가 오는 게 보인다. 제시간에 닿기를 기다렸는데 저기 고물고물 보인다. 멎자마자 타려는 사람이 우 몰려든다. 아직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뒤섞여 서로 먼저 타려 한다. 뭣이 급한가. 다들 바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배 위에서 고향 섬을 바라보니 반가워라. 어릴 때 자라고 명절 때 다니러 왔던 곳에 오늘은 살러 간다.
“두만아 어서 온나.”
아버지가 짊어진 짐을 벗겨지고 어머니는 미옥이를 받아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멀미 안 했어.”
뒤 밭일하다가 배 시간에 맞춰 왔다며 허름한 복장이다. 장어회를 뽀얗게 썰어놨다. 간밤 통발에 들었다며 저녁상이 푸짐하다.
“얘야. 들어가래이. 내가 할꾸마.”
며느리가 주섬주섬 부엌일을 하려니 아기 젖 주라며 방으로 밀어 넣는다. 좁아터진 집에서 갓방에 부모님 자고 안방은 아들 내외가 머물렀다. 어릴 땐 집이 컸는데 지금 보니 작다.
“목사가 됐다니 고마 순달교회에 와 살아라.”
아버지가 고향 마을 교회가 비었다며 오라. 오라 다그쳤다. 아들네를 옆에 끼고 싶어서이다. 싱거운 소릴 잘하는 외동아들이 늘 보고 싶고 그리웠던 참이었다. 전도사로 이곳저곳 부산 여러 교회에서 학생들을 돌보다가 전임에서 부목사로 올랐다. 갓 나은 손주도 보고 싶어 늘 바랬는데 선뜻 이리 오게 돼서 흐뭇한 부모다.
어릴 때 다니던 순달교회에 목사로 오다니 감격스럽다. 거제도 서남쪽 섬이다. 교회는 한옥을 수리해 넓히고 컨테이너를 붙였다. 기거할 집도 바로 가까이 있어서 건사하기엔 괜찮다. 오늘 예배를 드려야 한다. 마을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오라고. 부모님과 가족. 이웃 할머니 몇 분이 예배당에 일찌감치 모였다.
모두 바닥에 그냥 펑퍼져 앉아서 김연주 목사 부인의 오르간 반주에 맞춰 찬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손뼉을 쳐 줬다. 친구들도 활짝 웃으며 같이 했다. 또순 할머니와 삼분 할머니도 덩달아 딱딱 맞췄다. 모처럼 교회가 살아나서 물오른 버들강아지처럼 꽃망울과 파란 새싹이 보인다. 사모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하나님, 이 순달교회가 차고 넘치게 해 주시옵소서 ---.”
이 목사의 설교 때 부모님과 할머니들이 끄덕끄덕 졸다가 끝날 때쯤 기지갤 펴고 눈을 떴다. 키 큰 아들이 단위에 서서 말씀 전하는 모습을 보곤 흥감해서 어찌한 줄 모르는 부모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가 하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삼분과 또순 할머니도 꼿꼿이 있기가 힘들어 꾸덕꾸덕 홍야홍야 되고 말았다.
어릴 때 한창 장난꾸러기가 저리 교단에 서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니 우린 살살 까라질 수밖에 없다. 마을 골목과 들판이며 산을 휘젓고 다니던 애가 언제 저리 컸나. 키가 멀대다. 장대를 세워놓은 것같이 솟았다.
“쟈가 두만이 맞나.”
점심을 펼쳐놓고 둘러앉아 먹기 시작했다. 졸다가 일어나도 밥맛이 난다. 꿀맛이다. 출출하던 차에 회와 돌미역, 소라가 곁들여졌다. 낫으로 잘라 모은 해조류와 물 나갈 때 캔 조개, 잡은 생선을 어판장으로 보내기, 잡어 말리기, 그물 정리 등 한 주가 어찌 후딱 지났는지도 모른다. 주일이 고맙기도 하다. 졸면서 이리 쉴 수 있으니 이게 어딘가.
“뭐 술 한잔 없나.”
아버지 말씀에 어머니가 툭 치며 눈치를 주자 두만이
“그런 거 없어요. 집에 가 잡수세요.”
수요일 저녁 예배도 드리지만 열 명도 안 된다. 친구들도 한두 번 나오더니 떠듬떠듬 가끔 보인다. 바다에 나가 일하니 고된가. 물 때 따라 그물 치니 주일 시간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여기저기 쑤신다며 장승포나 옥포로 한의원을 찾아 침 맞으러 다니기 바쁘다. 몇이 빠지고 나면 그만 가족들만 모인 예배다.
뜸 뜨는 것과 침을 배워서 예배 후 결리는 사람들을 도왔다. 쑥을 뜯어말려 보푸라기로 만든 뒤 조금씩 뭉쳐 불붙이면 따뜻하다가 따끔거릴 때쯤 털어낸다. 가늘고 자그마한 바늘로 삐걱거리고 결리는 곳에 콕콕 찔러 넣어두면 뜨끔거려도 시원하단다. 허리와 어깻죽지, 허벅다리로 옮겨 다니는 담이다.
목사가 아니라 용한 의원이다. 너도나도 소문이 나 찾아온다. 덜 좋아하거나 싫은 기색이 없다. 마다한 적도 없다. 하고 나면 돈을 내야 하나. 일어서기가 주저주저해서 내키지 않는다. 주일 날 교회 나오겠다고 헛소리를 하고 방을 놔야 하나. 민망하기만 하다. 때 됐다고 밥까지 차려준다. 교회 아래 큰길까지 바래다주니 이럴 수가 있나.
“목사님요 일요일 몇 시까지 오면 되능교.”
