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힌 산.
눈 덮힌 무덤을 보아가며
산을 오른다.
혹은 김삿갓의
[월백산백천지백 산심수심객수심]의 구절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다가 절벽 끝에서
저 멀리 산 한 굽이에 자리잡은
산사 하나를 보기도 한다.
너무 멀어서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지도 알 수 없다.
같이 간 친구는 셔터를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그 친구의 카메라엔 멀리서도 또렷한 주홍색
지붕의 절 모습이 들어가 있으리라.
그 절의 스님은 삼매에 들어 있을까.
불을 활활 지펴놓고 늘어지게 오수라도 즐기고 있을까.
군밤을 까먹고 있을까.
눈 때문에 시주들이 뜸한 때를 틈다 여기 저기 법당 청소를
하고 있을까.
눈 위로 지나간, 꽃 잎 모양의 짐승 발자국을 살핀다.
까마귀떼가 우짖는다.
미끄러질까봐 안간힘을 쓰며 걷고 있는
두 알피니스트를 비웃는 것이리라.
"날개도 없는 것들이 눈 덮힌 미끄러운 산엔 왜
올라와서 저리 애 먹노? 모옷난 것들."
눈 온날의 까마귀는 더욱 검고 까마귀 소리는
더욱 청랑하다.
저 앙상한 나무들은
봄이 되면 다시 잎을 토해내겠지
인간은 그런 계절의 순환을 보면서
제행무상을 확인할 뿐이다.
진달래나무의 군락을 보느라니
봄을 바라는 심정이라기 보다
다소 우울한 기분이 된다.
노인들이 하는 등산은
특히나 초봄은 피할 일이다.
가을에 해도 슬프지만
새순이 막트는 초봄에 하게 되면
더 비감함을 느끼게 되니까.
어느 핸가
혼자 대구 앞산에 올라
바위 섶에 핀 진달래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덜 노인이었을 때였다.
내려오다 친구가 아득히 솟은 산 봉우리를 가리키며
우리가 탔던 산이라고 한다.
산 돼지 발자국 사이에 우리 발자국을
몇 개 보태놓고 온 셈이다.
그리고 거기 굴참나무 하나엔 '소변'이라는 거름을
조금 주기도 했다.