느긋하고 싱긋이 잘 웃어주는 이 목사와 간호사역을 하는 사모가 도울 땐 아프던 게 조금 사라진다. 이곳 사람들은 험한 바다 일을 밤낮으로 하면서 자주 파도와 맞닥뜨려 다친다. 병원 가기 전에 우선 치료해야 한다. 교회가 소독한 뒤 붕대 감아주는 곳이다. 오기 힘든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목사의 따뜻한 손으로 기도하고 어루만져 주면 아픔이 가신다. 꼭 사모가 동행해서 쌍쌍이 다니는 거위나 원앙, 비오리 같다.
나사렛 예수님의 모습을 자그마치 흉내 내고 있는 두만 목사이다. 젊은이는 뭍으로 나가고 나이 든 사람만 모여 사는 외딴 작은 섬이다. 태풍이 오면 와장창 부서지고 무너져 내리며 바닷물이 넘실대는 바람맞이 섬이다. 온갖 꽃들과 예쁜 복숭아가 익는 하늘의 옥황상제, 낙원과 물고기가 어슬렁대는 바닷속의 용궁 정원 얘기를 듣고 살았다.
날개옷을 입고 화사하게 웃으며 날아다니는 선녀의 모습이 아롱진다. 할머니의 꿈같은 얘기로 잠들곤 했다. 천제와 인당수가 나오는 구운몽이나 심청전의 내용이 정말처럼 아득해서 그런 세상이 있기나 하나 그리워하며 살았다. 훤하게 박혀 변할 수 없는 섬사람들에게 자꾸 교회에 나오라. 예수님을 믿으라 하니 씨알이 먹혀들지 않는다. 마지못해 나오다가도 극락세계가 더 좋다며 절로 간다.
“교회는 무슨 용왕님께 빌어야제.”
절과 무속으로 다져진 섬마을이다. 대대로 바다를 향해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을 비비는 일이 이들에게 일상이 되었다. 어디 교회를 나가긴. 아주 생뚱맞고 낯 설은 일이다. 저리 설치니 어릴 때 보던 정리로 마다할 수 없다. 어떤가 해서 한두 번 따르게 된다. 바닷가 곳곳의 서낭당에는 신을 접하는 굿판이 벌어지는 곳이다.
상모 돌리는 무당에다 북치고 장구 두드리며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다. 그리 절과 토속으로 굳어진 이곳에 웬 교회인가. 바닷가뿐만 아니라. 마을 입구에는 당나무가 우뚝 서 있어 금줄로 칭칭 감겼다. 발붙이기 어렵다. 감히 어디라고 빌붙나. 그런 순달도에 빙긋이 웃는 속없는 이 목사의 넉살에 조금씩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다리 아픈 할머니를 부축해 교회로 안내하고 집까지 모셔 드린다. 낮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찾아가 뜸 뜨고 침을 놔준다. 점심은 사모와 함께 여럿이 달려들어 북적북적 맛있게 만든다. 팔다리가 저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예배드리러 찾아온 것이 고마워 손수 쌈을 싸 입에 넣어 주기도 한다. 아들딸이 멀리 있어 자주 오지 못하는 집에는 이 목사 부부가 찾아가 자식 노릇을 톡톡히 한다. 그래 저래 해도 예배 시간에 앉아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찬 바람 부는 예배당이다. 어찌 여길 왔을꼬. 부산 전도사 생활에서는 사택과 봉급을 받아 편히 지났다. 여기서는 부모님 곁이고 아는 마을 사람들이다. 사택과 교회를 받았어도 형편은 말이 아니다.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렇잖다. 술술 나가는 것을 아껴야 하고 주머니에 돈 한 푼 만져지지 않을 때가 있다.
십일조는 드물고 주정 헌금은 꼬깃꼬깃 천원 지폐 몇 장이다. 헌금 주머니에 동전이 든 것을 보니, 이곳 사정이 녹록지 못함이다. 헌금 때 돌리려니 미안하다. 마지못해 넣는 모습이다. 움켜쥐고 얼른 집어넣는다. 적은 돈이어서 거북한가 보다. 사찰은 돈보다 곡식을 담아가서 시주한다. 여긴 그러지 않고 돈을 내야 하니 그러는가.
가정예배를 드릴 땐 선물과 먹을 걸 사 들고 들어가야 한다. 예배 후 식사며 후식과 차 대접, 침, 뜸 치료의 재료를 사 오는 일 등 모두 이 목사 부인 김연주 사모가 알아서 해왔다. 저절로 다 되는 줄 알았던 두만 목사다. 남자들은 덜렁덜렁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그저 설교 준비와 기도할 내용에 마음 쓰고 주위 전도에 골몰할 뿐이다.
가난한 교육전도사와 전임전도사, 부목으로 섬기던 부산 생활이었다. 신학교 뒷바라지로 애썼던 부인이다. 싱겁고 엉성한 남편을 돌보느라 아기 말고 큰 아이를 일일이 보살피고 길러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진 돈도 구렁이 알 녹이듯 살살 줄어들어 바닥을 알린다. 시부모 봉양에서 마을 어른들 약봉지까지 만들어야 한다.
교회 청소에다 어린 딸 살피랴 정신이 없다. 한 마디 불평 없이 곱다시 삭여나가는 두만 목사 부인이다. 황소같이 꾸역꾸역 일 잘하는 남편이다. 시키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머슴으로 대견스럽다. 주일 오후 내내 노인네들 치다꺼리하며 힘들게 보낸다. 평일은 성도들 집집이 다니며 기도와 가사 도우미 봉사로 헐떡인다.
“아 힘들다.”
며 곯아떨어지는 목사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며 물걸레로 닦아준다. 키는 훤칠하게 크고 얼굴은 바위 얼굴을 닮아 우직스럽다. 빙그레 웃는 그 모습에 반해 이리 고생해도 하나 후회됨이 없는 사모다. 그저 텁텁한 목소리의 설교와 찬송이 천상에서 울려오는 아름다움으로 들린다. 늘 고달프다면서도 열심인 남편이 달갑다.
“그나저나 끼니가 걱정이다.”
“허우대만 멀쩡하면 뭘 하나.”
무엇이 철철 넘칠 줄 알았던 게 허사다. 남녘 따스한 바닷가의 꿈같은 낭만 따위는 온데간데없다. 그래도 남편 두만 목사가 신도들을 보살피느라 고되다는 말이 참 행복하게 들렸다. 그리 애써도 성도가 늘지 않는 데다 팍팍한 생활은 끝날 줄 모른다. 이젠 모든 게 그만 시들해지려 한다. 어쩌면 좋을까.
“또순 할매, 미역 따러 같이 가요.”
칼을 들고 파도치는 위험한 바위 둘레를 다니며 미역을 땄다. 조개를 캐며 한 바구니 잔뜩 머리에 이고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몇 명이어도 주일날 꾸준히 찾아온다. 남편이 설교하고 기도드리며 내 반주에 찬양하는 일이 즐겁다. 예배 후 시부모와 이웃 노인네들 따뜻한 점심밥 차려 드리는 일이 좋다. 어제 딴 미역과 조개 무침으로 맛있다는 말에 힘이 난다.
몸담았던 부산 교회에서 청년부와 중고등부, 초등부까지 여름, 겨울 방학에 찾아와서 단합훈련을 하고 간다. 모처럼 웅성웅성 북적여서 은혜롭고 외딴곳이 부흥되기도 한다. 또 노회에서 조금씩 보태주는가 하면 순달교회를 아는 여러 교회 선교부에서 상하반기 자립교회 돕기를 한다. 소식을 듣고 싶은가 시내 초빙 설교도 나간다.
각 교회 여전도회에서 수시로 봉고나 중형버스를 몰고 찾아와 기도하고 간다. 헌금함에 여러 개 봉투가 나온다. 김연주 사모에게 힘내라고 쓴 메모를 볼 땐 뜨겁게 목이 데워지고 눈물이 핑 돈다.
뒤늦게 쪼들리는 사정을 알았는가. 이 목사가
“한마디 어렵단 말도 없어서 맹꽁이처럼 살았구만.”
“그나저나 어찌하면 나아질꼬.”
염소를 키우기로 했다. 새끼 여러 마리와 암염소 몇을 사 왔다. “두”소리를 내며 먹이를 줘서 모이게 했다. 멀리 떨어져 안 들리는 곳에는 북소리를 쳐댔다. 칡덩굴을 좋아해서 한 짐 걷어오면 이것들이 빠릿빠릿 비틀비틀 우 몰려온다. 서로 넝쿨을 끌어당기며 야금야금 먹어댄다. 엉성한 나무토막 문을 열어두면 산기슭과 바닷가로 어슬렁어슬렁 흩어져 나돌아다닌다.
‘에엠, 에엠’ 소리를 내며 발굽이 미끄러질 텐데 바위나 절벽을 잘도 다닌다. 어떤 놈은 뛰어다니며 오르락내리락한다. 아찔하다. 물끄러미 쳐다볼 땐 곧 무슨 말이라도 할 것처럼 입술을 들먹들먹하고 오물거린다. 저희끼리 머리를 정조준해 들이받으며 용감히 싸우다가도 용케 풀어져 어울린다. 뿔이 뒤쪽으로 휘어져 난 게 똑같다.
“머리 터지게 싸워봐야 형제자매이다.”
짧게 내린 숫염소 수염이 꼭 까칠한 영감을 닮았다. 우 몰려다니다가 그만 새끼를 떨어뜨려 낳는다. 그러곤 처져서 자꾸 울어 주인에게 알린다. 포대기로 감싸 물기를 닦아주고 젖을 물린다. 두만 목사가 더 바쁘게 설쳐야 한다. 그렇게 돕지 않으면 새끼는 위험할 수 있다. 목자가 목동이라는 말과 어울린다.
동물도 자기 새끼들이 귀여운가. 구석구석 핥아준다. 며칠 뒤엔 졸졸 따라다니다 뛰어논다. 쿡쿡 찔러 엄마 젖을 빠는 게 송아지 같다. 그 많은 염소 중에 엄마를 잘 찾아낸다. 여러 어린 것 중에도 엄마는 내 새끼를 쉬 찾아 젖을 내준다. 생김새가 똑같다. 울음도 한 소리다. 흰빛과 갈색 염소가 있지만 여긴 모두 검어서 그놈이 그놈이다. 어찌들 알고 찾아 뒤쫓아 다닌다.
“엄마 같이 가.”
내려가면 이웃 염소들과 섞여 지나게 된다. 모두 한곳에서 어울리고 자라나서 아는 사이다. ‘두’소리와 북소리를 내면 알아듣고 갈라져서 찾아온다. 우리에 사부작사부작 들어가는 게 기특도 하다. 다 들어가면 문을 닫고 아침에 열어준다. 종일 먹고픈 풀을 뜯어 먹고 다닌다. 잘못 먹어 설사하는 걸 못 본다. 동그란 환약 같은 것을 알알이 배설한다.
다니다가 새끼 낳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냥 두어도 되지만 가끔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포대기에 싸서 안고 다니다가 젖 먹을 때 풀어주고를 거듭해야 한다. 배불리 먹인 새끼는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안겨 옹알이하는 소리가 꼭 어린애 같다. 잘 몰라 다른 엄마에게 줬더니 저 새끼 아니라고 콧김을 풀풀 내며 뿔로 밀어낸다.
“소리를 듣는가. 냄새로 알아내는가.”
어릴 때 잘 죽는다. 자고 나면 몇 마리 쓰러져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다. 어미도 무리 속에서 걷지 못하고 엉거주춤 있다가 죽는다. 저녁에 몰려온 마릿수를 헤아리면 숫자가 맞지 않는다. 찾아 나서서 풀 섶에 누워있는 것을 매고 온다. 덩치가 크지 않고 작달막하다. 몸을 뒤져서 간을 들춰보면 벌레가 여러 마리 끼였다.
어떤 놈은 구더기처럼 바글바글 뒤엉켜 기어 다닌다.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지에 널린 게 풀인데 잘 먹는다. 남녘 겨울은 눈 서리가 드물다. 남은 푸성귀도 있지만 나무껍질을 잘 벗기고 갉아 먹는다. 먹성이 좋다. 달려드는 위협의 늑대나 여우, 담비도 없다. 보호되는데도 연약하다. 늘 기도하며 많이 번성하기를 빈다. 열성이어서 그럴 것이다. 가족 간 교미로 태어나니 우성일 수 없다.
수놈을 모두 바꿔치기했다. 먼 곳의 것과 서로 교환함으로써 열성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몇 해 지나니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고 건강하다. 어린 것이 연약하지 않고 튼실하게 잘 컸다. 숫자가 날로 늘어나더니 우리가 꽉 차고 넘쳤다. 수시로 이웃과 바꾸니 서로 열성을 벗어난다.
자주 바꿔 근친 교배를 억제했다. ‘두’소리와 북을 쳐서 모이게 하는 훈련이 잘됐다. 이 목사 이름에서 두를 따왔다. 새끼를 사 가는 사람이 늘어난다. 아랫마을 신도 음식점에 불고기 주문이 자주 들어온다. 양고기보단 맛나다. 누린내가 있어도 된장을 조금 풀고 갓이나 박하 등 향 풀을 넣으면 줄어든다. 웃음기 없던 아내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몇 마리 팔면 돈을 만질 수 있어 좋다. 딸 미옥인 어느새 초등학교에 달랑달랑 다닌다.
염소 떼를 우리로 몰아넣는데 한몫한다. 작은 북을 동동 치고‘두’소리를 내면 산기슭에서와 바닷가에서 졸졸 내려오고 올라온다. 숫자가 자꾸 불어 우리를 넓혀야 했다. 마리당 값도 비싸다. 소문이 먼 곳까지 퍼져서 찾아온다. 섬으로 연결된 다리를 이용할 수 있어서이다. 사슴처럼 좋은 풀과 나무껍질을 먹고 크니 보신탕과 같이 보약으로 즐겨 먹는다.
양은 흰털이고 염소는 까맣다. 터키,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등 근동에는 누렇거나 불그스레한 색깔도 보였다. 몽골리아는 염소와 양, 소, 말, 낙타가 많다. 모진 추위에 소와 말이 얼어 죽는다. 철길 철조망 가에 희끗희끗 보인다. 아무리 추워도 끄떡없는 것이 염소다. 겨울이 오면 억센 털 속에 하얀 솜털이 소복이 생겨 따뜻하게 해 준다. 봄이 되면 그 솜털이 몽실몽실 빠져나오는데 긁어모아 값비싼 캐시미어 옷을 만든다.
신도도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30여 명으로 늘어나 예배드릴 때 힘이 났다. 하계 훈련 때는 학생들이 많아 더운 강당에서 오밀조밀 복작이는 게 안 됐다. 낡은 선풍기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기 어렵다. 여학생들이 사용하는 컨테이너도 좁고 무덥다. 겨울은 위풍이 세다. 바닷바람이 차다. 한기를 막을 수 없다. 은신할 구석이 마땅치 않아 덜덜 떨어야 한다. 다들 냉난방 집과 교회에서 여유롭게 생활하고 시원하고 따습게 지나는데 이게 뭔가.
“하나님, 뒤 언덕에 새 교회를 지어 예배드리게 해 주시옵소서.”
낡을 대로 허물어져 가는 엉성한 교회와 컨테이너가 하루빨리 새 예배당으로 바꿔야 했다. 너그럽고 평안하게 웃으며 설교하는 이 목사의 교회 사랑과 아내의 살뜰한 헌신으로 버텼지만 더는 견뎌내기 어렵다. 덥고 춥고 비바람 들어오는 곳에 누가 오겠나. 부모님 돌아가시고 잘 나오던 어른도 한 분 두 분 천국 가시니 자리가 또 헐렁하다.
친구들도 외지로 나가 줄어든 신도들인데다 낡은 예배당이 걸린다. 그래도 마을 이장 일을 맡아 돌보며 전도한 덕분으로 이만하길 다행이다. 목사가 이장 일하며 전도하는 곳이 있을까. 교회 뒤 언덕 밭 몇 뙈기를 뭉개야겠다. 수백 평은 될 것이다. 하나로 평평하게 터를 닦아 놓으면 언젠가는 반듯한 교회가 세워지겠지.
포클레인과 불도저로 높고 낮은 것들을 밀어붙여서 하나로 평평하고 둥그스름하게 골랐다. 손으로 삽과 괭이질했으면 얼마나 걸릴지 세월아 네월아 했을 것이다, 사흘 만에 덜컥 해치웠다. 웬걸 이리 멋질 수 있나. 전망이 그저 그만이다. 집도 짓지 않았는데 종각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옹벽을 쳐올리고 담장을 쌓아서 가장자리로 꽃나무와 화단을 만들었으면 근사할 것이다.
“하나님 그날이 어서 오게 해 주시옵소서.”
설교 전후 기도할 때마다 간절히 외친다. 어디든 무엇에든 새 교회를 짓는 말을 넣는다. 이 목사는 시간만 나면 터 가운데다 예배당을 올리고 좌측 남쪽으로 사택을 지었으면 좋을 것이다. 청사진을 만들고 또 새긴다. 이 궁리 저 생각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며 달린다. 늘 바라고 원하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예배당, 예배당 외친다. 쉬 이뤄지길 바란다.
신도들도 목사와 함께 그 소망이 허락되도록 하나님께 빌고 빌었다. 연주 사모도 수시로 쑥을 뜯으며 잔돌을 주워 가장자리로 가져간다. 냉이와 달래 씨를 뿌려 겨울에도 한 바구니 캔다. 빈터를 그냥 둘 수 없어 여러 해 채소를 갈아 먹으니 좋다. 주일날 예배 후 점심에 상추와 배추, 열무, 풋고추를 내니 다들 좋아한다. 집으로 한 보따리씩 안고들 간다.
가을 김장 배추와 무를 잔뜩 가꿔 이고 지고 갈 때는 푸짐하다. 하나님 은혜의 땅이다. 그래도 사이사이 잡풀과 나무들이 자라난다. 쑥대머리와 갈대, 칡넝쿨이 엉겨서 치밀고 올라온다. 상수리나무가 기를 쓰고 톡톡 나타난다. 뿌리가 깊어 괭이로 파낸다. 도토리가 딸려오는 것을 보니 위에서 굴러 내려와 싹이 나온 것 같다.
“꿀밤이 어찌 땅속을 파고들었나.”
파보면 깊이 들앉았는데 둥근 게 손이 있기나 한가 발이 달렸나. 밑으로 들어갔을까. 달래나 냉이도 땅에 떨어진 씨가 흙 속으로 자꾸 기어들어 갔다. 파보면 움푹하다. 비실비실 비집고 들어가는 기술이 있는가 보다. 굼벵이도 구르는 제주가 있다더니 이것들이 우리 몰래 흙 파고드는 머리가 있는가. 하나같이 깊이 박혔다.
칡넝쿨은 가다가 땅에 닿는 줄기에서 뿌리를 내려 사방으로 막 기어 다닌다. 땅을 뒤집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가 억새도 헤집고 올라온다. 비 온 뒤에 정말 쑥하고 쑥이 솟아난다. 그냥 두면 키를 넘겨 뒤엉킨 쑥대머리가 되고 만다. 예배당 짓기 전에 저들이 먼저 자리 차지하겠다고 들썩인다.
일일이 뽑으며 들어설 교회를 설계한다. 부모 집과 밭을 내놓고, 키우던 염소를 다 팔아도 계획한 회당과 사택 지을 것엔 턱없이 모자란다. 교회증축 헌금을 모아도 시원치 않다. 다들 사는 게 너그럽지 않아 그렇고 그런 마음뿐이다. 기운 회당과 사택 보수로 이 목사는 쉴 틈이 없다. 비 새는 데는 덮고 바람 들어오는 곳은 막는다. 베어내서 갈아 끼우고를 거듭한다.
넓은 밭일에다가 남편을 도와 남자 같이하니 손이 깍지 같다. 평생 바닷일로 굳어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주물러 준다. 주일날 교회로 안내하며 마디마디 쑤시는 곳에다 찜질과 쑥뜸을 해 주고 부항도 곁들인다. 입소문으로 멀리서도 찾아온다. 평일에도 절뚝이며 자녀의 부축을 받아 노인네가 들어온다.
“목사님예, 병원에 다녀도 통 안 낫습니더.”
손잡고 기도드리며 통증이 가시길 빌었다. 정성껏 침을 놓고 뜨거운 기운을 쐬면 좀 덜한 기분이다. 상냥한 사모의 간호를 받고 식사한 뒤 교회를 뒤돌아보며 간다. 평생 사용한 허리 팔다리가 쉬 낫겠나. 노쇠하여 이제 어찌해 볼 수 없는 몸이다. 느긋한 웃음과 믿음으로 가득한 목사 부부의 사랑이 잠시 편하게 했을 뿐이다.
또순 할머니가 보잔다고 삼분 할머니가 찾아왔다.
“목사님요. 저 위 살던 집과 땅을 팔아 교회 지으소.”
무슨 소린 지 한참 어안이 벙벙하다. 지지부진한 건축헌금이고 한 구석 채소밭으로 사용하면서 묵혀뒀다. 토실토실 살진 엉겅퀴가 여기저기 나서 붉은 꽃을 한창 피우고 있는 휑뎅그렁한 터다. 십여 년 그간 잘 나오던 또순 할머니는 요즘 중풍이 심해져서 거동조차 불편하다. 새벽기도도 열심이었는데 기력이 쇠하여 몸져누워 지낸다.
시간 날 때마다 집으로 찾아와선 온몸을 어루만져 주고 침과 뜸으로 쑤시는 관절을 눅진하게 해 주는 일이 좋았다. 찜질로 뜨끈뜨끈하게 풀어주는 사모도 고마워라. 손잡고 기도하는 두만 목사의 간절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김장 김치도 만들어 한독 채워주고 국을 끓여 보온병에 넣어 안고 오는 연주 사모가 한없이 대견했다.
“내사 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슴다.”
자식들도 어머니 뜻을 받든다며 하루빨리 서둘러 예배당을 지으라 닦달이다.
“내 죽기 전에 새 예배당에서 기도드리게 해 주소.”
사모가 교회로 돌아오면서 훌쩍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교회 짓는 공사를 잘하는 업체에 연락했다. 설계와 견적을 내서 가을부터 터 닦기에 들어가겠단다. 단층으로 지으려다가 한 층을 올려 본당으로 사용하고 아래층은 식당과 여러 방으로 나눠 필요한 데로 쓰려한다. 얼마나 소원했던 일이었던가. 이제 이뤄진다니 구름 위를 다니는 것 같다. 두만 목사는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붕붕 떠다닌다.”
부산 여러 교회를 거치면서 건축으로 어려움을 겪는 걸 봐 왔다. 지으면서 작아 보였던가 30평을 늘렸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혼쭐났다. 구청으로부터 불법이라고 바리바리 헐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행이 안 되자 경찰에 이어 검찰, 법원으로 넘겨지고 벌금형을 받았다. 구속은 면했지만 시달렸다. 중구 어느 교회는 노약자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놓으려니 사무실 옆 한 평 정도 나온 불법 증축이 문제 되었다.
원상복구를 하라는 지시로 여러 해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그만 무산되고 말았다. 건축헌금이다 장학 헌금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모아둔 특별 헌금이 시간이 지나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회계 처리에서 이리저리 돌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교회가 미적미적 넘어가는 게 이럴 수 없다. 이번 낸 헌금도 흐지부지되자 되돌려줘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옛날 시골처럼 우물쭈물 지어서는 안 되는 현대 건축물이다. 그걸 그냥 두면 도시 건축이 어찌 되겠나. 거리가 엉망으로 변할 것이다. 행복마을에 3층 건물 수십 호가 오붓하고 가지런하다. 십여 호가 4층을 작게 올렸다가 벼락 맞았다. 허락받지 않은 집들은 모두 헐어내야만 한다. 쏟아지는 큰 벌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구청에 몰려가 해결해 달라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그 추운 겨울날 종일 떨며 섰다. 그래서 설계를 의뢰하고 허가받아 늦어도 가을에는 시작하려는 것이다. 교회가 조금씩 고쳐서 불법 증축이 많다. 그런 소릴 안 들으려면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 외벽을 고치거나 터 내는 일이 없어야 하고 내부도 있는 그대로 둬야 좋다. 살다 보니 필요해서 올리고 넓히는 일을 해선 안 된다. 아예 야단맞는 일은 피하자.
“처음부터 온전하게 지어야 한다.”
절차를 밟아 착공한 지 몇 달 됐다. 차가운 겨울날이지만 하나하나 기둥이 올라가고 외부 벽과 내부 방들이 만들어졌다. 2층으로 올라가면서 지붕도 만들었다. 직사각 상자와 같은 슬라브보다는 팔작지붕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 좋다. 옆에 수줍은 듯 사택도 지어져서 번듯한 교회 모습이 날로 영글어간다.
교회학교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넓은 마당과 화단이 그럴듯하다. 풀꽃과 꽃나무도 군데군데 심어서 사철 아름다운 화원이길 기대한다. 무더운 여름날 바닷바람을 쐬며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도록 큰 나무도 전망 좋은 자리에 앉혔다. 임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머물던 제승당이 있는 한산섬을 건너다볼 수 있게 마음 썼다.
“삼분 할매가 돌아가셨습니더.”
다리가 아파도 절뚝이며 띄엄띄엄 교회에 출석하던 삼분 할머니가 기어이 돌아가셨다. 평생 갯가 일하면서 온갖 고생을 싸 짊어진 믿음 좋은 할머니였다. 교회 식당을 도맡아 푸짐하게 만들어내던 그 솜씨도 이젠 맛볼 수 없게 됐다.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 도시로 내보내고 외롭게 섬을 지키고 살았다.
다들 절로 올라가고 바닷가 용왕신을 모신 해신당으로 뻔질나게 다닌다. 자칫 그렇게 따를 뻔했던 삼분 할머니는 순달교회 지을 때부터 찾아와 기도하는 예수님 딸이다. 교회에 함께 다니며 풍병으로 누워있는 또순 할머니와 자매같이 지냈다. 지팡이를 짚고 엉거주춤 찾아와서 상량하는 걸 보며‘아멘, 아멘’하던 삼분 할머니가 눈에 선하다. 일본 여인들이 뽀얗게 분 바른 게 좋아 분이란 이름을 지었다. 그 말에 바닥을 치고 웃었는데 두만 목사와 같이‘싱겁’을 떠는 얘길 이제는 어디에서도 다시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다.
입관 예배를 드리고서 영정 앞에 끓어 눈물을 훔치는 목사 부부이다. 그동안 허름한 교회를 내 집같이 보살피던 장삼분 권사였다. 허전하기 이를 데 없다. 엄또순(차순) 권사와 새 교회에서 예배드리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그만 먼저 천국으로 가셨다. 중학교에 다니는 미옥이도 따라와서 장의 예식장 음식을 나르며 손님 상차림을 도왔다.
딸 미옥의 등록금과 교복을 맞춰주는 등 각별했던 장 권사이다. 발인에 이어 가족 묘소에 안장하는 예배도 정성껏 드렸다. 지난날 남편과 몸이 부서져라. 미역과 전복, 소라 따며 자식을 위해 애썼다. 서울로 편히 모시겠다는 자녀들의 권유를 마다했다. 영감과 살던 이곳을 떠날 수 있으랴. 엄 권사와 함께 명예 권사를 받아 어린애처럼 방글방글 좋아라 웃던 모습이 엊그제만 같다.
이 목사의 익살스러운 설교에 길들어져서 어디로 가나. 진실이 뚝뚝 떨어지는 그 정나미에 홀려 순달교회에 나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
교인들의 마지막 찬송이 이어지자. 한꺼번에 울부짖는 자녀들이다. 맞이가 부드러운 흙을 관 위에 올리고 딸과 손주들까지 흙으로 돌아가는 삼분 권사의 관을 어루만지고 지켜보다가 물러섰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따뜻한 국말이 점심을 먹고 묘소를 다지며 만들어지는 봉분을 보면서 나올 때였다.
“목사님 사모님 고맙습니다.”
맏이 상주가 하얀 봉투를 상복 안 주머니에서 꺼내 두 손으로 공손히 전한다. 차비인가 싶어 안 받겠다는 손에 꼭 쥐여주는 게 아닌가. 마지못해 인사하고 헤어졌다. 수표가 들어있고 간단히 쓴 편지가 보였다.
“종각을 세워 주세요.”
종각만 세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교회 집기를 장만할 수 있는 금액이다. 돌아가시기 전 자녀들에게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으라는 어머니 삼분 권사의 말씀을 따랐다며 자식들 대신 보살펴 준 목사와 사모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종각은 미쳐 생각을 못 했다. 통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서 탑처럼 꼭대기에 커다란 둥근 종을 놓는다.
줄을 당기면 뎅그렁뎅그렁 종이 좌우로 흔들리며 울린다. 아 오늘이 주일이구나. 교회로 모여들게 하는 복음의 소리다. 아들을 기다렸는데 자꾸 딸만 내리 낳아 미움을 샀다는 셋째 딸 삼분이다. 이두만 목사 부부는 딸 미옥이도 데리고 삼우 날에 장삼분 권사 산소를 찾아갔다.
‘천국에서 편히 쉬게 해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와 그 자녀들에게 복을 내려주십사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크고 자잘한 것들이 많다. 집만 지어놓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십자가에 밤이면 붉은 불빛이 감돌도록 조명을 넣어야 한다. 교단을 깔아야 하고 그 위에 강대상이며 마이크도 설치해야 좋다. 좌우에 화분대와 피아노, 오르간을 앉히고 실내를 밝게 했으면 한다.
성경 말씀과 광고 자막을 띄우는 멀티스크린에다 동영상 카메라도 설치했으면 원한다. 훤칠한 키에 싱거운 예를 곧잘 들어 한 시간이 어언 끝나가는 이 목사 설교를 잘 들리고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 그뿐인가 숱하다. 바닥에 그냥 앉나. 긴 의자에 성경책을 펼칠 수 있는 탁자가 필요하다. 로비에도 서로 손잡고 인사하는 데에 책상과 의자, 헌금함 등 하나둘이 아니다.
아래층 각 방과 식당 주방 기기가 얼만가. 이 모든 걸 다 갖추고 들이려면 끝이 없다. 대형 선풍기도 있어야 하는데 요즘 그런 때는 지나가고 있다. 냉난방이다. 조용히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 사철 포근한 예배당이다. 배식도 무더기 밥과 국, 김치 등 뷔페를 펼치면 모두 알아서 퍼담아 옹기종기 맛나게들 식사할 것이다.
그렇게 될 날이 차츰 다가오고 있다. 이 목사는 너무 감사해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이제 봉고차만 있으면 멀리 있는 성도들을 태워 올 수 있고 모셔 갈 수 있다. 이 순달도 주민은 2백여 명이나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겨울 오기 전 가을쯤에 새 예배당이 마련되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들어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해 전도사로 일했던 보수동 광덕교회 요한 선교실에 이두만 목사가 들어왔다. 남선교회장인 이 집사와 양 장로가 안내해서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설픈 날이다. 뒤따라 사모 김연주와 딸 이미옥도 자리에 앉았다. 이곳 전도사 시절에 태어나 훌쩍 큰 미옥은 대학생이다. 방역 마스크를 해서 자세히 볼 수 없어도 엄마를 닮아 미녀이다. 두만 목사를 잘 아는 다 일흔을 넘긴 장로와 집사들인 자리에 갑작스레 들이닥쳐 인사를 나눈다.
“아이고 이 목사 반가워라.”
우 장로가 알아보고 덥석 손을 잡고 흔들며 반긴다.
“이게 얼마 만인가.”
박 집사의 말에 떠난 지 20년이란다. 그러고는 처음이니 얼른 알아보지 못할 얼굴이다. 그사이 여러 목회자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만 목사는 빙긋이 겸연쩍게 웃는 그 표정이 익숙하고 장대 키가 남달라서 찍어놓은 듯 기억이 난다. 통영으로 돌아가면 꽤 멀어도 거가대교로 가면 가깝다. 비슷한 나이뻘 신도들이 순달교회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스쳐 간 많은 목회자 중 유난히 두만 목사를 찾는다. 오늘 남선교회 헌신예배에 초청한 것이다. 이곳 오후 설교를 위해 순달교회 예배를 드리고 바로 서둘러 나왔단다.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 그냥 건너왔다며 먹을 걸 달란다. 집에 허겁지겁 들어온 자녀들이 엄마에게 밥 달라며 떼쓰는 모양이다. 허세 떠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얼굴이 좀 거무튀튀하고 험상궂어서‘왜 이리 늙었느냐’했더니, 여러 해 교회 짓느라 시달렸다며 팍삭 삭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떠날 거면 혼자 가라.”
섬에 들어가 많이도 부대꼈다. 실증이 생겨 뭍으로 나가겠다니 아내가 한 말이다. 이리 뛰고 저리 내달아도 벽창호 섬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려 들지 않는다. 문득 생각난다. 언더우드와 세브란스가 이 땅에 와서 의료선교를 하며 아무리‘하나님을 믿으시오.’해도 굳어진 유교와 불교, 무속, 조상신을 섬기므로 해서 꿈쩍도 아니하자.
“하나님, 돌처럼 딱딱한 이 사람들을 어찌하오리까.”
‘믿음의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20여 년 긴 시간 아내의 뒷받침이 없었으면 벌써 순달도를 나왔을 것이다. 나는 갑갑해서 그곳에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고생고생한 얘기만 들어도 수십 년을 살고 나온 것 같다. 새로 지은 교회가 산듯해서 날아갈 듯하다. 자금이 달려 짓다 말길 여러 번이다.
종각을 세우면서 커다란 통나무를 옮기는데 진기를 다 빼 골병이 들었다. 언청이 콩가루 먹듯 날리는 헤픈 돈으로 들먹들먹해서 몸으로 때워 나가야만 했다. 그런 머슴이 없다. 우직하기가 곰이다.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수십 년 세월 한곳에 머물며 청춘을 바친 순달교회이다. 온갖 어려움으로 번듯하게 만들어진 게 모두 아내의 얼룩진 땀방울이다. 앞에서 이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줬기 때문이다.
배우고 익히며 뼈저린 경험이 하나님 마음을 전하는 진정한 설교이다. 그런데 진지하고 긴장감 도는 말씀에다 경건하고 아득한 두려움의 설교로 불안에 떨게 할 때는 불편하다. 늪 수렁인 줄도 모르고 자꾸만 어쩔 수 없이 높아져만 간다. 조는 듯 조용하니 엄숙하게 듣는 줄로 안다. 목회자를 우러러 받드는 것으로 느끼는 교만한 마음이다. 마치 여호와처럼 철저하여 가차없이 호령하듯 선포할 때는
‘아이고 저러면 안 되는데-.’
목덜미가 곧은 사람이다. 모세오경에 여호와께서 자주 나타나 말씀을 주신다. 우주 만물과 해와 달을 세우고 사람을 만들어 에덴동산에 살게 했다. 노아의 홍수를 내 세상을 휩쓸어 필요한 것들만 살게 하고 홍해를 갈라지게 하여 믿는 자를 건너게 했다. 경건한 장소를 금과 은, 온갖 보석으로 꾸며댔다.
융단으로 치장하며 자로 엄격하게 재듯 단을 만들고 제기와 제물을 배열한다. 번제와 소제, 거제, 요제, 전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올리면서 조그만 허물과 잘못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깨끗한 몸으로 들어가야 하고 멀쩡한 어린 동물을 잡아야지 흠결 있는 것은 지성소 제단에 바칠 수 없다.
얼마나 엄격한 지 머리끝이 쭈뼛하다. 무심코 자칫 잘못하면 바로 벼랑 끝으로 몰린다. 최대의 정성과 올곧은 마음을 가져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모세와 아론을 수시로 불러 제단 설치와 진설에서의 생활 규범을 일일이 일러주고 지키게 한다. 얼마나 엄격한지 따르기에는 벅차다. 두려움이 앞서 벌벌 떨려온다.
“법도가 서슬 퍼런 칼날과 같다.”
수틀리거나 여호와의 말씀에 거슬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조심해야 한다. 모세가 지은 오경을 인용할 때는 목에 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여호와의 살얼음 제단을 펼쳐놓고 들었다 놓았다 한다.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신약의‘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일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구절까지 인용하고 거들먹거릴 때는 절망감이 든다.
“잘못하면 돌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안 믿고 말지.”
하다가도 지옥의 불구덩이가 무서워 움츠리게 된다. 그런 숨 막히는 말씀보다 희망의 복음을 전하는 두만 목사이다. 신약 전서 마가의 공관복음에‘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와 4복음서 요한의‘나를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가 뜨이고‘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귀에 닿는다. ‘믿는 자는 하나님 자녀이다.’가 소망으로 다가온다.
또 구약 이사야에‘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순종이 구원을 얻는 믿음의 통로다.
중풍과 혈우병, 벙어리, 저는 자를 고치고 눈먼 사람을 밝게 해 주며 문둥병자를 깨끗이 한다. 군대 귀신 붙은 자에게는 떼어주고 죽어 냄새나는 자를‘나사로야 나오라.’일컬으면 염습한 채 부스스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옷을 스치기라도 하면 앓던 병이 가시고 멀리 있는 자에게 말로 나으라면 고침을 받는다. 또 로마서에‘예수를 믿으면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다가오는 심판이 무섭다. 그 누가 피할 수 있겠나. 얼마나 편한 말씀인가.
살인과 간음, 사기, 도둑질, 거짓 증언, 불효 등의 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가 뉘겠는가. 타고난 죄와 함께 무거운 짐을 졌다. 남선교회‘믿음의 사람들’이 정작 크게 울려오는 순달교회 복음의 종소리다.
멋쩍게 싱긋 웃어 보이는 순진한 두만 목사가 천진한 아이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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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는 구절이 사모님의 지헤로운 헌신을 엿보면서 생각났습니다.
순달교회가 종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멋진 문장에 엄지 척!! 올립니다. ^^
수고 하셨습니다
소설 한 편 감동 적입니다
선생님 석학을 어찌 시렵니까
세월이 시간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가족 사랑이님과 박회장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봄 꽃이 만발하고 화창한 날씨가 좋습니다.
애르하르트 총리가 박대통령에게 고속도로를 만들고 철강산업을 일으키라 했습니다.
일본과 화해하라 한 말씀도 있었습니다.
오늘 이리 잘 사는 것이 독일 덕분입니다.
소설인듯...자서전 같기도 합니다. 직접 경험 하시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실감 나는 글을..
80년대 봉천동 꼭데기에서 내려다보면 곳곳이 빨갛게 불 밝힌 교회 십자가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은은하게 우리던 교회 종소리....
오래전 기억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긴시간 책상에 앉으셔서 글쓰시는 쌤의 정성과 노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성도님 반가워요.
거제도 산달도 산달교회 이만 목사의 실화입니다.
말만 들은 교회를 4월에 가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